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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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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찰 스크랩 한국불교건축의 백미 미륵전이 있는 김제 모악산 금산사(1/3)
현림 추천 1 조회 194 17.07.29 18:59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불교건축의 백미 미륵전이 있는 김제 모악산 금산사(1/3)

 

@금산사(金山寺)는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로

전라북도의 최대 사찰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며

그 창건에 관해서도 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번 금산사의 포스팅은 3부로 나누어 한다.

1부에서는 금산사 창건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으로, 2,3부에는 각각의 전각 위주로 포스팅 된다.



금산사는 진표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그것은 진표율사가 신라 오교(五敎) 가운데 하나인 법상종의 근본 도량으로 이룩해 놓았고

미륵전 등 수많은 불전을 세운 승려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1884(고종 21) 나기익(羅基翊)이 편찬한 김제읍지등에는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진표 이전부터 금산사가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43년 김영수(金暎遂)가 펴낸 금산사지에 의하면

 599(법왕 1) 왕실의 자복사(資福寺)로 개대(開垈)되었다고 초창 연대를 밝히고 있다.

초창 당시의 사양(寺樣)은 소규모로 대가람의 면모를 형성하지 못하였다가

762(경덕왕 21) 진표율사가 개창에 착수하여

766(혜공왕 2) 대사찰로서 면모를 갖추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설명을 종합하면 금산사는 진표율사 이전에 초창되었으며

진표율사에 의해서 그 면모가 일신되었고,

견훤의 후백제 왕실과 밀착되어 크게 번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사가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된 시기는 진표(眞表)대사가 중창(重創)을 이룩한

경덕왕대 이후로 보고 있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중창주 진표는 12세에 금산사의 순제(順濟)에게 가서 중이 되었고,

그 뒤 금산사를 떠나 선계산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참회법(懺悔法)을 닦아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계법(戒法계율을 엄수하는 수행법)을 전해받은 뒤

금산사로 돌아와서 중창을 시작하였다.

 

762(경덕왕 21)에 시작하여 766(혜공왕 2)에 중창을 끝낸 진표는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을 조성하여 주불(主佛법당의 중심이 되는 부처)로 모셨고,

금당(金堂법당)의 남쪽 벽에는 미륵보살이 도솔천(兜率天)에서 내려와서 그에게 계법을 주던 모습을 그렸다.

이 절은 미륵장륙상을 주불로 모심으로써 법상종(法相宗)의 근본 도량이 되었으며,

고려시대에도 법상종에 속해 있으면서 법화현찬(法華玄贊)

·유식술기(唯識述記)등의 법상종 관계 장소(章疏)들을 간행하였다.


 

진표의 중창 이후 후백제견훤의 보호를 받아 부분적인 보수가 있었으며,

법상종의 대종사이자 왕사인 혜덕(慧德)1079(문종 33)금산사 주지로 부임하여,

퇴락한 절을 보수하고 새로운 법당을 증축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현존하는 금산사의 중요 석물인 석련대(石蓮臺오층석탑·노주(露柱) 등은 모두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혜덕왕사[1038~1095]는 진표율사 이후 금산사의 대표적인 승려 중 첫째로 꼽히며

고려 문종 때의 스님으로 속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소현(韶顯)이다.

11세 때 입산하여 해안사의 고승 해인국사의 제자가 되었고

1061(문종 15) 왕윤사에 실시된 오교대선(五敎大選)에 합격하여 대덕의 법계를 받았다.

그 후 1069(문종 23)에 중대사, 1071년에 삼중대사가 되었으며

1083년에는 수좌(首座)와 승통(僧統)의 자리에 오른 스님이다..

혜덕왕사는 여러 사찰의 주지도 역임했는데 1079(문종 33)에는 금산사의 주지로 취임하였다.

그는 또 절의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을 설립하여

간경(看經경전을 읽음법석(法席법회) 등을 주관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금산사는 규모가 큰 도량이 되었다.

 

그러나 1598(선조 31)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모든 건물과 산내의 40여 개 암자가 완전히 소실되었다.

1601년 수문(守文)대사가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635(인조 13) 낙성을 보았다.

그 당시 수문대사를 도와서 역사에 참석했던 승려는

지훈(智訓덕행(德行석준(釋俊천정(天淨응원(應元학련(學蓮태전(太顚운근(雲根) 등이었다.


 

1725(영조 1) 금산사에서 남악(南岳)이 화엄대법회를 열었다.

