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의 '세계줄기세포허브(WSCH)'가 19일 출범함에 따라 한국이 세계 줄기세포 연구의 메카가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WSCH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세계 각국에 줄기세포 은행들이 설립돼야 하고 각국 연구자들의 참여도 이끌어내야 한다.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생명윤리 논쟁을 극복하는 것도 WSCH가 성공하기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소식에 참석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WSCH는 내년 운영비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 국제 네트워크 형성해야=국제 네트워크 구축은 세계 허브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영국 로슬린연구소의 이언 윌머트 박사와 미국 피츠버그 의대의 제럴드 섀튼 박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충분치 않다. 영국이나 미국의 다른 연구소와 두 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가 참여해야 세계 허브로서의 구색이 갖춰진다.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나라 연구기관들과의 공동 연구다.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의 박기호 교수는 "다른 나라나 기관들이 당장 한국이 주도하는 WSCH 밑에 지부 등의 형태로 들어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선 공동연구 형식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협조하되 우리가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미 몇몇 나라에서 공동연구 제의가 있었다. 잔여 배아 줄기세포의 특허권자인 미국 위스콘신대의 제임스 톰슨 교수도 황 교수에게 공동연구를 제의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건복지부 박용현 보건산업진흥과장은 "대만과 브라질 등에서도 참여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며 "윤리적 문제나 자금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나라에서도 꽤 참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법적.윤리적 논란 최소화해야=공동연구를 하더라도 각국의 법적.윤리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국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조차 체세포 복제 배아 연구 대상이나 조건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어 논란이 일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진행 중인 황 교수의 체세포 복제 연구도 정식으로 승인받은 것이 아니다. '3년 이상 관련 연구 수행''관련 학술지에 1회 이상 관련 논문 게재'라는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한 상태에서 부칙에 의해 잠정 승인을 받은 상태다. WSCH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국내외 공동연구 등이 이어지는데 현재의 가승인 요건만으로 새로운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체세포 핵이식 배아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난자 채취에 대한 기증자의 동의 절차나 채취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 요건도 마련해야 한다. 현재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
복지부 김헌주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이달 10일 열린 제2차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이 문제를 긴급 논의해 주도록 요청했다"며 "조만간 전문위원회를 열어 내년 1월까지는 관련 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제적 공동연구가 이뤄질 경우 법적.윤리적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특허권이 대표적인 예다. 박기호 교수는 "나라마다 관련 법이 다르기 때문에 국제법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있다. 공동연구 성과물의 특허권 등에 관해선 케이스에 따라 구체적 계약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안정적 재정은 기본=WSCH가 문을 열기까지 65억원이 들어갔는데 이 돈은 전액 서울대병원이 부담했다. 기본운영비도 서울대병원이 부담한다는 기본합의도 이뤄졌다. 그러나 WSCH에 근무할 30명의 인건비나 시설 운영비의 조달 방법은 정해진 게 없다.
복지부 박용현 과장은 "WSCH에 근무하는 연구원의 인건비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건비 지원은 황 교수가 연구계획서를 제출해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는 것을 전제로 가능하다. 이 경우 다른 연구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지금도 정부 지원이 황우석 교수의 체세포 복제 배아 연구에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WSCH가 국가적 지원을 받게 될 경우 다른 분야 연구자들의 소외감은 더울 커질 수 있다. WSCH가 국내 연구자들조차 끌어안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는 "체세포 복제 배아뿐 아니라 잔여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기술도 세계적 수준인데 잔여 배아 쪽에는 상대적으로 지원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허브에 환자로 등록하려면 내달 1일부터 방문.인터넷.우편 접수
서울대병원에 설립된 세계줄기세포허브에 환자들의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개소식 다음날인 20일 2개 회선으로 된 대표전화(02-2072-0200~1)는 쉴 틈이 없었다. 이날 하루에만 수백 통의 전화가 왔고 이 중 200명 정도가 1~2분간 상담을 했다. 상담자 대부분은 파킨슨병.척수손상.당뇨.루게릭.뇌경색 환자였다.
환자들은 자신의 병명을 대고 줄기세포 연구대상이 될 수 있는지, 등록절차는 어떻고 치료 시점은 언제인지 등을 물었다.
