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0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치열한 경합 끝에 거대한 거미 형상 청동 조각이 약 2800만달러(약 318억원)에 낙찰됐다. 이로써 여류 조각가 작품 중 역사상 가장 높은 경매 낙찰가 기록이 세워졌다. 이 기록은 여전히 유효하며 당분간 쉽게 깨질 것 같지 않다.
3m 넘는 높이에 7m가량의 폭을 지닌 이 대형 조각 ‘거미(Spider, 1997년)’는 바로 프랑스 출생의 미국 여류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년)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녀는 작업에 착수한 지 1년 만인 1997년에 이 작품을 청동으로 주조, 발표했다. 1997년이면 그녀 나이 86세다. 놀랍지 않은가.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우게 될 대표작을 그런 고령에 제작했다는 것이. 하지만 파란만장한 그녀의 인생을 알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실 일흔이 될 때까지 그녀는 대중에게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에 가까운 예술가였다.
대부분 예술가들은 젊은 시절 내지 중장년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후, 나이듦에 따라 점차 하향세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칠순 무렵부터 죽기 직전까지 창작열을 불태우며, 생의 마지막 30여년간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1938년 파리에서 만난 미국인 미술사학자와 결혼, 뉴욕으로 이주하고 훗날 미국 시민권을 따지만 부르주아는 원래 프랑스 출생이다. 그녀의 부모는 파리 근교에서 골동 벽걸이용 직물 수선공방을 운영했다. 부모라고 하지만 사실 직물 수선에서부터 공방 운영에 이르는 대부분의 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아버지는 여자들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한량 같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젊은 영국인 여자를 아이들 영어 가정교사라는 핑계로 공공연하게 집안에 들여 부적절한 관계를 상당 기간 유지하기까지 했다.
명민한 부르주아는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가정을 건사하느라 아등바등하는 연약한 어머니를 외면하는 아버지의 파렴치한 불륜은 배신감을 넘어, 그녀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겨줬다. 부르주아에게 평생 예술은 이 불운한 어린 시절을 치유하는 처절한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개의 에디션으로 제작된 청동 조각 ‘거미(Spider, 1997년)’. 2015년 11월 10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2800만달러(약 300억원)에 낙찰돼 여류 조각가의 작품 중에서 역사상 가장 높은 경매 낙찰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늘 어머니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면서 “어머니는 부지런하고 영리하며, 진득하고, 마음을 달래주며, 합리적이고, 앙증맞고, 섬세하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며, 단정하고 유능했다. 거미처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정의 평안을 위해 아버지의 불륜도 눈감은 채, 평생 인내하고 희생한 자신의 어머니에게 부르주아가 무한한 애정을 느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리라.
1932년 어머니의 사망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우발적으로 강물에 뛰어들기까지 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왜 하필 그녀는 어머니를 거미에 비유해 예찬했을까.
9m가 넘는 초대형 거미 조각 연작 중에는 ‘엄마(Maman)’라는 제목의 작품도 있다. 몇 개 에디션으로 제작된 이 연작 중 한 점은 국내 한 유명 사립미술관 정원에도 설치된 적이 있다.
일견 공포심을 유발할 법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대형 거미가 흥미롭게도 부르주아에게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여기에 부르주아 예술의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과 정서를 작품 주제로 하되, 강력한 보편성 획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예술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관객 사이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때 예술은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부르주아는 종종 인터뷰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의 놀라운 직물 수선 기술을 거미들의 그물 짜기 능력에 견줘 얘기하고는 했다. 벽 모퉁이에 쳐진 거미줄을 끊어본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 끊어뜨려 망가진 그물을 다시 묵묵히 원상 복구하는 거미의 인내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읽어냈다.
부르주아가 처음 거미를 소재로 작품을 만든 것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잉크와 목탄을 사용한 두 점의 작은 드로잉이 그 시초였다. 대형 거미 조각으로 창조되기까지 50년이 걸린 셈. 그런 면에서 부르주아의 ‘거미’ 조각은 그녀의 어머니를 꼭 닮아 있다. 가족을 위해 어머니가 버텨낸 인고의 시간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잉태되고 다듬어져, 그녀가 감당해낸 삶의 무게만큼 무거운 청동 조각으로 탄생했으니.

뉴욕 미술계에 적응하기 위해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1940년대 후반의 회화 ‘뉴올리언스(New Orleans, 1946년)’. 구상과 추상, 현실과 환상 등의 경계를 오가며 작업하는 부르주아의 스타일이 이 초기작에도 잘 반영돼 있다. 2014년 5월 14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70만달러(약 8억원)에 낙찰된 바 있다.
이처럼 부르주아의 ‘거미’는 거미라는 곤충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이자 세 아들을 키운 어머니로서의 자신, 나아가 인류 공통의 보편적 모성애를 상징한다. 즉, 그녀의 거미는 자녀를 양육하고 보호하는 어머니의 복잡한 역할과 책임, 희생에 대해 말한다. 이를 통해 그녀의 작품은 미술사를 관통하는 모성애 묘사에 대한 강력한 계보를 잇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미술의 주제가 돼온 모성애를 이토록 개인적인 해석으로 접근한 예술가가 있었던가. 숱하게 많은 미술품이 모자상을 통해 모성애를 보여줘왔다.
일례로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대리석 조각 ‘피에타(Pieta, 1498~1499년)’를 보라. 죽은 아들, 예수의 시신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다정한 모녀의 행복한 일상을 묘사한 르누아르의 그림은 또 어떤가. 절로 미소 짓게 하지 않는가. 모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명작이지만 모성애에 대한 예술가 개인의 해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한 부르주아의 ‘거미’ 조각에는 그리스 신화라는 숨겨진 층이 하나 더 있다. 신의 노여움을 산 탓에 거미가 된 아라크네가 그 주인공이다. 직물 짜기와 자수의 달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아라크네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다 직물의 수호신인 아테네 여신과 실제로 대결을 펼치게 된다. 실력으로는 아라크네를 이길 수 없음을 안 아테네는 아라크네가 짠 직물을 찢고, 그녀를 거미로 둔갑시켜 평생 그물을 짜도록 했다.
이런 신화는 평생 직물 수선을 업으로 삼았던 부르주아 어머니의 인생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어머니를 거미와 연관시킨 그녀의 해석에 한층 강력한 개연성을 덧붙여준다.

남근을 연상시키는 본인 조각품 ‘어린 소녀(Fillette, 1968년)’를 들고 서 있는 부르주아의 모습. 1982년 뉴욕현대미술관 회고전 무렵, 미국의 유명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1946~1989년)가 촬영한 사진.
대중적으로는 거의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던 부르주아를 단박에 스타덤에 올려준 것은 1982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의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70세 무명 여류 조각가의 창조적이고 방대한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된 것.
이후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 대표로 참가하는 등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를 오늘날 여류 조각가의 아이콘과 같은 반열에 올려준 것은 2000년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회고전에서 선보였던 초대형 거미 조각 ‘엄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면서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시절은 다 갔다고,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거미’ 조각을 보면서 칠순에 예술가로서의 전성기를 맞은 부르주아의 대기만성 삶을 다시 잘 살펴보시기를.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첫댓글 리움미술관 앞마당에 '거미'작품이 설치되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