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은 경상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에서 김언정(金彦鼎)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지금의 광주 지방인 해양(海陽)의 무량사(無量寺)에서 학문을 닦았고, 1219년에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하여 고승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어 계를 받았다. 일찍이 승과의 선불장(選佛場)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한 뒤, 비파산 보당암(寶幢庵) 등으로 옮겨 참선 수행에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1246년에는 삼중 대사(三重大師)의 승계에 덧붙여 선사(禪師)로 불리고, 몽고의 침입이 끝날 무렵인 1259년에는 대선사(大禪師)의 승계를 제수 받았다. 그리고 고려 조정이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 일연은 광명사(廣明寺)에 머무르면서 충렬왕을 비롯한 왕실 상하의 귀의(歸意)를 받았으며, 1283년에는 마침내 국존(國尊)에 책봉되어 원경충조(圓經沖照)의 호를 받았다.
일연은 선사이면서도 교학(敎學)에 매우 밝았다. 그러한 사실은『제승법수(諸乘法數)』7권,『조정사원(祖庭事苑)』30권 등 1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저술로 알 수 있다. 일연은『삼국유사』를 청도의 운문사(雲門寺)에 머무를 때인 1277년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1281년경에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일연이 살았던 시기는 물론,『삼국유사』가 씌어지던 바로 그 시기는 고려 사회가 안팎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기였다. 대내적으로는 100년간에 걸친 무신정권의 횡포와 대외적으로는 30여 년에 이르는 몽고의 침입이 끝난 다음이었다. 고려 조정이 몽고와의 강화에 이어 1270년에 단행한 개경 환도는 왕정의 복고와 동시에 원나라의 간섭 하에 놓이게 됨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고려 사회에서는 민족적 자주성을 지키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으며, 현실적 어려움을 역사적 전통의 강조를 통해 극복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고려의 종교계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종래의 문신 출신의 귀족 세력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던 교종(敎宗)보다 선종(禪宗)이 오히려 불교계의 주류로서 부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일연은 정사(正史)인『삼국사기(三國史記)』가 간과할 수밖에 없었던 삼국 시대 역사의 다른 부분, 특히 불교에 관한 사료를 수집하여『삼국유사』를 편찬하였던 것이다.
② 책의 체재(體裁)
『삼국 유사』는 일연의 제자 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간행했는데, 그것이 초간(初刊)인지 아니면 중간(中刊)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시대에도 이 책은 간행되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이른바 중종 임신본(壬申本)이라는 것이다. 이 판본은 1512년에 경주 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중간한 것으로서 정덕본(正德本)으로도 불린다. 19세기 중엽까지 경주부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중종 임신본『삼국유사』는 전체가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5권은 다시 왕력(王歷), 기이(紀異),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등 9편으로 편성되어 있다.
「왕력편」은 흔히 단순한 연대표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삼국, 가락국, 통일 신라, 후삼국 등 각 시대 왕의 즉위 연대, 재위 연수, 능(陵)의 명칭과 소재, 왕모(王母)와 왕비에 대한 기록, 연호의 사용, 그리고 외침 기사 등의 국가적인 중대 사건이 기록되어 있어 단순한 연대표로 보기에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다.「기이편」은 말 그대로 신령스럽고 이상한 일들의 기록이다. 여기에서는 단군 신화와 동명왕 신화, 박혁거세 신화, 연오랑 세오녀 신화 등의 건국 신화가 다루어지고 있으며, 전편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흥법편」은 삼국에서 불교가 공인되기까지의 불교 전파에 대한 이야기들의 기록이며, 이차돈의 신비한 순교 등이 실려 있다.「탑상편」에서는 불교 신앙의 대상인 사찰(寺刹), 불상(佛像), 석탑(石塔), 범종(梵鍾)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함으로써 불교 신앙의 세계가 토착화된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의해편」은 신라 고승들의 전기를 싣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 나라 화엄종의 2대 유파인 원효 대사의 해동종(海東宗)과 의상 대사의 부석종(浮石宗)이 수립된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신주편」은 고승들의 신통한 주술력에 대한 설화를 모은 것으로서, 밀본(密本), 혜통(惠通), 명랑(明朗) 세 승려의 신통력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감통편」에는 불교의 신앙을 매개로 하여 인간계와 다른 세계의 소통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는 광덕의「원왕생가(願王生歌)」, 월명사의「도솔가」를 찾아볼 수 있다.
「피은편」은 세속적인 부귀를 탐내지 않고 속세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숨어살았던 은자(隱者)들에 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효선편」에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는 설화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땅에 묻으려 구덩이를 팠더니 돌종이 나왔다는 흥덕왕 대의 손순 설화나 우리 고전의 대표작인 <심청전>의 근원 설화라고 할 수 있는 효녀 지은 설화를 볼 수 있는데, 특히 효녀 지은 설화는 심청이와 같은 인물형이 조선 사회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 신라로부터 전해져 온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이와 같은 『삼국 유사』의 체재는 이전의 고승전(高僧傳) 체재를 본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삼국 유사』에서는 각 편의 이름 자체가 기이편, 탑상편, 효선편 등 고승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편이 설정되었고, 고승전과는 달리 그 대상을 승려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세속인들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삼국 유사』의 서술 체재는 종교의 역사를 다룬 것이기에 고승전과 대비되는 편이 많지만 고승전 체재만을 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전체의 정통 역사 서술 체재를 모방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즉 두 가지 서술 체재를 모두 동원하여 쓴 새로운 형식과 체재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③.『삼국사기(三國史記)』와의 비교
한국 고대사를 대표하는 두 사서(史書)인『삼국유사』와『삼국사기』를 비교해 보면『삼국유사』의 역사적 가치를 보다 잘 알 수 있다. 첫째로,『삼국사기』는 왕명을 받고 김부식(金富軾) 이하 10여 명의 편찬위원들이 편찬한 정사(正史)인 데 반하여,『삼국유사』는 개인이 편찬한 역사서이다. 이러한 까닭으로『삼국사기』는 성격상 왕실 중심, 통치자 중심의 사료(史料)가 주된 편집대상이 되었다. 반면『삼국 유사』는 귀족이나 민중이나 대상자의 신분에 대한 아무런 제약 없이 관심의 대상이 된 사료를 수집하여 수록하였다. 이런 점에서『삼국유사』는『삼국사기』에 비해 주제나 사료의 선정이 훨씬 자유로웠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삼국유사』는『삼국사기』와는 달리 인용된 사료와 저자의 의견을 구분하여 서술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즉,『삼국유사』의 편찬은 근거를 밝혀서 인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거기에 자기의 의견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셋째로,『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데에는 많은 사료의 수집이 필요했다. 일연은 여러 사료를 널리 수집하여 그들 사료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점을 가리고 나아가서 자기의 고증을 첨가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태도를 취하였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삼국유사』에 실려 있는「연회도명문수점(緣會逃名文殊岾)」설화이다. 이 설화를 읽고, 밑줄 친 부분의 말을 통하여 노인이 가르치고자 하는 삶의 태도에 관하여 생각해 보시오. (96학년도 서강대학교) 고승 연회는 일찍이 영취산에 숨어살면서 항상 연화경을 읽어 보현 보살의 관행법(觀行法)을 닦았다. 뜰의 연못에는 늘 연꽃 두세 송이가 피어 있었는데 사철 시들지 않았다. 원성왕이 그 상서롭고 기이한 말을 듣고 그를 불러 국사로 삼으려 했다. 스님은 그 소식을 듣자 암자를 버리고 떠났다. 연회가 서쪽 고개 바위 사이를 넘고 있는데, 한 노인이 밭을 갈다가 스님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내가 듣자니 나라에서 잘못 알고 나를 벼슬로 얽어매려 하기에 그것을 피해 가는 중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노인이 이 말을 듣고, "이 곳에서 팔 것이지 왜 먼 데서만 팔려고 수고하십니까? 스님이야말로 이름 팔기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업신여긴다고 생각하여 듣지 않았다. 연회는 몇 리를 더 가다가 시냇가에서 한 노파를 만났는데, 또 그 노파가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연회가 앞서와 같이 대답하자, 노파는 "아까 앞에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 연회는 "한 노인이 있었는데 나를 심히 업신여기기에 기분이 불쾌하여 그만 와 버렸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노파는 "그 분이 문수 보살이신데 그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어쩔 셈입니까?"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연회는 놀랍고 송구하여 급히 그 노인에게로 되돌아가서 머리를 숙이고, "성인의 말씀을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이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시냇가의 노파는 누구입니까?" 하고 말했다. 노인은 "그는 변재 천녀입니다." 하고는 즉시 숨어 버렸다. 이에 연회가 암자로 돌아오니, 조금 후에 왕의 사자가 명을 받들고 와서 그를 불렀다. 연회가 진작 받았어야 하는 것임을 알고 부름에 응하여 대궐로 나아가니, 왕은 그를 국사로 봉했다.
⊙ 해설
이런 문제를 대할 때에는 독해 능력이 상당히 요구된다. 우선 제시된 글의 전체 내용을 파악한 후에 추론을 거쳐 숨어 있는 뜻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밑줄 친 부분에 대한 이해가 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한 점임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선 전체 내용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원성왕이 그 상서롭고 기이한 말을 듣고 그를 불러 국사로 삼으려 하자 스님이 그 소식을 듣고 암자를 굳이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깨달음을 얻은 연회가 왕의 부름에 나간 까닭은 무엇일까. 또 연회가 얻은 깨달음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 연결지어 보면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즉 언제나 자신이 처한 곳에서, 그 곳이 어디이든 간에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을 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삶의 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자기에게 어떠한 기회가 왔을 때, 더 나은 것을 찾아 헤매다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자신이 외면하는 지금의 일이 진정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또 자신의 지금 모습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또 다른 가식은 아닌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부분과 전체 - 하이젠베르크
⊙ 작품 해설
1925년 세계는 약관 23세의 한 청년, 하이젠베르크가 내놓은 <불확정성 원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에너지와 시간 등과 같은 한 쌍의 물리량에 대해서 그 양자를 동시에 관측하여 정확하게 측정, 결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이 <불확정성 원리>는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과 더불어 이전까지 굳건하게 믿어 왔던 뉴턴의 근대적 물리학 기초를 뒤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의『부분과 전체』는 1920년대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에 걸친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를 딱딱한 공식의 설명 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동료 교수 등과의 대화와 토론의 형식으로 해 나가고 있고, 또 내용도 물리학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이 책에 대하여 하이젠베르크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토론과 대화에 있어서 물리학이 항상 주역을 맡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적이고 철학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자연 과학이 이와 같은 일반적 문제들과 분리되어서는 성립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물리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이 책의 의도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게 한다. 현대 물리학은 철학적이며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제점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가능한 한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이 토론에 참여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의 의도대로 이 책은 현대 물리학의 탄생과 발전의 역사에서부터 과학과 종교, 과학과 철학, 과학과 정치 등의 관계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이 부분과 전체로 되어 있는 이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의 과학 기술의 발전은 학문을 매우 세분화, 전문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립자 물리학―소립자의 성질이나 상호 작용을 연구함으로써 소립자의 본질을 밝히는 물리학의 한 분야―의 경우,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서로 무엇을 연구하는지 모를 정도로 세분화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전체를 보는 시각이 없어지고 말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물리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거의 전 분야의 학문이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나무는 보되 숲은 못보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부분과 전체라는 제목은 바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이젠베르크가 현대 원자 물리학의 발전에 대해 글을 쓰면서도 정치적·종교적·철학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싣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하이젠베르크와 디랙의 자연과학과 종교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자연 과학과 종교에 대한 첫 대화(1927)
어느 날 밤, 몇몇 젊은이들과 홀에서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 때 한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아인슈타인이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저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아인슈타인이 모든 자연 과학적 현상에는 일정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하나님은 주사의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가리킨다―이 사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인슈타인 같은 자연 과학자가 종교적인 전통에 저렇게 강한 유대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가 힘든 일인데 말입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것은 아마 아인슈타인보다 막스 플랑크*가 더 심할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종교와 자연과학에 대한 플랑크의 발표가 있었는데, 거기서 그는 종교와 자연과학 사이에는 모순이 없으며 서로 잘 조화되어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 종교와 자연과학에 관한 플랑크의 견해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느냐, 있다면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몇 번 플랑크와 직접 이야기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얘기는 대부분 물리학에 관한 것이었고 일반적인 문제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플랑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해 준 플랑크의 친구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견해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어떤 상(像)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대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플랑크는 종교와 자연 과학은 실재(實在)의 전혀 다른 두 영역에 각각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양자가 잘 조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물질 세계를 다룹니다.
따라서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실재(實在)에 대한 올바른 진술과 그 연관성을 이해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가치(價値)의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느냐에 관해서는 얘기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 과학에서는 옳으냐 틀리냐가 문제되고, 종교에서는 선이냐 악이냐, 또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됩니다. 자연 과학은 기술적으로 합목적적인 행동에 대한 기반이고, 종교는 윤리의 기반이 됩니다.
18세기 이래로 이 두 영역 사이에 발생하였던 충돌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말하는 상징과 비유를 자연 과학적인 주장들로써 해석하려 할 때에 생기는 오해에 기인하였던 것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내가 집에서 양친으로부터 터득한 바에 의하면 이 두 영역은 서로 분리되어 이 세상의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을 잘 대응시키고 있습니다. 자연 과학은 말하자면 우리가 현실의 객관적인 측면에 어떻게 대응하며 또 어떻게 대결하느냐라는 방식인 것이며, 종교적인 신앙이란 반대로 주관인 결단의 표현이고, 우리는 이 결단에서 가치를 설정하고 그 가치는 우리 생활에 있어서의 행동을 방향지어 줍니다. 이 결단은 대개의 경우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그것이 가정이든 민족이든 또는 문화권이든지 간에―에 잘 조화되는 방향에서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결단은 교육과 주위환경에 의해 가장 강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기 때문에 옳으냐? 틀리냐?라는 기준에 맡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플랑크는 분명히 이 자유를 잘 이용하였으며, 그래서 그는 기독교적인 전통을 선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사고와 행위는 인간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바로 이 전통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며, 어느 누구도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세계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이 아주 훌륭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리는 나에게는 그렇게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인간 공동체가 지식과 신앙의 이 같은 날카로운 분열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갈 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렇게 대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 25세의 폴 디랙이, 나는 도대체 이 자리에서 왜 종교에 관해서 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고 하면서 반론을 제기하였다. 만약 사람들이 정직하다면―특히 자연 과학자들은 더욱 그래야 되지만 ―종교에서는 그야말로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터무니없는 거짓 주장만을 외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신(神)이라는 개념은 도대체가 인간의 환상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우리보다도 훨씬 더 자연의 위력에 눌려 살던 원시 민족들이 자연의 위력에 대한 공포에서 그 힘을 의인화(擬人化)해서 신성(神性)의 개념에 이르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자연의 연관성을 통찰하고 있는 우리 세계에서는 그런 표상(表象)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나는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가정이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계속 도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가정이 어째서,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이 세상에 불행과 불의를, 부자들에 의한 가난한 자의 억압을, 그리고 그가 막을 수 있는 다른 모든 무서운 일들을 어찌하여 허락하였느냐 하는 따위의 무의미한 문제 설정에 이르게 되는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있어서 아직도 종교가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우리를 납득시킬 수 있는 어떤 근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 즉 민중을 달래려는 욕망이 배후에 숨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썽이 없는 사람은, 불안하고 불만에 차 있는 사람들보다 다스리기가 쉽습니다. 이들은 쉽게 이용할 수도 있고 착취하기도 용이합니다. 종교는 민중을 행복한 소망의 꿈으로 부풀게 해 놓고, 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을 기만하기 위하여 민중에게 던지는 일종의 아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커다란 정치적 권력 단체인 두 단체, 즉 국가와 교회의 동맹도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불의에 반항하지 않고 침착하고 참을성 있게 의무를 다하는 사람에게 크게 보답하신다는 환상을, 이 두 단체는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까닭에 이 하나님을 인간의 환상(幻想)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정직하게 말하면, 그것은 죽음에 해당하는 가장 흉악한 대죄로 간주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나는 반박하였다. 당신은 종교가 정치적으로 남용(濫用)된다고 종교를 비판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남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물을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든지 간에 이 세상에는 항상 인간의 공동체가 존재할 것이고, 죽음과 삶,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는 생활과 연결되는 위대한 연관성을 기술(記述)할 수 있는 공통적인 언어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공통적인 언어를 찾는 가운데 역사 안에서 발전된 정신적인 형태는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그에 따라서 자기 생활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커다란 설득력을 소유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지금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쉽게 종교가 폐지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당신에게 있어서는 인격적인 신의 표상(表象)이 나타나는 종교보다 고대 중국의 종교가 더 큰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그러자 폴 디랙이 대답하였다. 나는 종교적인 신화는 근본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여러 종교가 서로 모순된 신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동양에서 태어나지 않고 유럽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주 우연(偶然)에 속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과, 무엇이 진리이며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참된 것뿐입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 하는 것은 그 때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순전히 이성만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한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그 곳에서는 내가 기본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생존을 위한 동등한 권리를 그들에게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해 관계의 공정한 균형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신의 의지라든가, 죄와 회개, 그리고 내세(來世)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모두 거칠고 냉철한 현실을 은폐하는 데 도움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높은 사람의 세력에 굴복하고 복종하는 것이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이 된다는 생각에 매우 유리한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연관성 따위의 말도 나는 질색입니다.
생활에 있어서는 과학에 있어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앞에 서게 되고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동시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연관성을 운운하는 것도 하나의 사후(事後)적인 사족(蛇足)에 불과한 것이다. 이 토론은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 때까지 토론을 듣고 있기만 하던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예, 예. 우리들의 친구 디랙은 하나의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종교의 주제는 하나님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디랙은 바로 그 종교의 예언자입니다. 이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디랙도 함께 웃었다. 이로써 저녁의 대화는 끝을 맺었다.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 1900년 흑체복사(黑體輻射)의 정상(正常) 스펙트럼에 관하여 가장 합리적인 방식을 발견하고, 이 복사식의 이론적 근거로서 복사의 흡수사출 과정에 있어서의 에너지의 비연속성 가설―즉, 양자가설(量子假說)―의 제창으로 양자 역학이 이론적 기초를 이룬 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 해설
이 부분은 자연과학과 종교와의 관계에 대한 토론으로 종교와 자연과학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서로의 주장들을 정리한 것이다. 토론에 참석한 사람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폴 디랙은 종교는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만 하는 것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나타낸다. 이에 대해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어떻든지 간에 이 세상에는 항상 인간의 공동체가 존재할 것이고, 죽음과 삶,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는 생활과 연결되는 위대한 연관성을 기술(記述)할 수 있는 공통적인 언어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공통적인 언어를 찾는 가운데 역사 안에서 발전된 정신적인 형태는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그에 따라서 자기 생활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커다란 설득력을 소유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지금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쉽게 종교가 폐지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고 속에는 종교와 자연 과학이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물질 세계를 다루고, 그래서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가 되며, 따라서 합리적인 행동에 기반을 두는 반면에, 종교는 가치의 세계를 다루고, 선과 악이 문제가 되며, 윤리의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종교와 자연 과학 사이에 일어났던 충돌은 종교에서 말하는 상징과 비유를 자연 과학적인 주장으로 해석하려 할 때 생기는 오해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충돌은 단지 오해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생물학에 있어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은 결코 오해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종교와 자연 과학이 서로 자신의 존립 근거를 놓고 대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조론이 붕괴되면 신(神)이 부정되는 것이고, 진화론이 부정되면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의 의미가 없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존권적 대립은 종교가 발생한 이후, 그리고 자연 과학이 나타난 이후 계속되어 왔다. 또한 종교가 우세한 시대에는 많은 자연 과학자들이 박해를 받고, 심한 경우 종교재판으로 화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3. 법의 정신 - 몽테스키외
⊙ 작품 해설
『법의 정신』은 프랑스의 사상가로서, 계몽 사상의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인 몽테스키외(Charles de Secondat Montesquieu)가 20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저서이다. 1689년 법조인 집안에서 태어난 몽테스키외는 보르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1716년 보르도의 고등 법원의 의장이 된다. 1721년 유럽 정세를 편지 형식으로 묶어 풍자한『페르시아 인의 편지』를 발표하여 문학자의 재능을 발휘하기도 한 그는 1726년 관직을 사임하고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영국 등을 여행하며 여러 제도와 문화를 접한다. 1734년『법의 정신』의 선구적인 소묘라고 할 수 있는『로마 성쇠원인에 대한 고찰』을 발표하고, 1748년 준비 기간만 해도 20여 년이 걸린 그의 대표작『법의 정신』을 출간한다. 이 책은 2년 동안 22판을 거듭 발행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법의 정신』완성 후 현저하게 체력이 쇠퇴한 그는 1755년 64세의 일기로 파리에서 그 생을 마감했다.
『법의 정신』의 내용은 대단히 광범위하며, 법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저하게 경험주의 방법에 입각하여 저술한 이 책은 고대에서뿐만 아니라 당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각국,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제국을 포함하는 전세계적 범위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풍부한 실례를 분석하고 비교· 검토함으로써 비교 법학의 명저로 인정받고 있다. 총 31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저서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법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생각과 유명한 '권력분립론'에 관한 것이다. 몽테스키외에게 있어서 법은 곧 인간의 이성이며, 법의 정신은 그러한 이성이 발현되는 입법의 원리이다.
따라서 법은 홀로 동떨어진 어떠한 추상적인 이념이 아닌 물적·정신적·사회적 현실에 관계된 것으로, 인간 관계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몽테스키외는 인간 관계의 반영인 법이 모든 백성을 지배할 수 없다면, 그 법은 관계를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제11편에서 몽테스키외는 자유에 대해 고찰하며 권력분립론을 다루고 있다. 그는 "자유를 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자유란 다만 그 바라는 것을 행할 수 있고 또한 바라지 않는 것을 행하도록 강제 당하지 않는 것에만 존재한다. …… 자유란 모든 법이 허용하는 것을 행하는 권리이다" 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그의 권력 분립론은 이러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 즉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서 주창되었다고 볼 수 있다.『법의 정신』에 나타난 몽테스키외의 이러한 사상은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에서 그 열매를 맺었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 몽테스키외의『법의 정신』의 일부분이다. 제시문 (가), (나)에 드러난 법과 인간 관계를 고려하여 바람직한 법 제정의 방향에 대해 논술하시오.
(가) 가장 보편적인 의미에서 볼 때 법이란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필연적인 관계를 말한다. 이 의미에서는 모든 존재가 그 법을 가진다. 예컨대 신은 신의 법을 가지고, 물질계는 물질계의 법을 가지며, 지적 존재, 이를테면 천사도 그 법을 가지고, 짐승 또한 그들의 법을 가지며, 인간은 인간의 법을 가진다. 맹목적인 운명이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은 옳지 못하다. 지적 존재가 맹목적인 운명의 소산이라는 것처럼 이치에 어긋나는 말은 없다. 따라서 원초적 이성이 있는 것이며, 법이란 그것과 온갖 존재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들 온갖 존재 상호간의 관계인 것이다.
우주에 대하여 신은 그 창조자 및 유지자로서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므로 신이 우주를 창조한 법은, 그것에 따라서 신이 우주를 주관하게 되는 것이다. 신이 이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이유는 신이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신이 그것들을 만든 이유? 그 규칙들이 신의 예지와 힘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것처럼 세계는 물질의 운동에 의하여 형성되어, 지성을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운동은 불변의 규칙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자의적인 행위처럼 보이는 창조도 무신론자가 주장하는 운명과 같은 정도로 불변의 규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창조자가 이런 규칙 없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왜냐 하면 세계란 그 규칙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규칙들은 항구적으로 정해진 관계이다. 어떤 운동체와 다른 운동체 사이에는 모든 운동이 질량과 속도의 관계에 따라 받아들여지고, 증대되고, 감소되고 계속된다. 개개의 다양성은 균일이며, 개개의 변화는 항구적이다. 모든 지적 존재는 스스로 만들어 낸 법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만들지 않은 법도 가지고 있다.
지적 존재가 존재하기 전에도 그것들은 존재가 가능했으므로 그 존재들은 가능해질 수 있는 관계, 즉 자기의 법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은 실정법(實定法)이 존재하기 전에 정의의 가능한 관계가 존재했다는 데 기인한다. 실정법이 명령하거나 금하는 것 이외에는 정의도 부정(不正)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원이 그려지기 전에는 모든 반경이 달랐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그것을 확정하는 실정법에 앞서 형평(衡平)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지적 세계가 물질적 세계처럼 잘 지배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지적 세계도 법을 가지며, 비록 그 법의 본성이 불변한다고는 하지만, 지적 세계는 항구적으로 그 법에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개개의 지적 존재는 그 본성이 유한한 것이므로, 따라서 오류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적 존재가 자기 스스로 행동하는 것은 그 본성이다. 따라서 그것은 반드시 항구적으로 그 원초적인 법에 따르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지적 존재는 자기 스스로 만든 법조차 항상 따르지는 않는 것이다. 짐승이 운동의 일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특수한 동작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쾌감의 매력에 의하여 그들은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고, 또한 같은 매력에 의하여 종(種)을 유지한다. 그들은 자연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항구적으로 그 자연법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식물에게서는 오성과 감성도 인정할 수 없으나, 그 식물 쪽이 보다 더 완전하게 법칙에 따른다. 짐승에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우월성이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없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인간들처럼 희망 또는 공포도 갖지 않는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죽음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인간들보다 스스로를 더 잘 보존하고, 그 정념을 인간들처럼 악용하는 일이 없다. 인간은 물질적 존재로서는 다른 물체처럼 불변의 법칙에 의하여 지배된다. 지적 존재로서의 그는 신이 정한 이 법칙을 끊임없이 다스리고, 또 스스로 정한 법칙을 변경한다. 그는 스스로 길을 정해야만 한다. 그는 한정된 존재에서 모든 유한의 지성처럼 무지나 오류를 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그가 갖는 빈약한 오성, 그것마저도 잃어버리고 만다. 감성을 지니는 피조물로서 인간은 무수한 정념에 사로잡힌다.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창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 속에서 타인을 잊는 경우가 있었다. 입법자는 정법(正法)과 시민법(市民法)으로써 그로 하여금 그 의무로 돌아가게 했던 것이다.
