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매와 찾은 경주
사월 끝자락 넷째 일요일이다. 고향 마을에서 초등 동기 전체가 자리를 같이 하는 날이다. 집안 형제들과 여행 일정이 겹쳐 친구들에게는 나가지 못함을 양해 구했다. 모교는 폐교되어도 해마다 봄이면 어릴 적 옛 추억을 더듬으며 얼굴을 본다. 가을에는 전세버스로 당일치기 소풍을 다녀오는데 코로나로 몇 해 갑갑하게 지내다 작년은 신안 천사대교와 목포 유달산에 올랐다가 왔다.
우리 집은 7남매로 내 위로 형님이 넷이고 아래로 누이동생이 둘이다. 작년 봄은 거제에서 1박하고 이틀을 같이 보냈다. 올해는 경주에서 숙소를 정해 두고 길을 나섰다. 아내가 몸이 불편해 동행하기 어려웠는데 손위 형수 한 분과 둘째 매제도 아쉽게도 출발 직전 사정이 생겨 14명 정원에서 현원은 11명이었다. 진주 매제가 승합차를 운전하고 작은형님이 운전한 차도 동참했다.
창원 작은형님은 가덕도 형님과 부산 여동생을 태워 울산으로 향하고 진주 매제는 고향 큰형님 내외를 모셔 나를 태워 창원터널을 지나 남해고속도로에서 양산을 비켜 울산으로 들어섰다. 울산에 사는 둘째 형님은 현지의 동구 대왕암공원으로 나와 7남매 내외가 같은 자리에서 대면했다. 바닷가 솔숲 공원은 휴일을 맞아 다수 행락객이 들렀는데 오래전 기억에 남은 풍광과 달랐다.
40여 년 전 내가 교직에 출발하던 첫해 솔숲 공원 내 연수원에서 직무교육을 받은 기억이 되살려졌다. 교직에 갓 임용된 동료들과 일주일을 합숙하며 보낸 교육으로 새벽에 솔숲을 산책한 기억이 아슴푸레 떠올랐다. 울산이 광역시로 분리되기 전이라 당시 연수 시설은 외곽으로 옮겨졌고 공원으로 개발되어 출렁다리를 건너는 코스도 있고 해풍을 이겨낸 소나무들은 더 자라 있었다.
나는 어지러움을 느껴 출렁다리를 건너지 않고 산책로를 따라 대왕암을 조망하고 나와 울산에 사는 조카가 예약해둔 식당으로 들어 정해진 코스로 차려 나온 한정식을 먹었다. 통유리로 된 창밖은 대왕암 출렁다리와 일산해수욕장 모래 해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점심 식후 울산 동쪽 해안을 따라 주전과 정자를 거쳐 경북으로 건너간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바라보인 주상절리를 찾아갔다.
양남 주상절리에서 멀지 않은 감포로 가서 앞서 들린 울산 대왕암과 연관된 문무 대왕암을 건너다봤다. 신라를 통일한 태종 무열왕을 뒤이은 문무왕은 승하하면서 선왕처럼 덩그런 봉분에 잠들지 않고 화장된 유골을 수중 바위 안치해 동해 해룡이 되어 왜구 침략을 막겠노라고 했다. 문무왕 왕비도 사후 산골이 되어 남편과 같이 해룡으로 바다를 지킨다는 전설이 울산 대왕암이다.
왕위를 승계한 신문왕이, 부왕이 잠든 수중릉을 찾는 길목 세웠던 감은사는 1400년 세월에 석탑만 남았고 이견대에 서니 사서에 전하는 ‘만파식적’ 피리가 떠올랐다. 7호선 국도를 따라 동해 고기잡이 전진기지 구룡포를 지난 호미곶으로 올라가 국토 동쪽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봤다. 지자체서는 해맞이 명소를 관광지로 개발해 비록 새해 아침은 아닐지라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호미곶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려 세계 문화유산으로 긍지를 갖는 양동마을을 찾았다. 경주 손씨 입향조에 이어 외손 여주 이씨 가문도 수백 년 걸쳐 번성해 영남을 대표하는 고택들이 즐비한 골목길을 걸었다. 이후 안강 평야를 지나 흥덕왕릉을 찾았다. 재위 11년 동안 먼저 죽은 왕비만 생각했던 금실 좋았던 흥덕왕 부부 합장묘는 십이지상 석물과 옹글진 솔숲 경관이 빼어났다.
흥덕왕릉 솔숲을 나오니 해가 기우는 즈음이었다. 이언적을 향사하는 옥산서원과 근처 정혜사지 13층 석탑은 탐방 못하고 보문호숫가 예약된 숙소에 여장을 풀고 시내로 나가 교동 집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식후 수신 년 걸쳐 발굴과 복원을 끝낸 동궁과 월지 야경을 구경하고 숙소로 들어오니 보문호 밖에는 월정교 조명이 아롱졌다. 곰취로 편육을 한 점 싸 먹다 먼저 잠에 들었다. 2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