소소한 일상
사월 하순 넷째 금요일이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평소 음용하는 약차를 끓였다. 산야를 누비면서 채집한 영지버섯이나 헛개나무 등 건재를 주전자에 넣어 비등점에 오르면 불을 낮추어 1시간 정도 더 달인다. 근래 울산에 사는 친구가 충청도 어디 약초 농가가 재배한 당귀를 보내주어 같이 넣으니 향기가 달랐다. 한 번 달여내면 며칠간 먹게 되어 다른 음료나 생수는 찾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다니는 내과에서 혈액검사가 예정되어 아침밥을 거르고 진료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래전부터 혈당 수치가 높아 당뇨약을 복용해 오고 있다. 가족력에다 즐기는 술로 인해 의사 처방전 따라 약을 먹어왔다. 요새는 술을 끊어 혈당이 낮아져 안정되었음에도 의사는 약을 끊자는 얘기는 하지 않아 유감이다. 코가 꿰인 처지라 한 달 한 번 전문의를 만나 처방전을 받는다.
여느 날과 달리 아침밥을 거른 채 느긋하게 보내다가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뜰로 나가니 꽃대감과 밀양댁 할머니는 각자가 관리하는 꽃밭에서 등을 보이면서 뭔가 꼼지락거렸다. 꽃대감은 보름께 전 파종해 둔 꽃씨 발아 상태를 살피고 몇 종은 추가로 심으려고 했다. 안 씨 할머니는 천성이 워낙 깔끔해서 꽃밭에 잡초가 얼씬하지 못하게 했고 검불 한 가닥도 없었다.
반송시장 상가 빌딩 내과에 문이 열리자마자 제1착으로 찾으니 간호사는 먼저 나와 있고 의사가 뒤이어 출근했다. 채혈만 함에도 의사와 짧은 시간 대면해서 여름날 산행에서 상비약과 마찬가지인 접촉성 피부염 연고를 처방전으로 요청했다. 나는 산행 중 등산로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 개옻나무에 살짝 닿아도 옻이 올라 꼭 필요한 연고였다. 가려움 증상을 낫게 해주는 치료제다.
간호사로부터 채혈 후 혈압은 늘 정상 범위라 재지 않고 의원을 나왔다. 앞서 의사 면담에서 옻 알레르기 피부염에 대비한 연고는 약국에 들러 산 뒤 한 가지 볼 일이 더 기다렸다. 근처 농협 창구에서 새로 도입되는 교통비 할인 카드 제도를 알아봤다. 최근 대중교통 승객에게 교통비 할인 혜택이 있다고 해서 어떤 제도인지 대처해야 했다. 남들 비해 시내버스를 자주 타는 편이다.
요즘 은행 이용은 대부분 비대면으로 자동화기기에서 처리되는데 나는 창구 업무에 익숙한 세대임이 분명하다. 다음 달부터 도입될 대중 교통비 할인 제도 혜택을 보려고 창구를 찾은 첫 번째 고객임에도 여직원은 즉석에서 잘 숙지해 순발력 있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어 고마웠다. 수일 내 새로운 카드가 나오면 이 순서에 따라 처리해주십사는 내용을 쪽지에 적어주어 건네받았다.
의원 약국과 은행 창구 일을 서둘러 마치고 소답동으로 나갔다. 평소 같으면 오전 일과가 상당히 진행 중일 시간이라 마음이 바빴다. 창원역을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용강고개를 넘어갔다. 대체로 이른 아침 이용하던 버스인데 해가 중천에 솟은 후 타고 가기는 드문 경우였다.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 주남저수지를 비켜 들녘을 거쳐 대산면 소재지 가술에 닿았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마을도서관을 찾아 한쪽 구석 내가 앉는 열람석을 차지했다. 열람석 중앙에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어르신 문해 교육 강좌가 열렸다. 현직 시절 국어를 가르친 내보다 더 전문가가 몇 분 지역 할머니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바르게 익혀 사용하도록 섬세하게 지도했다. 돋보기를 꺼내 끼고 배낭에 넣어간 창원도서관에서 대출받은 ‘유학 오천 년’을 펼쳐 읽었다.
점심때가 되어 도서관을 나와 국숫집에서 한 끼 때웠다. 이후 대산면 행정복지센터로 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업무를 보지 않아 방문객은 현관에서 편안하게 머물러도 되었다. 점심시간 종료와 함께 근처 소공원에서 서성이다가 정한 시간이 되어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했다. 형광 조끼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국도변과 마을 안길을 지나 들녘 들길까지 걸었다. 2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