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원과 불국사를 둘러
형제들과 경주 소노벨호텔에서 하룻밤을 같이 잔 이튿날이다. 새벽 3시에 잠을 깨 전날 감포에서 본 ‘문무 대왕암’으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선왕과 마찬가지 토분에 잠들어도 / 덩그런 왕릉으로 육탈 된 조각뼈가 / 혼백은 구천에서도 성세 왕업 빌 테다 // 편한 잠 사양하고 육신은 한 줌 재로 / 파도가 넘실대는 감포에 흩뿌려져 / 대왕암 서린 기운은 독도까지 뻗치리”였다.
시조는 날이 밝은 뒤 지기들에게 사진과 같이 보내기로 준비해두고 전날 동선을 따라 생활 속 글을 남겨 문학 카페와 지기들 메일로 전했다. 이후 날이 밝아오는 즈음 큰형님과 매제와 셋이 숙소 밖으로 나와 호숫가 산책을 나섰다. 간밤 야경이 아름답던 보문호반이었다. 낮은 구름이 끼었으나 비는 내리지 않아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잠을 잔 호텔 조명이 꺼지지 않은 곳도 보였다.
롯데 월드 놀이동산 기구들이 보이던 곳까지 가다가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마쳤다. 로비 건너편 호실에 잠든 형수와 여동생 방에서는 아침이 차려 나왔다. 진주 여동생이 집에서 준비해온 재료들로 끊인 떡국이었다. 고명과 김까지 든 떡국은 간편식을 넘어 든든히 끼니가 되었다. 친정에서 가족 행사가 있으면 언제나 올케언니들보다 솔선해 수고하는 여동생이라 대견하고 고마웠다.
아침 식후 여장을 꾸려 1층 프런트로 내려가 체크 아웃하고 새벽에 걸었던 보문호반을 형제들과 다시 한번 걸었다. 이후 차를 몰아 동궁원을 찾으니 식물원은 휴장이고 버드파크는 10시 이후 개장이라 대릉원으로 이동했다. 어제 본 흥덕왕릉 솔숲과 분위기가 다른 송림 산책로는 동산처럼 덩그런 여러 기 왕릉을 지났다. 비가 가늘게 내려 손에 우산을 받쳐 정담을 나누며 걸었다.
천마총 안으로 드니 문화해설사가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무덤 속 주인공과 부장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발굴 당시 사진과 무덤 축조 양식을 살펴보고 남는 산책로에서 천 년 전 신라 왕업 흥망성쇠를 떠올리며 경내를 둘러봤다. 경주 답사를 주말에 이어 나섰더니 역사 고적지는 관광객이 적어 호젓해 좋았다. 월요일도 개관하는 경주박물관 관람은 시간 부족으로 일정에서 제외했다.
이어진 발길은 부처님 오신 날을 십여 일 앞두고 오색 연등이 내걸린 불국사로 찾아갔다. 날씨가 맑았다면 새벽에 토함산으로 올라 일출을 먼저 볼 생각이었으나 순서를 바꾸었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들어서자 가랑비에 우산을 받쳐 쓴 관광객이 밀려왔는데 외국인도 다수 섞여 있었다. 사천왕문을 지나 1400년 비바람을 견딘 청운교 백운교 앞에서 당시 석공의 숨결이 느껴졌다.
다보탑과 석가탑을 에워싼 회랑 안으로 들어 대웅전 뜰을 서성이면서 불국 정토의 엄숙한 기를 받았다. 부처님 기운이 서린 도량 경내서는 비가 그쳐주어 펼쳤던 우산은 접고 관람을 마치고 나와 울산으로 이동했다. 경주 외동에서 울산 북구를 지난 강변 어디쯤 한우 전문 식당에서 전골로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인 태화강 국가 정원 산책을 위해 차를 몰아 갓길 주차장에 세웠다.
섬진강 건너 순천만 정원에 견주어 조금도 뒤지지 않을 태화강 정원이었다. 규모가 대단한 강변 대숲 길을 걷다가 볏이 붉고 목에 흰 테를 두른 장끼 녀석이 나타나 피사체로 삼았다. 철 따라 피고 지는 다양한 꽃을 가꾸는 정원에는 작년 가을 파종한 꽃양귀비가 피어나고 인부들은 가을을 수 놓을 소국 순을 잘라주었다. 형제들과 산책로를 함께 걷고 남구 선암호수 공원을 찾았다.
호반 찻집에서 3층 창밖으로 드러난 인공호수와 산자락의 싱그러운 신록을 바라봤다. 빗줄기가 일시 굵어져도 일행의 여정은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와 염려를 놓았다. 커피와 수제 과자를 놓고 담소를 나누다가 숲길 언덕으로 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절과 성당과 교회를 둘러보고 근처 맛집으로 알려진 어탕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행선지 따라 차를 나누어 타고 창원으로 복귀했다. 24.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