(나) 이런 모든 법 이전에 자연의 법이 있다. 자연의 법이라고 명명되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 존재의 구조에서만 유래하기 때문이다. 그 자연법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성립되기 이전의 인간을 고찰해야 한다. 자연법이란 이 같은 상태에서 인간이 받는 법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창조자의 관념을 새겨 주고, 인간을 신에게로 인도하는 그 법이, 그 중요성에 의하여 자연법 중 제1의 법이 된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 있어서는 지식을 갖는다기보다도 인식 능력을 갖는다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운 견해일 것이다. 최초의 관념이 사변적 관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는 자기 존재의 기원을 탐구하기 전에 그 유지를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인간은 먼저 나약함밖에 느끼지 않으므로 매우 소심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한 증명으로는 숲 속에 살던 미개인을 들 수 있다. 모든 것이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하고 도망치게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각자는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낄 뿐 서로 평등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 공격할 것을 원하지 않으므로, 평화가 제1의 자연법일 것이다. 홉스가 인간은 먼저 서로를 정복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지배와 정복의 관념은 매우 복잡하여 다른 많은 관념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인간이 첫째로 갖는 관념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그 육체적으로 필요한 감정을 갖는다. 그래서 제2의 자연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리라.
한편 인간은, 동물이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접근할 때에 느끼는 쾌감에 의해서도 서로가 접근하게 될 것이며, 또한 양성이 상호간의 차이에 의하여 자극을 주는 그 매력은 이 쾌감을 증대시킬 것이다. 따라서 양성이 항상 서로 사모하는 자연스러운 소원이 제3의 자연법이다. 인간은 맨 처음 갖는 감정 외에 그것을 보완한 지식을 갖는다. 또한 인간은 다른 동물이 갖지 않는 제2의 유대를 갖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가 결합되는 새로운 동기를 갖게 되며,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 욕구가 제4의 자연법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 생활을 영위하게 되자 곧 열악한 감정을 잃게 되었다. 상호간에 있었던 평등은 끝나고 전쟁 상태가 시작되자 각 사회는 그 힘을 자각하기에 이르고, 그 사실은 민족 사이의 전쟁 상태를 조성했던 것이다. 각 사회에 있어서의 개인은 그 힘을 자각하기 시작하고, 그들은 그 사회의 주된 이익을 자기에게만 돌리고자 노력한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 전쟁 상태를 조성한다. 이 두 전쟁 상태가 인간들 사이에 법률을 제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광대하고도 서로 다른 민족의 존재를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이 유성(遊星)의 주민으로서 고찰한다면, 인간은 그 민족들이 상호간에 가지는 관계에 있어서의 법률을 갖는다. 그것이 바로 만민법(萬民法)이다. 유지되어야 할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으로서 고찰한다면, 그들은 통치하는 자가 통치 받는 자와의 사이에 갖는 관계에 있어서의 법을 갖는데, 그것이 바로 정법이다. 또 그들은 모든 시민 상호간에 갖는 관계에 있어서도 법을 갖는다. 그것이 시민법이다. 만민법은 다음의 원칙 위에 성립한다. 즉, 여러 민족은 각자의 참된 이익을 손상하는 일없이 평시에는 최대한의 선(善)을, 전시에는 최소한의 악(惡)을 서로 행해야 한다.
법이란 인간 이성을 말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국민의 정법 및 시민법은 바로 이 인간 이성이 적용된 특수한 경우여야 한다. 그들 개별적인 법률은 그것이 적용되어야 할 민족에게 적합한 것이어야 하므로, 어느 한 국민의 법률이 다른 국민에게도 적합하게 된다면 그것은 극히 드문 우연한 경우이다. 그 법률들은 설립되어 있는, 또는 설립하고자 하는 정치 형태의 성질과 원리에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 법률은 정법같이 국가 형태를 구성하기도 하며, 혹은 시민법 같은 형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끝으로 법률은 그것들 상호간에 관계를 갖는다. 법률은 그것들 자체의 기원(起源), 입법자의 의도, 그것이 제정된 기초가 되는 사물의 질서 등과 관계하고 있다. 그러므로 법은 이런 모든 관점에서 고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에서 시도해 보려는 점이다.
⊙ 해설
제시문은 몽테스키외의『법의 정신』중에서 첫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법 일반에 대해 해설하고 있는 부분을 전재한 것이다. 논제를 풀기 전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법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얼마든지 다양한 견해가 제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몽테스키외의 생각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몽테스키외의 이 저서는 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전범으로서 가치가 있으며, 그의 사상이 아직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가 생각하고 있는 법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 이를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본래 원문에서는 소 항목이 붙어 있다. 여러 존재와의 관계에서의 법, 자연법, 실정법 등이 그것이다.
(가)로 제시된 부분에서는 법에 대한 총괄적인 접근을 통해 법은 인간 관계의 반영임을 강조하고 있고,
(나)부분에서는 자연법과 실정법의 해설을 통해 법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주된 논지는 법은 홀로 동떨어진 추상적인 이념이 아닌 물적·정신적·사회적 현실에 관계된 것으로 인간 관계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의 정신을 고려한다면 입법의 원리, 즉 법 제정의 원리의 핵심도 당연히 인간 관계에 놓여야 한다. 법을 위한 법이 아닌 인간을 위한 법이 되어야 한다. 만약 어떠한 법이 백성을 제대로 지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인간 관계를 적절히 반영하지 않은 법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법 제정은 당연히 인간 관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성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그들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인간 관계의 이성적 발현, 그것이 곧 입법의 원리인 것이다.
4. 물질 문명과 자본주의 - 브로델
⊙ 작품 해설
브로델(Fernard Braudel)은 1902년 프랑스의 로렌 지방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지리학을 전공하였고 알제리, 프랑스, 브라질 등지에서 역사를 강의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5년 동안 감옥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 순전히 기억에 의거하여 16세기 지중해 지역 역사에 대한 논문을 썼다. 한편 그는 블로크와 페브르가 창립한 유명한 역사 잡지 아날(Annales, 연보): 경제, 사회 문명지의 편집 위원이 되었는데 1956년에는 편집인이 되었다. 이 잡지는 오늘날까지도 세계 역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날 학파를 이끈 블로크, 페브르, 그리고 브로델은 기존의 역사가들이 정치, 외교 사건들을 강조하는 데 반대하여 그러한 사건들 밑에 깔려 있는 제반 조건들, 예컨대 기후, 지리, 인구, 음식, 통신, 교통 등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①. 시장 경제, 물질 문명, 자본주의의 구분
브로델은 15∼18세기 사이의 경제 생활을 삼분법적 도식을 사용하여 이해한다. 당시 경제의 발전과정(그는 진화 과정이라고 말한다.)이 하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각각의 독자적인 논리에 따라 지배받는 3층 구조로 이루어진다고 파악한다. 첫째 시장경제는 농업 활동, 노점, 수공업 작업장, 상점, 증권거래소, 은행, 정기 시장 및 시장에 연결된 생산과 교환의 메커니즘이다. 시장경제는 현실적으로 명료하고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학은 이 과정에만 연구를 집중한다. 이와 달리 관찰하기 쉽지 않은 영역으로 물질 문명 혹은 물질 생활이 있다.
이 영역은 시장경제의 밑에 숨어 있으면서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자급자족적이며 극히 좁은 범위에서의 물물교환 행위 등이 이루어지는 하부경제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시장경제와는 달리 특권적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활동영역이 존재한다. 이 영역은 환업무 등과 같이 일반인들이 모르는 유통 및 계산방식을 채택하여 상층의 사회적 위계질서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생활의 투명한 층인 시장경제는 교환논리에 지배를 받고, 물질문명은 자급자족의 논리에 지배를 받으며, 자본주의는 독점의 논리에 각각 지배받는다.
② 일상 생활의 구조, 교환의 세계, 세계의 시간
이 책은 제1권 일상 생활의 구조 : 가능과 불가능, 제2권 교환의 세계, 제3권 세계의 시간 등 전체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분에 의한 저술이 가능하게 된 토대는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새로운 시각이었다. 그에게 역사는 장구한 세월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지리적 시간, 그 위에서 완만하게 전개되는 사회적 시간, 마지막으로 숨가쁘게 전개되는 정치적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이러한 세 가지 시간의 단층을 모두 측량해야 올바른 역사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는 이 중에서도 장기적이고 변함이 없는 지리적 시간을 중시했다.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 실려 있는 제1권이 일상생활의 다양한 모습을 면밀히 고찰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일상 생활을 시간 및 공간 속에 끼여들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사실이라고 정의하고 그러한 사소한 일상생활을 분석하기 위해 먹고(食), 입고(衣), 자는(住) 양식들의 다양한 특성들을 심층적으로 탐색한다. 이는 별로 눈에 띄지도 않지만 도처에 편재하고 침투하며 반복되면서 문명의 성질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편 제2권은 주로 경제를 다루고 있다. 브로델은 물물교환에서부터 최상층의 자본주의에까지 관통하는 교환의 기능을 분석한다. 특히 그는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물질문명과 상부사회를 형성하는 경제문명, 즉 자본주의 경제를 구분하여 서술한다. 제3권은 세계경제에 대하여 경제적으로 자율적이고, 본질적으로는 자족적이며, 지역 내적인 연결 및 교환에 의해 유기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는 구조로 파악한다. 또한 세계 경제에는 노예제에서부터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의 생산양식이 공존하고 있으며, 중심부, 준주변부, 주변부라는 불평등한 권역으로 구분되어 있고 이러한 불평등 구조는 결코 치유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브로델은 인간 생활의 전체를 제한하고 포괄하는 다소 넓은 경계를 긋고 싶어한다. 그것은 그가 서문에서 밝힌 바대로 해당 시기의 물질적 한계를 의미하는 가능과 불가능의 구분,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상승과 하강의 장기적 순환으로 인식하고, 일상 생활의 모습 속에 전체적인 역사적 통일성과 관련성을 파악하려고 하는 그의 노력 속에 녹아 있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 브로델의 『물질 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의 의도를 분석하고 이와 비슷한 예를 현대 사회에서 찾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 보시오.
오늘날 서구의 많은 레스토랑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요리는 아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중국요리에는 천 년 이상이나 변화하지 않은 규칙, 의식, 그리고 세련된 조리법이 있고, 또 중국인들은 맛의 영역과 그 맛들의 조화에 감각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커다란 주의를 기울이며, 또 요리를 먹는 법을 존중한다.
…중략…
물론 중국요리는 몸에 좋고 맛있으며 다양하고 창조적이라는 것, 얻을 수 있는 모든 재료를 감탄할 정도로 잘 이용한다는 것, 또 그것이 균형 잡혀 있어서 예컨대 신선한 야채와 콩의 단백질이 육류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모든 종류의 음식 저장술이 여기에 더해진다는 것 등이 모두 사실이다. …중략…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이러한 음식이 일반 대중이 먹는 것이었는가? 프랑스에서는 확실히 그렇지 않았다. 농민은 그의 잉여물만 파는 것이 아니라 흔히 그 이상의 것을 팔았고, 특히 그가 생산한 최상품을 그 자신이 먹지 못했다. 그는 조와 옥수수를 먹고 밀을 내다 팔았다. 그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먹는 대신 가금, 계란, 새끼 염소, 송아지, 새끼 양을 시장에 내갔다. 중국에서처럼 축제날 실컷 먹는 것이 일상에서의 단조로움과 부족함을 깨는 기회였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민속음식을 유지시켜 가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의 음식은 요리 책에 나오는 음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요리 책은 특권계층을 위한 것이었다. 예컨대 1788년 한 미식가가 프랑스의 훌륭한 요리에 대해서 작성한 목록이 그러한 것이다. …중략…
확실히 중국에서도 사정이 비슷하다. 세련된 음식, 다양한 요리, 심지어 단순히 배부르게 먹는 것조차도 부자들의 이야기였다. 한 속담에 의하면 술과 고기는 부(富)와 일치하는 반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먹는다는 것이 오직 쌀을 씹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창과 스펜서는 1805년에 존 배로가 이야기한 바대로 먹는 데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중국만큼 큰 곳은 세상에 없다는 주장이 옳다는 데에 동의한다. 스펜서는 18세기의 유명한 소설인『홍루몽』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를 인용한다.
젊고 부유한 주인공이 우연히 한 하녀의 가난한 집을 방문한다. 그 하녀는 가지고 있는 것 중 최상의 것인 과자, 마른 과일, 호두 등을 그릇에 예쁘게 놓아 그에게 대접하면서 주인께서 드실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한다.
⊙ 해설
제시문은 음식에 대하여 소수 특권층의 양식과 일상적인 양식, 즉 상층과 하층의 생활 양식을 구분하고 있다. 일반 대다수 사람들의 기본 양식은 일상 용품의 의미로, 소수 특권층의 양식은 사치품의 의미로 구분한다. 사실 사치는 자신의 경제적 부와 특권을 외부로 나타내는 역할과 함께, 누적된 자본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경제가 이미 생산된 잉여를 비경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분들은 현대, 특히 한국사회에서 사치현상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사치를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음을 포착하는 것도 윗글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예컨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밍크코트, 골프, 자동차, 양주 등이 사치품으로 인식되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의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치품과 일상 용품의 구분이 타당한가에 대하여 판단해야 한다.
참고로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사치나 유행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이를 근거로 사치와 일상을 구분하는 시각이 틀렸다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브로델이 인용한 다음 글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먹고 싶어하던 귀한 음식이 마침내 일반대중에게 도달했을 때 갑자기 그 소비량이 폭증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억눌렸던 식욕이 폭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일단 대중화하고 나면 이 음식은 곧 매력을 잃게 된다. 그리고 일종의 포만한 상태에 이른다. 또한 사치는 사실 그 어느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사회적 수준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 수준차이는 매번 변동이 있을 때마다 새로이 생겨나는 것이라는 그의 말도 음미해 볼 만하다.
5. 목민심서(牧民心書) - 정약용
⊙ 작품 해설
① 정약용(丁若鏞 : 1762∼1836, 영조 38∼헌종 2)
다산(茶山) 정약용은 전남 강진의 유배지에서 학문에 몰두, 우리 나라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정치 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 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 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奴婢制)의 폐지 등을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학문 체계는 유형원(柳馨遠)과 이익을 잇는 실학(實學)의 중농주의적 학풍을 계승하고 있으며, 박지원(朴趾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北學派)의 기술 도입론을 과감히 받아들인 것이며, 그의 방대한 저서로 보아 실학을 집대성한 가장 위대한 학자로 평가된다.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에 뛰어나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애국주의적 사상은 한국의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고, 그의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그의 대표작으로는『경세유표(經世遺表)』와『목민심서(牧民心書)』,『흠흠신서(欽欽新書)』가 있다. 그의 토지제도론으로는 여전제(閭田制)와 정전제(井田制)가 있다. 여전제는 조선조의 토지 제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농촌 경제를 여(閭) 단위로 재편성하는 것인데, 여란 25호 정도로 구성되는 일종의 협동 농장을 말한다. 이 역시 실현성이 적은 급진적인 주장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현실적인 개혁론으로 수정된 것이 정전제이다.
② 시대적 배경
정약용이 살던 시대는 민중 소요의 시대였다. 관리들의 학정과 3정의 문란으로 인해 일반 민중의 생활은 몹시 궁핍할 대로 궁핍해져 있는데다가, 가뭄이나 전염병이 몇 년에 한 번씩 전국을 휩쓸어, 민중들의 살길은 더욱 막막해졌다. 그래서 민중들 중에는 세금을 피해 토지를 버리고 도망쳐 도둑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자기 마을에 남아 있는 경우에도 자주 관리들에게 세금을 줄여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의 부패한 관리들이 이를 들어줄 리 만무했고, 결국 선량한 백성들은 이를 힘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민요(民擾, 민중들의 소요)와 민란(民亂, 민중들의 반란)이다.
대표적인 것이 1811년에 있었던 평안도 민란(일명 홍경래의 난)이다. 정치의 부패와 사회 기강의 문란, 그리고 민중들의 소요는 양심 있는 양반들 사이에 새로운 각성을 촉구시켰다. 즉, 조선의 정치와 사회를 개혁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주로 정치 권력에서 밀려난 양반이나 몰락한 양반들에 의해서 일어났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실학(實學)이다. 따라서 실학의 출발점은 학문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③ 작품 내용
『목민심서』는 한 마디로 얘기하면 지방에 있는 관리들이 백성을 다스리는 데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만든 지침서이다. 이는 정약용 자신의 관리 생활 경험, 그리고 18년 유배 생활 동안의 체험과 분석, 그리고 중국과 조선의 방대한 역사적 자료에 근거하여 저술한 것이다. 여기에는 지방 수령이 임명을 받는 과정에서부터, 부임하여 각 분야의 행정을 담당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아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각 지방의 수령이 현행 법 제도 아래에서 최선을 다하면 실행 가능한 각종 정책도 제시되어 있다. 정약용은 서문의 마지막에, 왜 책의 이름을『목민심서』라고 하였는가에 대해,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유배중인 몸이라 몸소 실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심서라 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총 목차를 보면『목민심서』는 서문에 해당하는 자서를 빼고, 부임에서부터 해관까지 모두 12`부로 구성되어 있다. 또 각 부마다 6`조로 나누어진 세부 항목이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모두 72`조가 된다.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이 총 목차에 드러나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임 6조(赴任六條) : 목민관이 임명을 받아서 임무를 수행하기까지 가져야 하는 마음 자세와 행동율기 6조(律己六條) : 목민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규율과 실천 방안봉공 6조(奉公六條) : 목민관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지켜야 할 사항애민 6조(愛民六條) : 목민관이 노인이나 어린이, 곤궁한 자들을 대해야 할 자세이전 6조(吏典六條)에서 공전 6조(工典六條)까지 : 지방 관청의 6부, 즉 이, 호, 예, 병, 형, 공의 각 부서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을 이전, 호전, 형전, 공전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수록진황 6조(賑荒六條) : 흉년이나 재난시에 백성을 구제하는 방법이나 준비해관 6조(解官六條) : 목민관이 임기를 마치고 그 지방을 떠날 때 가져야 하는 마음 자세나 행동 이 가운데, 부임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제1부 부임 6조(赴任六條)」
행장을 차릴 때, 의복과 안마(鞍馬, 안장을 얹은 말)는 본래 있는 그대로 써야 할 것이며, 새로 마련해서는 안 된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절용(節用, 아껴서 씀)하는 데 있고, 절용하는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한 후에라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한 후에라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야말로 목민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어리석은 자는 불학 무식해서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에 날랜 말을 타는 것으로 위풍을 떨치려 한다. 그런데 신관의 태도를 살피는 아전들은 먼저 신관의 의복과 안마의 차림새를 알아보고, 만약 사치스럽고 화려하다 하면 생긋 웃으면서 알 만하다. 하고, 만약 검소하고 질박하다 하면 놀라면서 두렵다고 한다. 금침(衾枕, 침구)과 솜옷 외에 책 한 수레를 싣고 간다면 맑은 선비의 행장(여행짐)이 될 것이다.
요즈음 수령으로 부임하는 사람들은 겨우 책력(冊曆, 책으로 된 달력) 한 권만 가지고 가고, 그 밖의 서적들은 한 권도 행장 속에 넣지 않는다. 임지에 가면 으레 많은 재물을 얻게 되어 돌아오는 행장이 반드시 무겁기 마련이니, 한 권의 책일망정 부담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슬프다. 그 마음가짐의 비루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 또 목민관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문사(文士, 글 하는 선비)가 벼슬을 살게 되면 이웃에 사는 선비들이 질문을 하기도 하고 논란도 벌일 것이며, 이보다 한 등 아래로는 과문(科文, 과거를 위한 글)을 공부시키기도 할 것이며, 이보다 한 등 아래로는 또 혹시 이웃 고을수령들과 한자리에 모여 산수간에 노닐면서 운자를 내어 시도 짓게 될 터이니, 모름지기 고인의 시집도 있어야 한다. 하물며 전정(田政), 부역(賦役), 진휼(賑恤), 형옥(刑獄)에 옛책을 상고하지 않고 어찌 논의를 하겠는가.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목민심서』를 쓰게 된 배경을 소개한 서문(序文)이다. 이 글을 읽고,『목민심서』에서 말하는 목민관의 자세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시오.
성현의 가르침에는 원래 두 가지 길이 있다. 사도(司徒, 예교로써 백성을 교화하는 일을 맡아보는 관리)는 만백성을 가르쳐 수신(修身, 몸을 수양케 함)케 하고 태학(大學, 수도에 둔 최고 교육 기관, 태학이라고 읽음)에서는 국자(國子, 왕족 및 귀족의 자제)를 가르쳐 각기 수신하고 치민(治民, 백성을 다스림)케 하였으니, 치민하는 것이 목민(牧民, 백성을 다스림)이다. 성인의 시대가 이미 멀어졌고 그 말씀도 없어져서 그 도가 점점 어두워졌으니,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바는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下民,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서로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 배만 살찌우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나의 선친께서 조정의 지우(知遇)를 받아 두 현의 현감, 한 군의 군수, 한 부의 도호부사, 한 주의 목사를 지냈는데, 모두 치적이 있었다. 나는 비록 불초(不肖)로서도 쫓아 배워서 다소간 들은 바가 있었고, 보아서 다소간 깨달은 바가 있었으며, 물러나 이를 시험해 봄으로써 다소간 체득한 바가 있었다. 이윽고 유락한 몸이 되어 쓰일 데가 없었다. 먼 변방 귀양살이 8년 동안에 오경(五經)·사서(四書)를 읽고 되풀이 연구하여 수기(修己)의 학(學)을 익혔으나, 이윽고 생각해 보니 수기의 학은 학의 반에 불과하다. 이제 23사(史, 고대에서 당시까지 기술한 23권의 중국 역사서를 말함)와 우리 나라의 여러 역사 및 자집(子集, 사상서와 문집) 등 여러 서적에서 옛날의 사목(司牧)이 백성을 기르는 유적을 골라 위 아래로 뽑아 정리하며, 종류별로 나누고 모아 차례로 편성하였다.
⊙ 해설
그의 자서(自序, 서문)에 보면 당시의 수령들이 제 먹을 것만 찾고 수령으로서 해야 할 일을 몰라 농민들이 모두 피폐하고 도탄에 빠졌는데 수령들만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에 살이 쪘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백성을 잘 다스려야 목민이니 목민관은 수신(修身)과 선정(善政)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첫머리에 목민(牧民)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목민을 책임진 지방수령들의 기본자세가 얼마나 진지해야 할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른 벼슬은 구해도 가하거니와 목민하는 벼슬을 구하는 것은 불가하다. 만약 재능과 덕망을 가진 자가 스스로 그 재능을 요량해서 목민할 자신이 서면 글을 올려 한 고을의 수령이 되는 것을 자청할 수는 있지만, 한갓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었는데 숙수(菽水, 콩과 물, 변변하지 못한 음식)를 잇대기가 어렵다고 해서 한 고을 수령되기를 청하는 것은 올바른 도리가 아니다. 이것은 바로 수령이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마치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군왕과도 같으므로 대단히 어려운 자리임을 강조하려는 뜻이다. 당시 지방 관아에서는 교활한 아전들이 선량한 백성들을 속이고 있었기 때문에 수령이 현명하지 않으면 백성들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정약용은 목민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령은 일반 관리가 아니라, 백성을 기르는 성스러운 목자(牧者)여야 한다는 것이다.
6. 멋진 신세계 - 헉슬리
⊙ 작품 해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영국이 낳은 현대 작가 가운데 매우 뛰어난 작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대표작『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1932년 처음 출간되었으며, 이 작품이 출간되었을 당시 영국 문단으로부터 그야말로 선풍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헛소동(Tempest)』의 5막 1장에서 인용한 것으로, 영미 작품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제목을 인용한 예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 존 스타인벡의『달은 지다(Moon Is Down)』는『맥베스(Macbeth)』의 2막 1장에서,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의『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는 5막 5장에서 인용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이 작품 제목을 다른 작품 속에서 따오는 것을 독자들은 얼핏 생각하기에 단순한 문학적 표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곧 현대 문학이란 철저하게 고전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 즉 고전 문학 없이는 오늘날의 현대 문학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멋진 신세계』의 주제는 한 마디로, 극도로 발달한 기계문명과 과학의 성과 앞에서 노예로 전락하여 마침내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인간사회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문학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공상과학 소설이라는 문학장르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 범주화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점이 있다. 이 작품은 과학의 진보, 기계·기술·물질 문명의 급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아무런 통제나 여과의 메커니즘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비록 상황설정은 일반 공상과학 소설과 큰 차이가 없지만, 결국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파괴되고 신이라는 영적 존재가 도외시된 채 몰가치하고도 무차별적으로 인간 사회가 침범 당할 때 일어나게 될 상황과 전체주의와 같은 끔찍한 사회체제가 병행될 때 일어날 결과는 어떠할 것인가 하는, 그런 좀더 인간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에 제시된 글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지은『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의 일부분으로서, 레니나는 바로 오늘날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지 밝히고,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비판하시오.
