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 할머니
희은 최 진택
휴일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산채 비빔밥을 청해서 먹었다. 각종 몸에 좋은 산나물과 향기로운 나물을 듬뿍 넣고 비빔밥을 비벼서 먹는다. 허기가 가실 즈음에 전에 참 맛있게 먹었던 열무 비빔밥이 생각이 난다. 아침을 먹고 산책 겸 운동 삼아 걸어서 동네 한 바퀴를 매일 돌고 있었다. 주유소 앞 인도에서 할머니가 끄는 파지 손수레가 낯은 보도 불럭 턱을 넘지 못하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손수레 손잡이를 잡아 끌어보니 훌쩍 올라섰다. 어느새 할머니는 슬그머니 손수레 손잡이를 놓으시고 손수레 뒤로 가셔서 가쁜 숨 몰아쉬며 손수레를 밀어주고 계셨다. 차마 놓을 수도 없는 손수레 손잡이를 끌고 고물상에서 파지를 내려 드렸다. 여사장이 천원을 주었다. 폐박스 한 장만 가져 오셔도 여기까지 운동하시며 걸어오신 것이 고마워서 500원 동전 한 닢이라도 드린단다. 빈 수레를 끌고 할머니 뒤를 따른다. 행여 누가 볼까 얼른 이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마침 동네 슈퍼가 눈에 띄어 할머니를 슈퍼 들마루에 앉히시고 바나나 우유 한 묶음과 양갱1봉지, 손수레에 묶어드리고 아이스크림 한 개씩을 나누어 먹으며 자리를 피해 나왔다. 며칠 후 할머니가 파지를 팔고 빈 수레를 끌고 집으로 가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제는 구면이라 할머니와 함께 손수레를 끌고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어느 2층집 대문 옆에 작은 쪽대문을 열고 들어가시며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라면을 끓여 주시겠단다. 파지 수레는 이런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방 한 칸에 주방과 대청과 침실이 함께 사용되어지고 있었다. 좁지만 나름 깨끗하게 잘 정돈이 되어 있다.
할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맛나게도 끓여서 두레 반에 내 놓으신다. 방에만 있으면 눕게 되고, 게을러지고 입맛도 없으시 단다. 몸도 더 아픈 것 같아서 매일 동네 한 바퀴를 손수레를 끌고 파지도 줍고, 친구도 만나보고, 그렇게 운동 삼아 움직이신단다. 몸이 많이 좋아 지셨단다. 할머니는 파지가 부르는 소리에 힘을 내어 손수레를 끌고 나가신단다. 고물상에서 500원, 1,000원을 주셔서 친구들이랑 야쿠르트도 사 잡수시고 더없이 즐겁다고 하신다.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살아 있음을 몸소 실감케 하는 파지는 보약이라신다.
지나치는 이웃들이 “파지 할머니, 내일 들르세요!”라고 속삭이듯 말하고는 사라진다. 할머니 이름은 “파지 할머니.”였다 어느 집에서는 기다렸다가 정리해서 접어놓은 박스와 신문지 묶음을 얼른 내어 주셨다. 파지는 이웃을 잇는 끈과 같았다.
가끔 년 말이면 미담을 소개할 때 폐지를 주워서 판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운 미담이 사진과 함께 소개 되는데 그 사람은 노인도 아니 였고, 트럭을 가지고 다니기도 하였다. 한개, 두개 파지를 주워 용돈으로 쓰시는 노인들을 위해서 그냥 그 자리에 파지를 놓아 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다. 그 트럭이 앞서 주워가는 파지는 수십 명의 노인들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2천원, 3천원이다. 노인들보다 앞서 재빠르게 수거해 가서 그 돈으로 누구를 어떻게 돕는다는 말인가? 세계 평화를 위해서 아프리카로 보내지려나? 아니면 캄보디아 우물 파는데 보태여 지려나? 혹 사진 찍어 어디에 쓸데가 있는 것은 아닐까? 파지는 위선자의 도구도 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좋은 일에 쓰여 지는 것은 맞겠지만 우리 이웃에도 작은 손수레에 파지 몇 장을 줍기 위해서 힘없는 다리로 온 동네를 힘겹게 돌아야 하는 우리들의 노인들이 있다. 미담의 주인공은 노인들보다 젊고 트럭도 있으니 더 큰 일거리로 불우이웃 봉사를 해 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제는 거리를 지나다 폐지를 보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는 파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 나셨다. 온 동네에서 할머니를 자주 목격하실 수 있었다.
