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마차
오 솔 길
서강 상류 고느적 한 곳.
태백산맥 중심지 접산, 삼방산을 병풍처럼 두루고, 워낙 산골이라 단종대왕도 삼거리에서 비껴
영월로 돌아 간 곳이다. 옛날 무연탄만 나지 않았더라도 지금쯤 한국산 호랑이와 토종 곰이
단군 이후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을 곳이다.
영월 삼거리에서 단종대왕이 간 길로 가지 말고 동쪽으로 더 깊게 들어가면
강구(강물이 돌아 흐르는 곳)란 곳 부터는 산골답지 않게 넓은 들이 가노골까지 펼쳐진다.
일명 강구 뜰이다.
강구 뜰의 젖줄은 가노골 맑은 샘물인데, 어찌나 맑고 시원했는지 생각 만 해도 오싹 한기를
느낄 정도다. 아무리 가물어도 이곳에서는 물이 쏟아져 나왔고, 온갖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는 곳이다. 참 많이도 잡아 먹었다.
이 물을 먹고 자란 가노골 친구들을 이번 동창회에 가면 볼 수가 있을련지...
마차와 이곳의 거리는 20여리로 이 친구들은 중학교 때부터 걸어서 학교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한 다리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는지 이번 동창회에 왔으면 하고 기원한다. (명옥, 재숙, 닭똥)
소풍의 꿈을 심어 주었던 가노골 동산을 지나면 지네산과 뱀산이 나오고,
그 곳을 비껴 문곡삼거리에서 정선쪽으로 우회전하면 마차 가는 길이다.
문곡 친구들도 대단한 다리의 소유자 들이다. (명주, 임신, 수향, 상진, 규성등,)
걸어오는 순서도 제일 앞에는 명주가 오고 다음에는 임선이 다음은 수향이가 온다.
그간 지각 한번 하지 않고 그 먼 길을 걸어 다닌 친구들. 지금 생각하면 참 대견한 학생들이었다.
꼭 공부 잘 해야 상을 주니 야들이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성실성 근면성 같은 상을 주면
야들이 싹쓸이 했을 것이다.
문곡을 지나면 골마차로 들어서고, 멀리 마차 전경이 중고등학교 나무에 가려 신기루처럼
가물거린다. 웅장한 접산은 임금이 용상에 앉아 있듯 의젖이 마차를 굽어보고 있다.
길은 곧아 나도 모르게 속력을 내어 빨리 마차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도 한다.
서강의 물줄기는 마주보고 있는 학교 사이를 지나 마차 시내를 비껴 흐른다.
마차초등학교 교문에서 읍내로 돌아들어서면 마차 시내 전경이 눈이 아닌 가슴으로 보인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곳인가. 내 고향의 중심지. 서울특별시 보다 아니 세상 어디 보다 나에게는
중심이 되는 곳이다.
마차 시내 삼거리를 한 바퀴 돌면 더 갈 곳이 없지만 나는 더 갈 곳을 찾고 있다.
키가 작아 다행이었던 상래가 저 쪽에서 뛰어 나 올 것 같고, 창익이가 여관에서 베시시 웃고
서 있을 것 같고, 서울상회 상옥이가 가게 앞에서 문곡 촌 아들과 대화하고 있을 것 같고,
홍석이 영철이가 선율이 힘준 어깨와 함께 나타 날 것 만 같다. 어디서들 뭐하는지
모르는 것이 꿈꾸기에는 차라리 좋을 수도 있겠다. 운명을 달리한 친구도 있기에...
옥조는 다리를 건너면 있다.
쇠줄로 되었던 다리를 자기가 용접했다고 했던 다리다. 옥조는 이름에서 목조르는 느낌이 든다.
얼마나 벨랐으면 그럴까? 이번에는 올련지 모르겠다. 요즘 조용히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사택으로 돌아서면 내가 어려서 뛰어 놀던 무릉도원이 펼쳐진다.
지금은 그냥 산을 굽어 도는 작은 밭과 길로 변해버렸지만, 옛날 내가 살았을 때는
테니스 장과 골프장, 영화관, 교회등 최신 문화시설이 웅비하게 널려 있었고,
멋쨍이 회사 아가씨들이 초미니 스카트를 입고, 폼을 내고 활보하고 다녔던 곳.
지금의 서울 압구정 못지 않은 곳 이었다.
우리나라 전체가 보리밥을 먹을 때, 여기서는 쌀이 하도 흔해 개들도 쌀밥을 먹었던 곳이다.