둘이서 함께 외출한 오후는 매우 화창했었다. 레니나는 우선 토키 컨트리클럽에서 수영을 한 다음 옥스퍼드 유니언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버나드는 그 곳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세인트 앤드류에 가서 전자 골프를 한 게임 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러나 버나드는 그것 역시 싫다고 했다. 전자 골프 같은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 시간이라는 것이 왜 존재하죠?" 레니나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버나드는 시간이라는 것은 호숫가를 산책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실 버나드는 레니나에게 그렇게 하자고 제의를 했다. 스키도 산의 정상에 착륙하여 두 시간 정도 히드 덤불이 만발한 숲속을 산책하자고 했던 것이다. "레니나! 당신하고 단둘이 말이오." "하지만 버나드! 우린 밤새도록 단둘이 있게 될 텐데요……." 버나드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내 말은, 우리 단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거요." "이야기요? 무슨 이야기를 하죠?"
산보와 이야기…… 레니나는 오후를 그런 식으로 보낸다는 것이 좀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레니나는 마음 내켜하지 않는 버나드를 설득해서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 여자 중량급 레슬링 선수권 준준결승전을 구경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군. 보통 때와는 다르게 말이야".
버나드가 투덜댔다. 그는 오후 내내 매우 우울한 표정이었다. 레슬링 경기를 하는 곳마다 아이스크림 판매대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버나드는 레니나의 친구들을 여러 명 만났지만 그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하려 들지 않았다. 버나드는 그렇게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니나가 내민 소마가 들어 있는 반 그램의 딸기 아이스크림을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이대로의 나 자신이 좋소. 비록 비참할지언정 이대로의 내가 좋단 말이오.
소마를 먹고서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나는 타인이 되기는 싫소." 버나드가 말했다. "먹어 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레니나는 *수면 학습에서 배운 대로 말했다. 버나드는 레니나가 내민 유리잔을 신경질적으로 밀쳐 냈다. "화내지 마세요. 1g의 소마가 열 가지 우울증을 치료한다구요." "오, 제발 조용히 좀 해!" 버나드가 소리치자 레니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안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니까요."
레니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소마가 든 딸기 아이스크림을 자신이 먹어 치웠다. 해협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길에 버나드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를 멈추고 추진기만으로 바다 위 백미터 상공을 배회하자고 제의했다. 기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갑자기 서남풍이 일며 하늘에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저것 좀 봐!" 버나드가 말했다. "무서워요." 레니나는 헬리콥터의 창문으로부터 몸을 움츠려 빼면서 말했다. 레니나는 다가오는 공허한 밤과 아래서 고개를 치켜드는 검은 파도와 그 파도가 일으키는 하얀 물거품이 무서웠으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구름 사이에서 나타나는 달의 창백한 얼굴이 무서웠다.
레니나는 조종석 앞에 있는 라디오의 다이얼로 손을 뻗어 아무렇게나 틀었다. "……너의 내부에는 푸른 하늘" 16명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날씨는 언제나……" 그 다음 순간 갑자기 딸깍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버나드가 라디오의 스위치를 껐던 것이다. "난 조용히 바다를 보고 싶소. 그런 잡음과도 같은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분위기에서는 바다를 바라볼 수가 없소" "하지만 멋진 음악이잖아요. 그리고 전 바다를 보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무서울 따름이에요." "하지만 난 바다를 보고 싶소.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여기에서 버나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말을 찾으려고 잠시 머뭇거렸다. "마치 나라는 사람 이상이 된 것 같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훨씬 더 나 자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오. 타인의 일부나 혹은 사회 조직체 속의 한 세포에 불과하지 않고 말이오. 당신도 그런 기분이 들지 않소, 레니나?" "무서워요, 무서워요." 레니나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실 수 있어요? 그건 마치 사회의 일부가 되기 싫다는 말이군요. 결국 만인은 만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요? 어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안 되는 거라구요. 심지어 입실론 계급조차도 말이에요.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심지어 *입실론 계급조차도 유용하다는 것을 말이오. 게다가 나도 그렇고…… 그런데 사실 난 그러고 싶지 않소." 버나드가 조소하듯 말했다. 레니나는 버나드의 이러한 신성모독적인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버나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레니나는 당황한 음성으로 항의했다.
버나드는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레니나의 말을 뇌까리면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문제는 내가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가 하는 것이오. 아니, 그보다 내가 혹시 그럴 수 있다면, 즉 내가 자유롭게 된다면, 그리고 조건 반사 훈련으로 노예화되지 않았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문제요". "버나드 끔찍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레니나, 당신은 자유롭고 싶지 않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전 자유로워요.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구요. 오늘날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구요." 버나드가 웃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다. 이 말을 우리들은 다섯 살 때부터 들어 왔지. 하지만 레니나! 다른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자유를 원하지 않소? 이를테면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레니나 당신 자신의 방법으로 말이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버나드, 어서 돌아가요. 저는 이 곳이 싫단 말예요."
레니나는 버나드에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소?" "하지만 버나드, 이 곳은 무서워요." "난 이 곳이, 즉 바다와 달밖에 없는 이 곳이면 우리가 더 친밀해질 줄 알았는데……내 말 이해하겠소?" "전혀 이해를 못 하겠어요." 레니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레니나는 말투를 바꾸어 계속해서 말했다. "전혀 이해를 못하겠다구요. 그렇게 끔찍한 생각이 드는 순간에 왜 당신은 소마를 먹지 않는 거죠? 먹으면 그런 생각들이 말끔히 사라져 버릴 텐데 말예요."
*수면 학습: 아이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 확성기를 통해 특정한 내용을 반복함으로써 의식화시키는 방법
*입실론 계급 : 육체적 노동을 담당하는 최하층의 천민 계급
⊙ 해설
해결해야 할 논제는 두 가지이다.
① 레니나가 어떤 면에서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가?
②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는 과연 올바른가?
위의 논제를 볼 때,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은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생활이란 무엇이고, 어째서 레니나가 그런 사람의 전형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주어진 작품의 내용을 해석해 보아야만 파악될 수 있다. 다음으로 두 번째 논제를 생각해 보자. ②와 같이 말한 것은 비판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비판이란 대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대상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켜 그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비판이라 한다. 따라서 쾌락(즐거움)만을 두구하는 삶의 태도를 비판하라는 것은 그것이 올바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상을 정리하면 논제 풀이를 위한 사고 과정은 다음과 같다.
(1)『멋진 신세계』의 작품 분석을 통해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파악한다.
(2) 버나드와 레니나의 대화를 따라가면서 레니나의 사고 방식을 파악한다.
(3) 레니나의 사고 방식이 어째서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인가를 생각한다.
(4) 레니나의 삶의 태도가 갖는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비판한다.
우선『멋진 신세계』를 분석해 보자. 첫째 부분에서 버나드와 레니나는 시간에 대해 입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레니나는 시간을 수영과 식사, 전자 골프, 레슬링 선수권 구경 등에 쓰고자 한다. 그러나 버나드는 산책과 이야기를 위해 시간을 쓰고자 한다. 단둘이 있고 싶어하는 버나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레니나는 산책과 이야기로 보내는 것을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레니나를 활동성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부분에서 버나드와 레니나의 화제는 소마가 든 아이스크림이다. 소마는 글의 내용으로 보아 우울증 치료제임을 알 수 있다. 레니나는 그것을 버나드에게 계속 권하고 있다. 그러나 버나드는 비참할지언정 이대로의 내가 좋다고 하면서 소마를 먹기를 거부한다. 이것을 통해 버나드는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사람이고, 레니나는 우울한 것은 소마를 먹고 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셋째 부분에서 레니나와 버나드의 성격은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버나드는 바다를 보며 전체에서 독립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느낀다. 그리고 자유에 대해 고민한다. 자기 자신의 방법으로 자유롭게 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나 레니나는 그러한 버나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조건 반사 훈련과 수면 학습에서 배운 내용대로 버나드에게 말을 한다. 또한 레니나가 생각하는 자유는 즐기는 자유이다. 그것도 조건 반사 훈련에 의해서 형성된 자유의 개념이다. 이상을 정리해 보면, 레니나는 심각한 이야기를 싫어하고, 인간 간의 친밀한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기를 원하고, 자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즐기기 위한 자유만을 생각한다. 또한 우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소마라는 약을 먹고 잊어버리려고 한다. 한 마디로 심각한 것을 싫어하고 즐거움만을 좇는 삶의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삶의 태도는 옳은가를 생각해 보자. 흔히 개인의 삶의 태도는 그 사람의 가치관의 문제이니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것이 한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라면, 옳고 그름을 따져 보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쾌락(즐거움)만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비판해 보자. 레니나는 즐기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친밀한 인간 관계, 자신의 개성, 자유 등을 포기했다. 그리고 스스로 조건 반사 훈련과 수면 학습에서 배운 내용대로 살아가고 있다. 단순히 즐기기 위해 인간으로서 중요시해야 할 가치들을 포기한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임을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 맹자 - 맹자(孟子)
⊙ 작품 해설
①. 맹자(孟子)와 『맹자』
맹자(孟子 : B.C 372?~B.C 289?)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유교 사상가로, 성은 맹(孟)이고 이름은 가(軻)이다. 지금의 산뚱성(山東省) 쪼우센현(鄒縣)에 있었던 추(趨)에서 태어났으며, 공자(孔子)의 유교 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웠다. 어릴 때 어버지가 돌아가신 까닭에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야 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맹자를 엄하게 교육시켰다.
맹자가 자라면서 주위 환경에 정서적인 영향을 받자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는 이른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와 함께, 어머니가 보고 싶어 공부를 중단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그 동안 짜고 있던 옷감을 칼로 자르며, 네가 여기에서 공부를 중단하는 것은 이렇게 옷감을 짜다 중간에 자른 것과 같다.라고 하며 단호한 모습을 보인 것에서 유래한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는 유명한 고사(故事)이다. 맹자가 활동하던 당시는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전국 시대라서 제후(諸侯)가 유능한 인재들을 찾았으며, 이에 대응하여 배출된 제자 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서 맹자도 BC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 땅에 은거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 강병(富國强兵)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으나,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 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맹자』는 모두 7편으로 되어 있는데, 각 편은 상(上)·하(下)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에는 맹자가 제자들, 각 나라의 왕과 제후들,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주로 적어 놓았다. 이 책은 맹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이지만, 내용은 맹자 자신의 것으로 믿어도 무방하다. 송나라 때의 주자가『논어(論語)』,『대학(大學)』,『중용(中庸)』과 더불어『맹자』를〈사서(四書)〉의 하나로 분류함으로써 유교의 중요한 경전이 되었다. 이 책은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전국시대의 양상을 전하는 흥미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② 맹자의 사상
맹자의 사상은 인의설(仁義說)과 그 기초가 되는 성선설(性善說), 그리고 이에 입각한 왕도 정치론(王道政治論)으로 나누어진다. 공자의 인(仁)의 사상은 육친 사이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친애(親愛)의 정을 널리 사회에 미치게 하려는 것이며, 이 경우, 소원한 쪽보다 친근한 쪽으로 그 정이 더 간다는 것은 당연시되었다. 가족제(家族制)에 입각한 차별애(差別愛)인 것이다. 맹자는 이를 받아들여,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인애(仁愛)의 덕(德)을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그 인애의 실천에 있어서 현실적 차별상(差別相)에 따라 그에 적합한 태도를 결정하는 의(義)의 덕을 주창하였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義)는 사람의 길로서, 의는 인의 실천에서 준거(準據)할 덕이며, 유교 사상은 이로부터 도덕 사상으로서의 준엄성을 가지게 되었다. 성선설은 그러한 인심(仁心)이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왕도정치는 그러한 인심(仁心)에 입각한 정치이다. 군주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하고, 또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한 다음 도덕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불인(不仁)한 군주는 쫓아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의 제후가 맹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유교는 맹자에 의하여 비로소 도덕학(道德學)으로서 확립되고, 정치론으로서 정비되었다. 맹자의 사상은 그 후 유교의 정통 사상으로서 계승되어 유교를 공맹지교(孔孟之敎)라고 부를 정도로 중시되었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 두 글은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말하면서 예로 든 것이다. 두 이야기에서 맹자가 말하려는 바를 종합하여 생각해 보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시오.
(가)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모두들 염려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교를 맺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과 벗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고, 그 아이가 지르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 우산(牛山)의 나무는 아름다웠다. 그런데 우산은 큰 나라의 교외에 있는 관계로 사람들이 도끼로 그 나무들을 찍어냈으니 아름다워질 수 있겠는가? 밤낮으로 자라나고 비와 이슬의 윤택함을 받아 싹이 돋는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소와 양을 끌어다 또 그것이 자라는 족족 먹이고는 하였다. 그래서 저렇게 밋밋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 밋밋한 것을 보고는 거기에는 재목이 있어 본 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기야 하겠는가? 사람에게 들어 있는 본성인들 어찌 인의(仁義)를 따르는 마음이 없겠는가? 자기의 본래 마음을 베어 버리게 하는 일은 또한 도끼로 나무를 다루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매일매일 찍어내는데 어찌 아름다워질 수가 있겠는가?
⊙ 해설
맹자의 성선설은 말 그대로 인간의 본성은 원래 착하다는 것이다. 맹자가 인간의 본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많은 주장을 펼친 것에 반해 공자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과 같은 추상적인 주제는 별로 다루지 않았다. 공자가 살던 시기에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심 주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공자가 보인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본성은 서로 비슷한데, 습관에 의해 서로 멀어진다" 라는 표현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나 맹자에 이르러서는 본성론이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등장하게 된다.『맹자』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주장이 여러 군데에 나타나 있다. 이는 아마도 시대적인 상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맹자가 활동했던 전국 시대는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 시대와는 달리 매우 혼란한 사회였고, 이 때문에 인간의 본성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문제 의식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맹자 이전에는 어떤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을까? 성(性)은 심(心)과 생(生)을 합쳐 만든 글자이다. 글자대로 풀이하면, 성의 본래 뜻은 마음속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리적 욕구와 감정이 함께 들어 있다. 원시시대 인류의 모습은 도덕적인 면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생리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이 더 자연스러운 본질로 보편화되었을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은 맹자 무렵까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대해 맹자는 정면으로 부정했다. 도덕성을 인간의 본질로 본 맹자의 성선설은 그 때까지 내려온 인간의 자기 규정을 뒤엎은 것이다. 맹자 당시에 인간의 본성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들이 있었는데『맹자』에는 세 가지 견해가 소개되어 있다.
첫째, 본래는 착한 요소도 없고 악한 요소도 없다는 주장이다. 둘째, 착해질 수 있는 요소와 악해질 수 있는 요소가 동시에 들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 두 견해는 결과적으로 인간의 본성이 선으로도 악으로도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같은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채우고 있는 내용을 본다면 정반대인 셈이다. 그리고 셋째는, 태어날 때부터 본성이 착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는 주장이다. 제시된 두 이야기는 모두 인간의 본성이 착한 것임을 밝히는 예화이다.
제시문 (가)를 통해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순수한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이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모습을 본 순간 생겼던 순수한 마음, 이 마음을 맹자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부르며, 이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마음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고,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맹자는 이런 마음 말고도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惻隱之心),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잘 기르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사단(四端), 즉 착해질 수 있는 네 가지 실마리라고 한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에 이 네 가지 단서가 있는 것은 몸에 팔다리 네 개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리고 맹자는 사단을 선천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선천적인 요소를 양지(良知), 양능(良能)이라는 말로도 설명하였다.
양지와 양능이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린아이가 제 부모를 따를 줄 아는 것처럼,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따져 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갖춘 것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맹자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은 본질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나쁜 행위 자체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환경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맹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예가 제시문 (나)이다. 제시문 (나)를 통해서는, 그러면 왜 현실 속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지 않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현실에서 보여지는 대부분 인간들의 마음과 행동이 악하게 드러나는 것은 도끼로 산의 나무를 찍어 버리듯 사람들 스스로가 그렇게 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아 원래의 인간 본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모두 다시 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맹자는 환경적 요소에 따라 좌우되는 감정과 욕구를 악의 근본으로 보고, 그러한 힘은 내적인 자발성에 근거하지 않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세워 나갔다.
8. 리바이어던 - 홉스
⊙ 작품 해설
토마스 홉즈(Thomas Hobbes, 1588~1679)는 영국의 철학자로서, 맘즈베리 태생이며, 무명의 목사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스콜라 철학을 전공하였다. 스튜어트 왕조를 지지하는 정치가로 지목되자, 퓨리턴 혁명 직전에 프랑스로 망명하여 유물론자 가상디와 철학자인 데카르트 등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크롬웰의 정권 하에서는 런던으로 돌아와 정쟁에 개입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힘썼다. 왕정복고(王政復古) 이후에도 찰스 2세의 통치 속에서 여생을 보냈다. 인간이란 자연상태로라면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세계가 되므로 서로 계약을 맺어서 국가를 이루고 전권을 주권자에게 위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사회 계약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 베이컨과는 달리 귀납법만이 아닌 연역법도 중시하여, 양자의 상보적 관계에 의하여 이성의 올바른 추리인 철학이 성립된다고 생각하였다. 리바이어던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본질적으로 선한 것은 없고 선악, 정사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국가와 법이 성립되었을 때에 그 판정의 기준이 생긴다고 하였으며,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것이어서 자연 상태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있고, 사람은 사람에 대하여 이리[狼]이기 때문에 자기보존의 보증마저 없다. 그러므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은 계약으로써 국가를 만들어 자연권을 제한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의지에 그것을 양도하여 복종한다. 홉즈는 전제 군주제를 가장 이상적인 국가 형태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밖의 저서로『자연법과 국가의 원리』등이 있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 글은『리바이어던』의 일부이다. 이를 오늘날 국가의 개념과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소수인이나 소수 가족의 결합으로부터도 얻지 못하는 것 : 소수의 인간들이 결합하더라도 그들에게 안전은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 하면 소수에 있어서, 어느 한쪽 또는 다른 쪽에 대한 소수의 증가는 승리를 거두는 데 충분할 정도의 위대한 힘을 이용하는 이득을 취하게 함으로써 침략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다수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적과의 비교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적과의 수적 비율이 전쟁을 기도하도록 충동할 만큼 전쟁을 결정하는 데 가시적이거나 현저한 위기가 아닌 시기에는 그로써 충분하다.
단일 판단에 의해 지도되지 않는 한 그 다수로부터도 얻지 못하는 것 : 그리고 그와 같이 위대한 다수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게다가 만일 그들의 행동이 그들 각자의 판단과 욕구에 따라 지도된다면, 그들은 그로 인해 공동의 적과 서로의 상해(傷害)에 대해서 방비나 보호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의 힘을 가장 잘 사용하고 적용하는 데 관계되는 여론에 있어서 혼란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서로 돕지 않고 방해하게 되며 쓸데없는 것에 대한 상호 반대로 인하여 그들의 힘을 감소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쉽사리 서로 일치하는 극소수인들에 의해 정복될 뿐만 아니라, 공동의 적이 없을 때에는 그들 각자의 이해 때문에 서로 투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들 모두에게 외경감을 주는 공통의 권력 없이도 정의와 기타 자연법의 준수에 동의하는 위대한 다수의 인간을 가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또한 모든 인류가 그와 같이 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어떤 세속 정부나 국가가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예속 없는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를 지도하는 단일 판단이 항구적이 아닐 때 그 다수로부터도 얻지 못하는 것 : 인간이 한 차례의 전투 또는 전쟁에 있어서처럼 일정 기간 동안 단일 판단에 의해 지배되고 지도된다는 것은, 인간이 그들의 일생 동안 계속되기를 바라는 안전을 위해서는 충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외적에 대해 일치된 노력으로 승리를 획득한다고 할지라도 그 후에 그들이 공동의 적을 갖지 않거나 또는 한 편에 의해 적으로 생각된 자가 다른 편에 의해 친구로 여겨지는 때에는, 그들은 그들 이해의 차이에 의해서 해산되고 서로 전쟁 상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안전이다. : 인간 자신에 대한 구속(우리는 그들이 국가의 구속 안에 사는 것을 본다.)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 (천성적으로 자유와 타인에 대한 지배를 사랑하는) 인간의 궁극적 동인(動因)이나 목적 및 의도는 그들 자신의 보존과 그로 인한 보다 충족된 삶에 대한 안목이다. 즉, 제14장과 제15장에서 규정된 자연법의 준수와 그들 계약의 이행에 대해 그들을 두렵게 하고 처벌에 대한 공포로 그들을 옭아매는 가시적(可視的) 힘이 없을 때 인간의 자연적 정념에 대해 (앞서 보여진 바와 같이) 필연적으로 결과되는 그 처참한 전쟁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안목이다.
─ 중략 ─
국가의 발생 : 인간을 외적의 침입과 상호간 상해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국가를 수립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 자신의 노력과 대지(大地)의 열매에 의해 그들 자신을 자라게 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은, 그들 모두의 권력과 힘을 하나의 인물 또는 한 집단의 인간들에게 부여해서 그들 모두의 의사를 다수의 소리에 의해 단일 의사로 만드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그들의 인격을 책임지는 하나의 인물 또는 집단의 인간들을 지명하는 것이며, 만인은 그들의 인격을 그와 같이 책임지는 자가 공동 평화와 안전에 관계되는 사물 속에서 행동하는 모든 행위 및 행동하도록 만드는 모든 것의 창조자임을 스스로 승인하고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범위 안에서 만인은 그들의 의사를 그의 의사에, 그리고 그들의 판단을 그의 판단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동의나 합의 이상의 것이며,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서 창조된 바로 단일 인격에 있어서의 만인의 진정한 통일이다.
그것은 마치 만인이 만인에게 나는 당신들이 그에게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와 같이 그의 모든 행동을 승인한다는 조건하에 내 자신을 지배하는 내 권리를 이 사람 또는 이 집단의 인간들에게 포기하고 승인한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하나의 인격에 있어서 통일된 다수의 국가(라틴어로 divitas)라고 불린다. 이것이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 또는 (보다 경건하게 말하면) 우리가 불멸의 신의 가호 아래 우리 평화와 보호를 위탁하고 있는 저 필멸(必滅)의 신의 발생인 것이다. 국가 안의 모든 개개인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이러한 권위에 의해서 그는 그에게 주어진 그 막대한 권력과 힘을 사용할 수 있고, 그 권위의 위협에 의해 그는 국내에서는 평화를 위해,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그들의 적에 대한 상호 원조를 위해 만인의 의지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의 본질이 그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국가의 정의 : (그것을 정의하자면) 그것은 `다수가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스스로 모든 사람을 그것의 행동의 창조자로 만들었고, 그것은 그들의 평화와 공동 방위를 위해서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들 모두의 힘과 수단을 끝까지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이다. 주권자와 신민은 무엇인가 : 이러한 인격을 확득하는 사람은 주권자라고 불리며, 주권을 소유한다고 일컬어진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신민이다. 이러한 주권의 획득은 두 가지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자연적 힘, 즉 한 사람이 자식들을 낳아서 그들과 손자들을 그의 통치에 복종시키고 그들이 거절하면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것과 같은 경우이거나 또는 전쟁에 의해서 그의 적들을 그의 의사에 복종시키고 그러한 조건하에서만 그들의 생명을 살려 주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들이 상호간에, 모든 타인으로부터 그에 의해 보호된다는 신뢰에 의해 자발적으로 어떤 인간 또는 인간의 집단에 복종하기로 동의하는 경우이다. 후자는 정치적인 국가 또는 제도화된 국가라고 불리며, 전자는 획득에 의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 해설
제시문에서 홉스는 강력한 국가 권력만이 욕구와 열망으로 인해 전쟁에 빠질 개인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분은 먼저 국가의 존립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는 다수 국민의 권리 중에서 일정 부분을 양도받아서 성립된다. 그래서 국가를 공적 권력, 즉 공권력(公權力)이라고 한다. 근대 사회가 성립되면서 국가 형성 및 시장 경제의 성립은 국가의 모든 사안에 개인이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국가라는 대의적 기구를 만들게 된 것이다. 국가간의 문제로 확대시켜 살펴보자. 개별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다 보면 국제적 갈등이나 분쟁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국가 간 이익이 부딪힐 때 이를 조정하는 역할로 각종 국제 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많은 국제 기구가 객관적인 조정자보다는 강대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국가 간 관계에서도 다수 국가의 참여와 객관적 조정이라는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국가를 이해한다면, 국가 존립의 문제보다는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또는 어떤 성격의 권력인가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같은 국가라고 하더라도 다수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국가와 소수 기득권 세력의 이익만을 반영하는 국가는 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9. 두보 시선 - 두보
⊙ 작품 해설
①. 두보와 이백
당시(唐詩)라고 하면 으레 이백과 두보를 첫손으로 꼽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왕유와 백거이와 두목과 이상은 같은 대가들이 있지만, 이백과 두보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시대에 같은 길을 걸었으면서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시의 최고봉을 더불어 누렸다. 이백을 시의 신선(시선; 詩仙)으로 받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보를 시의 성인(시성; 詩聖)으로 받들기도 한다. 사실 이백은 선천적인 재질이 뛰어나서 주변의 온갖 것을 시화(詩化)해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일체가 시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까 이백에게는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두보는 온갖 것을 시로 엮어 내는 고심과 재치가 남달랐다.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정이요, 오고 간 정의 감각이 시를 엮어 낸 것이다. 따라서 이백은 우러러 바라도 미치지 못하는 천재적인 시인이고, 두보는 배우고 익힌다면 다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까닭에 대대로 배우고 익힌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백의 시가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어가 예사로 씌어졌는가 하면, 도저히 시가가 될 수 없는 소재가 노래로 둔갑하는 데 비해, 두보는 누구나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소재를 갈고 다듬어 진을 빼 내고야 마는 진통을 거친 뒤에, 꼭 알맞은 말과 소리를 찾아 보석처럼 메우고서야 비로소 붓을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백은 시를 위해 태어난 시선이고, 두보는 시를 짓기 위해 태어난 시성이라고 할 수 있다.
