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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스데반 황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바울의 복음(1)
고린도전서 15:1-4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장소는 에베소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7-8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로 가기 전에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곳에서 편지를 쓴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
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고전 16:7-9)
따라서 고린도전서가 기록된 시기는,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중에 에베소에 머무는 때로서 이제 곧 에베소를 떠나는 서기 57년의 봄, 곧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 바로 직전이었습니다(행 19장).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때는 제2차 선교 여행 때였습니다. 사도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 18장 1-18절을 보면,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 도시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천막 짓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그들과 동행하며 매주 안식일에 회당에서 복음을 변론합니다(행 18:1-6).
특히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증거하자 회당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반대하며 욕설을 퍼붓습니다. 이에 바울은 옷의 먼지를 떨며 이방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이때 고린도 도시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첫 무대가 이방 사람 디도 유스도의 집이었습니다. 그의 집은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할 때 회당장 그리스보가 자기의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주님을 믿게 되었고 다른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리 주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10).
이 환상으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 도시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모이게 되었고 이에 그곳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가야 총독으로 갈리오가 부임하게 되면서 바울은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행 18:12-18).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한 기간은 주후 51년에서 52년까지입니다.
그리고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고린도 교회는 주변의 도덕적인 타락에 심각하게 물들어 갔고 교인들 사이에 여러 종류의 음행 문제가 터졌습니다. 심지어 이권 다툼 및 금전 문제로 이방인의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결혼 및 이혼 문제 때문에 혼동과 갈등과 어려움이 많았고, 주의 거룩한 성만찬을 멋대로 행하며 더럽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의 은사를 무질서하고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 교회는 더욱 어지러워졌습니다. 무엇보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의심과 반대 의견이 교회 안에 퍼지고 있었습니다(고전 15장).
이에 고린도 교회의 안타까운 나쁜 소식들이 에베소에 머물고 있던 바울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닥친 여러 문제들과 신학적인 혼동을 다루기 위해 이 서신을 쓰게 됩니다. 특히 오늘 15장은 고린도 교회 내에 그리스도의 부활 및 신자의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몇몇 어리석은 신자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그러한 거짓 교훈을 올바르게 바로잡기 위해 따로 마련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전 15:12).
그들은 아직 대다수는 아닐지라도 언제라도 거짓 교리로 교회를 갈라놓을 수 있었으며 나아가 기독교의 복음 자체를 허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에게 이 문제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이에 그는 체계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고린도전서 15장을 강론하고자 합니다. 이 강론을 통해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성도들이 굳건한 복음의 믿음을 갖고 이 시대에 탁월한 복음의 군사로 우뚝 서기를 기도 드립니다.
자, 1절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1절).
1절에서 너희에게 ‘전한’ 이라고 할 때 ‘전한’과 너희가 ‘받은’이라고 할 때의 ‘받은’은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한 복음 때문에 그 복음을 받은 자들이 고린도 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받은’이라는 원어는 (파라람바노)인데 지적으로 동의하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동일한 이 단어가 요한복음 14장 3절에 쓰이는데 개역개정은 ‘영접하여’라고 번역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동일하게 요한복음 1장 11-12절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하나님의자녀가되는권세를주셨으니”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고린도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듣고 지각과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복음을 믿은 것이요, 무엇보다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1절에서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라고 할 때 ‘알게 하는 것’은 현재형으로 되어 있고 또 “너희가 그 가운데 선 것이라”고 할 때 그 안에 서 있는 것은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바울은 과거에 그들에게 전하여 그들이 지각과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그 복음, 그래서 그들이 아직까지도 서 있는 그 복음을 다시 알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알게 한다’는 것은 원어로 (기노리조)로서 그 뜻은 이미 너희가 받은 복음을 더욱 뚜렷하게 알려주겠다는 뜻입니다. 왜 바울은 이미 전했던 복음을 그들에게 더욱 뚜렷하게 알려주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그들 중에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2절에서 그가 과거에 전한 ‘그 말’, 즉 복음을 그들이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그들은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다고 알려줍니다. 즉, 바울이 과거에 전한 복음은 하나의 온전한 복음으로서 그 복음에 더하거나 감할 것이 없는 복음이었습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 중에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몇몇 사람들이 생겨나서 주의 몸 된 교회에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만일 그들이 “헛되지 믿지 아니하였다면”이라고 말하며, 만일 그들이 복음의 내용 중에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복음을 헛되이 믿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부활을 부인하는 그들의 믿음은 거짓 믿음이며 그런 믿음으로는 그들의 구원 역시 보장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기 얼마 전에 갈라디아서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오직 은혜로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의 복음에서 벗어나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다른 복음을 믿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역시 복음을 헛되이 믿는 것이 되어 교회에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에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그릇된 거짓 복음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서신을 보내었습니다.