솔치길과 사택길 부속병원 배급소, 이용원, 천주교, 다 사라졌지만 아직 나에게는 남아 있다.
이곳이 부속병원, 이곳이 배급소하며 남아 있는 기억의 퍼즐을 맞춰본다.
잘 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건 중요 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친구들이 살아 있어 만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재웅이, 상열이, 강산이, 선종이, 백성철, 맷돌, 경열이, 내일 만날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남아 있는 한 조각의 고향퍼즐 게임하기 위하여...
사택 2구 형식이, 학은이, 규식이, 미숙이, 신숙이, 정화, 수일이, 금순이, 재석이, 향숙이,
인자, 고양이(고향란) 정길이, 수옥이, 이름을 보니 주로 순진한 아이들이 살고 있었던것 같다.
뭐라고 말 할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에는 참 좋은 여학생도 끼어 있다.
지금껏 이 보다 더 좋은 여학생은 없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이고, 벙어리냉가슴의 주인공,
분홍 빛 채크무늬 짧은 주름 치마에 흰 브라우스는 소설 황순원 소나기의 주인공 소녀가
죽으면서 유언으로 남기고 덮고 간 옷과 같다고나 할까...그렇다. (학은아 해석해 보아라)
사택3구는 광업소와 맞 닿아 있어 추억이 광업소와 맺어진다. 삭도 바가지가 앞 산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이 외지인에게는 신기한 볼거리였다. 산과 산을 이어가는 삭도바가지는
자동차도 드물었던 시절에 신기한 괴물이었던 것이다.
우선 대강 물을 먹고 싶다. 참 좋은 물이다.
지금은 도로까지 물 줄기를 빼 내어 쉽게 먹을 수가 있지만 그 때는 산기슭까지 가야 했다.
깊게 패여 있어 낮에도 혼자가기에는 으슥한 곳이기도 하고, 이끼가 많이 있어 뱀 있을까
걱정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봄에는 앞산에 진달래 꽃, 여름에는 냇가에 중터리 사냥, 가을에는 뒷산에 도토리
겨울에는 상기네 집 앞에서 다마치기, 가이상, 찐돌이하면서 놀던 곳이다.
그 때 대장은 창숙이, 상기, 나, 병철등이 4성 장군이었다. 동생들은 부하들이었지.
저녁 늦께까지 참 재미 있게 놀았는데. 내일 그이야기 할 수 없을까?
연희, 은옥이, 숙자, 칠성이, 복만이, 금춘이, 향숙이, 쌍둥이네,
붙들이(하도 도망을 가서 붙들이라고 작명함) 모두 이번에 만나 볼 수 있을까?
살아 있다면 모두 왔으면 한다.
광업소를 지나면 요봉이다.
어머니의 산 접산이 가까워 진다.
길은 더 굽어지고 산 비탈 가까이 집들이 있었다. 요봉은 태백 산맥 중심부로 더 들어가니
산은 더 높아지고 길은 좁아지며 험해진다.
곱돌을 주으러 절골까지 갔던 기억과 영화 촬영시 구경 갔을 때 기억이 남아 있다.
요봉도 반대편 문곡 만큼이나 학교와는 먼 곳이다.
성구, 세민이, 재혁이, 규상이, 장원이, 종주, 일화, 영철이, 영길이 야들이 배꼽에서
석탄 나온다는 아들이다. 너무 심했나? 미안하다.
요봉에서 한참을 더 가면 밤치가 나온다. 일명 율치라고도 한다. 밤율자를 써서 그런가 보다.
덕윤이, 경숙이, 혜숙이, 성택이, 정말 개천에서 용났다.
작은 교회가 아름다운 밤치다. 언젠가 이곳을 지나면서 보니 교회는 아직 건재해 있더라.
촛불로 기도 하던 생각이 난다. 축복 받을 거다.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친구들이 다가 올지 궁금하다.
변한 모습보다는 변하지 않은 옛 모습이 좋다. 의젖해진 높은 사람 보다는
옛날 코흘릴 때 모습이 그립다.
돈 많은 외제차 보다는 지게 지고 오는 모습이 더 그립다.
맛있는 음식, 훌륭한 무대, 유명한 가수 보다는 친구의 술 한 잔이 더 그립다.
이번으로 행사도 졸업한다고 한다.
장수대학은 없나 보다. 있었으면 하느데, 장수대학에서는 내가 음악 선생이거든.
우리 나이가 들음으로 더욱 아름다운 친구들이 되자.
나는 내일 출발한다. 다들 오겠지. 삶에 지쳐 오지 못 해도 내 친구니 미워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기다린다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