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은 내 본래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것-보현행원은 <닦는 것>이 아니다!]
보현행원은 닦는 것이 아닌 수행이요, 더할 것이 없는 공부입니다. 무엇을 더해야 하고 무엇을 닦아야만 수행이라 생각하는 분들에겐 아마 이해가 잘 안 갈 것입니다만, 실상이 그렇습니다. 무엇을 닦아 보현행원이고, 무엇을 더해 보현행원이 아닌 것입니다.
보현행원에서 전개 되는 모든 세계는, 본래 나의 모습입니다. 본래 내 생명이 사랑이고 본래 내 생명이 지혜요 자비이기에 우리는 지혜행, 자비행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닦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내 본래 생명이 완전한 진리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 남을 무시하고 내 자랑이나 하고 비방하고 군림하는 것인 줄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우리 생명의 진실 모습은 이웃을 공경하고 찬탄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래 공경 자체이기에 공경하는 것이며, 우리 모습이 본래 찬탄 자체이기에 찬탄하고 섬기고 공양하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닦아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공경하고 찬탄하고 섬기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그리고 오래 갑니다.
비방하고 내 자랑하는 건 우리의 본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런 건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무엇보다 내 가슴이 거칠고 메말라갑니다. 따라서 내 자랑 하고 교만하고 비판하고 으스대서는 남는 게 없습니다. 내가 황폐해 가고 세상이 황폐해 가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무엇을 닦아서가 아니라, 그리고 무엇을 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본래 너그럽고 본래가 자비로운 완전하고 원만한 존재 그 자체입니다. 내 가슴이 뜨거운 사랑으로 넘치기에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내 생명이 본래 기쁨이기에 기쁨이 내 안에서 한없이 샘솟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노래방에서 노래는 누구나 부릅니다. 노래방의 노래는 노래 수업을 닦은 이만 부르는 게 아니며 누구나 부르고 무엇이나 부릅니다. 그리하여 노래 잘하는 이나 그렇지 못한 이나 모두가 마음껏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곳이 노래방인 것입니다.
그런 노래방에는 또한 차별이 없습니다. 마이크가 좋은 탓인지 아니면 노래방의 속성이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잘 부르는 이도 점수가 형편 없는가 하면 못 부르는 이가 만점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해맑은 내일이 다시 시작됩니다. 오직 노래만 불렀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노래만 불렀는데도 고뇌가 사라지고 한결 너그러운 이로 돌아오는 것은, 노래를 잘 불렀거나 좋은 노래를 불러서가 아닙니다. 우리 자체가 노래요 노래 자체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노래 그 자체이므로 누구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노래 자체가 밝은 것이므로 노래를 부르면 온갖 상념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노래방에서는 그냥 노래만 부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노래를 부를 때, 아무 것도 더할 것도, 닦을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저 부르면 되는 것입니다.
보현행원도 그와 같습니다. 더할 것도 닦을 것도 없는 행원이 바로 우리의 본성입니다. 공경이 본래 나의 노래요 칭찬, 찬탄, 섬김이 본래 나의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경하고 찬탄하고 섬기고 공양할 뿐, 그 밖의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쉬운 일을 우리는 좀처럼 하지 못합니다. 그저 내 생명의 노래만 부르면 될 것을, 자꾸 무엇을 더하고 닦으려 하는 그 한 생각 때문에 본래 나의 모습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입니다.
보현의 행원을 닦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엇을 더하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오직 내 생명의 노래, 내 진실의 노래를 부르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듯, 그렇게 부르기만 하면 내 진실 생명이 쏟아지는 것이 보현의 행이요 보현의 원인 것입니다.
그러한 보현행은 바로 깨달음의 자리, 부처의 자리(佛地), 부처님 집(佛家)으로 들어가는 가르침입니다. 보현행을 할 때 성불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 이 곳의 소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경전은 '만약 부처님의 공덕문을 성취하려면 보현의 열가지 행원을 닦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전제 조건이 없습니다. 오직 보현행원 열 가지를 실천하면 부처님 공덕문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자꾸 보현의 행원을 뒷날로 미룹니다. 보현행이 참 좋긴 한데,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하기는 해야 하는데 그렇지만 기도하고 나서, 참선하고 나서, 염불 독경 절 많이 하고 나서 나중에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보현행은 지금 바로 이곳의 소식이 되지 못하고 그만 먼 훗날 남의 소식이 되고 맙니다. 주객이 분리되고 삶과 수행이 따로 노는 이분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 염불이, 참선이, 독경, 절, 기도, 깨달음이 바로 보현행원임을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공경과 찬탄으로 지금 내가 퍼붓는 부처님 명호, 들고 있는 화두가 바로 보현의 행과 원임을 모르는 탓에, 우리의 성불은 그만 먼 미래로 미뤄지는 것입니다.
