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長春) 대국
최현득
새벽하늘에 구름장 날린다.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구름만 날리나
내 맘도 날린다.
(중략)
여기는 송화강, 강물이 운다.
에잇 에잇 어서 노 저어라, 이 배야 가자
강물만 우더냐
장부(丈夫)도 따라 운다.
1935년 파인 김동환이 노래한 ‘송화강 뱃노래’. 나라 잃은 슬픔과 곰삭은 저항의지가 굵게 굵게 꿈틀거린다.
그 송화강(松花江)을 보았다,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탄성을 지를 뻔했다. 짧은 순간 수도 없이 많은 상상속의 장면들이 파노라마가 되고. 길림성 장춘시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길림시 부근에서 북류하는 송화강을 만나는 곳, 만주 땅 한복판이다. 2014년 여름날이었던가.
장춘(長春) 대국과 백두산 관광.
나로선 일생일대의 이벤트요 최고의 국외여행이 아닐 수 없다. 대구의 바둑광인 치과의사 L(작년 초 삶의 돌을 거둔 그는 저승길에서도 바둑을 즐겼을 것이다)이 대구시-길림성 바둑교류전을 주관하면서, 3박4일 일정에 백두산 관광을 끼운 것이다. 중국을 여러 번 다녔어도 늘 채워지지 않은 무엇이 있어 찜찜하던 차가 아니었던가. 배달민족의 뿌리이자 천년의 한이 서린 역사의 땅!
먼저 예정된 반상19로 돌의 전쟁을 치른다. 길림성의 성도인 장춘, 바둑대회를 성정부(省政府)의 공무원들이 진행하는 좀 이상한 나라. 하기야 그네들이 머나먼 백두산 안내까지 도맡았으니 우리로선 별난 호강을 한 셈이고, 그런 만큼 내가 이상한 표현을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 것 같다.
오성홍기와 태극기를 무대에 모셔놓은 국제전(?)의 양상이니 승부욕이 작동할 만도 하다. 그런데 나의 상대는 꼬마다. 바둑에 장래를 걸었을 테니 꼬마는 물론이고 배석한 아버지까지 잔뜩 긴장해 있다. 아니 아버지가 더 긴장했을 것이다.
열 살짜리 꿈나무에게 상처를 줄 수야 있나. 나는 져야 한다. 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실력도 아마 달릴 것이다.
공피고아(攻彼顧我), 신물경속(愼勿輕速), 부득탐승(不得貪勝)…….
바둑 한 판은 기나긴 여정이다. 누가 말했나,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그리고 운명과 우연이란 것도 기약 없이 드나든다.
적의 숨소리가 고르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아버지의 콧등에도 땀이 맺힌다. 이윽고, 무념의 승리. 심적인 부담과 감정조절 능력이 승패를 갈랐을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 바둑사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룩한 사건이 일어난다.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 많은 것을 바꾸었다. 해석도 전망도 여러 가지다.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싶다. 감정에서 해방된 인공지능에게 감정의 노예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이길 수 없는 것이라고.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전쟁에 대한 원초적 욕구가 19로의 반상유희(盤上遊戲)로 축소된 것이 바둑일 뿐이다.
장춘은 진짜 전쟁을 떠올리기에도 썩 좋은 장소다. 우선 위만황궁(僞滿皇宮)을 꼭 들러야 한다. 중국인이 만주국(1932~1945년)을 가짜라고 불렀는데 그 소굴을 우리처럼 때려 부수지는 않은 모양이다.
쿵! 쿵!
지축을 울리는 일본 제국주의 관동군의 군화발소리가 들린다. 장춘을 신경(新京)이라 개명하며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를 꼭두각시로 앉혀놓은 시점, 그네들의 야무진 꿈은 호주와 아라비아까지 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정상 위만황궁을 못 간다고 한다.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벤트가 있는 여행이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그러나 잊어라, 잊어야 한다. 일곱 시간 만주벌판을 가로지르는 대장정이 있지 않나.
도중에 송화강을 만난 것이다. 우리가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를 노래한다면 저쪽은 ‘송화강 흘러내려 광야 수만리’를 외칠 것이다.
끝도 없는 벌판, 옥수수도 끝이 없다. 그 많은 옥수수도 부족하여 수입한다는데, 그 많은 가축, 그 많은 사람의 입. 질릴 만큼 큰 중국을 다시금 실감할 수밖에 없다.
송화강의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떠오른 그림들, 그 중에서 갈수록 선명해지는 두 가지 장면이 지금껏 잊히지 않는다.
여진에 짓밟힌 북송(北宋)의 망국 황제 휘종과 흠종이 붙잡혀 와서 처참한 말년을 마감하는 장면이 그 하나다. 삭풍이 살을 파고드는 송화강의 끝자락 오국성에서. 죽음보다 더한 인생유전의 극치가 아닐까.