② 현실에 뿌리내린 시
이백의 시가 귀족적이라면, 두보는 평민적이어서 한결 친근감을 안겨 주기 때문에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는 초월적인 자세로 삶을 관조하는 이백과 달리 삶 자체를 나에게 주어진 운명적 현실로 받아들이며 이러한 삶의 여러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려고 애쓴다. 두보의 시는 유교 사상을 그 바탕으로 삼고 있다. 유교사상은 충군과 애민의 정신과 현실참여 의식이 강하다. 그런데 두보가 살던 시대는 지배자의 잘못된 정치로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던 시기이다. 두보는 황제를 보필하고 충성하여 요순 시대처럼 태평 성대를 이루겠다는 이상을 품고 있었지만 실제 현실은 황제와 귀족들이 나라를 환란에 빠뜨리고 인민에게 재난을 입히는 죄행을 범하고 있었다.
두보는 이러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면서도 어느 하나를 회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사회적·계급적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강구하고자 노력했으며, 그것을 시에 녹아들게 하였다. 그의 시들이 이백과 달리 사실주의적 기풍을 많이 띠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시는 병사, 농부, 가난한 농가의 부인, 포악한 관리, 봉건 상층부의 고관 대작들을 전형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두보의 시는 중국 사실주의 전통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시가 당시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 두보의 「취시가(醉時歌)」라는 시를 번역한 것이다. 잘 읽고, 시적 자아의 삶의 방식을 현대적 관점에서 평가하시오
여러 고관네는 자꾸 높은 자리에 오르는데
광문 선생은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요
좋은 기와집에는 넘쳐나는 게 쌀밥과 고기인데
광문 선생은 밥조차 모자라는 신세라오.
선생의 도덕은 아득한 복희씨가 바탕이요
선생의 재주는 굴원과 송옥을 넘짚고 말고
덕이 당대에 높아도 언제나 불우하고
명성이 만고에 드높아도 쓰일 곳이 없다오.
이 두릉의 건달은 더구나 남의 웃음거리로
짤막한 겉옷에 수염은 허여세고
날마다 받는 다섯 되의 쌀을 타가지고는
이따금 선생께 달려가 덜어서 마음을 풀지요
돈만 생기면 곧장 서로가 찾아
술 사기를 사양치 않죠
곧드레 만드레 너, 나가 없고
실컷 마시는 건 정말 내 스승이고 말고.
맑은 밤이 침침토록 봄 술 마시자니
등불 앞 추녀에 듣드는 봄비 꽃을 지우네.
드높은 노래는 신들림을 알기는 하지만
어찌 굶어 죽어 도랑에 묻힘을 생각이나 하료.
뛰어난 재사 사마상여는 몸소 술사발을 닦았고
글 잘하는 양웅은 다락에서 내동댕이쳐졌소.
선생이여, 어서 어서 돌아가는 귀거래를 지으소
돌밭과 초가집에는 이끼가 드북하오
선비의 재주가 나에게 무슨 상관이요
공자와 도척이 모두 한 줌의 흙이 아뇨
그렇다고 당장 우울해져서야 쓰겠소
살아 있는 동안 만나 술이나 마십시다.
⊙ 해설
시적 자아의 삶의 방식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 연의 주요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1연은 광문 선생의 불우함을 들고 있다. 남들은 쌀밥에 고기 반찬도 마다하는 판인데, 광문 선생은 먹을 밥조차 부족한 형편임을 노래하고 있다. 1연에서 서정적 자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도덕이 높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굴원과 송옥 같이 글재주로 명성이 높다고 한들 무엇에 쓰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세상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가 엿보인다고 볼 수 있다. 2연은 자기와 함께 실컷 마시며 거리를 누빈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특히 정부에서 주는 구호미를 타먹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술을 가까이 하는 두보의 삶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3연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자위하는 태도가 드러나 있으며, 이는 4연까지 이어져 성인인 공자와 도적의 왕자인 도척이 모두 한 줌의 흙이 되었는데, 살아 생전에 마시지 않고 왜 술을 사양하느냐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 분석을 통해 이 시는 현실에서 실패한 서정적 자아의 불우한 환경과 그 환경을 술로 이겨내려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자와 도척을 동일시하는 자세나, 어차피 죽을 인생 술이나 마시자는 자세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거나 극복하려는 의지가 빈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다.
Ⅱ. 현대문 및 사회 이슈
1. 안락사 논쟁(구분 : 의학, 사회)
▣ 기계적 생존이냐 인간다운 죽음이냐
안락사 논쟁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논의 그 자체다. 이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 자율권을 포함한 환자의 권리,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분배, 의사의 치료의무의 한계, 호스피스 운동 등 의학윤리의 중요한 이슈들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죽는 것은 아니다. 쉽고 평온하게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렵고 고통스럽게 죽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평온하고 안락하게 죽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의학의 발전 때문이다.
의학의 발전은 사망의 주요 원인뿐 아니라 최종적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변화시켰다.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첨단 의학장비 개발로 이제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생명을 거의 무한정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계에 연결되어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것을 삶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0년간의 사회적 변화 역시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 자기 침실에서 가족과 친구, 이웃들에 둘러싸여 임종했다. 성직자와 왕진을 온 의사는 환자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평온하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었고, 환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병원에서의 죽음은 평온이나 안락과는 거리가 멀다.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과 친구들은 병실 밖으로 내몰리기 일쑤고 환자의 침상 곁은 수많은 의료진들이 점령한다. 그들은 다가오는 죽음을 막기 위해서 최후까지 온갖 조치를 취한다. 환자의 입에는 인공호흡을 위한 기도관이 물려지고, 수많은 전극과 수액줄이 부착되고 꽂힌다. 그것들은 환자가 완전히 숨을 거둔 다음에나 제거된다. 가족들이 환자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의료진이 사망선고를 내린 후 시신이 흰 천에 덮여 냉장실로 옮겨지기 전의 짧은 시간뿐이다.
◆ 평화롭게 죽을 권리
안락사를 뜻하는 유사너지아(euthanasia)는 좋음, 편안함을 뜻하는 eu-와 죽음을 의미하는 thanatos가 합쳐진 용어다. 즉 수월한 죽음, 고통이 없는 빠른 죽음, 평화로운 죽음을 말한다. 좀더 정확히는 치료될 수 없는 상황이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통증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해주는 행위(웹스터 사전)를 뜻한다.
넓은 의미의 안락사에는 소위 의사조력 자살 (physician-assisted suicide)이 포함된다. '죽음의 의사'로 유명한 미국의 잭 케보키언(Jack Kervokian)이 시행한 방법이 의사조력자살인데, 최종적으로 생명을 끊는 행위자는 환자 자신이다. 즉 의사는 환자에게 자살기구나 약품을 제공하지만 이를 이용하여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이는 환자 자신인 것이다. 반면에 좁은 의미의 안락사는 의사 혹은 제3자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환자의 동의 유무에 따라 자의적 안락사와 타의적 안락사로 나뉜다.
또한 그 방법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적극적 안락사는 치명적인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서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외부적 행위인데 반해,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지연시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최단시간 내에 환자가 자연사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원래 환자가 앓고 있던 병이 사망의 직접 원인이 된다.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의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의미 없는 치료를 중단하고 진통제나 안정제를 투여하여 고통을 줄여주면서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의 의사에 반해 치료를 강행하는 것을, 신체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권과 환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비윤리적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다.
한편 안락사 반대론자들이 흔히 안락사의 극단적 예로 드는 것이 우생학적 안락사다. 그러나 이것은 치료 불가능한 환자가 아닌 특정 인종이나 장애자, 기형아를 대상으로 하므로 명백한 살인행위이며 따라서 안락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논란이 되는 것은 환자의 요구에 의해 의사가 실시하는 자의적이고 적극적인 안락사다.
유럽과 캐나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항상 70%를 상회하며, 안락사에 대해 비교적 보수적 견해를 취하는 미국인들도 절반 이상이 안락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와는 달리 안락사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최근 네덜란드가 안락사를 합법화한 것이 세계 최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금지 혹은 반대와는 무관하게 실제로는 여러 나라에서 안락사가 묵인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커보키안처럼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실행한 의사들이 거의 기소되지 않았거나 기소되었어도 실질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최근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도 1980년 이후 의사에 의한 안락사를 사실상 허용해왔다.
◆ 실종된 환자의 자기결정권
일본에서는 1991년 4월 도카이(東海) 의대 부속병원의 의사 도쿠나가 마사히토가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말기 암 환자에게 염화칼륨을 정맥 주사하여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요코하마 지방법원은 1995년 3월 도쿠나가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동시에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을 것, 죽음이 임박하여 소생 가능성이 없을 것,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다른 수단이 없으며, 환자의 명시적 승낙이 있을 것 등 네 가지를 안락사 요건으로 제시해 사실상 안락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 나라에서는 1981년 9월24일 충남대학교 총장, 문교부 차관을 역임하고 간암으로 투병 중이던 박희범씨의 안락사 사건이 일어났다. 내과 의사였던 부인이 남편을 안락사 시키고 자신도 자살한 이 사건은 안락사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당시엔 단순히 금실 좋던 부부의 순애보적 동반자살 사건으로만 인식됐다. 그 동안 우리 나라에서의 안락사 논의는 소수 학자들간의 학문적 의견 교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와 일반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죽음을 둘러싼 모든 고통과 갈등은 고스란히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이 떠맡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고 결정에 대한 책임 역시 그들이 져야 한다.
1997년 12월에 발생한 보라매병원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술에 취한 채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져 뇌출혈을 일으킨 58세의 알코올 중독자가 수술 후 회복과정에 부인의 강력한 요구로 퇴원했다. 의료진은 간곡히 만류했지만 "당신들이 치료비를 대겠느냐"며 반발하는 부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결국 환자는 퇴원 직후 사망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부인과 담당의사를 살인죄로 기소했고 법원은 부인에게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 담당의사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물론 이 사건은 환자의 회생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안락사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그 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소위 가망 없는 환자의 퇴원이 일절 중지됐고, 퇴원을 요구하는 가족들과 의료진 사이에 심한 갈등이 빚어졌다.
정부의 명백한 법적·제도적 지침과 장치가 없는 가운데 의사들은 우리 나라에서는 소극적 안락사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 때문에 의학적 판단이나 환자 및 가족들의 요청과는 관계없이 환자가 죽을 때까지 무의미한 의료행위를 계속 실시할 수밖에 없게 됐다. 가족들은 아무도 치료비나 생계비를 지원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환자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결국 환자가 빨리 죽어주기만 기다리는 기막힌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환자들의 '치료중단 요구권'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되고 점차 강화되고 있는 자기 결정권 역시 현재 우리 나라 실정법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 죽음이 아닌 삶의 문제
안락사 문제는 낙태논쟁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결론을 내릴 수 없을지 모른다. 안락사 찬성론자들의 주장, 즉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므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다거나, 회생 가능성 없이 고통받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사실상 고문행위이며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자비로운 일이라는 등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안락사 반대론자들의 주장과 우려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것이다. 안락사가 허용될 경우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하여 그 대상이 점차 확대될 것이고 결국 경제논리에 따라 장애자·극빈자·사회소외계층이 병들었을 때 치료보다는 안락사가 손쉬운 해결책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 안락사가 생명 수호자인 의사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크게 훼손할 것이라는 주장, 강력한 진통제나 안정제 등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킬 효과적 방법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락사를 행하는 것은 경솔하고 지나친 행위라는 지적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의학윤리의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안락사에서도 정작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논의 그 자체다. 사회 구성원이 안락사를 둘러싸고 활발한 찬반논쟁을 거치는 과정에 생명의 존엄성, 자율권을 포함한 환자의 권리,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분배, 의사의 치료 의무의 한계, 호스피스 운동 등 의학윤리의 중요한 이슈들이 깊이 있게 다뤄질 것이고 우리 사회 전반의 윤리적 감수성도 증가할 것이다.
안락사 논쟁은 기본적으로 죽음이 아닌 삶에 관한 논쟁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 삶의 마지막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고, 삶의 종말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인간적이고 인도적인지가 안락사 논의의 핵심이다. 따라서 삶의 질에 대해 무관심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윤리적 감수성이 무딘 후진사회에서는 애당초 안락사 논쟁이 불붙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안락사를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 임기영 / 아주대 의대교수 [신동아]에서 발췌
과학 혁명의 구조 - 토마스 쿤(구분 : 과학)
1. 작품소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를 쓴 토마스 쿤(Thomas S. Kuhn)은 과학사 학자이자 과학 철학자로서 20세기 후반의 현대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 분야에서 특히 중요한 과학의 역사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은 수험생에게 과학을 바라보는 입장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과학을 완전히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 대상의 본질을 차츰차츰 밝혀 나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과학도 인간의 다른 활동과 비슷한 방식으로 변화하며, 관습적으로 과학의 특성이라고 간주되어 왔던 객관적(客觀的), 논리적(論理的), 경험적(經驗的), 가치중립적(價値中立的) 성격들이 타 분야에 비해 정도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진리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수험생들은 이 책을 통해서 객관과 주관의 상호 연관성, 역사 발전의 불연속성, 가치관의 혁명적 전환기에서 우리가 취할 태도 등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패러다임의 개념, 과학 혁명의 특성과 실증주의와의 변별성에 대하여 살펴보고, 과학의 혁명적 전환기에 대하여 과학자들이 반응하는 태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본문 읽기
① 패러다임의 우선성
이제 패러다임이 규칙들의 개입 없이도 정상 과학을 결정한다는 것을 믿게 할 만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그 명백함과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선 첫번째 이유는 특정 정상 과학의 전통을 주도해 온 규칙들을 찾아내는 행위 자체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철학자가 모든 게임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때 당면하는 어려움과 비슷하다. 두번째 이유는, 과학자들이 결코 개념이나 법칙, 이론 등을 추상적, 또는 그 자체만으로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러한 지능적 수단들은 당초부터 과학자들에게 그 적용과 더불어 또는 적용을 거쳐서 드러나는 역사·교육적 선행 단계에서 접하게 된다.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자연 현상의 어떤 구체적 영역에 적용시킴과 동시에 발표된다. 그런 적용이 없었다면, 그것을 수용할 만한 후보 이론조차 없었을 것이다. 또 일단 수용된 뒤에는 그와 똑같거나 다른 사례들과 함께 후세(後世)의 과학자들이 그것으로부터 자신이 할 일을 배우게 될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
그것들은 단순히 장식이나 증거 문서로서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의 이론을 깨우치는 과정은 연필과 종이, 또는 실험실에서 기기에 의해 실제문제를 푸는 응용연구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뉴턴의 역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힘·질량·공간, 그리고 시간과 같은 용어의 의미를 깨우치는 경우, 대개는 이들 개념을 문제-풀이(problem-solution)에 적용시켜 관찰하고 관여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어서, 교재에 불완전하게 실린 정의로부터 터득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 중략 ─
과학자들은 대부분 당시의 구체적 연구주제에 내재하는 특정한 개별적 가설에 대해서는 쉽게, 그리고 잘 논의하지만, 그들 분야에서 확립된 기반이나 타당성 있는 문제들과 방법들을 특성화함에 있어서는 비전문가에 비해 별로 나을 게 없다. 과학자들이 그런 추상적 개념화를 터득하는 경우, 그들은 주로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런 능력은 게임의 가설적인 규칙에 의지하지 않고도 이해될 수 있다.
과학 교육의 이러한 결과들은 패러다임이 개념화된 규칙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직접 모형이 됨으로써 연구의 지표가 된다고 보는 세 번째 이유를 제공한다는 논의를 성립시킨다. 정상 과학은 관련되는 과학자 사회가 이미 성취된 특정 문제 - 풀이를 의문 없이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규칙 없이도 진행될 수 있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나 모형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경우에는 규칙들이 중요해지게 될 뿐 아니라, 규칙들에 대한 특유의 무관심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특히 패러다임 풀이의 표준에 대한 심각한 논쟁이 빈번해질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정상 과학의 시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소위 말하는 과학 혁명, 즉 하나의 패러다임이 공격을 받게 되고 다음 단계에서 바뀌게 되는 시기 직전(直前)까지의 과정에서는 여러 논쟁들이 규칙적으로 되풀이된다. 예를 들어 뉴턴 역학으로부터 양자 역학으로의 이행은 물리학의 성격과 규범에 관해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는가. 규칙을 찾아낸다는 일은 과학자 사회에서 해당 분야의 기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 비로소 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안전하게 지탱되는 동안에는 합리화에 대한 동의, 또는 합리화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할 필요도 없이 패러다임은 고유의 기능을 나타낼 수 있다. 패러다임이 공유된 규칙과 가정에 우선하는 지위를 차지하는 네 번째 이유를 설명함으로서 결론을 맺으려고 한다. 이 에세이의 서론에서는 대규모 혁명들뿐만 아니라 소폭적인 혁명도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했으며 어떤 혁명들은 세분화된 전공 분야의 구성원들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했고, 또 그런 그룹들에게는 새롭고 예기치 않은 현상의 발견조차도 혁명적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 중략 ─
정상 과학은 단일 체제의 통합적인 활동으로서 모든 패러다임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패러다임들의 어느 하나와도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그런 일이 매우 드물거나 전혀 그런 적이 없음이 분명하다. 모든 분야를 총체적으로 개관하면, 과학은 다양한 분야 가운데서 거의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상당히 줏대 없는 구조를 가진 듯이 보인다. 규칙 대신에 패러다임을 대치하는 것은 과학의 분야와 세부 전공의 다양성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만들 것이다.
명시적인 규칙들은, 그것들이 존재할 때에는, 매우 광범위한 과학자 집단에 공통적인 것이 상례지만 패러다임은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천문학과 식물 분류학처럼 크게 동떨어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책들에서 설명된 다른 업적에 접하며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똑같거나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에서 동일한 책들과 업적들을 많이 공부하는 것으로 출발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전공의 세분화 과정에서 상당히 차이 나는 패러다임을 얻을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모든 물리학자들로 구성된 방대한 과학자 사회를 생각해 보자. 요즈음은 그런 그룹의 구성원은 누구나 양자 역학의 법칙들을 배우며, 그들 대부분은 연구라든지 강의의 어느 시기에 이르러 이들 규칙을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 모두 이 법칙들의 동일한 적용을 배우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들이 양자 역학의 실제 변화에 의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전공이 세분화되면 어떤 물리학자들은 양자 역학의 기본 원리들에만 접하게 된다.
다른 학자들은 이들 원리들의 화학 분야에의 패러다임 적용에 관해 상세히 연구하게 되며, 다른 학자들은 고체 물리학에의 적용에 관해 연구하는 등등 다양해진다. 양자 역학이 과학자들의 각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의 문제는 그가 무슨 과목을 택했는가, 무슨 책들을 읽었는가, 어떤 문헌을 공부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양자 역학 법칙에서의 하나의 변화는 이들 그룹 모두에게 혁명적이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양자 역학에서의 이런저런 패러다임 적용에만 영향을 미치는 변화는 세분화된 특정 분야의 구성원들에게만 혁명적인 것이다.
전공 세분화의 영향에 대하여 예를 들어보자. 어떤 연구자가 과학자들은 원자론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에 대해 좀 알고 싶어서 특출한 물리학자와 유명한 화학자에게 헬륨의 단일 원자는 분자인가요,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양쪽 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으나, 그들의 대답은 같지 않았다. 화학자에게는 헬륨의 원자는 하나의 분자였는데, 왜냐 하면 기체의 운동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분자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한편 물리학자에게는 헬륨 원자는 하나의 분자가 아니었는데, 왜냐 하면 그것은 분자 스펙트럼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동일한 입자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으나, 그들 특유의 연구 훈련과 활동을 통해서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풀이에서의 그들의 경험은 분자는 무엇이라야 하는가를 깨우쳐 주었다. 그들의 경험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으나, 그 경험들은 두 전문가에게 동일한 내용을 말해 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3. 작품해설
이 제시문은 패러다임이 객관적 현상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글이다. 패러다임은 그것만 독립적으로 교육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유포된다. 그렇기 때문에 패러다임의 정확한 개념과 한계, 특성을 밝히는 것이 곤란해진다. 왜냐하면 패러다임의 공유는 추상적 일반화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개념이나 이론틀을 이용하여 특정 주제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하지만, 그들 분야에서 이미 기정 사실화되어 있는 인식적 기반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일반적 개념화를 요구받았을 때 타당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같은 패러다임이라도 세부 전공에 따라 현상을 해석하는 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바로 현상에 대한 패러다임의 우위성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현상과 이론, 객관과 주관, 실재와 관념, 객체와 주체를 엄밀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경우 객관적인 현상보다 해당 공동 사회에서 공유하는 신념 체계가 더 우위를 점유하는 경우가 많다.
4. 정상과학과 패러다임
그는 과학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 도전하여 새로운 과학사관(科學史觀)을 제시한다. 과학의 역사적 측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과학적 지식이 아무런 내부 갈등이나 모순 없이 양적인 축적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종래의 귀납주의적 과학관에 반대한다. 대신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대체되는 비축적적(非蓄積的)인 변화를 가리킨다.
그리고 혁명에 의해 과학이 변화한다면 그런 혁명들 사이에는 과학자들이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안정된 활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정상 과학(正常科學 ; normal science)이라 규정한다. 따라서 과학 혁명은 어느 정상과학이 심각한 이상(異常) 현상들의 빈번한 출현에 의해 위기에 부딪침으로써 붕괴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며, 그 결과는 새로운 정상 과학이 된다. 정상 과학은 과학자 사회의 전형적 학문 활동의 형태로서 패러다임에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쿤의 과학사관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패러다임이란 원래 언어학습에 사용되는 표준예(examplar)란 뜻의 단어이다. 정상과학을 해 나가는 과학자들이 힘, 질량, 화합물 등의 용어에 대한 정의를 배우지 않고서도 일치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용어가 나오는 문제를 푸는 표준적인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언어를 배우는 학생이 먹는다, 먹었다, 먹겠다를 익혀 그 표준형을 그 밖의 동사에 적용하는 절차에 비유할 수 있다고 보고, 언어 교육에서 표준적인 활용·굴절형을 보여 주는 예를 패러다임이라고 하듯 표준적인 과학 예제를 패러다이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 예제 풀이의 의미로 쓰이던 것이 어떤 특정한 과학사회의 소속원들이 공유하는 전체적인 신념의 집합을 뜻하게끔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기본법칙을 적용하는 표준적 방법, 법칙들과 자연현상을 연결시키는 데 필요한 실험기술과 장치가 패러다임의 구성요소로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정규적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는 형이상학적 원리들도 패러다임의 기본 요소를 이룸으로써, 예컨대 이론의 정확성, 간결성, 체계성을 중시하는 그 분야의 가치관, 과학자 사회의 공유된 관념, 관습까지도 패러다임에 포함된다.
요컨대 패러다임은 주어진 (과학) 공동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념·가치·기술 등의 전체적인 집합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과학도들은 명문화된 규정으로부터 패러다임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육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터득하게 된다. 특히 교육과정에서는 과학연구의 결과를 평가하는 그 분야 과학자 사회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익히게 된다. 따라서 패러다임과 정상 과학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연구의 대상이라는 일차적 자료보다는 도리어 과학자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 요구된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 예컨대 기본 이론의 타당성에 대한 질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 과학자들에게는 공유된 가치관이 너무나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과학혁명
혁명은 항상 어떤 틀을 거부·대체시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과학 공동 사회가 구체적인 작업을 할 토대로 받아들이는 과거의 모범적 업적에 굳게 기반을 둔 연구를 정상과학이라고 한다면, 쿤은 이러한 정상 과학에 틈이 생기고 의문이 생겨 정상 과학에서 설정한 인식틀이 전면적으로 변하는 것을 과학 혁명이라고 한다. 정상과학 내부에는 아직 미해결된 작업을 계속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는데(이를 수수께끼 풀이라고 한다), 연구가 패러다임에 따른 기대를 어기게 될 때, 즉 변칙이 발견될 때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과학혁명은 기존 패러다임이 스스로 기왕에 지향했던 자연의 한 측면에 대한 탐구에 있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식이 고조됨으로써 촉발된다. 이전 체제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차츰 인식하게 되면서 혁명의 기운이 고조된다. 정상과학이 수수께끼로 삼는 모든 문제는 관점을 달리함으로써 반례로 보일 수 있으며, 따라서 위기의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정상 과학과 혁명은 표리관계에 있다.
정상 과학에 의해서 싹튼 변칙과 위기에의 인식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함으로써 결실을 보게 된다.
과학상의 혁명에는 기능 불능이던 이전 패러다임에 대한 파괴가 있고, 혁명의 여파로 종래의 개념이 틀렸다는 생각이 팽배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혁명 뒤에는 과학자들이 전혀 다른 세계에 반응하게 된다.
5. 실증주의자들과의 차이점
위와 같은 과학 철학은 종전의 실증주의자들의 견해와 대치되는 것이다. 실증주의자는 과학의 목표가 과학 이론들과는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험을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쿤은 과학이 영원한 진리들의 축적으로 성장한다는 생각을 배척한다. 과학적 혁명은 광범위하고 격렬한 변혁과 관계된다.
실증주의(實證主義; positivism)에서는 과학이란 인간의 마음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사물을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관찰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봄으로써, 지극히 피상적인 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쿤에서는 과학상의 혁명을 거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과학자는 동일한 사물을 보고 있다고 의식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들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상의 인식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개념화하느냐 그리고 그 개념을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문제로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심성(心性; human mind)이 본질상 어떠한 것이냐 하는 문제로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 출처: 대학교육협의회 홈페이지
국부론 - 아담 스미스(Adam smith) (구분 : 경제, 사회)
◈ 본문읽기
교환성향(交換性向)은 이기심에 의해서 촉진되어 분업으로 유도한다. 우리가 스스로 필요로 하는 상호적인 호의의 대부분을 서로 주고받는 것은 협의교환 및 구입에 의해서이지만 분업을 발생시키는 것도 이와 동일한 인간의 성향인 것이다. 예컨대 사냥이나 목축하는 종족 중에서 어느 특정한 사람이 다른 누구보다 더욱 재빠르고 교묘하게 활과 화살을 만든다고 하자. 그는 흔히 활과 화살을 동료들의 가축이나 사슴 고기와 교환하고 그리하여 드디어는 이렇게 하는 것이 자기가 벌판에 나가서 그런 것들을 잡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가축이나 사슴 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이익에 관심을 둠으로써 활과 화살 제작이 그의 중요한 일이 되어 그는 일종의 무기 제조공이 된다.
