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에 낸 책 <나는 그곳에 집을 지어 살고 싶다>가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는 황인원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고마운 일이다. 책을 처음 내던 1995년부터 듣기 시작한 단군 이래 최고로 책을 안사본다는 말을 들을 만큼 출판사들의 불황이 이어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출판계의 현황인데, 고마운 일이면서도 선정되지 않은 책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한글을 깨치고부터 내 삶에 미친 영향, 크고도 높고 많지만 기억 속에 가장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고 빈둥거리며 살던 열네살 때의 일이다.
지금이야 책값이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당시 책이 귀했던 시절에는 책 몇 권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집안이 부자도 아니고 돈도 벌지 않으며 학교도 다니지 않기 때문에 돈을 타 쓸 수 없는 나로서 책 몇 권 살돈을 모은다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저렇게 힘겹게 모은 돈이 책 서너 권 살 돈이 되면 진안군 마령면의 마령으로 책을 사러 나갔다. 내가 사는 백운에는 서점이 없고 유일하게 중학교가 있는 마령에만 서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백운에서 마령까지는 가로 질러 범바우 운교리로 해서 섬진강을 따라 가면 6키로 쯤이 되고, 평장리 손내 등으로 돌아가면 8키로 쯤이 되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마령에 가서 조그만 서점에 들어간다. 책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책 서너 권을 고르면 돈은 바닥이 나지만 마음은 부자 못지않게 풍요롭다. 너무 책에 굶주린 나는 평지마을을 지나면서부터 걸어가며 책을 읽기 시작하고 운교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겨우 사 가지고 온 책을 다 읽어버리고 만다. 그 때가 가장 난감한 때다. 읽고 난 후의 후련함이 아닌 아직 집에 갈 거리를 반절도 안 걸어왔는데, 다 읽어버린 것에 대한 허망함, 그게 얼마나 나를 쓸쓸하면서 허무하게 만들었는지를 지금은 잘 모른다. 나는 그냥 강가에 무너지듯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번 그 뿌듯함과 허망감을 맛보며 그 길을 오고 갔다. 길가에 떨어진 신문지 조각이라도 주워서 읽어야 성이 차던 세월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일종의 활자 중독증 내지는 활자 몰입증에 걸렸다고 할까? 무엇이든 읽을 것이 없으면 불안했고, 그런 습관이 어린 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나의 습관 아닌 성품이다. 그것도 아편장이 노름장이 등 장인정신에 맞는 것이라면, 책장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길가를 걸어가면서도 간판까지 읽고 가야 한다.
책에 굶주려서 책을 사러 갔다가 오던 길에 다 읽어버리고 서운해 하던 그 시절, 그 시절은 정녕 어디로 사라져 갔단 말인가?
책 빌려다 보기
나 같이 내성적인 사람이 그런 면이 있었다니 지금도 신기할 때가 많이 있다. 인근에 마을마다 아이들에게 누구 집에 어떤 책이 있는 가를 수소문해서 책을 빌려다가 읽었다. 그때 만해도 책을 읽는 사람이 극소수라서 좋은 책을 소장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독서나 여행이 취미라고 쓰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라서 그런지 집집마다 서너 권씩의 책은 다 있었다. 어떤 집은 “책 좀 빌리러 왔는데요.“ 하면 ”우리 집에 무슨 책이 있다냐. 한 번 들어가 보라“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걸 허락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이나 하지 무슨 놈의 책만 본 다냐“ 하시며 나무라면서 빌려주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었다. 힘들여 빌려다 읽는 것은 금세 읽고서 허망해 했던 나날들이여! 지금은 틈만 나면 사다가 쌓아두고도 다 읽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으니, 그 때가 행복했던가 아니면 지금이 행복한 시절인가 알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활자중독중에 걸렸기 때문에 문자조립공이 되어 이 나이까지 밥법이를 하고 있다는 것,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