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3.9.13.수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349-407) 기념일
콜로3,1-11 루카6,20-26
누가 참 행복한 사람인가?
-행복하여라, 하느님께 희망을 둔 사람!-
‘하느님, 저를 지켜주소서, 당신께 피신합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의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1-2)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여러분은 행복합니까?
과연 참으로 행복하다고 말 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제 경우도 지금까지 삶을 다시 처음부터 살라하면 도저히 못 살 것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을 때가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미화하여 때로 그리워하지만 잘 들여다 보면 쉬웠던 날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 다시 살라해도 이런 삶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은총 덕분에 이렇게 살아 왔음을 깨닫게 되니 감사할뿐입니다.
성인들은 참으로 행복했었을까요?
객관적 인간적 눈으로보면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불행했습니다.
성인들이라하여 결코 행복한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평생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된 삶이 대부분입니다.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았던 성인들이요 결코 휴식도 없었고 죽어서야 비로소 휴식할 수 있었던 성인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하느님께 희망을 두었기에, 예수님만을 사랑하여 그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았기에
감사와 기쁨이 있었고 참으로 행복한 성인들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기념하는 안티오키아 출신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가 그러합니다.
참으로 고난으로 점철된 삶이요 평생 참으로 치열하게 살다가 순교적 죽음을 맞이한 위대한 성인입니다.
대 바실리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아타나시오와 더불어 동방교회의 4대 교회학자로 인정된 성인입니다.
서방의 아우구스티누스 정도의 비중을 지니는 교회학자입니다.
직언을 서슴치 않았던 뛰어난 설교가로 황금의 입을 지녔다하여 “크리소스토모”입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제37대 총대주교였던 성인은 설교가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성인은 에페수스에서 교회회의를 열어 성직을 사고팔며 돈벌이이하던 주교 6명을 면직시키고,
세속적인 욕심에 가득 차 안락하고 화려한 삶을 누리던 성직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냈으며,
부잣집만 골라 다니며 호사를 누리던 수도자들을 소속 수도원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병원과 학교를 늘리고, 교구청의 장식품과 가구들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데 썼습니다.
평신도들은 복음에 따라 살아갈 것을 권유했고 성서 읽기에 몰두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삶이 한결같이 정의로웠고 올곧았기에 주위에는 온통 적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는 열렬한 환영과 전폭적 신뢰와 사랑을 받았던 주교학자였습니다.
성인의 열화熱火같은 설교 일부를 나눕니다.
“가난한 이는 강합니다. 아무도 그에게 손해나 손상을 입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온갖 어려움을 겪습니다.
종들, 황금, 재산, 일, 끝없는 욕심, 사회적 야심, 끝없는 필요등 모든 것이 그를 억누르고 사로잡습니다.
여러분을 종으로 삼고 있는 맘몬을 언제까지 재갈을 물리지 않은 채 방치할 작정입니까?
만일 사람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자유를 얻으려고 온갖 수를 다 쓰겠지만,
돈의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여러분은 이 무서운 종노릇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하지를 않습니다.
돈이라는 폭군에 잡힌 삶은 사람의 종 노릇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을 공경하고 싶습니까?
그분이 헐벗은 것을 볼 때 못 본체하지 마십시오.
바깥거리에서 추위와 헐벗음으로 고통당하시는 그분을 돌보지 않는 동안에는
이곳 성당에서 비단옷으로 그분께 경의를 표하지 마십시오.”
정말 예언자적인 설교가 심금을 울립니다.
대부분의 설교가 이처럼 직설적입니다.
다음 찬미가도 성인의 이런 면모를 잘 드러냅니다.
"마음이 사랑으로 활활타올라, 그 열정 뜨겁게도 솟아오르고,
황금의 입이뿜는 열정의말씀, 듣는이 가슴마다 깊이찌르네."
마침내 권력자들의 미움을 사서 유배중 흑해 동쪽 해안에 있는 최종 유배지로 가는 도중 향년 60세로
“순교자 바실리쿠스(+311) 경당”에서 사망합니다.
전설같은 일화를 소개합니다.
-성인이 이 경당에 도착하기전 그날 밤 바실리쿠스는 요한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시게. 요한 형제, 아침이면 우리가 함께 있을 것이오.”
그날 밤 바실리쿠스가 순교자 경당의 사제에게도 나타나 “요한 형제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게. 그가 오고 있네.” 말했다 합니다.
이어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순교자 성당에 도착했고 임종을 맞이합니다.
요한은 흰 수의를 입혀줄 것을 요청했고 자기가 입었던 옷은 둘러서 있는 사람들에게 선사합니다.
다음 사제로부터 성체를 받아 모신후 그의 삶을 특징짓는 마지막 “하느님은 모든 일에 찬미받으소서”
임종기도를 바칩니다.-
참으로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되었던 성인의 참 치열한 생애를 살았던 참 가난한 순교적 선종의 죽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때문에 행복했던 성인이요, 모든 성인들이 그러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어제 어느 자매와의 면담성사후 마지막 떠날 때 드린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제는 지났고 내일은 오지 않았고 모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을 선택하여 사십시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 꽃자리에서 행복을 못살면 내일도 못삽니다.
행복을 살아야 할 가장 좋은 자리는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주님의 행복선언이 참행복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역설적으로 가난한 이들, 굶주리는 이들, 우는 이들이 행복하다 하십니다.
루카의 예수님은 가난을 영성화하지 않습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바로 하늘이신 하느님께 절대적 신뢰와 사랑을, 희망을 두었기에, 하느님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하기에
이런 참행복입니다.
다음 불행선언도 의미심장합니다.
그대로 부자들, 배부른 이들, 자족하여 웃는 이들이 앞서의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이들과 사랑으로 연대하여
나누며 함께 살라는 회개의 촉구 말씀처럼 들립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과연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행복한 사람입니까?
혹은 불행한 사람입니까?
행복은 선택입니다.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을 선택하여 회개하며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참행복을 사는 것입니다.
참행복은 환경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렸습니다.
주님께서 고맙게도 바오로 사도를 통해 참행복의 구체적 지침을 주십니다.
1.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2.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분노, 격분, 악의, 중상, 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수치스러운 말 따위는 모두 버리십시오.
4.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5.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인간을 입으십시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부단히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참나의 새 인간이 될 때
비로소 참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를 닮은 참나의 새 인간이 되어 참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