또 하나는 배달민족의 한이 서린 장면이다.
서기 668년,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은 만주 땅에서 당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칠백년 고구려의 명줄을 끊고 만다. 울고 싶은, 울어야 할 코미디…. 언젠가 하남성 낙양에 문화탐방을 갔을 때다. 북망산(北邙山)에 모셔진 남생의 묘를 코앞에 두고 발길을 돌렸다. 묻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는데.
작금 김정은이 극동 러시아를 휘젓고 다니는가 싶더니 그 동네의 차르가 북한을 간단다. 중국의 황제는 난데없이 남한을 오겠단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복잡한 듯 단순한 것이 세상의 이치인 모양이다.
바둑 한 판에 사설이 길었다.
# 이 글에서 중국어 고유명사는 외래어표기법을 떠나 관용해온 한글독음을 사용했습니다.
첫댓글 ※남한 ☞ 대한민국
*우리 윗 세대들이 검붉은 피와 구슬땀을 흘려 이룩한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존재.
즉, 암암리에 아직도 그 정체를 깜쪽같이 숨기고
자신은 가장 착하고 순진무구한 척, 혹은 스스로 정의롭다고 착각하는
한마디로 이율배반이요 지독한 거짓말과 야비하기 짝이 없는 간첩 무리에 다름 아닌
종북들이 엄연히 설치는 이 땅 위에서
적어도
나라에 대한 호칭 만큼은 가려서 불러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다만 이 글은 칼럼이 아니라 수필로 쓴, 여백을 감춘 글입니다.
동강난 현실에 방점을 둔 것이라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산 최현득 괜스레 제가 문장 하나에
넘치게 오버를 한 건 사실입니다.
그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ㅎ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그 이 전의 부여라는 나라를 이룬 한민족(동이족)의 역사는 민족 간의 내부 분열로 계속 국가의 규모가 줄어 들었지요. 국토가 한반도 내부로 고착된 조선이 망한 것도 외세에 의한 내부 분열 때문이고, 남북이 갈라진 것도 이념에 의한 내부 분열 때문 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 정치 판은 신라 고구려 백제의 전 삼국 시대, 후 고구려 후 백제 신라의 후 삼국 시대, 그 보다 더 최악의 상황인 북한(일인 공산 독재), 남한 (좌파: 우파)로 분열된 완전히 새로운 신 삼국 시대나 마찬가지 입니다. 필부 눈에도 보이는 데, 호시탐탐 한반도를 집어 삼키려고 노리는 강대국 정치 지도자들의 눈에는 더 잘 보이겠지요.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헌법을 개헌 해야 합니다. 4년 중임제로 하든가, 내각 책임제로 하든가 국민들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도록 틀을 바꿔 줘야 나라가 망하지 않습니다.
현재와 같은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에서 3년만 지나면 레임덕이 오고, 정당 구성원이나 정부 구성원들은 자기 미래가 먼저 걱정이 되니 여기 저기 기웃거리게 되는데, 누가 있어 나라를 바로 이끌겠습니까?
헌법 개헌을 해서 책임정치를 구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릴 때 도덕 책에서 읽은 우화가 생각나서 적습니다. 푸른 들판에서 소 세 마리가 사이 좋게 풀을 뜯어 먹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사자가 소를 잡아 먹으려 하니 세 마리가 늘 뭉쳐서 다닙니다. 아무리 사자라도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간질을 합니다. 누렁 소야! 얼룩소가 너를 욕하더라!, 얼룩소야! 검둥소가 너를 욕하더라! 하면서 귓속말로 자꾸 이간질을 합니다. 결국 소 세 마리는 서로 미워하며 흩어지게 됩니다. 사자가 공격해 와도 각자 도망만 다니다가 다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분열은 멸망으로 가는 참으로 무서운 책략인 데 우리 인간이란 종種은 "이간질"을 이겨낼 신념(믿음)이 원래부터 부족한 종種입니다. 판을 두고 벌이는 세력 전이 포석인데 포석에서 밀리면 이미 바둑은 진 것이지요. 고립을 시켜서 두 집을 못 만들도록 끊어서 내 집으로 만드는 통일 전술 전략의 핵심은 헌법 개헌에 있습니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확실하게 판을 짠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일을 잘 해냈을 때,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더 주는 보상이 없이는 나라가 망한다는 게 필부의 생각 입니다. 각자가 알아서 구명도생하는 게 난민입니다
시국에 대한 칼럼은 전 자신이 없습니다.
글을 빗대어 은유를 즐기거나 간만 보는 정도지요.
명색 문인의 권리이자 강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