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 弔
"'쪽방촌의 슈바이처'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 선종 "
▲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21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선우경식 원장 장례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이날 장례미사를 주례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강론에서
"선우경식 원장은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진정한 가족이었다"며
"평생을 살아있는 성자(聖者)와도 같았던 고인의 희생과
봉사의 삶은 우리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인생의 마지막을 요셉의원에서 마치고 싶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대로 그는 마지막까지 환자를 돌보다 18일 새벽 하느님 곁으로 돌아갔다.
지병인 위암이 악화돼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마지막 병상에 눕는 그 순간
까지 쉬지 않고 노숙자와 행려인, 극빈자, 이주노동자 등 오갈 데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을 향한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았던 그였다.
1983년부터 무료 진료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와 서울 한 종합병원에서 내과
과장을 지내던 선우 원장의 운명은 1983년 가톨릭의대 후배들 요청으로
무료진료 봉사를 하러 서울 관악구 신림동 철거민촌을 찾은 것을 계기로
완전히 바뀌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병자를 돌보라'는 부르심에 응답,
1987년 무료 복지병원인 '요셉의원'을 설립해 본격적 봉사의 삶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함께 시작한 동료 의사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결국
혼자 남은 선우 원장은 1997년 4월 관악구 재개발사업으로 보금자리를
잃은 뒤에도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영등포역 쪽방 촌으로 옮겨 변함없는
사랑의 인술(仁術)을 베풀어 '쪽방촌의 슈바이처', '노숙자들의 아버지'로
불리며 존경을 받아왔다.
노숙자들 새 삶 개척 부축
그동안 요셉의원에서 진료비 한 푼 받지 않고 치료해 준 환자들은 무려
42만여 명에 이른다. 요즘도 하루 평균 80~100여 명의 환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생전에 "나 역시 오래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3년만, 다시 2년만 더' 하다가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던 선우 원장은
"힘들고 어려울 땐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돈이 없어
아프다는 말도 못하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학을 공부하며 사람을 살리는 데 이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밤늦게 퇴근하는 길, 길가에 쓰러져 있는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치료하면 오늘 한 사람을 더 살렸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고 했다.
애초부터 '병들고 돈 없는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무작정 시작한
무료병원이었다. 폐인이 되다시피 했던 많은 노숙자들과 알코올 의존증 환자
들이 선우 원장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재활을 거쳐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도 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헌신
부와 명예 대신 소외된 이웃을 선택해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았던
선우 원장은 겨우 차비 정도의 월급만 받으면서도 돈이 생기면 환자에게
나눠줄 약을 샀고, 길에 쓰러진 노숙자를 보면 식당에 데려가 밥을 먹였다.
그런 마음으로 평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수도자처럼 헌신적인 삶을 살아 왔다.
가톨릭대상(사랑부문), 제1회 한미 참 의료인상, 호암상 사회봉사상(2003),
대한결핵협회 복십자대상(봉사부문) 등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도 모두 요셉의원에
내놓았다. 선우 원장은 이제 비로소 고단한 삶을 접고 영원한 천상 행복을 찾아
떠났다. 이 각박하고 거친 세상에 커다란 '사랑의 등불' 하나 밝혀 놓고….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이 땅에 평화를] 선우경식 원장 추모사 "
사랑의 등불 하나 밝혀놓고
아! 아버지
원장님! 저 근수(안드레아)예요.
23년 동안 그렇게 원장님을 힘들게 했던 근수가
이제 원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원장님! 신림동에서 주말 의료봉사를 하시던 원장님께서
저를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신림동 다리 밑에서 생활하면서 24시간 술에 젖어 온갖 사고를
도맡아 저지르던 저를 이끌어 주신 원장님.
술에 취해 교통사고를 당해도,
신림동 다리 위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도,
그리고 싸움질을 하다 칼에 찔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돼도
원장님은 아무 말씀 없이 치료해 주고 돌봐 주셨습니다.
원장님은 이 세상 밑바닥에서 말썽만 부리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온 제게 사랑과 믿음을 주셨습니다.
매일 술을 먹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살던 저를
아홉 번이나 정신병원으로 보내 치료해 주셨고,
사람을 만들어 보려고 고생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밑바닥에서 살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들같이 대해주신 원장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술을 끊었고, 지금까지 두 번 다시 술을 먹지 않았습니다.
작년 이맘 때 제가 아내를 맞아 가정을 갖게 됐을 때 원장님은
"앞으로 1년 동안 부부싸움 안 하고 잘 살면
조그만 가게를 하나 마련해 줄게"라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원장님이 제게 1년 전에 하신 약속은 지키실 수 없게 됐네요.
하지만 전 열심히 살겠습니다.
원장님.
제가 끝까지 잘 사는 것을 지켜보셔야 하는데
왜 이렇게 홀연히 가셨습니까?
저는 앞으로 누구를 의지하고 살라는 것입니까?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보지 못하고 살아 왔습니다.
제 소원은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보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계실 때 원장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었는데….
이제라도 아버지라고 한 번 불러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젠 열심히 살게요.
아버지도 하느님 곁에서 편히 쉬세요.
아버지!
2008년 4월 21일
안근수 안드레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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