다른 한 사람은 자기들의 작은 집이나 이동 가옥 또는 지붕을 만드는 데 탁월하다고 하자. 그는 이 솜씨로써 이웃 사람들을 위해서 가끔 일을 해 주게 되고, 이웃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그에게 사례로 가축이나 사슴 고기를 준다. 이리하여 드디어 그는 전적으로 이 일에 헌신하여 일종의 목수가 되는 것이 자기의 이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사람은 대장장이 또는 놋쇠공이 되거나 의복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수피의 제혁공 또는 완성공이 된다.
이리하여 사람은 누구나 그 자신의 노동 생산물 중에 자기 자신의 소비를 초과하는 잉여 부분을 다른 사람의 노동 생산물 중 그가 필요로 하는 부분과 교환할 수가 있다는 확실성에 의해서 어느 특수한 직업에 전념하게끔 자극 받는다. 또한 그 특수한 업무에 대해서 갖는 재능이나 천분(天分)이 무엇이든 그것을 발전시키도록 자극 받는 것이다. 사람이 제각기 갖는 타고난 재능의 차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실제로는 훨씬 적은 것이다.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성숙 상태에 도달했을 때 얼핏 보아서 대단히 다른 것같이 구별되는 천분(天分)의 차이는 대부분 분업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결과인 것이다.
비슷한 데가 전혀 없어 보이는 인간 사이의 차이, 예컨대 학자와 거리의 짐꾼과의 차이는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습관, 관행 및 교육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리고 6세 내지 8세가 되기까지에는 아마 대단히 비슷하여서 양친도 동무들도 그들에게서 별로 뚜렷한 차이를 찾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나이 또는 그 후 머지않아 그들은 서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 이 때가 되면 재능의 차이가 눈에 띄게 되고 그것은 점차로 커져서 드디어는 학자 쪽은 허영심에서 거의 어떠한 유사점도 인정하려 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래하고 교역하고 또 교환하는 성향이 없었더라면 모든 사람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을 모두 자신이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의무를 수행하고 같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재능의 커다란 차이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 같은 일의 차이는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성향이야말로 갖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렇듯 현저한 재능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이 같은 성향이 또한 그 재능의 차이를 유용한 것으로 하는 것이다.
모두가 동일 종류로 인정되는 많은 동물 종족은 타고난 능력의 차이를 자연으로부터 받고 있고, 또 그 차이는 습관이나 교육이 가해지기 이전에 인간 사이에 생긴다고 생각되는 천분의 차이에 비하면 훨씬 뚜렷하다. 학자가 타고난 천분이나 성향과 거리의 짐꾼의 차이는 매스티프종 개와 그레이하운드종 개 또는 스패니얼종 개와 셰퍼드 개와의 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갖가지 종족의 동물은 모두가 동일종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상호 간에는 거의 아무런 유용성도 없는 것이다. 매스티프종 개가 힘이 강한 것은 그레이하운드 종 개의 민첩한 것에 의해서도 스패니얼종 개의 영리한 것에 의해서도 또는 셰퍼드 개의 유순한 것에 의해서도 조금도 도움을 받지 않는다.
교환한다는 힘이나 성향이 결여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천분과 재능의 효과는 이를 하나의 공동 자산으로 할 수가 없고 그들의 생활 조건과 편의를 한층 개선하는 데 조금도 공헌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동물은 어떤 것이든 오늘날 여전히 각자가 독립해서 자기를 부양하고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자연히 동류들을 구별한 그 재능의 다양성에서 그들은 아무런 이익도 끌어내지 않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인간 사이에서는 분명하게 다른 여러 천분이 서로 유용한 것으로 된다. 즉 인간의 갖가지 재능이 생산하는 각종 생산물을 거래하고 교역하고 교환한다는 일반적 성향에 의해서, 말하자면 하나의 공동 자산이 되고 누구든지 거기에서 딴 사람들의 재능의 생산물 중 자기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어떤 것이든 구입할 수가 있는 것이다.
◈ 작품소개
1. 시대적 배경
『국부론』이 쓰여진 18`세기 영국은 중상주의(重商主義) 시대였다. 중상주의 시대에는 국가의 부강이 주로 금·은의 획득과 축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 이것은 무역 차액에 의해서 생긴다고 생각하였다. 즉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국의 생산물을 해외에 많이 수출하고, 해외로부터 수입은 가능한 한 억제함으로써 무역 차액을 크게 하고, 그 무역 차액을 금이나 은으로 받아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역 차액의 확대는 개인적인 이해(利害)보다 앞서는 국가적인 과제였기 때문에 중상주의적인 경제 정책은 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실행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무역 차액 확대에 도움이 되는 산업 부문은 보호하는 한편, 외국 산업의 압력을 막아 그들의 국내 시장을 독점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부 무역 상인에게는 독점적 특혜를 주어 다른 상인이 경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이와 같이 국내 산업에 대한 철저한 보호와 통제, 잇따른 정복 전쟁, 그리고 식민지 방위와 경영 등을 위해서 영국은 근대적인 조세 제도를 체계화하고, 화폐 재산의 축적과 자본화를 진전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중상주의라는 국가가 앞장서서 이룩한 독점적 통제 경제 체제는 이미 18`세기 중엽 이후 그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곧 무역 차액의 불안정, 빈번한 불경기, 산업 보호 정책의 지나친 확대, 식민지 유지 경비의 과도한 팽창 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몰락해 가는 수공업자, 하층 직공 및 빈민들의 폭동이 잦았고 급진적 사상과 운동이 싹트기 시작했다. 스미스는 이러한 독점적 통제 경제 체제와 대결하는 자유 방임의 사회를 이룩할 것을 주장한다.
2. 이기적 인간
스미스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어머니 뱃속으로부터 죽을 때까지 간직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총체적으로 볼 때 이기적(利己的)인 것이며, 인간 행동의 기본적 원동력은 이기심에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스미스는 이타적인 면도 지적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총체적으로 볼 때는 이기적이며, 인간 행동의 기본적인 동력은 이 이기심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이기적 본능이 이타적 본능보다 우위를 점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이기적 본능을 주어진 그대로 발휘하게 하는 것이 신의 뜻에 맞고, 따라서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스미스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관계를 문법과 수사학의 관계에 비유했다. 즉 문장은 문법에 의해서만 성립되나, 수사법은 문장을 아름답게 하거나 호소력을 강하게 할뿐이다. 따라서 수사법이 없더라도 문법에만 맞는 문장이라면 뜻을 전달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3. 국부(國富)
스미스는 부(富)를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이라 생각하고 이 부가 증가되는 것이 국력이나 경제력 증대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 나라의 부를 증가시키는 것은 그 나라의 생산력 증진이라고 본다. 그에게 있어 생산력은 토지와 노동이다. 그는 이러한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분업을 들고 있다. 여기서 분업은 기술적인 분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직업간, 산업간, 사업간, 도시와 농촌간의 분업 등 사회적 분업까지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산력의 증대를 위해서는 단지 기술혁신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정비하고 합리화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산력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사유재산 제도가 있고, 둘째로 절약과 축적에 의해서 한 나라의 부를 끊임없이 증대시켜야 한다고 스미스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것은 자연 가격론과 그 분석 이론으로, 둘째 것은 자본 이론, 자본 축적과 재생산 이론으로서 각기 후세에 이름을 남기게 한 이론적 핵심이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발췌한 글이다. 제시문을 참고로 하여 분업 생산 체계가 현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론하고, 분업 생산 체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사회의 일반적 업무에서 분업의 효과를 비교적 쉽게 이해하는 데는 어떤 특정 제조업에서 분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고찰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 예로서 대단히 보잘 것 없는 제조업이기는 하지만 그 분업이 흔히 세상 사람의 주목을 끌고 있는 핀 제조 작업을 들어보자. 만약 혼자서 핀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이 일에 대해 교육을 받지도 않고 또 거기에 사용되는 기계들의 사용법도 알지 못하는 노동자는 제아무리 전력을 다해서 일한다 할지라도 아마 하루에 한 개의 핀을 만드는 일도 힘들 것이며, 20개의 핀을 만드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방식을 보면, 작업 전체가 하나의 특수 직업일 뿐 아니라, 그것이 많은 부문으로 나뉘어 있어 그 대부분도 마찬가지로 특수 직업인 것이다.
한 사람은 철선을 늘이고 다음 사람은 바르게 펴고, 셋째 사람은 자르고, 넷째 사람은 뾰족하게 만들고, 다섯째 사람은 핀 머리를 붙이기 위하여 끝을 간다. 핀 머리를 만드는 데도 두셋의 공정이 필요하며, 그것을 붙이는 것이 특별한 작업이라면 핀을 희게 만드는 것도 또 다른 일이며, 핀을 종이에 포장하는 것까지도 하나의 작업인 것이다. 이리하여 핀 제조라는 중요한 일은 약 열 여덟 종류의 작업으로 나뉘어 있어 어떤 제조 공장에서는 그러한 작업이 모두 다른 직공에 의해 이루어진다.
나는 이런 종류의 작은 공장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겨우 열 명이 일하고 있었고, 그 중 몇 사람은 두세 가지의 다른 작업을 겸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약 12파운드의 핀을 제조할 수 있었다. 1파운드의 핀은 중침으로 4천 개 이상이 되므로 10명의 직공은 하루 4만8천 개 이상의 핀을 제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해설
스미스는 분업의 효과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분업은 기능의 개량을 가져온다. 곧 분업에 의해 모든 사람의 일은 단순 작업으로 환원되고, 또 이 작업은 그 사람의 생애에서 단 하나의 일이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기능은 크게 증진된다는 것이다. 둘째, 시간이 절약된다. 즉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옮겨 갈 경우 보통 시간이 상실되지만, 그 시간의 절약에서 생기는 이익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셋째, 기계를 발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저한 분업 체계에 의한 노동 과정은 60년대 이후 인간 소외 현상 등과 같은 심각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곧 지루하고 반복적인 분업의 노동 과정은 그 비인간적 속성으로 말미암아 노동자의 저항을 증대시켰다. 비인간적인 노동 과정인 분업 체계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 증대, 이에 따른 노동 생산성의 저하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끔 만들고 있다. 예를 들면 기계의 비약적 발달 결과인 자동화 생산에서 노동자들의 적응력을 높이고 자발적 동의를 끌어내고자 하는 여러 장치들이 고안되고 있다.
새로운 노동 과정 모델은 분업 체계에서의 대량 생산 방식에서와 같이 일반 조립 공정에서 노동자들이 고정된 작업 라인에 각자 배치되는 일관 작업보다는, 한 팀을 이루어 작업하고 한 팀이 반(半)자율적인 작업 및 의사 결정 집단의 성격을 이루고, 그것을 통해 제품의 질이 개선되는 팀웍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구상(계획)과 실행 분리, 특히 생산 노동자들이 구상(계획) 노동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단순 작업만 반복하던 것이 구상과 실행 기능의 부분적 결합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출처: 대학교육협의회 홈페이지
◈ 논술 대비 읽을 거리
Ⅰ. 고전
1. 三國遺事 ─ 일연
⊙ 작품 해설
①. 일연(一然 : 1206 ∼ 1289)
일연은 경상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에서 김언정(金彦鼎)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지금의 광주 지방인 해양(海陽)의 무량사(無量寺)에서 학문을 닦았고, 1219년에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하여 고승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어 계를 받았다. 일찍이 승과의 선불장(選佛場)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한 뒤, 비파산 보당암(寶幢庵) 등으로 옮겨 참선 수행에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1246년에는 삼중 대사(三重大師)의 승계에 덧붙여 선사(禪師)로 불리고, 몽고의 침입이 끝날 무렵인 1259년에는 대선사(大禪師)의 승계를 제수 받았다. 그리고 고려 조정이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 일연은 광명사(廣明寺)에 머무르면서 충렬왕을 비롯한 왕실 상하의 귀의(歸意)를 받았으며, 1283년에는 마침내 국존(國尊)에 책봉되어 원경충조(圓經沖照)의 호를 받았다.
일연은 선사이면서도 교학(敎學)에 매우 밝았다. 그러한 사실은『제승법수(諸乘法數)』7권,『조정사원(祖庭事苑)』30권 등 1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저술로 알 수 있다. 일연은『삼국유사』를 청도의 운문사(雲門寺)에 머무를 때인 1277년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1281년경에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일연이 살았던 시기는 물론,『삼국유사』가 씌어지던 바로 그 시기는 고려 사회가 안팎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기였다. 대내적으로는 100년간에 걸친 무신정권의 횡포와 대외적으로는 30여 년에 이르는 몽고의 침입이 끝난 다음이었다. 고려 조정이 몽고와의 강화에 이어 1270년에 단행한 개경 환도는 왕정의 복고와 동시에 원나라의 간섭 하에 놓이게 됨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고려 사회에서는 민족적 자주성을 지키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으며, 현실적 어려움을 역사적 전통의 강조를 통해 극복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고려의 종교계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종래의 문신 출신의 귀족 세력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던 교종(敎宗)보다 선종(禪宗)이 오히려 불교계의 주류로서 부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일연은 정사(正史)인『삼국사기(三國史記)』가 간과할 수밖에 없었던 삼국 시대 역사의 다른 부분, 특히 불교에 관한 사료를 수집하여『삼국유사』를 편찬하였던 것이다.
② 책의 체재(體裁)
『삼국 유사』는 일연의 제자 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간행했는데, 그것이 초간(初刊)인지 아니면 중간(中刊)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시대에도 이 책은 간행되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이른바 중종 임신본(壬申本)이라는 것이다. 이 판본은 1512년에 경주 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중간한 것으로서 정덕본(正德本)으로도 불린다. 19세기 중엽까지 경주부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중종 임신본『삼국유사』는 전체가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5권은 다시 왕력(王歷), 기이(紀異),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등 9편으로 편성되어 있다.
「왕력편」은 흔히 단순한 연대표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삼국, 가락국, 통일 신라, 후삼국 등 각 시대 왕의 즉위 연대, 재위 연수, 능(陵)의 명칭과 소재, 왕모(王母)와 왕비에 대한 기록, 연호의 사용, 그리고 외침 기사 등의 국가적인 중대 사건이 기록되어 있어 단순한 연대표로 보기에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다.「기이편」은 말 그대로 신령스럽고 이상한 일들의 기록이다. 여기에서는 단군 신화와 동명왕 신화, 박혁거세 신화, 연오랑 세오녀 신화 등의 건국 신화가 다루어지고 있으며, 전편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흥법편」은 삼국에서 불교가 공인되기까지의 불교 전파에 대한 이야기들의 기록이며, 이차돈의 신비한 순교 등이 실려 있다.「탑상편」에서는 불교 신앙의 대상인 사찰(寺刹), 불상(佛像), 석탑(石塔), 범종(梵鍾)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함으로써 불교 신앙의 세계가 토착화된 면모를 다양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의해편」은 신라 고승들의 전기를 싣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 나라 화엄종의 2대 유파인 원효 대사의 해동종(海東宗)과 의상 대사의 부석종(浮石宗)이 수립된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신주편」은 고승들의 신통한 주술력에 대한 설화를 모은 것으로서, 밀본(密本), 혜통(惠通), 명랑(明朗) 세 승려의 신통력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감통편」에는 불교의 신앙을 매개로 하여 인간계와 다른 세계의 소통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는 광덕의「원왕생가(願王生歌)」, 월명사의「도솔가」를 찾아볼 수 있다.
「피은편」은 세속적인 부귀를 탐내지 않고 속세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숨어살았던 은자(隱者)들에 관한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효선편」에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는 설화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땅에 묻으려 구덩이를 팠더니 돌종이 나왔다는 흥덕왕 대의 손순 설화나 우리 고전의 대표작인 <심청전>의 근원 설화라고 할 수 있는 효녀 지은 설화를 볼 수 있는데, 특히 효녀 지은 설화는 심청이와 같은 인물형이 조선 사회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 신라로부터 전해져 온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이와 같은 『삼국 유사』의 체재는 이전의 고승전(高僧傳) 체재를 본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삼국 유사』에서는 각 편의 이름 자체가 기이편, 탑상편, 효선편 등 고승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편이 설정되었고, 고승전과는 달리 그 대상을 승려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세속인들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삼국 유사』의 서술 체재는 종교의 역사를 다룬 것이기에 고승전과 대비되는 편이 많지만 고승전 체재만을 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전체의 정통 역사 서술 체재를 모방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즉 두 가지 서술 체재를 모두 동원하여 쓴 새로운 형식과 체재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③.『삼국사기(三國史記)』와의 비교
한국 고대사를 대표하는 두 사서(史書)인『삼국유사』와『삼국사기』를 비교해 보면『삼국유사』의 역사적 가치를 보다 잘 알 수 있다. 첫째로,『삼국사기』는 왕명을 받고 김부식(金富軾) 이하 10여 명의 편찬위원들이 편찬한 정사(正史)인 데 반하여,『삼국유사』는 개인이 편찬한 역사서이다. 이러한 까닭으로『삼국사기』는 성격상 왕실 중심, 통치자 중심의 사료(史料)가 주된 편집대상이 되었다. 반면『삼국 유사』는 귀족이나 민중이나 대상자의 신분에 대한 아무런 제약 없이 관심의 대상이 된 사료를 수집하여 수록하였다. 이런 점에서『삼국유사』는『삼국사기』에 비해 주제나 사료의 선정이 훨씬 자유로웠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삼국유사』는『삼국사기』와는 달리 인용된 사료와 저자의 의견을 구분하여 서술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즉,『삼국유사』의 편찬은 근거를 밝혀서 인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거기에 자기의 의견을 첨가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셋째로,『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데에는 많은 사료의 수집이 필요했다. 일연은 여러 사료를 널리 수집하여 그들 사료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점을 가리고 나아가서 자기의 고증을 첨가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태도를 취하였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삼국유사』에 실려 있는「연회도명문수점(緣會逃名文殊岾)」설화이다. 이 설화를 읽고, 밑줄 친 부분의 말을 통하여 노인이 가르치고자 하는 삶의 태도에 관하여 생각해 보시오. (96학년도 서강대학교) 고승 연회는 일찍이 영취산에 숨어살면서 항상 연화경을 읽어 보현 보살의 관행법(觀行法)을 닦았다. 뜰의 연못에는 늘 연꽃 두세 송이가 피어 있었는데 사철 시들지 않았다. 원성왕이 그 상서롭고 기이한 말을 듣고 그를 불러 국사로 삼으려 했다. 스님은 그 소식을 듣자 암자를 버리고 떠났다. 연회가 서쪽 고개 바위 사이를 넘고 있는데, 한 노인이 밭을 갈다가 스님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내가 듣자니 나라에서 잘못 알고 나를 벼슬로 얽어매려 하기에 그것을 피해 가는 중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노인이 이 말을 듣고, "이 곳에서 팔 것이지 왜 먼 데서만 팔려고 수고하십니까? 스님이야말로 이름 팔기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업신여긴다고 생각하여 듣지 않았다. 연회는 몇 리를 더 가다가 시냇가에서 한 노파를 만났는데, 또 그 노파가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연회가 앞서와 같이 대답하자, 노파는 "아까 앞에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 연회는 "한 노인이 있었는데 나를 심히 업신여기기에 기분이 불쾌하여 그만 와 버렸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노파는 "그 분이 문수 보살이신데 그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어쩔 셈입니까?"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연회는 놀랍고 송구하여 급히 그 노인에게로 되돌아가서 머리를 숙이고, "성인의 말씀을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이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시냇가의 노파는 누구입니까?" 하고 말했다. 노인은 "그는 변재 천녀입니다." 하고는 즉시 숨어 버렸다. 이에 연회가 암자로 돌아오니, 조금 후에 왕의 사자가 명을 받들고 와서 그를 불렀다. 연회가 진작 받았어야 하는 것임을 알고 부름에 응하여 대궐로 나아가니, 왕은 그를 국사로 봉했다.
⊙ 해설
이런 문제를 대할 때에는 독해 능력이 상당히 요구된다. 우선 제시된 글의 전체 내용을 파악한 후에 추론을 거쳐 숨어 있는 뜻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밑줄 친 부분에 대한 이해가 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한 점임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선 전체 내용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원성왕이 그 상서롭고 기이한 말을 듣고 그를 불러 국사로 삼으려 하자 스님이 그 소식을 듣고 암자를 굳이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깨달음을 얻은 연회가 왕의 부름에 나간 까닭은 무엇일까. 또 연회가 얻은 깨달음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 연결지어 보면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즉 언제나 자신이 처한 곳에서, 그 곳이 어디이든 간에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을 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삶의 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자기에게 어떠한 기회가 왔을 때, 더 나은 것을 찾아 헤매다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자신이 외면하는 지금의 일이 진정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또 자신의 지금 모습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또 다른 가식은 아닌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부분과 전체 - 하이젠베르크
⊙ 작품 해설
1925년 세계는 약관 23세의 한 청년, 하이젠베르크가 내놓은 <불확정성 원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에너지와 시간 등과 같은 한 쌍의 물리량에 대해서 그 양자를 동시에 관측하여 정확하게 측정, 결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이 <불확정성 원리>는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과 더불어 이전까지 굳건하게 믿어 왔던 뉴턴의 근대적 물리학 기초를 뒤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의『부분과 전체』는 1920년대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에 걸친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를 딱딱한 공식의 설명 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동료 교수 등과의 대화와 토론의 형식으로 해 나가고 있고, 또 내용도 물리학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이 책에 대하여 하이젠베르크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토론과 대화에 있어서 물리학이 항상 주역을 맡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적이고 철학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자연 과학이 이와 같은 일반적 문제들과 분리되어서는 성립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물리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이 책의 의도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게 한다. 현대 물리학은 철학적이며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제점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가능한 한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이 토론에 참여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의 의도대로 이 책은 현대 물리학의 탄생과 발전의 역사에서부터 과학과 종교, 과학과 철학, 과학과 정치 등의 관계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이 부분과 전체로 되어 있는 이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의 과학 기술의 발전은 학문을 매우 세분화, 전문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립자 물리학―소립자의 성질이나 상호 작용을 연구함으로써 소립자의 본질을 밝히는 물리학의 한 분야―의 경우,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서로 무엇을 연구하는지 모를 정도로 세분화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전체를 보는 시각이 없어지고 말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물리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거의 전 분야의 학문이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나무는 보되 숲은 못보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부분과 전체라는 제목은 바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이젠베르크가 현대 원자 물리학의 발전에 대해 글을 쓰면서도 정치적·종교적·철학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싣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하이젠베르크와 디랙의 자연과학과 종교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자연 과학과 종교에 대한 첫 대화(1927)
어느 날 밤, 몇몇 젊은이들과 홀에서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 때 한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아인슈타인이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저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아인슈타인이 모든 자연 과학적 현상에는 일정한 질서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하나님은 주사의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가리킨다―이 사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인슈타인 같은 자연 과학자가 종교적인 전통에 저렇게 강한 유대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가 힘든 일인데 말입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것은 아마 아인슈타인보다 막스 플랑크*가 더 심할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종교와 자연과학에 대한 플랑크의 발표가 있었는데, 거기서 그는 종교와 자연과학 사이에는 모순이 없으며 서로 잘 조화되어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 종교와 자연과학에 관한 플랑크의 견해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느냐, 있다면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몇 번 플랑크와 직접 이야기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얘기는 대부분 물리학에 관한 것이었고 일반적인 문제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플랑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해 준 플랑크의 친구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견해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어떤 상(像)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대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플랑크는 종교와 자연 과학은 실재(實在)의 전혀 다른 두 영역에 각각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양자가 잘 조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물질 세계를 다룹니다.
따라서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실재(實在)에 대한 올바른 진술과 그 연관성을 이해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가치(價値)의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느냐에 관해서는 얘기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 과학에서는 옳으냐 틀리냐가 문제되고, 종교에서는 선이냐 악이냐, 또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됩니다. 자연 과학은 기술적으로 합목적적인 행동에 대한 기반이고, 종교는 윤리의 기반이 됩니다.