하늘이 맑은 날 산책길에 산 아래 할머니 집 방향으로 발길이 돌려졌다.
할머니 집 앞 들마루에는 동네 친구 두 분이 오셔서 꽁보리밥에 열무김치, 된장국 맛나게 끓여서 참기를 듬뿍 넣고, 고추장도 넣고, 색깔도 먹음직스러운 양푼이 비빔밥을 만들어 놓으셨다. 한두 번 해 오신 모습이 아니었다. 어느 할머니는 보리밥을 지어 오시고, 또 다른 할머니는 된장국을 맛나게 끓여 오시고, 열무김치에 고추장에 모두 각자 집에서 조금씩 가져 오셔서, 양푼에 모아 붙고 비비며 미소가득, 마치 어린아이들 소꿉놀이 하듯, 이야기꽃을 피우며 이웃의 정을 시원스레 비비신다. 할머니들이 한 그릇 수북 히 내어 주시며 즐거워하신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고봉밥으로 차려 주시는 그 손길이 아름답다. 정이 넘처 나는 행복한 밥상이다.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밝게 살아가는 우리들 이웃의 정겨운 삶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박하고, 순박하고, 정겨웠던 고향의 그 시절이 떠올랐다. 향수를 느끼게 하는 들마루의 정겨운 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취해버린다. 열무 비빔밥은 할머니들의 손맛과 정이 담겨 더욱 더 맛있었다. 할머니들은 하늘이 맑은 날이면 종종 이렇게 모여 앉아 열무 비빔밥이나, 멸치국수, 비빔국수,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그리고 구수한 된장국, 청국장냄새 맡으며 정을 나누신단다. 함께 소박한 정을 나누는 주름진 미소가 아름답다. 할머니가 내어주신 그 밥그릇에서 할머니 같은 내 누이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열무 비빔밥은 추억이다.
그 옛날 보릿고개 배고픈 시절에 누이가 내어주는 감자 2~3덩이 넣은 꽁보리밥에 고추장 한 숟갈, 그리고 화롯불에 졸아 붙은 된장국 넣고 비벼주던 그 비빔밥. 누이의 곱게 접은 삼베 모시 보자기에는 먹고 싶은 마음 참아내며, 감추어, 숨겨 두었던 보리개떡 한 조각을 손에 들려주던 어린 누이. 오늘 누이 같은 할머니들의 그 모습에서, 할머니 같은 내 누이를 보는구나.
들국화, 구절초 산 들녘에 곱게 피운 하늘이 맑은 가을날에, 할머니 같은 내 누이와. 누이 같은 할머니들과 함께, 서해 바다로 저녁노을을 보러 가야겠다.
떠오르는 아침 해도 좋지만, 이제는 지는 해가 더 보고 싶다.
찬란한 태양보다, 곱게 물든 불은 노을이 더 아름답다.
파지는 붉은 노을 이였다.
첫댓글 "오늘 누이 같은 할머니들의 그 모습에서, 할머니 같은 내 누이를 보는구나.
들국화, 구절초 산들녁에 곱게 피운 하늘이 맑은 가을 날에, 할머니같은 내 누이와. 누이같은 할머니들과 함께, 서해 바다로 저녁 노을을 보러 가야겠다.
떠오르는 아침 해도 좋지만, 이제는 지는 해가 더 보고 싶다."
교수님.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