[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갈 1:6-12)
이로 보건대, 바울은 처음부터 동일한 하나의 복음을 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지금 우리에게도 전달되었고, 우리도 그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2절에서 너희가 구원을 받은 상태를 유지하려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그 말’을 (카테케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카테케테)는 귀로 듣고 마음으로 받은 그 말씀, 즉 복음을 놓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계속 복음이 가리키는 믿음의 대상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붙든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개념으로 동사 (카테코)는 누가복음 4장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매”(눅 4:42).
히브리서 사도는 복음을 (카테코)하라고 간절히 당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히 2:1-3).
그러나 만일 복음을 놓치면 그 사람은 구원의 상태를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처음부터 가짜 신자든지 혹은 롯처럼 아무런 열매 없는 비참한 신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 주 예수님은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눅 14:34-35).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성경을 통해 예수께서 사도들을 통해 주신 복음을 배우며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지 믿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내 자신이 구원 받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계속 죄와 세상과 마귀들의 미혹을 이기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그가 전파했던 복음의 핵심을 다시 한번 언급하며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일깨웁니다. 그는 그들의 마음이 처음에 들었던 복음으로 온전히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특히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의 내용 중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가장 소중한 부분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래서 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개역 개정이 ‘먼저’라고 번역한 원어는 (엔 프로토이스)인데, 여기서는 시간적인 순서라기보다 중요성에 있어서 ‘가장 앞선’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옳습니다. 즉,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다”라는 뜻입니다. 또는 “내가 받은 것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너희에게 전하였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가장 중요한 복음의 핵심을 말합니다. 그 첫째 핵심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타스 그라파스)로서 복수형태인데 구약 성경을 뜻합니다. 즉,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십자가의 속량 사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속량에 대한 구약의 예언은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는 번제로부터 시작하여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곳에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출애굽 할 때의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피를 흘린 어린 양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건너뛰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어린양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십자가 죽음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하는 믿음의 자녀들을 보여줍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 …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출 12:5-6, 12-13, 23).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사야 53장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4-6).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사 53:8).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 53:11).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12).
구약을 대표하는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며 외쳤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사도 바울 역시 그의 서신에서 뚜렷하게 이 사실을 언급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갈 1:4-5).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 2:4-7).
베드로 사도도 같은 말씀을 증거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 다음으로 바울은 복음의 두 번째 핵심으로 “그가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대해서는 “성경대로”가 연결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에 대해서는 바울은 각각 “성경대로”를 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는 그 중간에 넣은 구로서 “성경대로”를 앞 뒤로 두 번 받을 수 있고, 혹은 홀로 있는 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장사 지낸 바 된 사건”을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내용들의 성취로 본다면 이 내용은 ‘성경대로’가 앞 뒤로 붙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내용일 뿐입니다. 저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장사 지낸 바 되셨다”고 믿습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우리 주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장사 지낸 바 된 것이 확실합니다. 이때 성경은 예수께서 장사 되었을 때 영으로는 아버지께 가시고 몸은 땅에 묻혔다고 알려줍니다. 이 사실은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십자가 옆에 함께 매달렸던 강도에게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2-43).
또한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실 때 우리 주 예수님은 주의 영혼이 곧바로 아버지께 들려 올라갈 것을 확신하고 숨지셨습니다. 이는 우리 주 나사렛 예수님의 영혼을 하늘 아버지께서 받으셨음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6).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 영혼이 죽음과 함께 낙원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함께 하시게 된 것이 분명하십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영혼은 낙원에 있지만 그의 몸은 땅에 묻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몸은 예수께서 호흡을 거두심과 함께 시체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몸은 악인들의 시체와 다를 바 없는 비참함을 겪었습니다. 즉, 죄의 결과인 영혼과 분리되는 비참을 겪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주 예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죄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이 일에 대해 예언하기를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사 53:9)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과정은 십자가에 달린 두 악인들과 다를 바 없이 참으로 참혹했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악인들과 함께 주의 죽은 몸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으신 후 주의 영혼이 아버지께로 가서 낙원에 있기에 그분의 시체는 곧바로 부자와 함께 있게 됩니다. 즉, 이제 주의 죽은 몸이 부활의 영광에 이를 수 있도록 상황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 주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입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갔더라”(마 27:57-60)
“이는 …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기 위함이라”(참조, 시 16:10).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의 장사 지냄은 요나가 고래뱃속에서 사흘 밤낮 동안 있었던 것과 같은 패턴을 취할 것임을 우리 주 예수께서 직접 예언하였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39-40).