18세기 이래로 이 두 영역 사이에 발생하였던 충돌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말하는 상징과 비유를 자연 과학적인 주장들로써 해석하려 할 때에 생기는 오해에 기인하였던 것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내가 집에서 양친으로부터 터득한 바에 의하면 이 두 영역은 서로 분리되어 이 세상의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을 잘 대응시키고 있습니다. 자연 과학은 말하자면 우리가 현실의 객관적인 측면에 어떻게 대응하며 또 어떻게 대결하느냐라는 방식인 것이며, 종교적인 신앙이란 반대로 주관인 결단의 표현이고, 우리는 이 결단에서 가치를 설정하고 그 가치는 우리 생활에 있어서의 행동을 방향지어 줍니다. 이 결단은 대개의 경우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그것이 가정이든 민족이든 또는 문화권이든지 간에―에 잘 조화되는 방향에서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결단은 교육과 주위환경에 의해 가장 강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기 때문에 옳으냐? 틀리냐?라는 기준에 맡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플랑크는 분명히 이 자유를 잘 이용하였으며, 그래서 그는 기독교적인 전통을 선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사고와 행위는 인간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바로 이 전통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며, 어느 누구도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세계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이 아주 훌륭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리는 나에게는 그렇게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인간 공동체가 지식과 신앙의 이 같은 날카로운 분열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갈 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렇게 대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 25세의 폴 디랙이, 나는 도대체 이 자리에서 왜 종교에 관해서 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고 하면서 반론을 제기하였다. 만약 사람들이 정직하다면―특히 자연 과학자들은 더욱 그래야 되지만 ―종교에서는 그야말로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터무니없는 거짓 주장만을 외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신(神)이라는 개념은 도대체가 인간의 환상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우리보다도 훨씬 더 자연의 위력에 눌려 살던 원시 민족들이 자연의 위력에 대한 공포에서 그 힘을 의인화(擬人化)해서 신성(神性)의 개념에 이르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자연의 연관성을 통찰하고 있는 우리 세계에서는 그런 표상(表象)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나는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가정이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계속 도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가정이 어째서,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이 세상에 불행과 불의를, 부자들에 의한 가난한 자의 억압을, 그리고 그가 막을 수 있는 다른 모든 무서운 일들을 어찌하여 허락하였느냐 하는 따위의 무의미한 문제 설정에 이르게 되는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있어서 아직도 종교가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우리를 납득시킬 수 있는 어떤 근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 즉 민중을 달래려는 욕망이 배후에 숨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썽이 없는 사람은, 불안하고 불만에 차 있는 사람들보다 다스리기가 쉽습니다. 이들은 쉽게 이용할 수도 있고 착취하기도 용이합니다. 종교는 민중을 행복한 소망의 꿈으로 부풀게 해 놓고, 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을 기만하기 위하여 민중에게 던지는 일종의 아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커다란 정치적 권력 단체인 두 단체, 즉 국가와 교회의 동맹도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불의에 반항하지 않고 침착하고 참을성 있게 의무를 다하는 사람에게 크게 보답하신다는 환상을, 이 두 단체는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까닭에 이 하나님을 인간의 환상(幻想)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정직하게 말하면, 그것은 죽음에 해당하는 가장 흉악한 대죄로 간주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나는 반박하였다. 당신은 종교가 정치적으로 남용(濫用)된다고 종교를 비판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남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물을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든지 간에 이 세상에는 항상 인간의 공동체가 존재할 것이고, 죽음과 삶,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는 생활과 연결되는 위대한 연관성을 기술(記述)할 수 있는 공통적인 언어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공통적인 언어를 찾는 가운데 역사 안에서 발전된 정신적인 형태는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그에 따라서 자기 생활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커다란 설득력을 소유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지금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쉽게 종교가 폐지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당신에게 있어서는 인격적인 신의 표상(表象)이 나타나는 종교보다 고대 중국의 종교가 더 큰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그러자 폴 디랙이 대답하였다. 나는 종교적인 신화는 근본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여러 종교가 서로 모순된 신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동양에서 태어나지 않고 유럽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주 우연(偶然)에 속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과, 무엇이 진리이며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참된 것뿐입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 하는 것은 그 때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순전히 이성만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한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그 곳에서는 내가 기본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생존을 위한 동등한 권리를 그들에게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이해 관계의 공정한 균형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신의 의지라든가, 죄와 회개, 그리고 내세(來世)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모두 거칠고 냉철한 현실을 은폐하는 데 도움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높은 사람의 세력에 굴복하고 복종하는 것이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이 된다는 생각에 매우 유리한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연관성 따위의 말도 나는 질색입니다.
생활에 있어서는 과학에 있어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앞에 서게 되고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동시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연관성을 운운하는 것도 하나의 사후(事後)적인 사족(蛇足)에 불과한 것이다. 이 토론은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 때까지 토론을 듣고 있기만 하던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예, 예. 우리들의 친구 디랙은 하나의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종교의 주제는 하나님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디랙은 바로 그 종교의 예언자입니다. 이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디랙도 함께 웃었다. 이로써 저녁의 대화는 끝을 맺었다.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 1900년 흑체복사(黑體輻射)의 정상(正常) 스펙트럼에 관하여 가장 합리적인 방식을 발견하고, 이 복사식의 이론적 근거로서 복사의 흡수사출 과정에 있어서의 에너지의 비연속성 가설―즉, 양자가설(量子假說)―의 제창으로 양자 역학이 이론적 기초를 이룬 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 해설
이 부분은 자연과학과 종교와의 관계에 대한 토론으로 종교와 자연과학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서로의 주장들을 정리한 것이다. 토론에 참석한 사람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폴 디랙은 종교는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만 하는 것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나타낸다. 이에 대해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어떻든지 간에 이 세상에는 항상 인간의 공동체가 존재할 것이고, 죽음과 삶,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는 생활과 연결되는 위대한 연관성을 기술(記述)할 수 있는 공통적인 언어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공통적인 언어를 찾는 가운데 역사 안에서 발전된 정신적인 형태는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그에 따라서 자기 생활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커다란 설득력을 소유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지금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쉽게 종교가 폐지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고 속에는 종교와 자연 과학이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자연 과학은 객관적인 물질 세계를 다루고, 그래서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가 되며, 따라서 합리적인 행동에 기반을 두는 반면에, 종교는 가치의 세계를 다루고, 선과 악이 문제가 되며, 윤리의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종교와 자연 과학 사이에 일어났던 충돌은 종교에서 말하는 상징과 비유를 자연 과학적인 주장으로 해석하려 할 때 생기는 오해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충돌은 단지 오해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생물학에 있어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은 결코 오해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종교와 자연 과학이 서로 자신의 존립 근거를 놓고 대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조론이 붕괴되면 신(神)이 부정되는 것이고, 진화론이 부정되면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의 의미가 없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존권적 대립은 종교가 발생한 이후, 그리고 자연 과학이 나타난 이후 계속되어 왔다. 또한 종교가 우세한 시대에는 많은 자연 과학자들이 박해를 받고, 심한 경우 종교재판으로 화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3. 법의 정신 - 몽테스키외
⊙ 작품 해설
『법의 정신』은 프랑스의 사상가로서, 계몽 사상의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인 몽테스키외(Charles de Secondat Montesquieu)가 20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저서이다. 1689년 법조인 집안에서 태어난 몽테스키외는 보르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1716년 보르도의 고등 법원의 의장이 된다. 1721년 유럽 정세를 편지 형식으로 묶어 풍자한『페르시아 인의 편지』를 발표하여 문학자의 재능을 발휘하기도 한 그는 1726년 관직을 사임하고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영국 등을 여행하며 여러 제도와 문화를 접한다. 1734년『법의 정신』의 선구적인 소묘라고 할 수 있는『로마 성쇠원인에 대한 고찰』을 발표하고, 1748년 준비 기간만 해도 20여 년이 걸린 그의 대표작『법의 정신』을 출간한다. 이 책은 2년 동안 22판을 거듭 발행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법의 정신』완성 후 현저하게 체력이 쇠퇴한 그는 1755년 64세의 일기로 파리에서 그 생을 마감했다.
『법의 정신』의 내용은 대단히 광범위하며, 법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저하게 경험주의 방법에 입각하여 저술한 이 책은 고대에서뿐만 아니라 당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각국,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제국을 포함하는 전세계적 범위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풍부한 실례를 분석하고 비교· 검토함으로써 비교 법학의 명저로 인정받고 있다. 총 31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저서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법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생각과 유명한 '권력분립론'에 관한 것이다. 몽테스키외에게 있어서 법은 곧 인간의 이성이며, 법의 정신은 그러한 이성이 발현되는 입법의 원리이다.
따라서 법은 홀로 동떨어진 어떠한 추상적인 이념이 아닌 물적·정신적·사회적 현실에 관계된 것으로, 인간 관계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몽테스키외는 인간 관계의 반영인 법이 모든 백성을 지배할 수 없다면, 그 법은 관계를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제11편에서 몽테스키외는 자유에 대해 고찰하며 권력분립론을 다루고 있다. 그는 "자유를 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자유란 다만 그 바라는 것을 행할 수 있고 또한 바라지 않는 것을 행하도록 강제 당하지 않는 것에만 존재한다. …… 자유란 모든 법이 허용하는 것을 행하는 권리이다" 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그의 권력 분립론은 이러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 즉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서 주창되었다고 볼 수 있다.『법의 정신』에 나타난 몽테스키외의 이러한 사상은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에서 그 열매를 맺었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 몽테스키외의『법의 정신』의 일부분이다. 제시문 (가), (나)에 드러난 법과 인간 관계를 고려하여 바람직한 법 제정의 방향에 대해 논술하시오.
(가) 가장 보편적인 의미에서 볼 때 법이란 사물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필연적인 관계를 말한다. 이 의미에서는 모든 존재가 그 법을 가진다. 예컨대 신은 신의 법을 가지고, 물질계는 물질계의 법을 가지며, 지적 존재, 이를테면 천사도 그 법을 가지고, 짐승 또한 그들의 법을 가지며, 인간은 인간의 법을 가진다. 맹목적인 운명이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은 옳지 못하다. 지적 존재가 맹목적인 운명의 소산이라는 것처럼 이치에 어긋나는 말은 없다. 따라서 원초적 이성이 있는 것이며, 법이란 그것과 온갖 존재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이들 온갖 존재 상호간의 관계인 것이다.
우주에 대하여 신은 그 창조자 및 유지자로서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므로 신이 우주를 창조한 법은, 그것에 따라서 신이 우주를 주관하게 되는 것이다. 신이 이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이유는 신이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신이 그것들을 만든 이유? 그 규칙들이 신의 예지와 힘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것처럼 세계는 물질의 운동에 의하여 형성되어, 지성을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운동은 불변의 규칙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자의적인 행위처럼 보이는 창조도 무신론자가 주장하는 운명과 같은 정도로 불변의 규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창조자가 이런 규칙 없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왜냐 하면 세계란 그 규칙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규칙들은 항구적으로 정해진 관계이다. 어떤 운동체와 다른 운동체 사이에는 모든 운동이 질량과 속도의 관계에 따라 받아들여지고, 증대되고, 감소되고 계속된다. 개개의 다양성은 균일이며, 개개의 변화는 항구적이다. 모든 지적 존재는 스스로 만들어 낸 법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만들지 않은 법도 가지고 있다.
지적 존재가 존재하기 전에도 그것들은 존재가 가능했으므로 그 존재들은 가능해질 수 있는 관계, 즉 자기의 법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은 실정법(實定法)이 존재하기 전에 정의의 가능한 관계가 존재했다는 데 기인한다. 실정법이 명령하거나 금하는 것 이외에는 정의도 부정(不正)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원이 그려지기 전에는 모든 반경이 달랐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그것을 확정하는 실정법에 앞서 형평(衡平)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지적 세계가 물질적 세계처럼 잘 지배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지적 세계도 법을 가지며, 비록 그 법의 본성이 불변한다고는 하지만, 지적 세계는 항구적으로 그 법에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개개의 지적 존재는 그 본성이 유한한 것이므로, 따라서 오류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적 존재가 자기 스스로 행동하는 것은 그 본성이다. 따라서 그것은 반드시 항구적으로 그 원초적인 법에 따르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지적 존재는 자기 스스로 만든 법조차 항상 따르지는 않는 것이다. 짐승이 운동의 일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특수한 동작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쾌감의 매력에 의하여 그들은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고, 또한 같은 매력에 의하여 종(種)을 유지한다. 그들은 자연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항구적으로 그 자연법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식물에게서는 오성과 감성도 인정할 수 없으나, 그 식물 쪽이 보다 더 완전하게 법칙에 따른다. 짐승에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우월성이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없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인간들처럼 희망 또는 공포도 갖지 않는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죽음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인간들보다 스스로를 더 잘 보존하고, 그 정념을 인간들처럼 악용하는 일이 없다. 인간은 물질적 존재로서는 다른 물체처럼 불변의 법칙에 의하여 지배된다. 지적 존재로서의 그는 신이 정한 이 법칙을 끊임없이 다스리고, 또 스스로 정한 법칙을 변경한다. 그는 스스로 길을 정해야만 한다. 그는 한정된 존재에서 모든 유한의 지성처럼 무지나 오류를 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그가 갖는 빈약한 오성, 그것마저도 잃어버리고 만다. 감성을 지니는 피조물로서 인간은 무수한 정념에 사로잡힌다.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창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 속에서 타인을 잊는 경우가 있었다. 입법자는 정법(正法)과 시민법(市民法)으로써 그로 하여금 그 의무로 돌아가게 했던 것이다.
(나) 이런 모든 법 이전에 자연의 법이 있다. 자연의 법이라고 명명되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 존재의 구조에서만 유래하기 때문이다. 그 자연법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성립되기 이전의 인간을 고찰해야 한다. 자연법이란 이 같은 상태에서 인간이 받는 법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창조자의 관념을 새겨 주고, 인간을 신에게로 인도하는 그 법이, 그 중요성에 의하여 자연법 중 제1의 법이 된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 있어서는 지식을 갖는다기보다도 인식 능력을 갖는다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운 견해일 것이다. 최초의 관념이 사변적 관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는 자기 존재의 기원을 탐구하기 전에 그 유지를 생각할 것이다. 이런 인간은 먼저 나약함밖에 느끼지 않으므로 매우 소심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한 증명으로는 숲 속에 살던 미개인을 들 수 있다. 모든 것이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하고 도망치게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각자는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낄 뿐 서로 평등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 공격할 것을 원하지 않으므로, 평화가 제1의 자연법일 것이다. 홉스가 인간은 먼저 서로를 정복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지배와 정복의 관념은 매우 복잡하여 다른 많은 관념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인간이 첫째로 갖는 관념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그 육체적으로 필요한 감정을 갖는다. 그래서 제2의 자연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리라.
한편 인간은, 동물이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접근할 때에 느끼는 쾌감에 의해서도 서로가 접근하게 될 것이며, 또한 양성이 상호간의 차이에 의하여 자극을 주는 그 매력은 이 쾌감을 증대시킬 것이다. 따라서 양성이 항상 서로 사모하는 자연스러운 소원이 제3의 자연법이다. 인간은 맨 처음 갖는 감정 외에 그것을 보완한 지식을 갖는다. 또한 인간은 다른 동물이 갖지 않는 제2의 유대를 갖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가 결합되는 새로운 동기를 갖게 되며,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 욕구가 제4의 자연법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 생활을 영위하게 되자 곧 열악한 감정을 잃게 되었다. 상호간에 있었던 평등은 끝나고 전쟁 상태가 시작되자 각 사회는 그 힘을 자각하기에 이르고, 그 사실은 민족 사이의 전쟁 상태를 조성했던 것이다. 각 사회에 있어서의 개인은 그 힘을 자각하기 시작하고, 그들은 그 사회의 주된 이익을 자기에게만 돌리고자 노력한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 전쟁 상태를 조성한다. 이 두 전쟁 상태가 인간들 사이에 법률을 제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광대하고도 서로 다른 민족의 존재를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이 유성(遊星)의 주민으로서 고찰한다면, 인간은 그 민족들이 상호간에 가지는 관계에 있어서의 법률을 갖는다. 그것이 바로 만민법(萬民法)이다. 유지되어야 할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으로서 고찰한다면, 그들은 통치하는 자가 통치 받는 자와의 사이에 갖는 관계에 있어서의 법을 갖는데, 그것이 바로 정법이다. 또 그들은 모든 시민 상호간에 갖는 관계에 있어서도 법을 갖는다. 그것이 시민법이다. 만민법은 다음의 원칙 위에 성립한다. 즉, 여러 민족은 각자의 참된 이익을 손상하는 일없이 평시에는 최대한의 선(善)을, 전시에는 최소한의 악(惡)을 서로 행해야 한다.
법이란 인간 이성을 말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국민의 정법 및 시민법은 바로 이 인간 이성이 적용된 특수한 경우여야 한다. 그들 개별적인 법률은 그것이 적용되어야 할 민족에게 적합한 것이어야 하므로, 어느 한 국민의 법률이 다른 국민에게도 적합하게 된다면 그것은 극히 드문 우연한 경우이다. 그 법률들은 설립되어 있는, 또는 설립하고자 하는 정치 형태의 성질과 원리에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 법률은 정법같이 국가 형태를 구성하기도 하며, 혹은 시민법 같은 형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끝으로 법률은 그것들 상호간에 관계를 갖는다. 법률은 그것들 자체의 기원(起源), 입법자의 의도, 그것이 제정된 기초가 되는 사물의 질서 등과 관계하고 있다. 그러므로 법은 이런 모든 관점에서 고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에서 시도해 보려는 점이다.
⊙ 해설
제시문은 몽테스키외의『법의 정신』중에서 첫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법 일반에 대해 해설하고 있는 부분을 전재한 것이다. 논제를 풀기 전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법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얼마든지 다양한 견해가 제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몽테스키외의 생각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몽테스키외의 이 저서는 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전범으로서 가치가 있으며, 그의 사상이 아직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가 생각하고 있는 법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 이를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본래 원문에서는 소 항목이 붙어 있다. 여러 존재와의 관계에서의 법, 자연법, 실정법 등이 그것이다.
(가)로 제시된 부분에서는 법에 대한 총괄적인 접근을 통해 법은 인간 관계의 반영임을 강조하고 있고,
(나)부분에서는 자연법과 실정법의 해설을 통해 법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주된 논지는 법은 홀로 동떨어진 추상적인 이념이 아닌 물적·정신적·사회적 현실에 관계된 것으로 인간 관계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의 정신을 고려한다면 입법의 원리, 즉 법 제정의 원리의 핵심도 당연히 인간 관계에 놓여야 한다. 법을 위한 법이 아닌 인간을 위한 법이 되어야 한다. 만약 어떠한 법이 백성을 제대로 지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인간 관계를 적절히 반영하지 않은 법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법 제정은 당연히 인간 관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성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그들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인간 관계의 이성적 발현, 그것이 곧 입법의 원리인 것이다.
4. 물질 문명과 자본주의 - 브로델
⊙ 작품 해설
브로델(Fernard Braudel)은 1902년 프랑스의 로렌 지방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지리학을 전공하였고 알제리, 프랑스, 브라질 등지에서 역사를 강의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5년 동안 감옥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 순전히 기억에 의거하여 16세기 지중해 지역 역사에 대한 논문을 썼다. 한편 그는 블로크와 페브르가 창립한 유명한 역사 잡지 아날(Annales, 연보): 경제, 사회 문명지의 편집 위원이 되었는데 1956년에는 편집인이 되었다. 이 잡지는 오늘날까지도 세계 역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날 학파를 이끈 블로크, 페브르, 그리고 브로델은 기존의 역사가들이 정치, 외교 사건들을 강조하는 데 반대하여 그러한 사건들 밑에 깔려 있는 제반 조건들, 예컨대 기후, 지리, 인구, 음식, 통신, 교통 등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①. 시장 경제, 물질 문명, 자본주의의 구분
브로델은 15∼18세기 사이의 경제 생활을 삼분법적 도식을 사용하여 이해한다. 당시 경제의 발전과정(그는 진화 과정이라고 말한다.)이 하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각각의 독자적인 논리에 따라 지배받는 3층 구조로 이루어진다고 파악한다. 첫째 시장경제는 농업 활동, 노점, 수공업 작업장, 상점, 증권거래소, 은행, 정기 시장 및 시장에 연결된 생산과 교환의 메커니즘이다. 시장경제는 현실적으로 명료하고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학은 이 과정에만 연구를 집중한다. 이와 달리 관찰하기 쉽지 않은 영역으로 물질 문명 혹은 물질 생활이 있다.
이 영역은 시장경제의 밑에 숨어 있으면서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자급자족적이며 극히 좁은 범위에서의 물물교환 행위 등이 이루어지는 하부경제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시장경제와는 달리 특권적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활동영역이 존재한다. 이 영역은 환업무 등과 같이 일반인들이 모르는 유통 및 계산방식을 채택하여 상층의 사회적 위계질서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생활의 투명한 층인 시장경제는 교환논리에 지배를 받고, 물질문명은 자급자족의 논리에 지배를 받으며, 자본주의는 독점의 논리에 각각 지배받는다.
② 일상 생활의 구조, 교환의 세계, 세계의 시간
이 책은 제1권 일상 생활의 구조 : 가능과 불가능, 제2권 교환의 세계, 제3권 세계의 시간 등 전체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분에 의한 저술이 가능하게 된 토대는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새로운 시각이었다. 그에게 역사는 장구한 세월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지리적 시간, 그 위에서 완만하게 전개되는 사회적 시간, 마지막으로 숨가쁘게 전개되는 정치적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이러한 세 가지 시간의 단층을 모두 측량해야 올바른 역사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는 이 중에서도 장기적이고 변함이 없는 지리적 시간을 중시했다.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 실려 있는 제1권이 일상생활의 다양한 모습을 면밀히 고찰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일상 생활을 시간 및 공간 속에 끼여들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사실이라고 정의하고 그러한 사소한 일상생활을 분석하기 위해 먹고(食), 입고(衣), 자는(住) 양식들의 다양한 특성들을 심층적으로 탐색한다. 이는 별로 눈에 띄지도 않지만 도처에 편재하고 침투하며 반복되면서 문명의 성질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편 제2권은 주로 경제를 다루고 있다. 브로델은 물물교환에서부터 최상층의 자본주의에까지 관통하는 교환의 기능을 분석한다. 특히 그는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물질문명과 상부사회를 형성하는 경제문명, 즉 자본주의 경제를 구분하여 서술한다. 제3권은 세계경제에 대하여 경제적으로 자율적이고, 본질적으로는 자족적이며, 지역 내적인 연결 및 교환에 의해 유기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는 구조로 파악한다. 또한 세계 경제에는 노예제에서부터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의 생산양식이 공존하고 있으며, 중심부, 준주변부, 주변부라는 불평등한 권역으로 구분되어 있고 이러한 불평등 구조는 결코 치유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브로델은 인간 생활의 전체를 제한하고 포괄하는 다소 넓은 경계를 긋고 싶어한다. 그것은 그가 서문에서 밝힌 바대로 해당 시기의 물질적 한계를 의미하는 가능과 불가능의 구분,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상승과 하강의 장기적 순환으로 인식하고, 일상 생활의 모습 속에 전체적인 역사적 통일성과 관련성을 파악하려고 하는 그의 노력 속에 녹아 있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 브로델의 『물질 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의 의도를 분석하고 이와 비슷한 예를 현대 사회에서 찾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 보시오.
오늘날 서구의 많은 레스토랑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요리는 아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중국요리에는 천 년 이상이나 변화하지 않은 규칙, 의식, 그리고 세련된 조리법이 있고, 또 중국인들은 맛의 영역과 그 맛들의 조화에 감각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커다란 주의를 기울이며, 또 요리를 먹는 법을 존중한다.
…중략…
물론 중국요리는 몸에 좋고 맛있으며 다양하고 창조적이라는 것, 얻을 수 있는 모든 재료를 감탄할 정도로 잘 이용한다는 것, 또 그것이 균형 잡혀 있어서 예컨대 신선한 야채와 콩의 단백질이 육류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모든 종류의 음식 저장술이 여기에 더해진다는 것 등이 모두 사실이다. …중략…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이러한 음식이 일반 대중이 먹는 것이었는가? 프랑스에서는 확실히 그렇지 않았다. 농민은 그의 잉여물만 파는 것이 아니라 흔히 그 이상의 것을 팔았고, 특히 그가 생산한 최상품을 그 자신이 먹지 못했다. 그는 조와 옥수수를 먹고 밀을 내다 팔았다. 그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먹는 대신 가금, 계란, 새끼 염소, 송아지, 새끼 양을 시장에 내갔다. 중국에서처럼 축제날 실컷 먹는 것이 일상에서의 단조로움과 부족함을 깨는 기회였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민속음식을 유지시켜 가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의 음식은 요리 책에 나오는 음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요리 책은 특권계층을 위한 것이었다. 예컨대 1788년 한 미식가가 프랑스의 훌륭한 요리에 대해서 작성한 목록이 그러한 것이다. …중략…
확실히 중국에서도 사정이 비슷하다. 세련된 음식, 다양한 요리, 심지어 단순히 배부르게 먹는 것조차도 부자들의 이야기였다. 한 속담에 의하면 술과 고기는 부(富)와 일치하는 반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먹는다는 것이 오직 쌀을 씹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창과 스펜서는 1805년에 존 배로가 이야기한 바대로 먹는 데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중국만큼 큰 곳은 세상에 없다는 주장이 옳다는 데에 동의한다. 스펜서는 18세기의 유명한 소설인『홍루몽』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를 인용한다.
젊고 부유한 주인공이 우연히 한 하녀의 가난한 집을 방문한다. 그 하녀는 가지고 있는 것 중 최상의 것인 과자, 마른 과일, 호두 등을 그릇에 예쁘게 놓아 그에게 대접하면서 주인께서 드실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한다.
⊙ 해설
제시문은 음식에 대하여 소수 특권층의 양식과 일상적인 양식, 즉 상층과 하층의 생활 양식을 구분하고 있다. 일반 대다수 사람들의 기본 양식은 일상 용품의 의미로, 소수 특권층의 양식은 사치품의 의미로 구분한다. 사실 사치는 자신의 경제적 부와 특권을 외부로 나타내는 역할과 함께, 누적된 자본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경제가 이미 생산된 잉여를 비경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분들은 현대, 특히 한국사회에서 사치현상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사치를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음을 포착하는 것도 윗글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예컨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밍크코트, 골프, 자동차, 양주 등이 사치품으로 인식되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의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치품과 일상 용품의 구분이 타당한가에 대하여 판단해야 한다.
참고로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사치나 유행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이를 근거로 사치와 일상을 구분하는 시각이 틀렸다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브로델이 인용한 다음 글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먹고 싶어하던 귀한 음식이 마침내 일반대중에게 도달했을 때 갑자기 그 소비량이 폭증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억눌렸던 식욕이 폭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일단 대중화하고 나면 이 음식은 곧 매력을 잃게 된다. 그리고 일종의 포만한 상태에 이른다. 또한 사치는 사실 그 어느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사회적 수준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 수준차이는 매번 변동이 있을 때마다 새로이 생겨나는 것이라는 그의 말도 음미해 볼 만하다.
