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의 발생
전국시대의 숨은 주역이라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것이 닌자이다. 전국의 여러 다이묘가 전투에 관심이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가치는 굉장히 높았다. 전투의 고수라 불린 센고쿠다이묘(전국시대의 영주)는 모두 닌자를 효과적으로 쓰고 있었다.
닌자(시노비)의 역할은 정보수집, 암살, 모략 등이다. 그들은 전투의 뒤쪽에서 활동했으나, 비밀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에 만약 살해당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일은 없었다. 그야말로 '시노부'(숨는)존재였던 것이다. 원래 닌자술이 전래된건 아스카 시대로,그 유명한 쇼토쿠 태자도 닌자를 썼다는 기술이 있다. 중국의 병법서 '손자'에 '용간편'이라는 편이 있는데, 용간의 '간'이란 간자 즉 스파이를 말한다.즉 용간이란 간자를 쓰는 법 이라는 의미가 된다. 일반적으로는 이것이 닌자술의 의미다. 그러나 닌자 발상의 진실은 더욱더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적이 있으면 누구라도 그 내정을 알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고, 혼란시키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 대군을 동원하는 것은 은밀하게 적을 말살시키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이것에 이길 수 없다. 그런 자연발생적인 난세의 요구에 응하는 것으로 닌자는 태어나 진화발전해 나간 것이 아닐까.
닌자들의 은거지, 코가와 이가
코가란 현재의 시가현 남부, 이가는 미에현의 북부이다. 이 양쪽 장소는 스즈카 산맥에 끼인 것 뿐인 위치에 있어서 '코이(코가, 이가)일국' 이라고 할 만큼 접근하고 있다. 당연히 혈연 관계도 깊었고, 공통의 풍습, 전승도 꽤 많다. 이 부근은 옛날부터 영락한 귀족이나 전쟁에서 패한 무사들의 은거지가 되어 있었다.
마을의 두령들은 그들 망명자를 계속 받아들여 갔으나, 그 결과로 중앙의 문물을 포용하게 되어, 씨성의 혼합을 가져오게 된다. 이 때문에 산간의 지역에 있으면서도 중앙의 사정에 밝으며, 교류 범위도 넓어진 것이다. 더욱이 양쪽 다 대사찰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영주들이 들어올수 없는 땅이었다는 것도 자립하는데 커다란 요인이 되었다. 닌자의 마을으로서의 조건이 정비된 것이었다.
닌자의 이름을 일약 세상에 알린 것은 1487년 9월에 일어난 아시카가 9대 쇼군 요시히사와 남반국의 롯카쿠 다카요리의 싸움, 이른바 '롯카쿠 공격'이다. 쇼군은 다카요리가 막부를 무시하고 귀족들이나 사찰들을 공격한 것에 대해 화를 내며 오미의 마가리노사토에 진을 펼쳐,다카요리를 추격해서 공격한 것이다. 이때 다카요리의 편을 들었던 고가닌자들은 쇼군 본진을 밤에 공격하고 아침에 도망치는 전술을 사용해서 쇼군 군대를 괴롭혔다.
고가일족의 한명, 모치즈키 이즈모노카미(望月出雲守)는'번개를 가지고 마법을 쓴다'라고 아시카가 군에게서 두려움을 받았다. 전후, 공이 있었던 고가닌자 53명에게 '고가 53가'라 칭하며, 더욱이 상을 받은 공적자 21명은 '고가 닌자 21가'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친것이다.
센고쿠다이묘와 닌자일족
세상에 이름이 높은 센고쿠다이묘는 모두 닌자의 집단을 가지고 있었다. 우에스기 겐신은 '노키자루'라 불렸다.이것은 중국의 전통적인 황제,켄엔이 닌자술의 시초라는 것에서 온 것이다. 다케다 신겐은 '미츠모노'(三ツ者)라 칭했다. 이것은 닌자의 직분을 정보,모략,감시의 세 종류로 나눴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오다와라 호죠씨는 '후마 일족'이 있었고, 쥬코쿠 모리씨는 '사다 일족'을, 카가 마에다씨는 '누스미 구미'를, 오슈 다테씨는 '쿠로하바키 구미'를 각각 거느리고 있었다.
이것들은 난세에 필요한 첩보활동의 중요성을 웅변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나,그후, 전국시대 종식과 발걸음을 맞추듯이 닌자의 존재가치도 약해져 간다.
1581년, 오다 노부나가는 45000의 대군을 움직여 이가마을을 공격했다. 이른바 '이가의 난', 소위 말하는 노부나가의 이가 정벌.. 천하통일을 목표로 하는 노부나가에게 있어서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자치의 마을은 방해자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모모치 산다유 등의 이가일족은 특기의 게릴라전을 전개해 분투한다. 그러나 산야를 가득 채우는 대군세에 패배하여, 이가일족은 전국에 분산되고 만 것이다.
1년후,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쓰러졌다.그 후 위기에서 벗어나 귀국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경호한 이가닌자의 두령인 핫토리 한조가 도쿠가와가를 섬기게 된다. 그 후, 에도시대에 접어들자 닌자들은 닌자와는 관계가 없는 인물에게 지배받아,차츰 막부의 단순한 하급의 무사가 되어 가는 것이다.
사무라이
가까이에서 모신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본래 귀족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이를 경호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이후 무사계급이 발달하여 셋칸케[攝關家 :섭정과 관백벼슬을 하는 가문]와 잉[院] 등에서 경호를 위해 무사를 채용하게 되자, 점차 사무라이의 명칭이 일반적인 무사를 가리키게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법[鎌倉幕府法]에서는 부하 낭인들을 거느리고 말을 탈 수 있는 무사를 일컬었고, 형벌도 낭인이나 일반서민과는 구별되었다. 무로마치[室町]시대에 있어서도 대체로 상급무사를 지칭하였는데, 에도[江戶]시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네 신분이 고정되어, 그 가운데 사(士)에 속하는 자를 일반적으로 이렇게 칭하였다.
그러나 무사들 사이에서는 보다 엄격하게 이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막신(幕臣) 중에서는 하타모토(旗本:에도시대 將軍家 직속으로 연봉 만석 이하의 무사)를 가리켰으며, 가치[徒]와 주겐[中間:무가의 고용인] 등의 하급무사와는 구별하였고, 제번(諸藩)의 가신 중에서도 주고쇼[中小姓:무사 직위의 하나] 이상의 무사를 이렇게 간주하는 등, 무사 중에서도 비교적 상층계급을 사무라이라고 하였다. 또한 무가(武家)를 주군(主君)으로 섬기지 않는 특수한 사무라이로 궁가(宮家)에 봉사하는 미야사무라이[宮侍], 몬제키[門跡:격이 높은 사원]에 봉사하는 데라사무라이[寺侍]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