여기서 예수님의 영은 낙원에 있지만 그의 몸이 땅에 묻히는 것을 가리켜 우리 주님은 ‘인자’가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입었던 몸이 영혼과 떨어져 땅에서 썩어 먼지가 되더라도 여전히 그 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사람의 영혼은 물론이고 몸도 그 사람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것을 분명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 신자들이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곧바로 낙원에 들어가고 우리의 몸은 땅에 묻히거나 어디론가 흩어져서 썩어 먼지가 됩니다. 성경은 이 땅에 썩어져서 먼지가 되어 있는 우리의 몸과 낙원의 우리 영혼이 만나는 때는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의 경우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그의 몸이 썩기 전에 사흘 만에 죽음의 상태에서 일어나 주의 영혼과 합하게 됩니다. 그 후 우리 주 예수님은 사람의 최종 영광의 상태에 이른 마지막 아담이 되어 하늘에서 이 땅을 다스리게 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영으로 사흘 동안 낙원에 계실 때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에 대한 답변은 에베소서 4장 8-10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그가곧모든하늘위에오르신자니이는만물을충만하게하려하심이라
](엡 4:8-10)
먼저 우리는 에베소서 4장 8절이 말하는 예수께서 위로 올라가시는 때가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주의 영혼이 낙원에 들어가는 때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는 때를 말하는 것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 선물을 주셨다는 것은 성령을 보내시는 사건과 연결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성령의 은사는 주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 땅의 교회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는 부활 승천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부활 승천하셔서 올라가실 때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셨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신 사건은 예수님의 승천 이전이어야 하고 십자가 죽음 이후여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이 땅에서 40일을 계셨는데 우리는 그 기간에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부활의 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심 및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고 또한 주의 백성이 성령을 받을 것을 알려주며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3-5).
즉, 주께서 부활의 몸으로 이 땅에 계시는 40일 동안은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셨다”는 암시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신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영혼으로 낙원에 계실 때 하신 일이 분명해집니다. 즉, 예수께서 그 영혼이 낙원에 계시고 그 몸이 이 땅에 묻혀 있는 동안 우리 주 예수께서 영으로 행하신 일은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로잡혔던 자들은 누구를 말하며, 또한 그들을 사로잡으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 표현과 내용은 바울이 구약의 시편 68편 18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68편에서 이 구절의 앞 뒤 문맥을 살펴보면, 시온 산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의 성전에 임하시는 장면이 있고, 또한 승천하심이 있고, 그리고 심판이 있습니다.
[
16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원히 계시리로다
17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시 68:16-17).
이제 이 땅의 성소에 내려오신 주 여호와 하나님은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인용한 시편 68편 18절의 내용을 행하십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시 68:18).
여기서 “사로잡힌 자들을 취하신다”는 것은 어떤 권세 아래 갇혀 있는 아군들을 원수의 손아귀에서 구출한다는 뜻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취하실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로잡힌 자들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던 자들입니다.
지금 구약의 시편 68편의 내용은 구약 시대에 주의 백성의 승리를 언급한 것이지만, 놀랍게도 그러한 구원과 승리의 영원한 실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심과 성령을 보내심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시편 68편의 18절을 인용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원수들을 이기고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에 이르신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요약하면 우리 주 예수께서 영으로 원수들과 싸워 이기고 아군을 구출하는 사건이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신 것”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를 골로새서 바울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라고 선언했습니다.
또한바울은에베소서 4장 9절에서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땅 아래 낮은 곳에 내려 간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이 말을 시편 68편을 참조해서 보면 천만의 천사들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소에 내려오셨다는 것과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사건이 여호와께서 성소에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 14)
놀랍게도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군 천사들이 함께 내려왔습니다. 즉,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시편 68편처럼 천군 천사들이 이 땅에 내려왔습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3-14).
그러면 주님의 성육신하심이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다”는 것은 성육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육신하신 목적은 “십자가에 죽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는” 사건은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사건”과 맞물릴 수 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땅에까지만 오신 것이 아니라 죽음의 영역인 땅 아래 낮은 곳까지 내려가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한편, “땅 아래 낮은 곳”을 원어로 보면 (에이스 타 카토테라 메레- 테-스 게-스)입니다. 그리고 “땅 아래” 할 때 ‘아래’의 원어 (카토테라)는 성경에서 딱 한 번 나오기 때문에 그 의미는 성경 전체의 문맥에서 찾아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땅 아래”의 가장 분명한 뜻은 죽음입니다. 무덤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의 몸은 땅 아래 장사 지낸 바 되었습니다. 지금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장사 지낸 바 된 것을 복음의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몸은 무덤에 있고, 주의 영은 낙원에 들어간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하는데, 주의 몸이 ‘땅 아래’ 무덤에 장사되어 있는 3일 동안 영으로 계시는 주 예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앞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 영으로 원수들과 싸워 이기고 아군을 구출하는 사건이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신 것”이라고 표현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원수들이 정확하게 누구입니까?
