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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트섬을 중심한 알렉산드리아베이와 웰즐리섬 및 힐섬과 천섬대교 ▲ 조지 C. 볼트(1851~1916) 사진 고생 끝에 호텔비즈니스로 성공한 조지 C. 볼트(George Charles Boldt Sr/독일명: 게오 르크 카를 볼트 Georg Karl Boldt / 1851~1916)는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아내를 끔 찍이도 사랑했고, 자신이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아내의 내조 덕분으로 생각 했다. 그리고 마침내 호텔업계의 백만장자가 된 볼트는 평소 아내인 루이스(Louise)가 좋 아하던 하트섬(Heart Island)을 사들여 멋있는 성(城)을 지어 루이스에게 선물로 주고 싶 었다. 1900년부터 성(城)을 짓기 시작하면서, 건축비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런 것은 상 관하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성을 만들기만 원했다. 그래서 그는 성에 직접 와서 손수 공사 를 거들어 아내의 생일인 밸런타인데이(Valentine Day)에 성을 완성하여, 아내에게 선물 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 하트섬 출입문을 들어서면 온통 하트꽃밭정원이고 꽃길이다. ▲ 잔디밭이 잘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화단이 잘 정비되어 있다. ▲ 하트섬에 있는 여러 중요 지역 안내도를 표시해 두었다. - 어느 곳으로 향한다는 이정표에 화살표 대신 하트가 콕콕 박혀있다 - 화장실(Restrooms)、세척장(lavoir)、알스터탑(Alster Tower)、파워하우스(Power House)、 이태리정원(Italian Garden)、성(Castle)、성출입문(Castle Entrance) 1895년 여름에 조지 볼트와 루이스 부부는 웰즐리섬(Wellesley Island)에 휴가를 와서 주위의 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건너편에 있는 작은 섬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있 었다. 그래서 조지는 그의 아내를 위하여 그 섬을 1.00달러에 사서 자신의 "아름다운 공 주님"에게 꿈의 성을 쌓아 거대한 궁전을 짓게 되었다. ▲ 하트섬의 수변을 삥둘러 모두가 선착장이지만 배의 종류에 따라 접안위치가 다르다. ▲ 섬의 수변에는 유람선이나 개인보트 및 요트도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이다. ▲ 모든 배가 선착장에 정박할 수 있는 있지만, 사람은 출입문으로만 들어올 수 있다. ▲ 수변을 따라서 섬둘레를 돌아볼 수 있고, 배가 섬둘레에 정박할 수 있다. ▲ 특수 보트나 고급요트는 정박하는 곳은 특별히 마련되어 있다. ▲ 특별한 보트나 요트의 정박장 바깥으로는 이런 섬둘레길이(?) 1899년 볼트는 훌륭한 장인들에게 의뢰하여 자신이 루이스(Louise)에게 바치는 사랑의 비석을 이 섬에 세우도록 의뢰했다. 그는 독일의 라인란트성 (独 : Burg Rheinland /英 : Rhineland Castle)을 본떠서 자신이 구상하던 성(城)을 모델링했다. 섬은 마음속의 정성 을 닮도록 하려고 해수벽을 사용하여 모양이 바뀌었고, 섬의 구조와 정원에서 같은 표징 을 만들어 그의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사실 그는 1904년에 밸런타인데이이면서 아내의 42번째 생일인 날에, 이 성을 완공하여 아내에게 선물로 줄 계획이었다. ▲ 하트섬을 돌아보면서 좀 떨어진 거리에서 진입아치(Entry Arch)를 잡다. ▲ 섬주위를 배로 돌아보거나 섬에 내려 볼트성에 입장한 후에도 볼거리 제1호이다. ○ 이 아치는 보통 진입아치(Entry Arch)라고 부르는데, 로마시대 유적을 본떠서 만들 었다. 이 수문(水門)은 물 위에서 배에 탄 상태로 격식을 갖추고서 들어오는 곳이다. 물이 깊은 곳에 정박해 있는 더 큰 요트에서 손님을 모셔오거나, 다른 섬에서 오는 친구들이나 육지에서 오는 방문객이 배에 탄채, 이 아치문안으로 들어와 배를 정박 해 두는 곳이다. ▲ 먼저 섬 바깥에서 진입아치문(Entry Arch)의 정면을 보고 촬영한 사진 ▲ 볼트성에서 내다보고 진입아치를 촬영 - 분수는 스완폰드(Swan Pond)안에 있다. ▲ 이 아치문을 가까이에서 보면 더욱 섬세함을 알 수 있다. 