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牧童 다윗
제목-베데스다 연못
성경-요5/2~15
강해
베데스다 연못에서 주님께선 38년 된 병자를 고치는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역을 나타내신 곳에 이 사역의 의미를 나타내는 이름을 가진 못과 양문과
행각이 있습니다. 이런 이름들을 일일히 설명하는 것은 이들이 가진 이름들과 사건이
갖고 있는 연관성과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물과 사건을 아무 생각없이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모든 인물과 사건과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능력을 나타내신 장소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양문-베데스다-행각 다섯
에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2)
예루살렘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습니다.
제사로 바쳐지는 양들을 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는데 그러므로 이름이 양문(羊門)입니다.
이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습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란 뜻으로 샘이 솟는 못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제사로 드려지는 희생과 헌신(양문)에 하나님은 크신 자비(베데스다의 치유)를 베푸십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자비가 나타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이 못은 물을 가둔 못이 아니라 샘이 솟는 못입니다.
물을 가둔 연못은 가뭄에 마르기 마련입니다.
샘이 솟는 물은 가뭄에도 가물지 아니하고 항상 새로운 뮬이 솟아나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하도록 솟아 나는 샘물이요 하나님의 자비도 샘처럼 솟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며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 역사를 상징하는 이름이 행각 다섯입니다.
다섯은 성령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에 전념하던
120문도에게 성령의 불을 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도 떡 다섯입니다.
거룩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던 골리앗을 거꾸러뜨린
다윗의 물매돌도 다섯이였지요.
여기에서 일어난 치유의 기적이 성령의 역사이심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온갖 병자들이 누워서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3)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4)
천사가 가끔 이 못에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합니다.
그 때에 먼저 물에 들어가는 자는 고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천사가 전해준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는 천사들을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데스다 연못의 치유의 역사도 천사를 통하여 나타내셨던 것이지요.
거기 서른 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5)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6)
그곳에 38년이나 된 병자가 누워 있었고 주님은 그의 병이 오랜 줄을 아시고
그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말씀은 네가 구원 받고자 하느냐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 병자의 구원은 오직 병의 고침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7)
병자는 믿고 있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천사가 못에 내려올 때)에 그의 병고침 곧 구원을
얻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천사(율법)은 우리의 행위를 요구합니다. 먼저 나가는 자가 고침 받습니다.
물론 율법을 믿는 믿음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율법을 받고 전한 모세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 보았지요.
율법의 정신은 복음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기에 유대인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지요.
이 병자도 역시 율법의 행함에 고침(구원)이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도 물이 동할 때 먼저 내려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병이 깊어 스스로 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물에 넣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물에 넣어주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그 사람의 고침(구원)을 돕지 않습니다.
고침(구원)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인 것입니다.
천사가 동할 때에 율법은 그 천사에게로 나가야 고침을 받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8)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9)
하나님의 말씀을 천사가 전한 것이 율법이요 아들이 전한 것이 곧 복음입니다.
38년 된 이 병자는 천사에게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병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죄의 병이 깊었습니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14)
위의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죄로 인한 병인 것입니다.
천사에게 나갈 수 없는 곧 율법으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이 사람을
주님(복음)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죄사함이 먼저입니다.죄사함 후에 고침(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사함의 능력이 없습니다.
속죄로 드려지는 제사는 영속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제사의 그림자요 모형일 뿐인 것이지요.
그림자를 붙잡아서는 안됩니다. 실체를 붙잡아야 합니다.
율법은 복음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죄사함의 능력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우리도 또한 율법의 모든 요구를 행할 수 없는 병자들이였습니다.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으로 들어 갈 수 없는 우리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고쳐(구원) 주셨습니다.
이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용서 받고 해방된 날이 바로 우리의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주셨습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 받은 그 때가 우리의 참 안식일이 되는 것입니다.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 받고 안식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요 참 안식이신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주님의 충만항 은혜가 가득 하시며 좋은날 행복한 시간 되시길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