이 사실을 알기 위해 고린도전서 15장 55-56절을 마음에 깊게 새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몸이 왜 땅 아래 있었는지 정확하게 그 원인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5-56).
즉, 사망의 승리와 그것의 쏘는 무기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이때 사망 권세가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이유인데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는 율법에 의해 권능을 갖게 되고, 사망은 죄의 권능에 의해 임하게 되며 마귀는 율법으로 구약의 신자들에 대해 낙원에서 따지며 하나님께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죄 문제가 해결되면 죄의 권능이 사라지고 사망의 승리는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사망은 더 이상 쏘는 무기를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베드로가 주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할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호흡을 거두실 때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요 19:30). 이로 인해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죗값을 십자가에 다 치르셨고, 이에 율법에 따른 사망의 권세가 우리 주 예수님과 주께 속한 자들에게 더 이상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구약의 신자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고, 오실 메시야의 대속을 미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메시야를 미리 믿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약속을 담보로 하여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저주의 죄값을 치르기 전에는 구약 시대의 죽은 신자들은 율법에 따른 사망 권세의 요구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분명히 다윗이나 모세와 같은 구약의 주의 백성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주의 백성들의 죄값을 실제로 치르시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약속을 담보와 신용으로 하여 임시적으로 자유를 누렸으나 아직 법적으로 완전하게 자유 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마귀는 쉴새 없이 주의 백성을 고소하며 천국을 시끄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자 하나님께서는 합법적으로 주의 백성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하늘에 오르신 주 예수께서는 악령들과 전쟁을 치러 이기고 악령들의 수장인 사탄을 무저갱에 넣으셨으며, 또한 구약 백성에게 완전한 자유를 선포하셨고 이제 새언약 시대의 백성에게는 죽음의 권세가 더 이상 임하지 못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계 12:10-12)
이처럼 이미 낙원에 가 있던 구약의 주의 백성은 영으로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의 선포를 듣고 이제는 법적으로도 떳떳한 해방을 한없이 만끽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 이 땅에 사는 동안 복음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다가 사망의 옥에 갇힌 자들은 예수께서 믿는 자들의 죄값을 치르시고 그들을 사망의 옥에서 해방시켜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욱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후회하며 이를 갈게 됩니다.
[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 여기서 옥은 공의로운 율법에 따라 사망 권세 아래 갇혀 있는 것을 뜻합니다. */
](벧전 3:18-19)
이처럼 “주께서는 불의한 자를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십니다”(벧후 2:9). 즉, 불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심판과 이 세상의 멸망의 날까지 사망의 권세 아래서 지옥의 고통 가운데 갇혀 있게 되는 것입니다(벧후 3: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계시며 행하신 사건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율법을 사용하여 주의 백성을 고소하던 원수 마귀의 굴레로부터 주의 구약의 백성을 해방시킨 것이고, 또한 실제로 율법의 요구에 따라 법적으로 부과되는 저주스런 사망 권세로부터 주의 백성을 자유롭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막던 원수의 세력인 악령들의 대장인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 무저갱에 넣은 것이며 또한 이미 사망 권세 아래 있는, 즉 음부의 옥에 갇힌 불신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곧바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4)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 성경은 신자들의 부활과 메시야의 부활을 알려주는 많은 예언들을 담고 있습니다. 주의 부활과 성도들의 부활을 알려주는 가장 전형적인 예언은 욥기 19장 25-27절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가운데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또한 성령으로 생기를 얻어 죽은 뼈들이 살아나는 것 역시 부활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죽은 뼈들 같은 자들에게 성령을 부으심으로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죽은 뼈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겔 37:12-13).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번제로 바쳐져서 죽을 뻔하였다 살아남으로 메시야의 부활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절기 중에 초실절은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죽을 뻔 하다 살아난 것도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고 있고, 호세아 선지자 역시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살리시는 분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참조, 호 6:2).
신자들의 부활에 대해서도 구약은 충분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사 26:19).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2-3).
이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의 골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장사 지냄,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이 모든 것은 실제 사건이며 역사적인 사건이고 특히 성경 전체에서 볼 때는 구속사의 실재로서 구원사입니다. 이를 Historia Salutis 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이후 하늘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시는 영광을 얻으셨고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 이 땅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공식적으로 이 땅에 세워지고 성령의 역사와 함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골자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주 예수님은 온 천하를 말씀과 영으로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주시며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그분은 주의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그 영을 통해 신자들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살아계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의식하며 철저하게 주께 순종하고 따르며 주와 동행해야 합니다. 더욱 모든 성경을 통해 복음을 깊게 알아가며 영광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한 풍성한 삶을 날마다 경험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며 죄와 어둠과 세상을 넉넉히 이기시는 복된 주의 백성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