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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복도(Grand hallway) 층계 아래의 모습 - 여러 소품과 고급 가구 피아노
▲ 중앙복도 층계 아래에 있는 피아노 - 특수하게 고안한 고급 피아노(?)인 듯
▲ 피아노의 현을 클로즈업시켜 보았는데, 특수하게 주문된 대단한 고급품이라 한다
▲ 볼트성의 로비에 놓인 가구와 소품
1916년 조지 볼트(George C. Boldt Sr)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조지 볼트
주니어(George C. Boldt Jr)는 그의 여동생으로 알프레드 그레이엄 마일스(Alfred
Graham Miles : 1875~1947)선장의 아내인 루이스 클로버(Louise Clover Boldt
Miles)와 함께 아버지의 사업체 유산을 공동지분으로 상속받아 조지 주니어의
이름을 붙인 법인체의 회장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2년 후에 조지 주니어는 법
인체에 속한 모든 회사의 지분을 팔아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자신의 모
교인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에 기부하였다.
▲ 볼트성의 응접실 reception room <1>
▲ 볼트성의 응접실 reception room <2>
▲ 볼트성의 응접실 reception room <3>
▲ 볼트성의 응접실 reception room <4>
▲ 볼트성의 다이닝 룸 Dining Room <1> 18좌석
▲ 볼트성의 다이닝 룸 Dining Room <2>
▲ 볼트성의 다이닝 룸 Dining Room <3>
▲ 볼트성의 다이닝 룸 Dining Room <4> ; 손님들과 함께 식사하는 방
앞에서 미국의 공익법인인 TIBA는 볼트성(城)을 인수하여 운영하면서 거기서 얻어지
는 수익금을 볼트성에 재투자하고, 일부는 후손들에게 생활비를 보태주기로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면 볼트와 루이스의 후손들의 실태는 어떠한가? 볼트에게는 아들인 조
지 볼트 주니어와 딸인 루이스 클로버 볼트(Louise Clover Boldt)의 2명의 자녀가 있
었다.
▲ 볼트성의 베드 룸
▲ 볼트의 아내 루이스(Louise) 사진 - 죽음. 묘지
Louise Boldt died at her home in New York City at the age of 42.
She was buried in the Boldt Mausoleum in Woodlawn Cemetery.
- 루이스 볼트는 42세의 나이로 뉴욕시의 그녀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그녀는 뉴욕 우드론묘지 가운데 남편과 함께 볼트가(家)묘지에 묻혔다.
▲ 볼트성 방안 천장 모습
▲ 볼트성의 볼트 가족 식당 식탁
▲ 볼트성 안의 볼트 스위트 룸
▲ 볼트성의 스위트 롬 천장
아들인 조지 주니어(George C. Boldt Jr)는 펜실베이니아주의 필라델피아에서 태어
나서 뉴저지주의 로렌스빌(Lawrenceville)에서 학교를 다니고, 퀼&대거 소사어티의
멤버로 있던 곳인 뉴욕주의 이사카(Ithaca)에 있는 코넬대학교(Cornell Univ.)를 졸업
하였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소극적인 성격으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에도 흥미
가 없었고, 결혼같은 것에 얽매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의 이력에는 결
혼도 배우자도 자녀도 나타나지 않고, 1958년 뉴욕맨해튼에서 78세를 일기로 죽었다.
다만 그의 흔적은 미국 코네티컷주의 페어필드카운티에 있는 뉴 가나안 레이크 뷰 묘
지에 표지석을 대신하여 묘지를 덮어둔 바닥에 눕혀져 있는 대리석에 아래와 같이 적
혀있다.
▲ 조지 C. 볼트 주니어 (위키백과)
- 월도프 애스토리아 호텔 회장시절 1916년 사진
GEORGE C. BOLDT JR.
BORN IN PHILADELPHIA
FEBRUARY 5, 1879
DIED IN NEW YORK CITY
JANUARY 27, 1958
▲ 레이크 뷰 묘지의 바닥에 붙어있는 조지 볼트 주니어의 묘지 표지석
▲ 레이크 뷰 묘지의 바닥에 붙어있는 볼트 주니어의 묘지 표지석을 넓게 촬영
▲ 볼트성에 걸려있는 조지 볼트와 그의 아내 루이스 볼트의 사진
▲ 볼트성의 볼트 부부 방의 조명
▲ 볼트성의 볼트와 아내 루이스(Louise)의 스위트 룸
▲ 볼트성에 붙어있는 볼트와 루이스의 결혼증명서(Marriage Certificate)
▲ 볼트성의 볼트 부부의 침대방 - 스위트룸
볼트의 딸 이름은 루이스 클로버 볼트(Louise Clover Boldt)인데, 딸의 퍼스트네임
(first name)인 루이스(Louise)는 아내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 그리고 중간이름(middle
name)인 클로버(Clover)는 그녀의 아버지 볼트가 그녀의 어머니를 처음 만난 유명
한 필라델피아의 클로버클럽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렇게 볼트는 아내를 사랑하고 그
녀를 끔찍이 아꼈던 흔적이 딸의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의 딸인 루이스 클로버는
1907년에 알프레드 그레이엄 마일스(Alfred Graham Miles : 1875~1947)선장과 결
혼하지만, 1910년 딸 클로버 워더스푼 볼트 마일스(Clover Wotherspoon Boldt Miles :
1910~1993)를 낳고 1920년대에 이혼한다. 그래서 클로버 워더스푼은 볼트의 손자
항렬로는 유일한 외손녀이다. 그 후의 볼트의 딸 이름이 클로버 볼트 조해네슨(Mrs.
