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지나친 스타 숭배는 스타를 포함한 모든 연예인이 실제로 어떤
직업인가를 알고 나면 쉽게 치유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최근 들어
연예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어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실체를 모든
사람에게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1993년 서울 방송 제3기 신인 탤런트 시험엔 20명 모집에 7천5백78명이 몰려
3백80 대 1 의 경쟁률을 기록하였다. 이들은 그저 심심풀이 삼아 탤런트 시험에
응시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느 신문은 청소년들의 연예인 신드롬 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
최근 3-4년 동안 호황을 누려 온 서울 여의도 방송가의 10여 개 연기 학원에는
이번 여름 방학 기간에 10대 수강생들이 더욱 많이 몰려들었다. 연기 학원
가에서 명문으로 소문난 이 학원의 경우, 성인반. 중고반. 유치반과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연극 영화학과반 등 4개 반에 1백80명의 수강생을 1년에 세 차례씩
모집하고 있으나 보통 1천여 명씩 수강을 희망하고 있어 간단한 전형을 통해
선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강 희망생 90% 이상이 중고생이고 특히 중학생이 이
중 60%여서, 중고생반 등은 항상 수강 인원을 초과해 1백여 명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많은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화려한
직업이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도 대다수 연예인들이 생계 유지에 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92년 한국 방송 연예인노동 조합이 연예인 2백5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94.8%의 연예인들이 퇴직금이나 국민 연금 등
노후를 위한 대책이 없는 연예인이란 직업의 특성상 노후에 대해 불안해하며
65.1%의 연예인들이 불규칙적인 수입 때문에 저축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른 보면 쉽게 스타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가수만
하더라도 매년 7-8백 명의 가수 지망생이 각기 1억여 원의 돈을 들여 데뷔
앨범을 취입하지만 그 가운데 이른바 히트 를 치는 가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스타가 되는 길도 매우 험난하다. CF모델 이종원씨는 무명 시절
캘리포니아 건포도 CF에서 NG를 거듭내다 화가 난 감독에게 뺨을 얻어맞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으며 콜라 광고를 찍다가 물에 탄 콜라를 열여덟 병이나 먹고
토하기도 했다. 그런 정도의 사연이 없는 스타는 거의 없다.
연예인들의 겹치기 출연 문제만큼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실상을 잘 말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TV드라마를 살펴보자. 한국 TV방송 연기자 협회에 등록한
회원 수는 8백 60여명이지만 그 가운데 드라마에 상시적으로 출연하는 탤런트는
1백 명 정도에 불과하다. 40여 명의 간판급 탤런트는 적어도 2편 이상의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특히 일부 스타급 탤런트들은 지나친 겹치기 출연으로
시간이 없어 대사조차 외우지 못한 채 촬영에 들어가며 누적된 과로로 때문에
자주 병원에 입원해 링거 주사를 맞기도 한다. 또한 그들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드라마의 내용이 바뀌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 겹치기 출연으로 인한 문제를 주제로 하여 한국 방송 연기자 협회는 93년
3월 좋은 드라마를 위한 간담회 를 개최하였다. 이 간담회에서 인기 탤런트들은
생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겹치기 출연은 피할 수 없다. 드라마 한 편을
찍더라도 생계가 보장되는 외국의 경우처럼 우리 나라의 출연료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러야 연기에 전념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그 반면에 시청자 단체
대표들은 생계를 걱정하는 연기자는 겹치기 출연을 할 수 없다. 인기 없는
연기자는 방송사에서 찾지 않기 때문에 겹치기 출연 연기자는 생계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수입에 집착하는 것이다. 라고 반박했다.
양쪽의 주장에 다 일리가 있다. 문제는 생계 유지 의 수준이다. 인기
탤런트들의 경우 품위 유지 에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 겹치기 출연은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고수입에 집착하거나 광고
모델료를 올리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겹치기 출연을 마다지 않는 탤런트들도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방송사에 있다. 시청률을 보장받기 위한 안전
제일주의 에 집착하는 방송사는 인기 탤런트 위주로 캐스팅을 하며, 탤런트의
입장에선 설사 출연을 원치 않더라도 방송사의 출연 요구를 원치 않더라도
방송사의 출연 요구를 거절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방송사에서 경쟁 방송사에
연기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배역을 만들어 겹치기 출연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또, 탤런트들은 인기 스타로서 자신을 홍보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또는 연출자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코미디나 각종 퀴즈 프로그램에까지
겹치기 출연을 하게 된다. 방송사는 그 점을 악용해서 연예인들을 골탕먹이는
저질 오락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한다.
가수들이 주로 출연하는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겹치기 출연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방송 위원회가 93년 1,2월에 걸친 4주간 4개 채널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모니터한 결과에 따르면 그 기간 중 프로그램의 수는 47개로 총 2백
4회가 방영돼 3백 65명의 연예인의 7백 78회에 걸쳐 출연한 것으로 집게됐다.