右-로렌스강, 左-스완폰드 볼트는 이 섬에 250만 달러 이상을 쏟아 부었다. 300명 이상의 남성이 그 당시로는 어 떤 곳에서도 벌어들일 수 없는 시간당 1.50달러의 높은 임금을 받고, 하루 9-10시간의 강행군으로 작업을 계속하여 11개의 건물이 세워졌다. 모두가 자신의 부류에선 최고의 장인이던 사람들이 터널, 전력, 정원, 요트하우스, 수영장 등을 갖춘 6층짜리 120개의 방이 들어간 돌로 된 성을 만들어 섬으로 옮겼다. ▲ 정말 멋있는 아치문 사진이다. 아치문 안에는 서양여인이 세 아이와 같이 서있다. -아치 오른쪽은 2편에 소개한 볼트성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 섬 "Just Room Enough" ▲ 아치문을 측면 가까이에 서서 보아도 정말 운치가 있다. ▲ 이름은 주주식아치입구문(peristyle archway) 혹은 공식아치입구문(official archway) 통상 말하기로는 진입아치(Entry Arch)라고 한다. 문 위의 사슴 3마리가 특징적이다 ○ 이 아치문을 만드는데 원형석조기둥의 곁줄로 만들고 아치의 각 면을 더 넓히는 돌을 옮겨와서 잘라야 하였다. 이런 원석 돌을 옮길 때에는 피복원료로 돌을 완전히 감싸서 돌에 흠이 가거나 부분적으로 깨지거나 금이 가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 하트섬의 수변에는 산책로가 있는데, 이곳은 물막이 제방길이 산책로이다. ▲ 진입 아치문 사이로 작은 섬 "Just Room Enough" 이 들어온다. 조지 볼트(Boldt)는 본래 이 섬의 주인이던 하트(Hart)의 오두막집을 부숴버리고, 볼트 성(Boldt Castle)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석호를 추가하고, 이전 주인의 이름이던 "Hart Island"에서 철자를 첨가하여 "Heart Island" 로 변경하여 이곳을 <완전히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섬’>으로 탈바꿈을 시켰다. ▲ 진입 아치문을 안쪽의 스완폰드 바깥 잔디밭에서 수초를 넣어서 ▲ 스완폰드 안쪽 잔디밭에서 알스터탑과 데크를 수초와 함께 넣어서 ▲ 진입 아치문에는 보트가 들어오면 문을 열어주고, 배가 들어온 후 문을 닫는다. ○ 출입문이 열리는 도개교(道開橋/drawbridge)는 스완폰드(Swan Pond/ 백조의 연못/ 天鹅池塘)의 제방으로 산책길을 제공하고 있지만, 볼트의 그 야심찬 계획은 하트섬에 서 모든 작업이 중단된 이후 아직까지도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다. ▲ 진입 아치문 안쪽의 연못을 스완(Swan) 즉 "백조" 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아내 루이스를 백조로 생각한 모양이다. "백조의 호수(Swan Lake)" 대신 "백조의 연못(Swan Pond)" 이라고 말해도 뿜어내는 분수는 아름답다. ▲ 아치문과 관광객 + 스완연못의 분수 + 세인트로렌스강의 작은 섬 볼트(Boldt)는 돌을 공급하던 채석장과 그 돌을 하나로 묶기 위해 그 채석장에서 채취한 같은 성분의 모래를 실어오기 위해 모래를 공급할 모래구덩이를 소유했다. 볼트 자신의 소유인 오크 섬(Oak Island)에서 거대한 화강암블록을 캐내어, 10마일 이상 떨어진 곳인 하트 섬으로 이동시켜도, 그 돌의 모양이 조금도 변경되지 않도록 크기와 정밀도를 세심 하게 계산하여 절단하였다. ▲ 천섬 속에서 볼트성의 위치 - 하우섬、그리인스톤섬、웰즐리섬、힐섬、볼트캐슬 ▲ 아치문을 지나고 나면 섬의 수변인 강가에 이런 쉼터가 있다. ▲ 섬의 수변 쉼터 벤치에 앉아 보니 세인트로렌스강의 물새들이 물밖에서 놀고 있다. ▲ 세인트로렌스강의 물위로는 갈매기가 날고, 강에는 제트보트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 섬의 강변에 꽃이 너무 예쁘게 피어있고, 세인트로렌스강물이 푸르면서 잔잔하다. 그러나 그가 하트 섬에서 성의 내부공사에 한창 열중하던 1904년 1월에 그의 부인 루이스((Louise)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오랫동안 심장이 약하여 고생하였는데, 그 때 그녀는 겨우 마흔한 살이었다. 성(城)의 완공을 아내의 생일인 밸런타인 데이에 맞추려던 그의 계획은 아무 소용없이 완공일자와 밸런타인 데이를 불과 얼마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 볼트성의 상징인 아트문과 알스터탑(Alster Tower)을 함께 화면에 넣었다. ▲ 볼트성의 알스터탑(Alster Tower)은 많은 정성과 금력을 들여 만든 것이다. ○ 알스터타워(Alster Tower)는 흔히 플레이하우스(Playhouse)라고 부르기도 한다. - 독일 자유한자도시 함부르크에 811년 카룰루스 대제(742~814)가 알스터강(江)이 엘베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하마부르크성(城)>을 쌓은 것이 함부르크시의 기원인 데, 볼트는 이 알스터강에 있는 방어탑과 비슷하게 탑을 설계하여 만들어 줄 것을 제 안하였다. 