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여는 아침에
오월 첫 주 목요일이다. 오월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한 승객에게 요금 할인 제도가 있다고 해 은행 창구로 가서 새로운 카드를 신청했더니 며칠 뒤 나왔다. 이후 K 패스 홈페이지에 사용자로 등록해야 효력이 발생한다고 해서 오월을 맞은 첫날 새벽에 시도하니 내 수준으로는 어려움이 따랐다. 본인 인정 절차를 두세 번 실패했더니 당일은 기회를 더 주지 않아 이튿날을 기다려야 했다.
인터넷 홈페이지 회원 가입 절차가 복잡하지 않음에도 나는 그런 제도 문턱을 넘으려면 언제나 벅벅거린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영업 개시 시간을 기다려 카드를 발급받은 농협 창구를 찾아 고급 인력 손길을 빌려야 했다. 컴맹인 고객은 그곳 직원의 업무가 아님을 알면서도 염치없게도 찾아갈 셈이었다. 그들을 성가시게 할 일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아침 식후 농협 업무가 개시되길 기다리자니 지겨워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 사는 꽃대감에게 연락해 보자고 했다. 산책 차림으로 현관을 나서 꽃밭에서 친구를 만나 새 교통카드와 휴대폰을 건네며 도움을 청했다. 꽃대감은 초등학생도 쉽게 끝낼 문제를 해결 못하는 내가 갑갑하다면서 회원 등록을 시도하니 이용자가 한꺼번에 폭주해선지 어디선가 멈춰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친구까지 불러내 하려던 일은 끝내지 못하고 농협을 찾아가 업무가 개시되길 기다렸다. 문이 열려 문간에서 업무를 돕는 직원에게 창구 방문 사정을 얘기하고 휴대폰을 건네줬다. 앞서 꽃대감 친구처럼 앱에서 회원 가입 절차를 진행하니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이제 교통카드를 발급받은 창구 직원을 찾아 여쭤보니 업무용 컴퓨터로 접속에는 한계가 있어 일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당국에서 교통카드 이용자에게 요금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가 시행됨에도 회원 가입과 주소지를 등록 못해 효력을 인정받지 못함이 유감이었다. 문제는 집에서 내가 개인용 컴퓨터로 접근하면 해결되는 일임에도 자력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어 난감했다. 일단 근교로 나가 들녘을 산책하면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소답동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으로 향했다.
차내에서 한 달에 이용하는 버스 교통비를 얼핏 계산해 봤다. 월 10만 원 안팎 될 듯하니 그 20퍼센트가 감면 혜택을 받으면 매달 2만 원이다. 2만 원이면 밥값이 두 끼이고, 서점에 가서 신간 서적을 골라 사도 1권은 살 수 있다. 연금으로 사는 은퇴자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걷기만으로도 소득이 느는 일인데 당국에서 대중교통 이용자에게 요금 부담을 들어주려니 혜택을 받고 싶었다.
간밤에 이튿날 보낼 일정 구상은 농협 창구를 찾아 교통카드 회원 가입과 주소지 등록을 마치면 주남저수지 둑길을 걸어 대산 마을도서관을 찾을 생각이었다. 산책보다 우선해 마을도서관에 들러 사서에게 도움을 청해보고 싶은 생각이 미쳤다. 버스가 주남저수지 앞을 지날 때 내리지 않고 들녘을 지난 가술까지 갔다. 소읍 거리에서 마을도서관을 찾으니 사서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몇 차례 들린 도서관이고 엊그제 펼쳐 읽다가 접어둔 책도 수레에 그대로 얹혀 있었다. 오늘은 도서 열람에 앞서 사서의 컴퓨터로 개인 용무 도움을 받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컴퓨터로 시도하다 실패하고 친구를 만나고 농협 창구를 둘러 온 사정을 얘기하니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동안 얼굴만 익힌 사서의 이름을 알고 ‘평생교육사’라는 공무원과 민간인 틈새 직종임도 알게 되었다.
사서에게 주민증과 함께 교통카드와 휴대폰을 건네니 잠시 뒤 고민되던 일이 풀렸다고 해 고맙기 그지없었다. 열람석으로 가 읽다가 둔 법정 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을 펼쳐 마저 읽었다. 스님이 인용한 간디 어록은 메모로 남겼다. ‘사람의 몸에는 음식이 필요하듯, 우리 영혼에는 기도가 필요하다.’와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의 빗장이다.’였다. 2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