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업기념으로 제 블로그에 올린 글중 하나 옮겨 봅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4년의 일입니다.(원문을 직역하지 않고 읽기 편하게 각색했습니다.
....춘당대에서 전경무신(무경 즉 병서를 전공하는 무신들)의 활쏘기 시험을 보았더니 이날 활쏘기에 참가한 무신중 열 번을 쏘아서 네 대도 과녁에 맞히지 못한 자가 부지기수였다. 임금께서 병조판서에게 명하여 그들의 죄를 곤장으로 다스리게 하였다.
이에 병조판서 이갑이 “무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유엽전을 열 번을 쏘아 네 대도 맞히지 못하였으니, 이러한 무신을 어디에 쓰겠습니까?”........“예전처럼 삭시사(매달 정기적으로 궁술 시합을 열어서 잘쏘는 자를 표창하고 못쏘는 자를 징계함)를 엄격히 시행하소서”
하자 임금께서 하명하시길
“시절이 변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빡세게 굴릴수 있겠는가 그러지 말고 활쏘기 시험을 적당한 시기별로 보아서 한대도 못맞추면 파면하고 1~4점 까지는 곤장을 쳐라 그리고 병법시험에서 세 번을 통과하지 못하면 녹봉(지금의 월급)을 거르게 하라”...
1. 예나 지금이나 한국 군인들의 병법이나 무예를 게을리 함은 유구한 전통인가 봅니다. 저또한 최전방 사단에서(한국군에서는 가장 빡세다는 평을 받는 모사단으로 상무대 교육시절 동기들 대신해서 고생한다고 동기들이 돈을 모아서 여벌의 비싼 신형전투화를 2벌 사줌)군생활을 마쳤지만 육사 비육사를 불문하고 군사학이나 전쟁사에 대한 장교들의 무식함과 무관심은 도를 지나치는 수준입니다. 군생활간 만나본 수백명의 위관 및 영관급 장교들중 만슈타인, 구데리안, 주코푸, 로코소프스키, 모택동 등의 현대전의 지휘관들의 전사에 대해서 아는 군인은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으니..참으로 어이가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집을 방문하거나 했을 때도 집에 부동산, 공인중개사서적, 판타지소설등은 쌓여있어도 군사서적은 단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한번은 독신자숙소로 놀러오신 영관급 장교 한분이 방에 쌓여있는 군사서적(주로 stackpole출판사의 동부전선 독일군 관련서적들)들을 보더니 이런 쓸데없는 책들은 그만보고 공인중개사나 이런 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좀 보라고 충고해 주시더군요..
2. 그렇다고 해서 한국군의 위관 및 영관 장교들이 다른 분야 까지 무식한건 아닙니다. 바쁜 군생활 와중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거나 주식에 관련한 책들을 업무중에도 꾸준히 독파하시는등 자기관리에 엄청 열심들 이십니다.
3. 처음 상무대교육을 마치고 신고를 하려고 대대 작전과를 올라가니 연대내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모 선배(사단내의 주요보직을 두루 거치고 가장 훌륭한 인재라는 평을 듣고 있었으며 중위임에도 작전장교 대직을 하고 있었음, 이후 상무대 고군반도 최우수로 수료함)의 충고가 기억에 남습니다.
“군인으로 성공하려면 펜대를 잘굴려야 한다. 기안을 얼마나 잘하고 프리젠테이션에 얼마나 능숙하냐가 앞으로의 출세길을 가른다”
처음 들었을때 웃어 넘겼지만 이후 2년 동안 군생활 동안 만난 위관 및 영관급 장교 인재들은 대부분 기안 또는 페이퍼 업무를 잘하는 훌륭한 회사원들 이었습니다. 어찌나 기안을 많이 하는지 최전방 전투부대 지휘관 생활만 한 저도 제대이후 입사한 회사에서 기안의 달인 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였습니다.
자고 나면 검열과 기안으로 점철된 군생활 이다 보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역이후 만나본 수십명의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 였습니다. 다들 남은건 기안 실력밖에 없다는...후방 부대의 동원업무를 담당했던 친구는 지금도 잠자리에 누우면 군대에서 기안을 하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4. 지휘관입장에서는 평시의 군대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당연히 빠릿빠릿하게 기안 잘하고 페이퍼 업무에 능한 부하들입니다. 이런 부하들만 주위에 모으다 보니 육군본부가 거대한 기안 작업소가 된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군대있다 보면 육본 출신들의 기안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혼을 담은 기안문화의 정수..ㅋㅋ 이명박대통령 초기에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국방부가 칭찬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수십년간 기안으로 칼을 갈아온 프로페셔널 육본출신(국방부가 사실은 육본의 하수조직일 뿐이죠..) 펜쟁이들에게 대통령 입맞에 맞는 기안이나 보고는 일도 아니죠..육본을 거쳤느냐 거치지 않았느냐..엄청난 차이입니다. 육본 출신과 비육본 출신은 육사와 비육사의 차이를 능가하는 장벽중의 하나입니다. 육사출신이라도 육본을 거치지 못하면 대놓고 무시당합니다. 몸으로 때우는건 되는데 페이퍼 업무가 안된다고...당연히 페이퍼 업무가 안되면 육본은 어려워 집니다.