이 건물은 손님들에게 여흥을 제공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 알스터탑(Alster Tower)은 독일 알스터강의 방어탑을 많이 닮았다. ▲ 알스터탑(Alster Tower) 가까이 접근하여 일단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알스터탑에 접근하여 그 모양을 살펴볼수록 그 섬세함과 정교함을 느낄 수 있다. 아내를 위해 하트섬(Heart Island) 전체에다 여러 건축물을 짓고, 섬의 가장 중앙에 배 치한 볼트성(Boldt Castle)을 계속 만들어 갈 수가 없었다. 볼트의 마음이 망가졌고 그 는 즉시 섬에서 하고 있던 모든 작업을 중단시켰다. 작업 중단을 지시하는 전보가 섬으 로 보내졌고, 이 섬에서 일하던 노동자와 기술자 및 최고의 장인(匠人)으로 구성된 전체 팀이 망치와 모든 도구를 내려놓고 즉시 집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 알스터타워를 세인트로렌스강의 크루즈 유람선 3층에서 촬영하였다. ▲ 미국, 캐나다에서는 사람이 사는 집이나 건물에는 반드시 자국기를 게양한다. ○ 알스터타워는 하트섬에 건설한 구조물 중에서는 가장 먼저 건축된 집이다. 볼트 와 그 가족들은 다른 건물을 짓고있던 4년동안 연속하여 여름철에 이 섬에 머무 를 때에는 이곳 알스터타워에서 지냈다. 알스터타워 안의 “쉘룸(Shell Room)”은 춤추기 위한 곳으로 만들었는데, 지붕의 모양이 조개껍질 같아서 그런 이름을 붙 인 것이다. 그리고 지하실은 볼링장으로 쓰고, 그 위층은 당구장, 도서관, 침실, 카 페, 그릴과 부엌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 알스터탑은 강이나 하트섬에 들어와서 어디에서 보아도 진짜 멋있다. ▲ 하트섬에서 알스터탑으로 가는 길은 멋있는 잔디에 화단조성이 좋다. ▲ 알스터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갖가지 예쁜 꽃으로 화단을 장식하고 있다. 아내의 죽음으로 크게 상심한 볼트는 다시는 이 하트 섬을 찾지 않았으며, 당시 그가 추진하던 공사현장은 마무리를 미룬채 그대로 방치되어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다. 아 내를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성의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에 하트 섬의 볼트성은 결혼 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게 결혼식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 알스터탑으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알맞은 나무숲아래 잔디가 파랗다. ▲ 알스터탑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파란 잔디밭과 앞에 보이는 탑의 모습 ○ 플레이하우스는 머지않은 가까운 장래에 오픈하기 위하여 더 악화되는 어떤 어 려움도 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헌신적인 복구노력속에서도 아직까지 폐 쇄되어 있다. 그러나 알스터타워의 외관은 우아하면서 그림 같은 장면이 연출되 는데, 특히 하트섬 정원에서 거행하는 여러 혼인예식에서는 계절마다 색다른 풍 광을 보여주고 있다. ▲ 알스터타워를 소개한 안내문이 적혀있다. ▲ 알스터탑 입구에 카메라를 향하니 이 서양어린이 비켜주지 않고 포즈를 취한다. ▲ 알스터탑에는 모든 문이 폐쇄되어 있지만, 이곳은 볼링장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조지 볼트는 공사를 계속하여 작업을 마무리하거나, 짓고 있던 성곽을 완성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는 하트 섬에 대하여 어떤 신경조차도 쓰기 싫었고, 다른 어떤 조치 도 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죽고 나서 비치넛 프루트 회사(Beechnut Fruit Company)의 소유주이면서, 라이프세이버캔디(Lifesaver Candy)의 설립자인 에드워 드 존 노블(Edward John Noble)에게 1920년대 초에 이 섬은 팔렸다. ▲ 크루즈유람선이나 보트가 하트섬에 접근하면서 볼트성과 파워하우스가 보인다. ▲ 크루즈유람선이 파워하우스 앞을 돌아보면서 배가 서면 물결이 잠잠해진다. ○ 볼트성에서 사진을 촬영하면, 가장 사진구도가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 아마도 파워하우스(Power Hpuse)와 시계탑일 것이다. 