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望) 외 2편
김박은경
이런 밤이면 무슨 일인가 벌어지지
잃어버린 머리핀이며 진주귀걸이 한 짝
목덜미의 연한 점까지 고스란해지는 밤이면
조개가 벌어지고 게들이 이동하고
환해서 몸속까지 들여다보이는 밤이면
해와 달과 우리가 일직선이 되어
순서대로 순순히 이어지고
사라진 것들이 기억을 따라
제 자리로 돌아오겠지
털이 흰 개는 난산으로 터진 배를 하고
쏟아져 내리는 제 창자를 물어뜯었다
숨겨둔 강아지를 찾느라 제정신이 아닌 채
이미 죽은 강아지를 찾아 삼킬 때
입속에서 어린 뼈가 부서지는 소리
무심히 눈 밟는 소리
흰 바닥을 가득 채우는
개의 어지러운 발자국은 붉고
모란 꽃무늬 이불 밑에 누울 때마다
입도 없이 우는 아이의 음성
어차피 미수에 그칠 운명
그날의 나쁜 꿈이 아름다워서
검푸른 밤이 끝나지 않는다
어쩌자고 그렇게 좋아했을까
겨우 남은 목숨을 걸 정도로
확신하는 이목(耳目)
네 시 방향으로 놓은 카메라가 세 시 반 방향으로 왼쪽으로 올려둔 프라이팬이 오른쪽으로 목욕 가운이 수건으로 칫솔이 치약으로 여러 번 훔쳐보았고 초록색도 사라졌다니 정리하자면 시끄럽다는 거죠, 심하다는 거죠, 참을 수 없다는 거죠 고개도 들지 않고 단언하며 종이를 채워가는 유스타키오의 손에서 사탕을 벗기면 마른 나뭇잎이 굴러다니고 숨을 쉴 때마다 주머니가 무거워지고 좁은 복도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솜털들이 허공 가득 흩날리고 그러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지요 나라도 그럴 수는 없다니까 죽어도 잊어버렸습니다만 어떻게 하면 사랑해요 미치지 않고서야 두 번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 정말이야 너한테만 누구세요 영원히 영혼의 반쪽 이따가 술 한 잔 즐거웠어요, 이래갖고서야 고맙다니까
내일의 메뉴
어서와 저녁 먹자 할 때마다 죽은 엄마가 수저를 쥐어주니 식기 전에 빨리 먹자 함께 모여 잘 먹겠습니다, 먹자, 먹자, 하다 보면 문득 먹자가 이상해져서 이상하게 먹기 위해 먹이기 위해 먹히는 관계라니 무성한 각주가 접시 아래로 깔리고 모음과 자음의 향신료와 소란스런 물음표들이 만들어내는 끝내주는 맛을 위해 이대로 끝낼 것처럼 이미 끝난 것처럼 요란하게 웃는 겁니다 그러니까 함께 웃는 우리는 한 솥 밥을 먹는 사람, 밥솥처럼 속이 텅 빈 당신을 사랑해, 사랑해 하다 보면 사랑도 조금씩 이상해져서 이상한 밥 한 그릇을 위해 늙어버린 서로를 빈 밥그릇처럼 들어 증명하면서 바짝 마른 팔다리들은 분주하고 엉성해진 머리는 냉정하면서 달라붙은 밥풀을 떼어 먹으면서 말하는 겁니다, 내일은 뭘 먹지
먹어도 다시 배가 고픈 것은 밥그릇 위에 올라앉은 사자(死者)들 탓입니다 재를 뿌린 이판사판의 그릇 속으로 짜릿한 탄산이 다시 튀어 오르도록 흔들어주세요, 한 끼를 위해 흔들고 다음 한 끼를 위해 또 흔드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릇이 놓인 붉은 식탁보, 붉은 앞치마, 붉은 눈동자, 붉은 혀, 붉은 목구멍, 붉은 장기들을 지나는 붉은 불길은 어제도 오늘도 뜨거워 날마다 지옥의 연대기를 써대는 중인데 첫 술의 저주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것이어서 절대 안 깨지는 그릇을 절대 못 깨면서 죽기 살기로 채우고 비워내면서 어떻게든 살자, 살자 하려니 살자가 이상해지고 차라리 죽자,죽자 하려니 죽자가 이상해지는데도 디저트를 핥으며 고민하는 겁니다, 내일은 뭘 먹지
김박은경 2002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중독』 산문집 『홀림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