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대문에 입춘대길이라 써 붙입니다. 방 입구 마루에는 가화만사성이라 써 붙이고 화목한 가정이 되길 바라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오랜만에 가훈이란 단어를 떠 올려봅니다.
초등학생 때 숙제로 우리 집 가훈에 대해 알아오라는 숙제를 받습니다. 그 때 가훈을 정하지 못한 가정에서는 어머니께서 뚝딱 만들어 주시기도 합니다. 가훈이 마음속에 콕 박혀있으면 가족들의 우애가 더 깊어지고 돈독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집에서는 가훈을 써서 액자에 담아 응접실 벽에 걸어 놓습니다. 사무실에는 회사의 경영목표나 사훈을 벽에 걸어 놓기도 합니다. 당신의 집과 사무실 벽에는 무엇이 걸려 있나요? 인도 캘터타의 마더 테레사 본부 벽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라. 당신이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숨은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베풀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우라. 당신이 몇 년을 걸려 세운 것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라. 당신이 가장 최고의 것을 세상과 나누라. 언제나 부족해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것을 세상에 주라."
밥퍼 목사로 잘 알려진 최일도 목사는 자신의 것을 이웃과 나누는 방법에 대해서 말합니다. 쓰러진 노숙자를 보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일도야! 너는 언제까지 나를 이 차가운 바닥에 눕혀 놓을 것이냐?”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청량리역에서 라면을 끓여 주는 사역에서부터 시작하여 노숙자를 위한 무료 병원까지 귀한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섯 가지 실천원리를 말합니다.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우리도 누구나 동참 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분유를 제공하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누어 주거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더 크고, 더 많고, 더 귀한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해비타트 운동’은 전 세계 무주택자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려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창립자는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로 법률가이자 사업가로 성공한 백만장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돈만 추구하다가 가정적인 위기는 물론 영적인 위기를 맞으면서 돈이나 지위가 인생에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와 그의 부인은 부유한 삶이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는 원인이 된다고 판단하고,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나눠 주자!’라고 결단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해비타트가 탄생했으며 그들은 지금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 운동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우선 정말 어려운 가정들을 찾아서 그들과 함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건축 자재를 실어 나르고 일하며 값진 땀을 한 동이씩 쏟아 낸 후에야 비로소 자기 집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집이 완공되면 입주 가족은 건축비를 상환해야 합니다.
집값은 저소득층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또한 모든 입주자는 이후 해비타트의 동역자로 일해야 합니다. 입주자들도 받은 만큼 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눠 주는 복된 인생이 해비타트의 진정한 목표입니다. 내 집을 마련하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내가 남을 위해 집 짓는 수고를 하는 것, 그래서 나누는 삶을 끊임없이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부와 명예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프랑스 귀족들은 전쟁이 나면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겼습니다. 로마는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전투에서 많은 귀족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지도층 자제들이 입학한다는 이튼 칼리지 졸업생 가운데 2000여명이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엘리자베스여왕의 차남 앤드류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습니다. 그들은 왜 죽음을 택했는가. 명예를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부와 명예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철강 왕 카네기, 석유 재벌 록펠러,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가 왜 존경받는가. 그들은 자신이 거둔 이익을 사회에 기꺼이 환원했습니다. 예수로 인해 구원받은 당신, 당신은 지금 구원의 감격을 혼자서만 누리는 이기적인 크리스천은 아닌지 자기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IMF 경제 한파가 한창일 때 당시 유학생을 돕는 교회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연일 치솟는 환율로 유학생들은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학생 부부가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교회는 학생 부부가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한 자매가 사택을 찾아와 두툼한 흰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출처는 비밀로 하고 학생 부부에게 전달해달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차를 팔아 헌금한 것입니다. 기도 중에 차 없는 미국 생활을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돌아가는 뒷모습에 감사와 축복의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섬김을 받은 학생 부부는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취업했습니다. 그 자매는 지금 사모가 되어 영광스런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나눔은 베푸는 사람, 받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를 축복하는 기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받은 재능, 물질의 축복, 영적인 은혜, 우리가 받았던 구원의 선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인이 살고 있는 이유이며 존재가치입니다. 즉 삶의 나눔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두 돌이 막 지난 아이에게 ‘사랑의 빵’ 저금통에 동전을 넣는 훈련을 시킵니다. 동전을 넣을 때면 항상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여러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고 있단다. 이렇게 동전을 넣어서 보내 주면 너와 같은 꼬마 아이도 밥을 먹게 할 수 있어.
하나님이 네게 주신 것은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단다.’ 아이는 한동안 동전 넣는 일을 재미있어 하더니 어느 때부터인지 아까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세 살 무렵은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가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들만 배불리 먹고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세계의 곡물 생산량은 전 세계의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남지만 1/3의 곡물이 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가축을 먹이는 사료로 쓰이는 현실은 구조적인 경제모순일 것입니다.
그런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먼저 굶주리는 이웃을 위해 동전 하나를 넣는 일 또한 매우 시급합니다.(복음나팔)
여호와께서는 넘어지는 사람들 모두를 붙들어 주시고 엎드린 사람들 모두를 일으키십니다. 모든 눈들이 주를 바라보니 주께서는 때에 맞춰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주께서 손을 펴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시편 145편 14~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