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름의 용도는 매우 다양하며 인간의 삶속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요소이다. 기름은 인간의 의, 식, 주 문제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입는 합성 섬유류의 옷은 모두가 석유에서 부터 축출해 내는 것이다. 빵을 만드는데 기름은 꼭 있어야 하며, 식용류의 사용은 주부의 손에서 맛있는 요리로 둔갑하게 되어진다. 주거를 밝히기 위한 등잔불의 사용, 난방을 위한 보일러용 기름,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한 연료 등등 모두가 기름과 인간을 연결짓고 있는 것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할 수 있도록 기름을 주셨고(시 104:15),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주께서는 기름으로 우리의 머리에 바르사 뜨거운 태양의 해로부터 보호하며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신다.
영적인 기름은 성령의 불이 다가올 때에 쉽게 불이 붙어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나타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불이 다가올 때 우리의 믿음이 활활 타올라 주를 위해 빛을 비취어야 할 것이다. 야고보 선생은 우리들 가운데에 병든 자가 있을 때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라고 하였다(약 5:14).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능력을 부여받게 되어진다.(목사, 홍순우)
당신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셨습니까?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영성과 성령 본문 : 막13: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 생활에 있어 하나님 앞과 자신 그리고 이웃 앞에서 '영성' 곧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서 '영성'이란 경건한 삶, 성화된 삶, 영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즉 구원을 받은 신분인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경건하고 구별되며, 성화된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은 성령 안에 거함으로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성령으로 중생하여 구원을 받았으며 성령의 지도를 받아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성령을 통하여 '영성'을 계발하는지 영성 계발에 있어 성령의 능력(역할)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성령(엡4:30)
1)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일하시는 영이십니다. 다라서 성령께서는 모든 것에 통달하시며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실망과 절망 가운데 있을 때나 평안하고 즐거운 가운데 있을 때도 성령은 인도하십니다. 만약 성령의 사역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아같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은 때로는 탄식으로, 때로는 책망하심으로 인도하시나, 이러한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이끄십니다. 따라서 성령 안에 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성의 삶을 살수가 있으며 영성을 계발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이끄셔서 화해하게 하셨고,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심으로 하나님 앞에 이끄시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2)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성경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천국 시민권을 가졌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거룩이란 말은 세상과 분리됨 또는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무리에 끼여 어둠과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리를 부르셔서 의롭다 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크신 하나님의 은혜이십니다. 이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이에 대한 우리의 응답으로 매일 매일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날마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성령의 실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 안에 거함으로 말미암아 경건하고 구별되며, 성화된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위로하시는 성령(행9:31)
1)위로자 성령 '위로자'(Comforter)란 '용기'에서 유래된 말로 낙담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시금 용기를 주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성도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성도의 삶에 있어 성령의 위로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성령 없이는 믿음을 유지해 가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는 항상 성령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성령을 떠나서는 경건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 안에 항상 거함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도는 영성의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2)도우시는 성령 성도는 비록 성령에 의하여 중생했다 하더라도 중생 이전의 부패성이 그래도 남아 있어 내적인 육성과 외적인 죄의 유혹 때문에 계속 갈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롬7:15-25). 이러한 도덕적, 영적 연약성을 성령께서 도우심으로써 육성을 소멸시키고(롬8:13),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게 합니다(고후6:17,18). 성령은 성도에게 지혜를 주시며(고전2:13), 심령을 인도하시고(롬8:14), 성도로 하여금 진리 가운데서 살도록 도우십니다(요16:13,14). 도한 성령은 성도의 행동을 인도하시고(행16:6-10), 기사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권능을 주심으로써 그 사역을 돕습니다(롬15:18). 따라서 성도는 성령 안에 거함으로 '영성'을 계발할 수 있으며 '영성'의 삶을 살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보호하시는 성령(요16:13)
1)보호하시는 성령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을 죄악에서 보호하시고, 환난에서 지키십니다(롬8:13;눅21:17,18). 성도가 죄악에서 보호받는 길은 내적인 육성을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거룩함을 덧입어 가는 길입니다. 또한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요16:13). 성도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심으로써 마귀와 영적 혼란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하십니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음으로써만 사단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성도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요14:17). 이로써 우리는 성령 안에 거함으로써 영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항상 성령 안에 거함으로 성령의 보호를 받고 구원받은 성도로서 영성을 계발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변호하시는 성령 구원받은 성도가 성령 안에 거함으로 영성을 계발하는 것은 성도를 위로하시고 보호하시며, 변호하시는 성령의 역할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미워합니다. 그 오래된 증오의 감정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창3:15).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은 것은 성도에게 어떤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성도들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요15:18-21). 예수님께서는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그들 안에 살아 계신 성령께서 그들을 위해 변호해 주시며, 그들을 친히 보호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막13:9-11). 이처럼 성령은 우리를 고난 가운데서 보호하시며 변호하십니다. 바로 이 같으신 성령 안에 거함으로 성도는 영성을 계발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성령께서는 매일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사역은 성도들로 하여금 구원의 은총을 깨닫게 하고, 또한 화해 시키며 거룩하게 하시고 변화시키는 일을 하십니다. 이 변화를 위해서 성령께서는 우리를 날마다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인도함 없이는 변화가 있을 수 없고 또한 변화없이 인도함 받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성령님의 사역이 곧 우리 삶의 고백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삶을 맡기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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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5:16
네 하나님이 명령한대로 네 부모 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이 네게준 땅에서 네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아멘
오늘도 가정의달을 맞이하여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하나님 을 경외하고 부모님을공경 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 는 가족들이 되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