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성탄절은 또 하나의 명절 같은 분위기를 갖게 합니다.
조간신문에 끼어져오는 성탄 맞이 특별광고지면이 우리의 마음을 닥달하고, 별처럼 작은 꼬마전구로 수많은 나무들을 온통 감싸버린 맘모스 건물 앞의 성탄트리를 바라보며 황홀함보다는 저 전구가 값이 얼마나 들었을까, 메마른 샘 속내로 여기저기서 본 아프간의 피난민 어린이가 추위와 배고픔을 피하려 엄마의 치맛자락 속으로 파고들던 그 그림이 자꾸 눈에 잡힙니다.
우리의 기준과 수준을 넘어 이 땅에 오심 분, 하나님이시면서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온 인류를 위하여, 가장 인간답게 그러면서도 신적인 권위 그대로 오신 그분이 예수그리스도 적어도 구세주라면 세상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권위를 더하기위해서, 예루살렘의 화려한 성전에 오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그 기준을 깨고 베들레헴의 허름한 여관의 그 뒤편 후미진 마굿간의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공자나 석가모니, 마호멧이 누렸던 생전의 추앙도 출생의 행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신 날.
성탄의 의미가 희미해진 요즈음, 예수님의 이미지가 추운 날에서 썰매를 타고 오는 맘씨 좋은 산타할아버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착한 어린이들이 걸어놓은 양말주머니에 선물 주고 가는 산타클로스쯤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원래 4세기경 터키에 살았던 주교 성 니콜라스는 불우한 어린이를 많이 도운 훌륭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미국사람들에 의해 19세기경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이 유쾌한 노인은 어린이들의 가슴속에 진정한 복음보다는 환상이라는 허상으로 예수님을 상징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17세기 영국에서 본격화된 성탄절 행사는 심지어 팔백만 우상을 섬기는 일본에서까지도 12월이 되면 구유속의 아기 예수상과 산타클로스상이 가게에 나란히 진열된다고 합니다. 어디 일본 뿐 이겠습니까? 중국은 성탄절이 산타클로스가 탄생한 날인 줄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진실은 알아보지도 않고 눈앞에 유익만을 구하는 현대인의 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조차도 그저 행사에 치우쳐 진정한 성탄의 의미는 자연스레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은 곳의 탄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한번 쯤 생각해보는 이번 성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시간에도 아마 주님은 성탄의 기쁨을 트리의 불빛과 장식이 한 교회와 성당이 아닌 달동네 한 쪽방에서 그들과 함께 나누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첫댓글 아마, 그렇겠지요? 우리 주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