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을 보내며
사월이 가는 마지막 날이다. 올봄은 비가 잦고 기온이 들쭉날쭉하다. 식물의 생육과 개화에서 예년과 다른 양태가 나타남을 느낀다. 잎이 돋고 꽃이 피는 순서가 가지런하지 않아 헝클어진 듯하다. 내가 산에서 뜯어오는 산나물도 한꺼번에 돋아 빨리 쇠거나 생장이 부실한 경우였다. 이러함에도 계절은 어느새 봄을 지나 여름 문턱 앞에 이르러 며칠 뒤 오월 초순 입하 절기가 다가온다.
집안 형제들과 1박 2일로 경주 나들이를 다녀온 이튿날인 화요일 아침이다. 날이 밝아온 이른 시간에 아침밥을 먹고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소답동으로 나가 근교 들녘으로 나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를 지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내렸다. 관청 이름이 읍사무소에서 행정복지센터로 개칭된 건물을 지나 무점마을로 가는 들녘으로 들어섰다.
용잠 일대는 최근 높은 아파트가 세워지고 그 뒤로 우뚝한 정병산으로는 어제 내렸던 비는 그쳐 엷은 구름이 걸쳐져 있었다. 무점마을로 가는 들길을 걸으니 전방으로는 동판저수지에 우거진 갯버들이 드러났다. 차량이나 인적이 드문 포장된 길을 따라가니 연을 가꾸는 논에는 둥근 잎이 펼쳐 나왔다. 물길이 동판지로 드는 저지대 습지는 잎줄기가 시퍼런 창포가 노란 꽃을 피웠다.
무점마을에서 동판지 둑길로 향했다. 일직선으로 길게 이어진 둑길은 판신마을로 이어졌다. 해마다 가을이면 코스모스 꽃길로 알려진 동판지 둑길이다. 둑길 언저리는 야생으로 자랐던 갓이 꽃을 피워 저무는 즈음이었다. 겨울 철새가 떠난 동판저수지 가장자리는 물론 깊숙하게 든 수면까지 갯버들이 자랐다. 주남저수지와 산남저수지에 견주어 수심이 얕아선지 갯버들이 울창했다.
둑길 길섶은 작년 가을 떨어진 코스모스 씨앗에서 싹이 튼 약한 줄기가 피운 꽃이 보였다. 당국에서는 예산 부족인지 꽃길 조성에 아직 본격적인 공을 들이지 않아 잡초만 무성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잡초를 제거하고 코스모스 싹만 남겨두어야 가을에 아름다운 꽃길을 걸을 수 있을 듯했다. 저수지 안은 갯버들이 무성하고 둑 바깥으로는 벼농사 일모작 논이 진영읍까지 펼쳐졌다.
둑길이 끝난 배수문에 이르러 판신마을로 건너가질 않고 주천강 둑길로 향했다. 동판지 물길은 주남지 물길과 만나 한 가닥이 되어 주천강을 이루어 남포리를 거쳐 진영읍으로 흘렀다. 무점마을과 좌곤리 사이 들녘에서 주천강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자 천변엔 독립가옥 몇 채가 나왔다. 주남마을에서 고등포에 이르는 넓은 농지도 일모작 벼농사 지대라 빈 들판으로 남겨 있었다.
들녘이 끝난 먼 곳은 대산 일대 아파트와 진영 신도시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다. 주남저수지 뒤는 구룡산에서 건너온 산등선이 백월산으로 이어지고 낙동강 건너 밀양 초동에는 덕대산이 솟았다. 진영 신도시 바깥 동쪽으로는 김해 무척산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냈다. 신등에서 상등으로 이어진 들녘 촌락을 지나 대산면 행정복지센터에 민원으로 분실한 주민증 재발급 신청을 해두었다.
시골 거리에서 마을도서관을 찾아가 서가 앞에 섰다. 지난번 읽다가 접어둔 한시 번역본은 사서가 어디 꽂아두었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집에서도 배낭 속 넣어간 창원도서관 대출 도서 ‘유학 오천 년’이 있었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라 가벼운 읽을거리로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을 가려 뽑아 열람석에 앉았다. 오래전 읽었던 책이지만 다시 펼쳐 스님의 맑은 영혼과 교감했다.
사서가 점심시간이 되었음을 알려 도서관을 나왔다. 근처 식당에서 한 끼 때우고 소공원 쉼터에서 어제 다녀온 ‘불국사’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석공이 정을 쪼은 단단한 화강암은 / 천 삼백 풍상에도 오롯한 원형으로 / 자하문 오르는 계단 원호 그려 둘렀다 // 다보탑 석가탑을 에워싼 회랑 들어 / 큰 법당 뜰에 서서 손 모아 고개 숙여 / 신라인 염원한 불국 오늘까지 잇는다” 2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