그런데 5회 이상 출연한 연예인들은 50명으로 전체 연예인의 13.7%에 불과했으나
이들의 출연 횟수는 3백 87화에 덜해 전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예인의 출연 빈도수는 가수 김원준이 19회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철이와 미애(18회), 현진영(16회), 김종서,하수빈(13회) 순이었다. 요컨데,
방송사들은 어떤 연예인들이 인기가 좀 있으면 그대로 놔 두지를 않고 최대한
혹사 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스타 집착증 은 영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93년에 제작된 영화 60여
편 가운데 30편의 주연이 배우 10명에게 맡겨졌다. TV프로그램이든 영화든 역시
스타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계산에 따라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방송사들의 탐욕 과 관련되어 한 연예인의 다음과 같은 불평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방송사처럼 냉혹한 데도 없습니다. 스타덤에 올랐다 하면
방송사는 연예인을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도구쯤으로 생각하지요. 아무리
사정을 얘기해도 소용이 없어요.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건강 유지를 위해서
방송 출연을 자제해 보려고 생각해 보지만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아요. 어느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어느 프로그램을 거절하다 보면 금방 거들먹거린다.
건방져졌다 는 비난의 화살의 빗발치거든요. 특히 TV에 많이 의존하는
연예인이나 연예인일수록 난감해질 때가 많지요. 연예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연예인도 겉으로는 대단히 행복해 보이지만 매우 심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거야 행복한 고민 아니겠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언제 인기가 떨어질는지 몰라 밤잠을 설칠 정도라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MBC-TV의 드라마 마지막 승부 로 갑자기 스타가 된 다슬이
심은하씨는 이렇게 말한다.
문득문득 두려움이 몰려와요. 이렇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외톨이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에요. 방송
관계자들, 팬들, 그리고 친구들마저도 모두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마치 가위에 눌린 듯한 기분이 되기도 해요.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에 대해 갖고 잊는 오해는 PD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MBC는 93년 신입 사원 공채에서 그간의 관행을 깨고 기자직과 PD직을 구별하지
않고 뽑은 다음 합숙 연수를 시킨 후 최종 합격자들의 희망 업종을 취합했다.
놀랍게도 거의 PD직을 희망했다고 한다. 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자직이 훨씬 더 인기가 높았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결과였다.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그들의 대답은 기자는 3D(dirty, difficult, dangerous)직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PD는 3D직종과는 거리가 멀단 말인가? 사실 이건 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겉으로만 보이는 PD는 권력이 세고 멋진
직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PD들은 자조적으로 기자가
3D라면 PD는 5D쯤 될거라고 말한다. 제작 기간 중에는 늘 잠이 부족해
졸리고(drowsy), 연기자, 스태프 등 50여 명의 사람들에게 일일이 신경써야 하는
미묘한 (delicate)직업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기자는 6개월의 수습 기간 중에도 직접 취재를 하지만 PD는 드라마의
경우 짧게는 3-4년, 길게는 7-8년의 AD(조연출)과정을 거쳐야 연출자가 될 수
있다. AD는 그야말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육체 노동자이다. PD가 된다 해도
자신의 사셍활을 거의 갖지 못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린다. 유능한 PD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그런 어려움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인내심이다. KBS의
이민홍 PD는 PD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미니시리즈 살아 남은 자의 슬픔 을
마지막으로 드라마 연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드라마 연출을 그만두겠다는 건 결코 제가 그 분야를 마스터해서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자만심에서가 아닙니다. 열악한 제작 여건 속에서 날밤 세우기를 밥먹듯
하면서 새벽 촬영을 하던 어느 날 이렇게 모든 힘을 다 짜내서 일을 한다면 한
나라 대통령도 될 수 있겠다. 는 생각마저 들면서 더 이상 연출을 계속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PD는 육체적으로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때로는 PD의 능력은 스타를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한 방송 담당 기자는
어느 PD가 겪은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는 드라마 출연 진용을 놓고선 윗사람으로부터 개런티와는 상관없이 잘
나가는 스타 를 끌어들이라는 지시를 받은 뒤 청춘 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한
연기자를 상대로 집중 포섭 작전에 나섰다. 물론 회당 출연료로 1백만 원(그의
평소 출연료는 80만 원선)에 더하기 알파라는 아주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극비리에 전개된 그의 스카웃 작전은 두 달 동안
계속됐다. 당사자를 직접 만나 설득해 보기도 했고, 그의 부모를 통한 우회
작전도 폈다. 심지어는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새벽녘에 지방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까지 마중 나가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두 달 여간에 걸친 그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려 이제 그는 무능한 PD로 취급당할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물론 그런 곤욕은 예외적인 경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PD는 결코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화려한 직업이 아니란 건 분명하다. 연예인이든 PD든 연예
분야로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일단 연예계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버리는
것이 좋다. 스타가 된다 해도 허무하기 짝이 없다. 스타 중의 스타라 할 조용필
씨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인기라는 게 흔한 말로 사람 잡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구름 같고, 바람
같고, 파도 같은 것이지요.
첫댓글 인기라는 게 흔한 말로 사람 잡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구름 같고, 바람 같고, 파도 같은 것이지요. 2222
맞아요.어떤 작품 만나는냐에 따라서 정말 인기도 왔다갔다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