5. 목민심서(牧民心書) - 정약용
⊙ 작품 해설
① 정약용(丁若鏞 : 1762∼1836, 영조 38∼헌종 2)
다산(茶山) 정약용은 전남 강진의 유배지에서 학문에 몰두, 우리 나라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정치 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 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 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奴婢制)의 폐지 등을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학문 체계는 유형원(柳馨遠)과 이익을 잇는 실학(實學)의 중농주의적 학풍을 계승하고 있으며, 박지원(朴趾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北學派)의 기술 도입론을 과감히 받아들인 것이며, 그의 방대한 저서로 보아 실학을 집대성한 가장 위대한 학자로 평가된다.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에 뛰어나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애국주의적 사상은 한국의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고, 그의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그의 대표작으로는『경세유표(經世遺表)』와『목민심서(牧民心書)』,『흠흠신서(欽欽新書)』가 있다. 그의 토지제도론으로는 여전제(閭田制)와 정전제(井田制)가 있다. 여전제는 조선조의 토지 제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농촌 경제를 여(閭) 단위로 재편성하는 것인데, 여란 25호 정도로 구성되는 일종의 협동 농장을 말한다. 이 역시 실현성이 적은 급진적인 주장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현실적인 개혁론으로 수정된 것이 정전제이다.
② 시대적 배경
정약용이 살던 시대는 민중 소요의 시대였다. 관리들의 학정과 3정의 문란으로 인해 일반 민중의 생활은 몹시 궁핍할 대로 궁핍해져 있는데다가, 가뭄이나 전염병이 몇 년에 한 번씩 전국을 휩쓸어, 민중들의 살길은 더욱 막막해졌다. 그래서 민중들 중에는 세금을 피해 토지를 버리고 도망쳐 도둑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자기 마을에 남아 있는 경우에도 자주 관리들에게 세금을 줄여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의 부패한 관리들이 이를 들어줄 리 만무했고, 결국 선량한 백성들은 이를 힘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민요(民擾, 민중들의 소요)와 민란(民亂, 민중들의 반란)이다.
대표적인 것이 1811년에 있었던 평안도 민란(일명 홍경래의 난)이다. 정치의 부패와 사회 기강의 문란, 그리고 민중들의 소요는 양심 있는 양반들 사이에 새로운 각성을 촉구시켰다. 즉, 조선의 정치와 사회를 개혁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주로 정치 권력에서 밀려난 양반이나 몰락한 양반들에 의해서 일어났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실학(實學)이다. 따라서 실학의 출발점은 학문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③ 작품 내용
『목민심서』는 한 마디로 얘기하면 지방에 있는 관리들이 백성을 다스리는 데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만든 지침서이다. 이는 정약용 자신의 관리 생활 경험, 그리고 18년 유배 생활 동안의 체험과 분석, 그리고 중국과 조선의 방대한 역사적 자료에 근거하여 저술한 것이다. 여기에는 지방 수령이 임명을 받는 과정에서부터, 부임하여 각 분야의 행정을 담당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아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각 지방의 수령이 현행 법 제도 아래에서 최선을 다하면 실행 가능한 각종 정책도 제시되어 있다. 정약용은 서문의 마지막에, 왜 책의 이름을『목민심서』라고 하였는가에 대해,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유배중인 몸이라 몸소 실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심서라 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총 목차를 보면『목민심서』는 서문에 해당하는 자서를 빼고, 부임에서부터 해관까지 모두 12`부로 구성되어 있다. 또 각 부마다 6`조로 나누어진 세부 항목이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모두 72`조가 된다.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이 총 목차에 드러나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임 6조(赴任六條) : 목민관이 임명을 받아서 임무를 수행하기까지 가져야 하는 마음 자세와 행동율기 6조(律己六條) : 목민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규율과 실천 방안봉공 6조(奉公六條) : 목민관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지켜야 할 사항애민 6조(愛民六條) : 목민관이 노인이나 어린이, 곤궁한 자들을 대해야 할 자세이전 6조(吏典六條)에서 공전 6조(工典六條)까지 : 지방 관청의 6부, 즉 이, 호, 예, 병, 형, 공의 각 부서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을 이전, 호전, 형전, 공전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수록진황 6조(賑荒六條) : 흉년이나 재난시에 백성을 구제하는 방법이나 준비해관 6조(解官六條) : 목민관이 임기를 마치고 그 지방을 떠날 때 가져야 하는 마음 자세나 행동 이 가운데, 부임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제1부 부임 6조(赴任六條)」
행장을 차릴 때, 의복과 안마(鞍馬, 안장을 얹은 말)는 본래 있는 그대로 써야 할 것이며, 새로 마련해서는 안 된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절용(節用, 아껴서 씀)하는 데 있고, 절용하는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한 후에라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한 후에라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야말로 목민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어리석은 자는 불학 무식해서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에 날랜 말을 타는 것으로 위풍을 떨치려 한다. 그런데 신관의 태도를 살피는 아전들은 먼저 신관의 의복과 안마의 차림새를 알아보고, 만약 사치스럽고 화려하다 하면 생긋 웃으면서 알 만하다. 하고, 만약 검소하고 질박하다 하면 놀라면서 두렵다고 한다. 금침(衾枕, 침구)과 솜옷 외에 책 한 수레를 싣고 간다면 맑은 선비의 행장(여행짐)이 될 것이다.
요즈음 수령으로 부임하는 사람들은 겨우 책력(冊曆, 책으로 된 달력) 한 권만 가지고 가고, 그 밖의 서적들은 한 권도 행장 속에 넣지 않는다. 임지에 가면 으레 많은 재물을 얻게 되어 돌아오는 행장이 반드시 무겁기 마련이니, 한 권의 책일망정 부담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슬프다. 그 마음가짐의 비루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 또 목민관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문사(文士, 글 하는 선비)가 벼슬을 살게 되면 이웃에 사는 선비들이 질문을 하기도 하고 논란도 벌일 것이며, 이보다 한 등 아래로는 과문(科文, 과거를 위한 글)을 공부시키기도 할 것이며, 이보다 한 등 아래로는 또 혹시 이웃 고을수령들과 한자리에 모여 산수간에 노닐면서 운자를 내어 시도 짓게 될 터이니, 모름지기 고인의 시집도 있어야 한다. 하물며 전정(田政), 부역(賦役), 진휼(賑恤), 형옥(刑獄)에 옛책을 상고하지 않고 어찌 논의를 하겠는가.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목민심서』를 쓰게 된 배경을 소개한 서문(序文)이다. 이 글을 읽고,『목민심서』에서 말하는 목민관의 자세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시오.
성현의 가르침에는 원래 두 가지 길이 있다. 사도(司徒, 예교로써 백성을 교화하는 일을 맡아보는 관리)는 만백성을 가르쳐 수신(修身, 몸을 수양케 함)케 하고 태학(大學, 수도에 둔 최고 교육 기관, 태학이라고 읽음)에서는 국자(國子, 왕족 및 귀족의 자제)를 가르쳐 각기 수신하고 치민(治民, 백성을 다스림)케 하였으니, 치민하는 것이 목민(牧民, 백성을 다스림)이다. 성인의 시대가 이미 멀어졌고 그 말씀도 없어져서 그 도가 점점 어두워졌으니,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바는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下民,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서로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 배만 살찌우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나의 선친께서 조정의 지우(知遇)를 받아 두 현의 현감, 한 군의 군수, 한 부의 도호부사, 한 주의 목사를 지냈는데, 모두 치적이 있었다. 나는 비록 불초(不肖)로서도 쫓아 배워서 다소간 들은 바가 있었고, 보아서 다소간 깨달은 바가 있었으며, 물러나 이를 시험해 봄으로써 다소간 체득한 바가 있었다. 이윽고 유락한 몸이 되어 쓰일 데가 없었다. 먼 변방 귀양살이 8년 동안에 오경(五經)·사서(四書)를 읽고 되풀이 연구하여 수기(修己)의 학(學)을 익혔으나, 이윽고 생각해 보니 수기의 학은 학의 반에 불과하다. 이제 23사(史, 고대에서 당시까지 기술한 23권의 중국 역사서를 말함)와 우리 나라의 여러 역사 및 자집(子集, 사상서와 문집) 등 여러 서적에서 옛날의 사목(司牧)이 백성을 기르는 유적을 골라 위 아래로 뽑아 정리하며, 종류별로 나누고 모아 차례로 편성하였다.
⊙ 해설
그의 자서(自序, 서문)에 보면 당시의 수령들이 제 먹을 것만 찾고 수령으로서 해야 할 일을 몰라 농민들이 모두 피폐하고 도탄에 빠졌는데 수령들만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에 살이 쪘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백성을 잘 다스려야 목민이니 목민관은 수신(修身)과 선정(善政)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첫머리에 목민(牧民)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목민을 책임진 지방수령들의 기본자세가 얼마나 진지해야 할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른 벼슬은 구해도 가하거니와 목민하는 벼슬을 구하는 것은 불가하다. 만약 재능과 덕망을 가진 자가 스스로 그 재능을 요량해서 목민할 자신이 서면 글을 올려 한 고을의 수령이 되는 것을 자청할 수는 있지만, 한갓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었는데 숙수(菽水, 콩과 물, 변변하지 못한 음식)를 잇대기가 어렵다고 해서 한 고을 수령되기를 청하는 것은 올바른 도리가 아니다. 이것은 바로 수령이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마치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군왕과도 같으므로 대단히 어려운 자리임을 강조하려는 뜻이다. 당시 지방 관아에서는 교활한 아전들이 선량한 백성들을 속이고 있었기 때문에 수령이 현명하지 않으면 백성들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정약용은 목민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령은 일반 관리가 아니라, 백성을 기르는 성스러운 목자(牧者)여야 한다는 것이다.
6. 멋진 신세계 - 헉슬리
⊙ 작품 해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영국이 낳은 현대 작가 가운데 매우 뛰어난 작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대표작『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1932년 처음 출간되었으며, 이 작품이 출간되었을 당시 영국 문단으로부터 그야말로 선풍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헛소동(Tempest)』의 5막 1장에서 인용한 것으로, 영미 작품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제목을 인용한 예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 존 스타인벡의『달은 지다(Moon Is Down)』는『맥베스(Macbeth)』의 2막 1장에서,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의『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는 5막 5장에서 인용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이 작품 제목을 다른 작품 속에서 따오는 것을 독자들은 얼핏 생각하기에 단순한 문학적 표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곧 현대 문학이란 철저하게 고전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 즉 고전 문학 없이는 오늘날의 현대 문학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멋진 신세계』의 주제는 한 마디로, 극도로 발달한 기계문명과 과학의 성과 앞에서 노예로 전락하여 마침내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인간사회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문학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공상과학 소설이라는 문학장르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 범주화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점이 있다. 이 작품은 과학의 진보, 기계·기술·물질 문명의 급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아무런 통제나 여과의 메커니즘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비록 상황설정은 일반 공상과학 소설과 큰 차이가 없지만, 결국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파괴되고 신이라는 영적 존재가 도외시된 채 몰가치하고도 무차별적으로 인간 사회가 침범 당할 때 일어나게 될 상황과 전체주의와 같은 끔찍한 사회체제가 병행될 때 일어날 결과는 어떠할 것인가 하는, 그런 좀더 인간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에 제시된 글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지은『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의 일부분으로서, 레니나는 바로 오늘날의 물질적 풍요 속에서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지 밝히고,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 비판하시오.
둘이서 함께 외출한 오후는 매우 화창했었다. 레니나는 우선 토키 컨트리클럽에서 수영을 한 다음 옥스퍼드 유니언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버나드는 그 곳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세인트 앤드류에 가서 전자 골프를 한 게임 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러나 버나드는 그것 역시 싫다고 했다. 전자 골프 같은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 시간이라는 것이 왜 존재하죠?" 레니나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버나드는 시간이라는 것은 호숫가를 산책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실 버나드는 레니나에게 그렇게 하자고 제의를 했다. 스키도 산의 정상에 착륙하여 두 시간 정도 히드 덤불이 만발한 숲속을 산책하자고 했던 것이다. "레니나! 당신하고 단둘이 말이오." "하지만 버나드! 우린 밤새도록 단둘이 있게 될 텐데요……." 버나드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내 말은, 우리 단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거요." "이야기요? 무슨 이야기를 하죠?"
산보와 이야기…… 레니나는 오후를 그런 식으로 보낸다는 것이 좀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레니나는 마음 내켜하지 않는 버나드를 설득해서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 여자 중량급 레슬링 선수권 준준결승전을 구경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군. 보통 때와는 다르게 말이야".
버나드가 투덜댔다. 그는 오후 내내 매우 우울한 표정이었다. 레슬링 경기를 하는 곳마다 아이스크림 판매대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버나드는 레니나의 친구들을 여러 명 만났지만 그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하려 들지 않았다. 버나드는 그렇게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니나가 내민 소마가 들어 있는 반 그램의 딸기 아이스크림을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이대로의 나 자신이 좋소. 비록 비참할지언정 이대로의 내가 좋단 말이오.
소마를 먹고서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나는 타인이 되기는 싫소." 버나드가 말했다. "먹어 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레니나는 *수면 학습에서 배운 대로 말했다. 버나드는 레니나가 내민 유리잔을 신경질적으로 밀쳐 냈다. "화내지 마세요. 1g의 소마가 열 가지 우울증을 치료한다구요." "오, 제발 조용히 좀 해!" 버나드가 소리치자 레니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안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니까요."
레니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소마가 든 딸기 아이스크림을 자신이 먹어 치웠다. 해협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길에 버나드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를 멈추고 추진기만으로 바다 위 백미터 상공을 배회하자고 제의했다. 기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갑자기 서남풍이 일며 하늘에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저것 좀 봐!" 버나드가 말했다. "무서워요." 레니나는 헬리콥터의 창문으로부터 몸을 움츠려 빼면서 말했다. 레니나는 다가오는 공허한 밤과 아래서 고개를 치켜드는 검은 파도와 그 파도가 일으키는 하얀 물거품이 무서웠으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구름 사이에서 나타나는 달의 창백한 얼굴이 무서웠다.
레니나는 조종석 앞에 있는 라디오의 다이얼로 손을 뻗어 아무렇게나 틀었다. "……너의 내부에는 푸른 하늘" 16명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날씨는 언제나……" 그 다음 순간 갑자기 딸깍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버나드가 라디오의 스위치를 껐던 것이다. "난 조용히 바다를 보고 싶소. 그런 잡음과도 같은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분위기에서는 바다를 바라볼 수가 없소" "하지만 멋진 음악이잖아요. 그리고 전 바다를 보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무서울 따름이에요." "하지만 난 바다를 보고 싶소.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여기에서 버나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말을 찾으려고 잠시 머뭇거렸다. "마치 나라는 사람 이상이 된 것 같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훨씬 더 나 자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오. 타인의 일부나 혹은 사회 조직체 속의 한 세포에 불과하지 않고 말이오. 당신도 그런 기분이 들지 않소, 레니나?" "무서워요, 무서워요." 레니나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실 수 있어요? 그건 마치 사회의 일부가 되기 싫다는 말이군요. 결국 만인은 만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요? 어느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안 되는 거라구요. 심지어 입실론 계급조차도 말이에요.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심지어 *입실론 계급조차도 유용하다는 것을 말이오. 게다가 나도 그렇고…… 그런데 사실 난 그러고 싶지 않소." 버나드가 조소하듯 말했다. 레니나는 버나드의 이러한 신성모독적인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버나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레니나는 당황한 음성으로 항의했다.
버나드는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레니나의 말을 뇌까리면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문제는 내가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가 하는 것이오. 아니, 그보다 내가 혹시 그럴 수 있다면, 즉 내가 자유롭게 된다면, 그리고 조건 반사 훈련으로 노예화되지 않았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문제요". "버나드 끔찍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레니나, 당신은 자유롭고 싶지 않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전 자유로워요.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구요. 오늘날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구요." 버나드가 웃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다. 이 말을 우리들은 다섯 살 때부터 들어 왔지. 하지만 레니나! 다른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자유를 원하지 않소? 이를테면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레니나 당신 자신의 방법으로 말이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버나드, 어서 돌아가요. 저는 이 곳이 싫단 말예요."
레니나는 버나드에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소?" "하지만 버나드, 이 곳은 무서워요." "난 이 곳이, 즉 바다와 달밖에 없는 이 곳이면 우리가 더 친밀해질 줄 알았는데……내 말 이해하겠소?" "전혀 이해를 못 하겠어요." 레니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레니나는 말투를 바꾸어 계속해서 말했다. "전혀 이해를 못하겠다구요. 그렇게 끔찍한 생각이 드는 순간에 왜 당신은 소마를 먹지 않는 거죠? 먹으면 그런 생각들이 말끔히 사라져 버릴 텐데 말예요."
*수면 학습: 아이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 확성기를 통해 특정한 내용을 반복함으로써 의식화시키는 방법
*입실론 계급 : 육체적 노동을 담당하는 최하층의 천민 계급
⊙ 해설
해결해야 할 논제는 두 가지이다.
① 레니나가 어떤 면에서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가?
②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는 과연 올바른가?
위의 논제를 볼 때,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은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생활이란 무엇이고, 어째서 레니나가 그런 사람의 전형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주어진 작품의 내용을 해석해 보아야만 파악될 수 있다. 다음으로 두 번째 논제를 생각해 보자. ②와 같이 말한 것은 비판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비판이란 대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대상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켜 그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비판이라 한다. 따라서 쾌락(즐거움)만을 두구하는 삶의 태도를 비판하라는 것은 그것이 올바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상을 정리하면 논제 풀이를 위한 사고 과정은 다음과 같다.
(1)『멋진 신세계』의 작품 분석을 통해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파악한다.
(2) 버나드와 레니나의 대화를 따라가면서 레니나의 사고 방식을 파악한다.
(3) 레니나의 사고 방식이 어째서 쾌락(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인가를 생각한다.
(4) 레니나의 삶의 태도가 갖는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비판한다.
우선『멋진 신세계』를 분석해 보자. 첫째 부분에서 버나드와 레니나는 시간에 대해 입장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레니나는 시간을 수영과 식사, 전자 골프, 레슬링 선수권 구경 등에 쓰고자 한다. 그러나 버나드는 산책과 이야기를 위해 시간을 쓰고자 한다. 단둘이 있고 싶어하는 버나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레니나는 산책과 이야기로 보내는 것을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레니나를 활동성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부분에서 버나드와 레니나의 화제는 소마가 든 아이스크림이다. 소마는 글의 내용으로 보아 우울증 치료제임을 알 수 있다. 레니나는 그것을 버나드에게 계속 권하고 있다. 그러나 버나드는 비참할지언정 이대로의 내가 좋다고 하면서 소마를 먹기를 거부한다. 이것을 통해 버나드는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사람이고, 레니나는 우울한 것은 소마를 먹고 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셋째 부분에서 레니나와 버나드의 성격은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버나드는 바다를 보며 전체에서 독립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느낀다. 그리고 자유에 대해 고민한다. 자기 자신의 방법으로 자유롭게 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나 레니나는 그러한 버나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조건 반사 훈련과 수면 학습에서 배운 내용대로 버나드에게 말을 한다. 또한 레니나가 생각하는 자유는 즐기는 자유이다. 그것도 조건 반사 훈련에 의해서 형성된 자유의 개념이다. 이상을 정리해 보면, 레니나는 심각한 이야기를 싫어하고, 인간 간의 친밀한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기를 원하고, 자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즐기기 위한 자유만을 생각한다. 또한 우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소마라는 약을 먹고 잊어버리려고 한다. 한 마디로 심각한 것을 싫어하고 즐거움만을 좇는 삶의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삶의 태도는 옳은가를 생각해 보자. 흔히 개인의 삶의 태도는 그 사람의 가치관의 문제이니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것이 한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라면, 옳고 그름을 따져 보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쾌락(즐거움)만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비판해 보자. 레니나는 즐기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친밀한 인간 관계, 자신의 개성, 자유 등을 포기했다. 그리고 스스로 조건 반사 훈련과 수면 학습에서 배운 내용대로 살아가고 있다. 단순히 즐기기 위해 인간으로서 중요시해야 할 가치들을 포기한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임을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 맹자 - 맹자(孟子)
⊙ 작품 해설
①. 맹자(孟子)와 『맹자』
맹자(孟子 : B.C 372?~B.C 289?)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유교 사상가로, 성은 맹(孟)이고 이름은 가(軻)이다. 지금의 산뚱성(山東省) 쪼우센현(鄒縣)에 있었던 추(趨)에서 태어났으며, 공자(孔子)의 유교 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웠다. 어릴 때 어버지가 돌아가신 까닭에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야 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맹자를 엄하게 교육시켰다.
맹자가 자라면서 주위 환경에 정서적인 영향을 받자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는 이른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와 함께, 어머니가 보고 싶어 공부를 중단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그 동안 짜고 있던 옷감을 칼로 자르며, 네가 여기에서 공부를 중단하는 것은 이렇게 옷감을 짜다 중간에 자른 것과 같다.라고 하며 단호한 모습을 보인 것에서 유래한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는 유명한 고사(故事)이다. 맹자가 활동하던 당시는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전국 시대라서 제후(諸侯)가 유능한 인재들을 찾았으며, 이에 대응하여 배출된 제자 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서 맹자도 BC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 땅에 은거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 강병(富國强兵)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으나,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 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맹자』는 모두 7편으로 되어 있는데, 각 편은 상(上)·하(下)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에는 맹자가 제자들, 각 나라의 왕과 제후들,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주로 적어 놓았다. 이 책은 맹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이지만, 내용은 맹자 자신의 것으로 믿어도 무방하다. 송나라 때의 주자가『논어(論語)』,『대학(大學)』,『중용(中庸)』과 더불어『맹자』를〈사서(四書)〉의 하나로 분류함으로써 유교의 중요한 경전이 되었다. 이 책은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전국시대의 양상을 전하는 흥미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② 맹자의 사상
맹자의 사상은 인의설(仁義說)과 그 기초가 되는 성선설(性善說), 그리고 이에 입각한 왕도 정치론(王道政治論)으로 나누어진다. 공자의 인(仁)의 사상은 육친 사이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친애(親愛)의 정을 널리 사회에 미치게 하려는 것이며, 이 경우, 소원한 쪽보다 친근한 쪽으로 그 정이 더 간다는 것은 당연시되었다. 가족제(家族制)에 입각한 차별애(差別愛)인 것이다. 맹자는 이를 받아들여,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인애(仁愛)의 덕(德)을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그 인애의 실천에 있어서 현실적 차별상(差別相)에 따라 그에 적합한 태도를 결정하는 의(義)의 덕을 주창하였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義)는 사람의 길로서, 의는 인의 실천에서 준거(準據)할 덕이며, 유교 사상은 이로부터 도덕 사상으로서의 준엄성을 가지게 되었다. 성선설은 그러한 인심(仁心)이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왕도정치는 그러한 인심(仁心)에 입각한 정치이다. 군주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하고, 또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한 다음 도덕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불인(不仁)한 군주는 쫓아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의 제후가 맹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유교는 맹자에 의하여 비로소 도덕학(道德學)으로서 확립되고, 정치론으로서 정비되었다. 맹자의 사상은 그 후 유교의 정통 사상으로서 계승되어 유교를 공맹지교(孔孟之敎)라고 부를 정도로 중시되었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 두 글은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말하면서 예로 든 것이다. 두 이야기에서 맹자가 말하려는 바를 종합하여 생각해 보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시오.
(가)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모두들 염려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교를 맺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과 벗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고, 그 아이가 지르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 우산(牛山)의 나무는 아름다웠다. 그런데 우산은 큰 나라의 교외에 있는 관계로 사람들이 도끼로 그 나무들을 찍어냈으니 아름다워질 수 있겠는가? 밤낮으로 자라나고 비와 이슬의 윤택함을 받아 싹이 돋는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소와 양을 끌어다 또 그것이 자라는 족족 먹이고는 하였다. 그래서 저렇게 밋밋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 밋밋한 것을 보고는 거기에는 재목이 있어 본 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기야 하겠는가? 사람에게 들어 있는 본성인들 어찌 인의(仁義)를 따르는 마음이 없겠는가? 자기의 본래 마음을 베어 버리게 하는 일은 또한 도끼로 나무를 다루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매일매일 찍어내는데 어찌 아름다워질 수가 있겠는가?
⊙ 해설
맹자의 성선설은 말 그대로 인간의 본성은 원래 착하다는 것이다. 맹자가 인간의 본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많은 주장을 펼친 것에 반해 공자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과 같은 추상적인 주제는 별로 다루지 않았다. 공자가 살던 시기에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심 주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공자가 보인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본성은 서로 비슷한데, 습관에 의해 서로 멀어진다" 라는 표현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나 맹자에 이르러서는 본성론이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등장하게 된다.『맹자』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주장이 여러 군데에 나타나 있다. 이는 아마도 시대적인 상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맹자가 활동했던 전국 시대는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 시대와는 달리 매우 혼란한 사회였고, 이 때문에 인간의 본성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문제 의식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맹자 이전에는 어떤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을까? 성(性)은 심(心)과 생(生)을 합쳐 만든 글자이다. 글자대로 풀이하면, 성의 본래 뜻은 마음속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리적 욕구와 감정이 함께 들어 있다. 원시시대 인류의 모습은 도덕적인 면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생리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이 더 자연스러운 본질로 보편화되었을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은 맹자 무렵까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대해 맹자는 정면으로 부정했다. 도덕성을 인간의 본질로 본 맹자의 성선설은 그 때까지 내려온 인간의 자기 규정을 뒤엎은 것이다. 맹자 당시에 인간의 본성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들이 있었는데『맹자』에는 세 가지 견해가 소개되어 있다.