Clover Boldt Johannesson)으로 표시되지만, 정식으로 재혼흔적은 없고, 아마도 같
이 살다가 인생을 마감한 것같다.
▲ 볼트성의 볼트 딸인 루이스 클로버의 응접실 <1>
▲ 볼트성의 볼트 딸인 루이스 클로버의 응접실 <2>
▲ 볼트성의 볼트 딸인 루이스 클로버의 응접실 천장 <3>
▲ 볼트성의 볼트 딸인 루이스 클로버의 응접실 <4>
▲ 볼트성의 볼트 딸인 루이스 클로버의 응접실 <5>
▲ 볼트성의 볼트 딸인 루이스 클로버의 응접실 <6>
볼트의 유일한 외손녀인 클로버 워더스푼의 처녀명은 클로버 워더스푼 볼트 마일스
(Miss Clover Wotherspoon Boldt Miles)이다. 1910년 2월 21일 뉴욕에서 태어났
는데, 두뇌가 명석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성격이라 대학교수가 되었다. 의사인 레
슬리 에머슨 모리세트(Dr. Leslie Emerson Morrissett)와 1933년에 결혼하였으나,
1939년 의학적으로 소아마비에 걸린 것이 확인되어 척수성 소아마비환자라는 낙인
이 찍힌다. 1962년 모리세트와 이혼하고, 1963년 웰즐리섬에서 알렉산더 데이비드
고든 베어드(Alexander David Gordon Baird)와 재혼한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책도
쓰고, 볼트재단의 대변인 노릇도 하였다. 1993년1월12일 83세를 못채우고, 외할머
니처럼 1월에 영면하여 천섬지역인 알렉산드리아의 리버사이드묘지(Riverside Cemetery)
에 묻혀있다.
▲ 볼트성의 부엌 조리실 <1>
▲ 볼트성의 부엌 조리실 <2>
▲ 볼트성의 부엌 조리실 <3>
▲ 볼트성의 부엌 조리실 <4>
▲ 볼트성의 부엌 조리실 <5>
조지 볼트(George C. Boldt)는 프로이센의 한 섬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의
원대한 꿈을 이룬 사람이다. 그는 분명히 기업가로서 성공하였고, 재산가로서 그의 명
성을 드러낸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보다 11살이나 어린 백만장자의 딸을 아내로 맞이
하여, 짧긴 하여도 사랑에도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경영능력
과 성실함으로 이룬 재산은 불과 2대를 지키지 못하였다. 후계자로서 훌륭한 자식이 대
를 잇지 못하였고, 거기다가 후손까지 끊어졌다. 그의 생전의 업적은 이 하트 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코넬대학과 몇몇 지역에 그의 기념관이 있을 뿐이다. 그들 부부가
잠들어 있는 뉴욕의 브롱크스(Bronx) 우드론묘지에는 기념비로 세운 조지 볼트탑이 서
있다.
▲ 볼트의 아들인 조지 볼트 주니어가 아버지가 이룬 전재산을 코넬대학에 기부하여,
코넬대학교는 학교내의 건물증축을 비롯한 운영이 튼튼해졌다 - 조지 볼트 건물들
▲ 조지 볼트의 기부금으로 지어진 Boldt Hall Residence
▲ 조지 볼트 부부가 잠들어 있는 뉴욕 브롱크스의 우드론묘지에 있는 볼트탑
만약 조지 볼트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명심보감(明心寶鑑)》만 제대로 공부하였
더라면, 이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司馬溫公(사마온공)이 曰積金以遺子孫(왈적금이유자손)이라도
未必子孫(미필자손)이 能盡守(능진수)요、
積書以遺子孫(적서이유자손)이라도 未必子孫(미필자손)이
能盡讀(능진독)이니、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불여적음덕어명명지중)하야
以爲子孫之計也(이위자손지계야)니라。
《明心寶鑑》 <繼善篇> 제6구(第六句)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 "돈을 모아서 자손에게 물려준다 하더라도 자손이 반드시 그
재산을 다 지킨다고 볼 수 없으며, 책을 모아서 자손에게 남겨준다 하더라도 자
손이 반드시 그 책을 다 읽는다고 볼 수 없다. 남이 모르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덕
을 쌓아서 자손을 위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
첫댓글 피아노의 내부장식이 예술이네요 마지막에 명심보감을 올리신것은 아마도 동양철학의 깊고 심오함을 말씀하신듯하네요 저도 요즘 주역에 빠지고 있어서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필자의 글 읽고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