보현행은 즉시 바로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보현행은 따라서 주객의 분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객일치, 전체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렇게 주객이 분리되지 않는 자리, 언제나 하나가 되어 행해지는 보현행원은, 마침내 여실지견(如實之見), 반야를 창발(創發)하게 합니다. 온 사물이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현행원을 하는 분들은 세간, 출세간의 구분이 없습니다. 세간의 일에도 막힘이 없고, 출세간의 소식에도 모르는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보현행원은 뭘 깨달아야, 아니면 많은 수행, 공덕을 닦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안 할 뿐인 것입니다. 내 공부, 내 깨달음에 눈이 멀어 그런 마음을 도무지 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개신교, 카톨릭의 많은 크리스챤들이 그렇게 많은 이웃을 섬기는 것도,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죽음을 무릅쓰고 아프리카나 세상의 외진 곳으로 가는 것도 그 분들이 무얼 많이 깨쳐서 혹은 수행을 많이 닦아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본래 면목이 그런 것이기에 내 목숨 다바쳐 섬기고 전법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깨달음을 추구하는 우리 불자님들은 이 단순한(?) 일들을 죽으라고(?) 아니 하십니다. 그저 깨달음 이후로 미루고, 내 수행 많이 한 다음으로 미루며 세상과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찬탄하고 섬기는 것은 모두 남의 일이요 내 일이 아닙니다. 그건 깨달음 이후의 일이요 내 공부한 다음의 일인 것입니다.
그것은 어려워서도 아니고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섬기고 공양하다 내 깨달음을 못 얻을까봐, 내 공부를 못할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섬기고 공양하는 것이 바로 공부요 깨달음과 무관한 것이 아닌데도, 찬탄하고 공경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을 가져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 생각 어두운 탓에 그만 공경 찬탄이 공부요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을 못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깨달음을 보질 못하고, 엉뚱한 데서 깨달음을 찾아 헤메이십니다. 깨달음이 마치 특별한 곳에 있는 양, 온 세상이 깨달음의 나툼인 것을 알지 못하고, 이미 모두가 성불한 것을 알지 못하고 산으로 들로 허망한 뜬구름을 잡고 헤메이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온 사방이 대낮이요 온 천지가 봄날인데, 혼자서만 아직도 겨울이요 어둠인 것입니다.
부디 눈뜰지어라 이 허망한 착각에서!
그리하여 저 찬란한 부처님 공양하러 지금 여기서 바로 갈지어라!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보현행원으로 불국 이루리...
普賢合掌
*덧글
이 세상이 푸르고 장엄해지는 것은 염불 독경 많이 해서, 참선하고 화두 타파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기에 모자라고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모든 생명들이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있는 자리에서 비천한(?) 자신의 생명을 마음껏 섬기고 찬탄하기에 이 푸르고 밝은 세계가 장엄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이 모든 생명을 공경하고 섬길 때, 상처가 치유되고 중생이 제도되며 모든 생명이 비로소 함께 진리 세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혼자 외진 곳에 앉아 내 공부만 붙잡고 내 세계만 밝아진다고, 그리고 마침내 한 세계가 열려 내가 부처다! 하고 앉아서 부처 선언만 한다고 아랫마을의 갑돌이 갑순이가 부부싸움을 그치고 집나간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게 아닌 겁니다. 현장에 직접 뛰어 들어야 합니다. 내가 아랫마을로 가서 상처받은 갑돌이 갑순이를 위로하고 집나간 아이들을 안아줄 때 부부싸움도 그치고 갑돌이 갑순이는 좋은 남편으로 좋은 아내로, 그리고 아이들도 좋은 아이들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공경해주고 섬기고 공양할 때 고해의 사바세계는 부처님 정토로 바뀌어 가는 이 쉽고도 간단한 사실을, 오직 저 깊은 곳에서 홀로 도(道)닦는 수행자들께서는 어찌 그리도 모르시는지... 아니면 알고도 내 공부 욕심, 도를 이룰 욕심에 모른 척 하시는 건지...
첫댓글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서로 공경하고 섬기고 공양하기!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수고 많읍니다. 균여대사 향가를 참고하시면 더 큰 감동을 주실것임니다. 균여대사의 향가에서 어머님과 함께 큰 감동을 받은적이 있었읍니다. 당시와 같이 이시대에도 다시 생생하게 유행가속에서 대중화 되어 이 시대의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을 고치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균여대사님과 금타대화상님께서 정신문명의 등장이라고 기쁘게 후원 하실것입니다. 기대하여 보겠읍니다. 나는 미국에서 금타대화상님께서 말씀하신 수천만명의 보살후보생을 찿아 금타대화상님 오지총관도를 통하여 대각운동을 내가 사는 동내에서 부터 시작하니 미국인 동내가 부처님 광명과 기운이 충만하여 만다라 동내가 될것 같읍니다.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