WSCH의 상담 간호사는 "다음달 1일부터 방문뿐 아니라 인터넷.우편으로 등록을 받을 예정"이라며 "난치병 환자는 병의 종류와 관계없이 등록할 수 있지만 당분간은 척수손상이나 파킨슨병만 연구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WSCH 초대 소장인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18일 무역협회 주최 심포지엄에서 "임상 적용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녹내장.척수마비.파킨슨병.당뇨병을 우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연구 대상이 될 녹내장 환자는 인구 50명당 한 명(전체 90만~100만 명)꼴이라고 서울대병원은 추정한다. 병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압을 내리는 치료를 하고 있지만 이미 손상된 시신경을 회복시키는 치료법은 없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이 시신경 회복을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 매년 2000명가량의 척수손상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에 등록한 장애인은 5만3000명이다. 신경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 신약을 개발하고 있으나 한계에 도달했다.
척수 운동신경 장애로 생기는 루게릭병이나 다발성 경화증에도 줄기세포를 활용할 수 있다.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총인구의 0.15%(7만여 명)로 추정된다. 65세 이상 인구에서는 환자 비율이 2%로 높아진다.
유전성 난청환자는 신생아 1000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고 있다. 소아당뇨 환자는 전체 당뇨(400만 명)의 5% 정도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연구 어떻게 …
세계줄기세포허브 연구는 4단계로 나눠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대병원이 마련한 단계별 전략에 따르면 1단계는 조직 정비 등 기초작업 위주로 진행된다. 허브 측이 20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조직도에 따르면 미국 피츠버그 의대 세포생물학과 제럴드 섀튼 교수를 운영위원장에 선임했다. 영국 로슬린연구소의 이언 윌머트 박사는 운영위원이 됐다. 1단계에서는 또 서울중앙줄기세포은행과 해외줄기세포은행 관리를 위한 규정을 만들고 법적.윤리적 문제점을 검토한다.
환자 등록도 1단계에서 이뤄진다. 등록 환자 가운데 허브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친 환자의 체세포를 확보하게 된다. 채취한 체세포는 줄기세포를 만드는 재료로 비축된다.
2단계는 난치성 유전 질환의 발병 원인을 연구하고 신약을 개발하는 작업이다. 신약에 대한 안전성과 효능을 평가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도 2단계에서 진행한다.
3단계는 동물실험 단계다. 질환별로 적합한 설치류나 영장류를 확보해 임상실험을 하게 된다. 사람에게 임상시험을 하기 바로 전 단계다.
마지막 4단계는 3단계에서 나타난 줄기세포 치료 효과를 환자에게 적용해 검증하고 실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각 단계가 언제 이뤄질지는 분명치 않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임상시험 시기를 10년 후로 보고 있다"며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이 또 앞서 나갔다" 미국 언론들 큰 관심
세계줄기세포허브가 한국에 개설된 데 대해 미국의 주요 신문들이 큰 관심을 나타냈다. 미 언론들은 19일(현지시간) 황우석 서울대 교수를 '복제 인간배아를 처음 만든 과학자' '인간배아에서 DNA를 제거하는 고난도 기술을 보유한 유일한 과학자' 등으로 묘사하면서 한국 정부와 황 교수팀의 활동.계획을 상세히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복제 분야를 이끌고 있는 한국이 줄기세포 허브를 서울에 개설하면서 한걸음 또 앞서 나갔다"며 "정부 차원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반면 미국은 정치적 반대 때문에 연구실적이 지지부진한 실정"이라며 "한국의 허브 개설은 미국 내 생명윤리 논쟁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 타임스도 "미국에서는 윤리 논쟁이 줄기세포 연구에 찬물을 끼얹었으나 한국인은 자신들의 기술을 차근차근 발전시켜 나갔다"며 "앞으로 더 많은 연구팀이 합류하면서 한국의 기술력은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전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한국인이 전 세계에 줄기세포를 공급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정부가 줄기세포 연구에 연방 자금을 사용하는 걸 막지 않았다면 미국팀도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국에 허브가 개설되면서 미국 과학자도 줄기세포를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보스턴 글로브도 "황 교수팀이 연구실적을 개방키로 한 데 박수를 보낸다"며 "전 세계 과학자에게 보다 많은 기술이 전파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첫댓글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