저뿐만 아니라 작년인가..인터뷰에서 장성출신인 모 유명인사도 한번 이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페이퍼업무 강하고 상관 비위 잘맞추는 인간들이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고 군생활중 가장 실전에 강했던 전투형 군인들은 대부분 중령에서 진급이 멈추고 옷을 벗고 나간다고 안타까워 하시더군요..본인 동기중 가장 실전에 강했던 동기는 중령 달고 전역, 전방 지휘관시절 즉각조치가 우물쭈물해서 여러번 사고를 치고 동기들로부터 북한에서 훈장 받아야 한다는 소리 듣던 동기는 중장까지 진급....
5.딱히 현재의 우리군만 겪는 문제는 아니고 평화시 군대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대가 군대가 아니라 회사이자 직장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강해지는 것이지요. 당연히 장교 또한 군인 이라기 보다는 관리직 회사원의 이미지가 강해지고..
6. 다른건 몰라도 장교들..일년에 한달씩이라도 소집해서 군사학 하다 못해 전쟁사에 대해서라도 좀 가르쳤으면 합니다. 그렇게 강제로 하지 않으면 페이퍼 업무에 시달리느라 평생 기회가 없을 겁니다. 군사학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정조처럼 곤장을 치지는 못할망정 강제로라도 공부라도 시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흠흠 저근무할때 정장님은 넬슨전기등 열심히 보시든데
.훔쳐보다 꿈밤ㅋㅋ
해,공군은 아무래도 관련분야 공부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분야죠 그리고 부사관 계층이 많은 역할을 담당해서 장교들이 공부할 시간도 많은 편이구요
관심있는 사람은 또 엄청 관심있게 봅니다. ^^
맞습니다..하지만 관심없는 간부가 대부분인게 함정이죠
네 해군은 공부 많이 합니다. 부사관들은 장교한테 지기싫어서 장교들도 매한가지랍니다. 잠수함 지원할려고 했을때
잠수함학교책을 봤는데 두께랑 내용이 ㅎㄷㄷ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30대 말년입니다 ~
정권이 바뀌었으니 뭔가 변화가 있을 겁니다
중령에서 진급을 멈추더라도 실전 군인이라는 인정을 받고 나왔으면 그거라도 명예로운게 아닐지. 실전 군인을 지향했는데, 상관들의 견제를 받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리버리한 놈으로 낙인찍히고 반대로 상관의 비위를 맞추면서 아랫사람 공을 뺏은 놈은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으면 그건 진짜 열통날 듯.
저도 진짜, 군생활하면서 욕먹고 얻어듣는게, 침낭 잘 못개고, 조총훈련할 때 자기들이 정해놓은 제식대로 잘 못한다는 점, 기가 너무 세서 고참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점, 고참이 아부를 하라고 눈치를 줘도 쌩까고 아부를 안한다는 점, 후임들좀 패고 갈구라고해도 안갈구고 좋게 타일러서 혼자 착한척 한다는 점. 주로 이런걸로 욕을 많이 먹었죠.
하도 욕을 먹다보면 실수가 많은놈으로 낙인찍히고, 정교한 일을 할때는 항상 의심받고, 그러면 더 의욕은 떨어지더군요. 간사하고 후임들 공뺏는 놈은 유능한놈 소리를 듣고.
정작 군대에서 중요한 용기라든지 부지런함, 강한 체력, 사격술, 화생방, 각개전투, 정신교육, 빠른 속도, 사기 이런건 누구보다 앞선다고 자신있었는데,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도 않더군요.
고참들 비위 맞추면서 자기 이미지를 잘 포장해서,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험한 욕을 안먹는 이미지를 만드는게 중요한것 같습니다. 그러면 실수를 해도 별로 부각이 안되는데, 저같은 경우는 그게 잘 안되다보니 뭘 해도 욕먹고, 그러다보니 아예 만사가 귀찮아져서 단순 육체노동이나 시키는 일만 반복해서 하는 단조로운 일이 더 맘 편해지더군요.
저또한 모시던 지휘관이 제가 본 군인중 가장 군에 어울리고 유능하고 헌신적인분 이셨는데 비육사출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옷벗는 모습을 보고 한동안 마음이 너무 아프더군요
초급장교시절 승진욕심 안냈던걸 뼈아프게 후회 하시더라구요 욕좀 먹더라도 공부만해서 해외갔다오지 않고 승진에서 동기들 제끼고 욕심부리지 안은걸 많이 후회 하셨죠
국방 외교 등에서 한국 윗선의 무능은 이미 역사가 검증해주는거 아닙니까.....군대도 직장이 맞기는 하지만 어울리는 일을 잘 하게 만들어야지 이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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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으로 성공하려면 펜대를 잘굴려야 한다. 기안을 얼마나 잘하고 프리젠테이션에 얼마나 능숙하냐가 앞으로의 출세길을 가른다” <-- 이게 어느정도냐 하면 그 무식하다는 특전사 장교출신인 저도 공기업 인턴시절 문서 기안하나 해주니 질질 하시던 과장 차장님들...
그리고 제 동기중에는 그나마 전기전사에 관심 많은 사람도 몇 있었고 특전사 복무당시 선배장교분들 중에도 밀리터리지식 빠삭 하신 분 여러 계섰습니다. 부사관 중에도 장비욕심이 지나치다 싶을 사람이 많아서 ㅋㅋ 뭐 하지만 일반적으로 ㅡ.ㅡ 결국은 A4용지 싸움이기 때문에..
전쟁나면(그럴일은 없다고 믿습니다만..) 무능함을 보여줄게 뻔합니다..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