고종 때에는 총섭(摠攝주지)으로 취임한 용명(龍溟)이 가람을 일신하여,

미륵전·대장전(大藏殿대적광전(大寂光殿) 등을 보수하였고,

1934년 성렬(成烈)이 다시 대적광전과 금강문(金剛門미륵전 등을 보수하였으며,

1998년 방등계단 앞에 적멸보궁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포광(包光)이 지은 금산사지에 의하면,

금산사에서 처음 주지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이 신라 문성왕 때부터라고 하였으며,

그 이전까지는 화상(和尙) 또는 사주(寺主)라고 불렀고,

1592년에는 총섭, 1902년에는 섭리(攝理)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물·유적 중 일부 석조물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임진왜란 후의 조형들이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거대한 사역에 대사(大寺봉천원(奉天院광교원의 3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86채의 당우가 임진왜란의 참화로 없어진 뒤 40년 만에 대사지역의 건물만 재건되었고,

나머지 사지(寺址)는 절의 동북쪽 넓은 지역에 유지만 전해지고 있다.

 

근년에 월주(月珠)스님이 주지로 취임한 이래

모든 당우와 도량을 정비하여 수도처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500m 밖에 위치하는 일주문을 비롯하여,

금강문·보제루(普濟樓미륵전·대적광전·대장전·

명부전·승당(僧堂서전(西殿) 등의 건물을 중수 또는 중건하였다.

 

또한 문화재로 지정된 중요 유물로는 보물 제22호인 김제 금산사 노주,

보물 제23호인 김제 금산사 석련대, 보물 제24호인 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慧德王師塔碑),

보물 제25호인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보물 제26호인 김제 금산사 금강계단,

보물 제27호인 김제 금산사 육각 다층석탑, 보물 제28호인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

보물 제828호인 김제 금산사 석등, 보물 제827호인 김제 금산사 대장전 등이 있다.


 

이 중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미륵전은 신라시대부터 미륵본존을 봉안했던 금당이다.

 신라 때의 형태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거대한 불상의 좌대 아래에 있는 철수미좌(鐵須彌座) 등의 형태로 보아

임진왜란 전에는 거대한 미륵존상을 봉안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적광전은 금산사 내에서 단층 건물로는

가장 웅장한 건물 수계(受戒설계(說戒설법(說法) 등의 법요를 진행했던 곳이다.

이 법당은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뒤 1635(인조 13)에 중건하여 총 28칸의 큰 불전을 이루었으나,

198612월에 화재로 소실되어 1992년 복원하였다.

 

대장전은 본래 미륵전의 정면 우측에 위치하여, 미륵전을 장엄하게 하던 정중(庭中) 목탑이었다.

1922년 이 건물을 현 위치로 옮겨지었지만, 지붕에는 전대 목탑의 잔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복발(覆鉢)과 보주(寶珠) 등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전 내에는 석가모니불과 가섭·아난(阿難)의 제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은 명부시왕(冥府十王)을 봉안한 당우로서 1857(철종 8)에 비구니 만택(滿澤)이 재건하였으며,

나한전은 방등계단(方等戒壇) 바로 옆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계단을 참배할 수 있으므로 일명 계단예배전(戒壇禮拜殿)이라고도 한다.

나한전의 내부 중앙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6나한상(十六羅漢像)을 봉안하였다.


 

방등계단 앞에는 1998년에 적멸보궁을 지었다. 일주문은 1975년에 고평용이 건립하였으며,

금강문은 절로 들어가는 두 번째 산문으로서 절을 수호하는 금강역사의 화상을 안치한 곳이다.

보제루는 절로 들어가는 세 번째 문루 구실을 하는 건물로서

법요(法要법회의식)와 강설당(講說堂)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현존하는 당우로는 성렬이 1939년에 신축한 종각과

1940년에 신축한 중향각(中香閣), 1943년에 신축한 칠성각, 연대 미상의 송대향각(送大香閣)이 있다.

또한 1999년에 금산사 내의 성보문화재를 보관 전시하는 성보박물관을 경내에 지었다.


 

석조유물 중 미륵전 우측에 있는 방등계단에는 석종부도가 있다.

이 계단에 부도가 있으므로 탑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계단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방등계단 앞에는 오층석탑이 있다.

일반적으로 계단 앞에는 석등을 안치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으나,

이곳에 석탑을 건립한 것은 불전의 정중탑(庭中塔법당 앞 뜨락의 탑)을 건립하는 방식으로

 불탑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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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7.29 19:41

    첫댓글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17.07.30 04:29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17.07.31 17:25

    감사합니다.
    잠시 머물다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행복하소서

  • 17.08.02 15:35

    감사합니다.나무대자대비 관세음보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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