하트섬의 가장 동쪽 끝에 자리잡은 파워하우스는 중세 탑의 양식으로 탑 꼭대기 부분의 시계와 아치 모양의 다리가 매 우 인상적이다. 1939년 대화재로 인하여 건물이 심각하게 파손된 이후 재건축한 사업은, 지금까지 천섬대교공사(TIBA)가 시행한 가장 큰 프로젝트의 하나였다. ▲ 파워하우스를 사진 속에 넣으려면 아무래도 강물이 들어가야 좋다. ▲ 파워하우스가 하트섬과 절묘한 디자인으로 다리를 만들어 연결시켜두었다. ▲ 파워하우스를 돌아보고 나오는 관광객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고 이 섬을 소유하게 된 노블재단(E.J. Noble Foundation)은 이 섬에 어떤 마무리 공사를 하거나 성(城)을 개선하는 어떤 형태로도 손대지 않은 상태에서 50년이 넘도록 그냥 그대로 관광지로 운영하였다. 방문자들이 이 섬 안에서 마구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용되어, 너무 심각한 반달리즘 현상으로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기물파손을 하거나 성벽에 낙서가 만연했다는 것이다. 성곽은 비바람에 훼손되고, 눈이 내리고 얼어붙어 버리는 겨울철에도 부식은 계속되었다. ▲ 볼트성에서 사진구도의 최고지점으로 파워하우스의 시계탑이 나오고, 여성의 가장 숭고한 모성애가 나타나는 아기를 껴안고 가슴에 파묻고~ ▲ 파워하우스를 왼쪽에 나오게 하고, 세인트로렌스강에는 배들이 떠있다. ○조지 볼트는 처음에는 하트섬의 끝부분인 세인트로렌스강의 수중 모래톱을 캐내어 그곳에서 자재를 강 밖으로 건져 올리려고 생각했던 것으로 사람들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다 건물을 짓고 그림 같은 아치형 돌다리 형태의 독특한 방법으로 그 집을 하트섬에 연결시켜두어, 그 디자인이 너무 아름답게 돋보여 그 방면에서 인기 를 끄는 유행스타일이 되었다. ▲ 파워하우스 옆에 많은 소형 개인보트들이 운집하여 있다. ▲ 파워하우스와 하트섬이 연결된 돌다리와 섬의 끝부분이 정말 아름답다. ▲ 파워하우스 앞에 보이는 물가에서 자라올라온 꽃이 아름답다. 1977년 미국의 공익법인인 천섬대교공사(千島大橋公社/ TIBA=Thousand Islands Bridge Authority)에서 이 하트 섬(Heart Island)을 인수하였을 때는 섬의 파괴정도 가 극심하여 성의 모든 곳을 폐쇄하라고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TIBA가 섬전체에 배 치된 여러 구조물을 평가한 후, 즉시 안정적인 복구계획을 세워 볼트성(Boldt Castle) 이 관광객의 인기를 끄는 관광명소롤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섬의 모든 구조물 을 개선하기 위하여 그 동안 이 섬에다 수백만 달러의 돈을 쏟아 부었고, 매년 11월에 서 5월까지 이 섬을 방문객에게 개방하여 관광의 명소로 알렸다. ▲ 파워하우스 안내문 - 전기와 조명을 증기 엔진으로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 파워하우스 안에는 그 당시 전기를 생산하던 증기 엔진이 전시되어 있다. - 그 당시 천섬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 파워하우스 앞면 모습 - 뒷면 멀리 다른 섬과 웰즐리섬이 보인다. ○ 파워하우스(Power House)에는 하트섬에 전기를 공급하는 2개의 발전기를 설치해 두었다. 영어에서 power 라는 말이 전력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전기와 조명을 증 기 엔진으로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불행하게도 원래 장비의 상당부분이 망실되 었지만, 몇몇 개의 작은 조각은 디스플레이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바뀌는 그 시대의 천섬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나타내 고 있는 많은 사진과 디스플레이를 전시해두었다. ▲ 파워하우스의 뒷면 모습 - 원형돌다리를 향하는 곳에는 큰키나무가 멋있다. ▲ 하트섬의 끝부분을 통하여 파워하우스로 가는 길에는 잔디와 꽃 나무가 탐스럽다. ▲ 하트섬의 끝부분 강가로 나와 바라본 파워하우스 앞면
▲ 알스터탑으로 들어가는 이 잔디광장은 야외결혼식장으로 많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