첫째, 본래는 착한 요소도 없고 악한 요소도 없다는 주장이다. 둘째, 착해질 수 있는 요소와 악해질 수 있는 요소가 동시에 들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 두 견해는 결과적으로 인간의 본성이 선으로도 악으로도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같은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채우고 있는 내용을 본다면 정반대인 셈이다. 그리고 셋째는, 태어날 때부터 본성이 착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는 주장이다. 제시된 두 이야기는 모두 인간의 본성이 착한 것임을 밝히는 예화이다.
제시문 (가)를 통해 맹자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순수한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이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모습을 본 순간 생겼던 순수한 마음, 이 마음을 맹자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부르며, 이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마음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고,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맹자는 이런 마음 말고도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惻隱之心),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잘 기르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사단(四端), 즉 착해질 수 있는 네 가지 실마리라고 한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에 이 네 가지 단서가 있는 것은 몸에 팔다리 네 개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리고 맹자는 사단을 선천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선천적인 요소를 양지(良知), 양능(良能)이라는 말로도 설명하였다.
양지와 양능이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린아이가 제 부모를 따를 줄 아는 것처럼,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따져 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갖춘 것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맹자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은 본질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나쁜 행위 자체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환경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맹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예가 제시문 (나)이다. 제시문 (나)를 통해서는, 그러면 왜 현실 속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지 않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현실에서 보여지는 대부분 인간들의 마음과 행동이 악하게 드러나는 것은 도끼로 산의 나무를 찍어 버리듯 사람들 스스로가 그렇게 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아 원래의 인간 본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모두 다시 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맹자는 환경적 요소에 따라 좌우되는 감정과 욕구를 악의 근본으로 보고, 그러한 힘은 내적인 자발성에 근거하지 않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세워 나갔다.
8. 리바이어던 - 홉스
⊙ 작품 해설
토마스 홉즈(Thomas Hobbes, 1588~1679)는 영국의 철학자로서, 맘즈베리 태생이며, 무명의 목사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스콜라 철학을 전공하였다. 스튜어트 왕조를 지지하는 정치가로 지목되자, 퓨리턴 혁명 직전에 프랑스로 망명하여 유물론자 가상디와 철학자인 데카르트 등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크롬웰의 정권 하에서는 런던으로 돌아와 정쟁에 개입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힘썼다. 왕정복고(王政復古) 이후에도 찰스 2세의 통치 속에서 여생을 보냈다. 인간이란 자연상태로라면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세계가 되므로 서로 계약을 맺어서 국가를 이루고 전권을 주권자에게 위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사회 계약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 베이컨과는 달리 귀납법만이 아닌 연역법도 중시하여, 양자의 상보적 관계에 의하여 이성의 올바른 추리인 철학이 성립된다고 생각하였다. 리바이어던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본질적으로 선한 것은 없고 선악, 정사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국가와 법이 성립되었을 때에 그 판정의 기준이 생긴다고 하였으며,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것이어서 자연 상태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있고, 사람은 사람에 대하여 이리[狼]이기 때문에 자기보존의 보증마저 없다. 그러므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은 계약으로써 국가를 만들어 자연권을 제한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의지에 그것을 양도하여 복종한다. 홉즈는 전제 군주제를 가장 이상적인 국가 형태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밖의 저서로『자연법과 국가의 원리』등이 있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 글은『리바이어던』의 일부이다. 이를 오늘날 국가의 개념과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소수인이나 소수 가족의 결합으로부터도 얻지 못하는 것 : 소수의 인간들이 결합하더라도 그들에게 안전은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 하면 소수에 있어서, 어느 한쪽 또는 다른 쪽에 대한 소수의 증가는 승리를 거두는 데 충분할 정도의 위대한 힘을 이용하는 이득을 취하게 함으로써 침략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다수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적과의 비교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적과의 수적 비율이 전쟁을 기도하도록 충동할 만큼 전쟁을 결정하는 데 가시적이거나 현저한 위기가 아닌 시기에는 그로써 충분하다.
단일 판단에 의해 지도되지 않는 한 그 다수로부터도 얻지 못하는 것 : 그리고 그와 같이 위대한 다수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게다가 만일 그들의 행동이 그들 각자의 판단과 욕구에 따라 지도된다면, 그들은 그로 인해 공동의 적과 서로의 상해(傷害)에 대해서 방비나 보호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의 힘을 가장 잘 사용하고 적용하는 데 관계되는 여론에 있어서 혼란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서로 돕지 않고 방해하게 되며 쓸데없는 것에 대한 상호 반대로 인하여 그들의 힘을 감소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쉽사리 서로 일치하는 극소수인들에 의해 정복될 뿐만 아니라, 공동의 적이 없을 때에는 그들 각자의 이해 때문에 서로 투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들 모두에게 외경감을 주는 공통의 권력 없이도 정의와 기타 자연법의 준수에 동의하는 위대한 다수의 인간을 가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또한 모든 인류가 그와 같이 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어떤 세속 정부나 국가가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존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예속 없는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를 지도하는 단일 판단이 항구적이 아닐 때 그 다수로부터도 얻지 못하는 것 : 인간이 한 차례의 전투 또는 전쟁에 있어서처럼 일정 기간 동안 단일 판단에 의해 지배되고 지도된다는 것은, 인간이 그들의 일생 동안 계속되기를 바라는 안전을 위해서는 충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외적에 대해 일치된 노력으로 승리를 획득한다고 할지라도 그 후에 그들이 공동의 적을 갖지 않거나 또는 한 편에 의해 적으로 생각된 자가 다른 편에 의해 친구로 여겨지는 때에는, 그들은 그들 이해의 차이에 의해서 해산되고 서로 전쟁 상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안전이다. : 인간 자신에 대한 구속(우리는 그들이 국가의 구속 안에 사는 것을 본다.)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 (천성적으로 자유와 타인에 대한 지배를 사랑하는) 인간의 궁극적 동인(動因)이나 목적 및 의도는 그들 자신의 보존과 그로 인한 보다 충족된 삶에 대한 안목이다. 즉, 제14장과 제15장에서 규정된 자연법의 준수와 그들 계약의 이행에 대해 그들을 두렵게 하고 처벌에 대한 공포로 그들을 옭아매는 가시적(可視的) 힘이 없을 때 인간의 자연적 정념에 대해 (앞서 보여진 바와 같이) 필연적으로 결과되는 그 처참한 전쟁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하는 안목이다.
─ 중략 ─
국가의 발생 : 인간을 외적의 침입과 상호간 상해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국가를 수립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 자신의 노력과 대지(大地)의 열매에 의해 그들 자신을 자라게 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은, 그들 모두의 권력과 힘을 하나의 인물 또는 한 집단의 인간들에게 부여해서 그들 모두의 의사를 다수의 소리에 의해 단일 의사로 만드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그들의 인격을 책임지는 하나의 인물 또는 집단의 인간들을 지명하는 것이며, 만인은 그들의 인격을 그와 같이 책임지는 자가 공동 평화와 안전에 관계되는 사물 속에서 행동하는 모든 행위 및 행동하도록 만드는 모든 것의 창조자임을 스스로 승인하고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범위 안에서 만인은 그들의 의사를 그의 의사에, 그리고 그들의 판단을 그의 판단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동의나 합의 이상의 것이며,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서 창조된 바로 단일 인격에 있어서의 만인의 진정한 통일이다.
그것은 마치 만인이 만인에게 나는 당신들이 그에게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와 같이 그의 모든 행동을 승인한다는 조건하에 내 자신을 지배하는 내 권리를 이 사람 또는 이 집단의 인간들에게 포기하고 승인한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하나의 인격에 있어서 통일된 다수의 국가(라틴어로 divitas)라고 불린다. 이것이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 또는 (보다 경건하게 말하면) 우리가 불멸의 신의 가호 아래 우리 평화와 보호를 위탁하고 있는 저 필멸(必滅)의 신의 발생인 것이다. 국가 안의 모든 개개인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이러한 권위에 의해서 그는 그에게 주어진 그 막대한 권력과 힘을 사용할 수 있고, 그 권위의 위협에 의해 그는 국내에서는 평화를 위해,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그들의 적에 대한 상호 원조를 위해 만인의 의지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의 본질이 그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국가의 정의 : (그것을 정의하자면) 그것은 `다수가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스스로 모든 사람을 그것의 행동의 창조자로 만들었고, 그것은 그들의 평화와 공동 방위를 위해서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들 모두의 힘과 수단을 끝까지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이다. 주권자와 신민은 무엇인가 : 이러한 인격을 확득하는 사람은 주권자라고 불리며, 주권을 소유한다고 일컬어진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신민이다. 이러한 주권의 획득은 두 가지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자연적 힘, 즉 한 사람이 자식들을 낳아서 그들과 손자들을 그의 통치에 복종시키고 그들이 거절하면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것과 같은 경우이거나 또는 전쟁에 의해서 그의 적들을 그의 의사에 복종시키고 그러한 조건하에서만 그들의 생명을 살려 주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들이 상호간에, 모든 타인으로부터 그에 의해 보호된다는 신뢰에 의해 자발적으로 어떤 인간 또는 인간의 집단에 복종하기로 동의하는 경우이다. 후자는 정치적인 국가 또는 제도화된 국가라고 불리며, 전자는 획득에 의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 해설
제시문에서 홉스는 강력한 국가 권력만이 욕구와 열망으로 인해 전쟁에 빠질 개인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분은 먼저 국가의 존립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는 다수 국민의 권리 중에서 일정 부분을 양도받아서 성립된다. 그래서 국가를 공적 권력, 즉 공권력(公權力)이라고 한다. 근대 사회가 성립되면서 국가 형성 및 시장 경제의 성립은 국가의 모든 사안에 개인이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국가라는 대의적 기구를 만들게 된 것이다. 국가간의 문제로 확대시켜 살펴보자. 개별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다 보면 국제적 갈등이나 분쟁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국가 간 이익이 부딪힐 때 이를 조정하는 역할로 각종 국제 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많은 국제 기구가 객관적인 조정자보다는 강대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국가 간 관계에서도 다수 국가의 참여와 객관적 조정이라는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국가를 이해한다면, 국가 존립의 문제보다는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또는 어떤 성격의 권력인가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같은 국가라고 하더라도 다수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국가와 소수 기득권 세력의 이익만을 반영하는 국가는 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9. 두보 시선 - 두보
⊙ 작품 해설
①. 두보와 이백
당시(唐詩)라고 하면 으레 이백과 두보를 첫손으로 꼽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왕유와 백거이와 두목과 이상은 같은 대가들이 있지만, 이백과 두보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시대에 같은 길을 걸었으면서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시의 최고봉을 더불어 누렸다. 이백을 시의 신선(시선; 詩仙)으로 받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보를 시의 성인(시성; 詩聖)으로 받들기도 한다. 사실 이백은 선천적인 재질이 뛰어나서 주변의 온갖 것을 시화(詩化)해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일체가 시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까 이백에게는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두보는 온갖 것을 시로 엮어 내는 고심과 재치가 남달랐다.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정이요, 오고 간 정의 감각이 시를 엮어 낸 것이다. 따라서 이백은 우러러 바라도 미치지 못하는 천재적인 시인이고, 두보는 배우고 익힌다면 다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까닭에 대대로 배우고 익힌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백의 시가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어가 예사로 씌어졌는가 하면, 도저히 시가가 될 수 없는 소재가 노래로 둔갑하는 데 비해, 두보는 누구나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소재를 갈고 다듬어 진을 빼 내고야 마는 진통을 거친 뒤에, 꼭 알맞은 말과 소리를 찾아 보석처럼 메우고서야 비로소 붓을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백은 시를 위해 태어난 시선이고, 두보는 시를 짓기 위해 태어난 시성이라고 할 수 있다.
② 현실에 뿌리내린 시
이백의 시가 귀족적이라면, 두보는 평민적이어서 한결 친근감을 안겨 주기 때문에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는 초월적인 자세로 삶을 관조하는 이백과 달리 삶 자체를 나에게 주어진 운명적 현실로 받아들이며 이러한 삶의 여러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려고 애쓴다. 두보의 시는 유교 사상을 그 바탕으로 삼고 있다. 유교사상은 충군과 애민의 정신과 현실참여 의식이 강하다. 그런데 두보가 살던 시대는 지배자의 잘못된 정치로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던 시기이다. 두보는 황제를 보필하고 충성하여 요순 시대처럼 태평 성대를 이루겠다는 이상을 품고 있었지만 실제 현실은 황제와 귀족들이 나라를 환란에 빠뜨리고 인민에게 재난을 입히는 죄행을 범하고 있었다.
두보는 이러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면서도 어느 하나를 회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의 사회적·계급적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강구하고자 노력했으며, 그것을 시에 녹아들게 하였다. 그의 시들이 이백과 달리 사실주의적 기풍을 많이 띠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시는 병사, 농부, 가난한 농가의 부인, 포악한 관리, 봉건 상층부의 고관 대작들을 전형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두보의 시는 중국 사실주의 전통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시가 당시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 두보의 「취시가(醉時歌)」라는 시를 번역한 것이다. 잘 읽고, 시적 자아의 삶의 방식을 현대적 관점에서 평가하시오
여러 고관네는 자꾸 높은 자리에 오르는데
광문 선생은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요
좋은 기와집에는 넘쳐나는 게 쌀밥과 고기인데
광문 선생은 밥조차 모자라는 신세라오.
선생의 도덕은 아득한 복희씨가 바탕이요
선생의 재주는 굴원과 송옥을 넘짚고 말고
덕이 당대에 높아도 언제나 불우하고
명성이 만고에 드높아도 쓰일 곳이 없다오.
이 두릉의 건달은 더구나 남의 웃음거리로
짤막한 겉옷에 수염은 허여세고
날마다 받는 다섯 되의 쌀을 타가지고는
이따금 선생께 달려가 덜어서 마음을 풀지요
돈만 생기면 곧장 서로가 찾아
술 사기를 사양치 않죠
곧드레 만드레 너, 나가 없고
실컷 마시는 건 정말 내 스승이고 말고.
맑은 밤이 침침토록 봄 술 마시자니
등불 앞 추녀에 듣드는 봄비 꽃을 지우네.
드높은 노래는 신들림을 알기는 하지만
어찌 굶어 죽어 도랑에 묻힘을 생각이나 하료.
뛰어난 재사 사마상여는 몸소 술사발을 닦았고
글 잘하는 양웅은 다락에서 내동댕이쳐졌소.
선생이여, 어서 어서 돌아가는 귀거래를 지으소
돌밭과 초가집에는 이끼가 드북하오
선비의 재주가 나에게 무슨 상관이요
공자와 도척이 모두 한 줌의 흙이 아뇨
그렇다고 당장 우울해져서야 쓰겠소
살아 있는 동안 만나 술이나 마십시다.
⊙ 해설
시적 자아의 삶의 방식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 연의 주요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1연은 광문 선생의 불우함을 들고 있다. 남들은 쌀밥에 고기 반찬도 마다하는 판인데, 광문 선생은 먹을 밥조차 부족한 형편임을 노래하고 있다. 1연에서 서정적 자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도덕이 높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굴원과 송옥 같이 글재주로 명성이 높다고 한들 무엇에 쓰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세상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가 엿보인다고 볼 수 있다. 2연은 자기와 함께 실컷 마시며 거리를 누빈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특히 정부에서 주는 구호미를 타먹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술을 가까이 하는 두보의 삶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3연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자위하는 태도가 드러나 있으며, 이는 4연까지 이어져 성인인 공자와 도적의 왕자인 도척이 모두 한 줌의 흙이 되었는데, 살아 생전에 마시지 않고 왜 술을 사양하느냐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 분석을 통해 이 시는 현실에서 실패한 서정적 자아의 불우한 환경과 그 환경을 술로 이겨내려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자와 도척을 동일시하는 자세나, 어차피 죽을 인생 술이나 마시자는 자세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거나 극복하려는 의지가 빈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다.
Ⅱ. 현대문 및 사회 이슈
1. 안락사 논쟁(구분 : 의학, 사회)
▣ 기계적 생존이냐 인간다운 죽음이냐
안락사 논쟁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논의 그 자체다. 이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 자율권을 포함한 환자의 권리,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분배, 의사의 치료의무의 한계, 호스피스 운동 등 의학윤리의 중요한 이슈들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죽는 것은 아니다. 쉽고 평온하게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렵고 고통스럽게 죽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평온하고 안락하게 죽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의학의 발전 때문이다.
의학의 발전은 사망의 주요 원인뿐 아니라 최종적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변화시켰다.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첨단 의학장비 개발로 이제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생명을 거의 무한정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계에 연결되어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것을 삶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0년간의 사회적 변화 역시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 자기 침실에서 가족과 친구, 이웃들에 둘러싸여 임종했다. 성직자와 왕진을 온 의사는 환자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평온하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었고, 환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병원에서의 죽음은 평온이나 안락과는 거리가 멀다.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과 친구들은 병실 밖으로 내몰리기 일쑤고 환자의 침상 곁은 수많은 의료진들이 점령한다. 그들은 다가오는 죽음을 막기 위해서 최후까지 온갖 조치를 취한다. 환자의 입에는 인공호흡을 위한 기도관이 물려지고, 수많은 전극과 수액줄이 부착되고 꽂힌다. 그것들은 환자가 완전히 숨을 거둔 다음에나 제거된다. 가족들이 환자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의료진이 사망선고를 내린 후 시신이 흰 천에 덮여 냉장실로 옮겨지기 전의 짧은 시간뿐이다.
◆ 평화롭게 죽을 권리
안락사를 뜻하는 유사너지아(euthanasia)는 좋음, 편안함을 뜻하는 eu-와 죽음을 의미하는 thanatos가 합쳐진 용어다. 즉 수월한 죽음, 고통이 없는 빠른 죽음, 평화로운 죽음을 말한다. 좀더 정확히는 치료될 수 없는 상황이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통증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해주는 행위(웹스터 사전)를 뜻한다.
넓은 의미의 안락사에는 소위 의사조력 자살 (physician-assisted suicide)이 포함된다. '죽음의 의사'로 유명한 미국의 잭 케보키언(Jack Kervokian)이 시행한 방법이 의사조력자살인데, 최종적으로 생명을 끊는 행위자는 환자 자신이다. 즉 의사는 환자에게 자살기구나 약품을 제공하지만 이를 이용하여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이는 환자 자신인 것이다. 반면에 좁은 의미의 안락사는 의사 혹은 제3자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환자의 동의 유무에 따라 자의적 안락사와 타의적 안락사로 나뉜다.
또한 그 방법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적극적 안락사는 치명적인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서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외부적 행위인데 반해,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을 지연시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최단시간 내에 환자가 자연사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원래 환자가 앓고 있던 병이 사망의 직접 원인이 된다. 소극적 안락사는 죽음의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의미 없는 치료를 중단하고 진통제나 안정제를 투여하여 고통을 줄여주면서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의 의사에 반해 치료를 강행하는 것을, 신체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권과 환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비윤리적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다.
한편 안락사 반대론자들이 흔히 안락사의 극단적 예로 드는 것이 우생학적 안락사다. 그러나 이것은 치료 불가능한 환자가 아닌 특정 인종이나 장애자, 기형아를 대상으로 하므로 명백한 살인행위이며 따라서 안락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논란이 되는 것은 환자의 요구에 의해 의사가 실시하는 자의적이고 적극적인 안락사다.
유럽과 캐나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항상 70%를 상회하며, 안락사에 대해 비교적 보수적 견해를 취하는 미국인들도 절반 이상이 안락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와는 달리 안락사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최근 네덜란드가 안락사를 합법화한 것이 세계 최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금지 혹은 반대와는 무관하게 실제로는 여러 나라에서 안락사가 묵인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커보키안처럼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실행한 의사들이 거의 기소되지 않았거나 기소되었어도 실질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최근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도 1980년 이후 의사에 의한 안락사를 사실상 허용해왔다.
◆ 실종된 환자의 자기결정권
일본에서는 1991년 4월 도카이(東海) 의대 부속병원의 의사 도쿠나가 마사히토가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말기 암 환자에게 염화칼륨을 정맥 주사하여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요코하마 지방법원은 1995년 3월 도쿠나가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동시에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을 것, 죽음이 임박하여 소생 가능성이 없을 것,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다른 수단이 없으며, 환자의 명시적 승낙이 있을 것 등 네 가지를 안락사 요건으로 제시해 사실상 안락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 나라에서는 1981년 9월24일 충남대학교 총장, 문교부 차관을 역임하고 간암으로 투병 중이던 박희범씨의 안락사 사건이 일어났다. 내과 의사였던 부인이 남편을 안락사 시키고 자신도 자살한 이 사건은 안락사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당시엔 단순히 금실 좋던 부부의 순애보적 동반자살 사건으로만 인식됐다. 그 동안 우리 나라에서의 안락사 논의는 소수 학자들간의 학문적 의견 교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와 일반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죽음을 둘러싼 모든 고통과 갈등은 고스란히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이 떠맡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고 결정에 대한 책임 역시 그들이 져야 한다.
1997년 12월에 발생한 보라매병원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술에 취한 채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져 뇌출혈을 일으킨 58세의 알코올 중독자가 수술 후 회복과정에 부인의 강력한 요구로 퇴원했다. 의료진은 간곡히 만류했지만 "당신들이 치료비를 대겠느냐"며 반발하는 부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결국 환자는 퇴원 직후 사망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부인과 담당의사를 살인죄로 기소했고 법원은 부인에게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 담당의사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물론 이 사건은 환자의 회생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안락사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그 동안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소위 가망 없는 환자의 퇴원이 일절 중지됐고, 퇴원을 요구하는 가족들과 의료진 사이에 심한 갈등이 빚어졌다.
정부의 명백한 법적·제도적 지침과 장치가 없는 가운데 의사들은 우리 나라에서는 소극적 안락사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 때문에 의학적 판단이나 환자 및 가족들의 요청과는 관계없이 환자가 죽을 때까지 무의미한 의료행위를 계속 실시할 수밖에 없게 됐다. 가족들은 아무도 치료비나 생계비를 지원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환자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결국 환자가 빨리 죽어주기만 기다리는 기막힌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환자들의 '치료중단 요구권'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되고 점차 강화되고 있는 자기 결정권 역시 현재 우리 나라 실정법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 죽음이 아닌 삶의 문제
안락사 문제는 낙태논쟁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결론을 내릴 수 없을지 모른다. 안락사 찬성론자들의 주장, 즉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므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다거나, 회생 가능성 없이 고통받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사실상 고문행위이며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자비로운 일이라는 등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안락사 반대론자들의 주장과 우려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것이다. 안락사가 허용될 경우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하여 그 대상이 점차 확대될 것이고 결국 경제논리에 따라 장애자·극빈자·사회소외계층이 병들었을 때 치료보다는 안락사가 손쉬운 해결책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 안락사가 생명 수호자인 의사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크게 훼손할 것이라는 주장, 강력한 진통제나 안정제 등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킬 효과적 방법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락사를 행하는 것은 경솔하고 지나친 행위라는 지적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의학윤리의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안락사에서도 정작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논의 그 자체다. 사회 구성원이 안락사를 둘러싸고 활발한 찬반논쟁을 거치는 과정에 생명의 존엄성, 자율권을 포함한 환자의 권리,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분배, 의사의 치료 의무의 한계, 호스피스 운동 등 의학윤리의 중요한 이슈들이 깊이 있게 다뤄질 것이고 우리 사회 전반의 윤리적 감수성도 증가할 것이다.
안락사 논쟁은 기본적으로 죽음이 아닌 삶에 관한 논쟁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 삶의 마지막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고, 삶의 종말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인간적이고 인도적인지가 안락사 논의의 핵심이다. 따라서 삶의 질에 대해 무관심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윤리적 감수성이 무딘 후진사회에서는 애당초 안락사 논쟁이 불붙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안락사를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 임기영 / 아주대 의대교수 [신동아]에서 발췌
과학 혁명의 구조 - 토마스 쿤(구분 : 과학)
1. 작품소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를 쓴 토마스 쿤(Thomas S. Kuhn)은 과학사 학자이자 과학 철학자로서 20세기 후반의 현대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 분야에서 특히 중요한 과학의 역사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은 수험생에게 과학을 바라보는 입장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과학을 완전히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 대상의 본질을 차츰차츰 밝혀 나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과학도 인간의 다른 활동과 비슷한 방식으로 변화하며, 관습적으로 과학의 특성이라고 간주되어 왔던 객관적(客觀的), 논리적(論理的), 경험적(經驗的), 가치중립적(價値中立的) 성격들이 타 분야에 비해 정도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진리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수험생들은 이 책을 통해서 객관과 주관의 상호 연관성, 역사 발전의 불연속성, 가치관의 혁명적 전환기에서 우리가 취할 태도 등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패러다임의 개념, 과학 혁명의 특성과 실증주의와의 변별성에 대하여 살펴보고, 과학의 혁명적 전환기에 대하여 과학자들이 반응하는 태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본문 읽기
① 패러다임의 우선성
이제 패러다임이 규칙들의 개입 없이도 정상 과학을 결정한다는 것을 믿게 할 만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그 명백함과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선 첫번째 이유는 특정 정상 과학의 전통을 주도해 온 규칙들을 찾아내는 행위 자체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철학자가 모든 게임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때 당면하는 어려움과 비슷하다. 두번째 이유는, 과학자들이 결코 개념이나 법칙, 이론 등을 추상적, 또는 그 자체만으로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러한 지능적 수단들은 당초부터 과학자들에게 그 적용과 더불어 또는 적용을 거쳐서 드러나는 역사·교육적 선행 단계에서 접하게 된다.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자연 현상의 어떤 구체적 영역에 적용시킴과 동시에 발표된다. 그런 적용이 없었다면, 그것을 수용할 만한 후보 이론조차 없었을 것이다. 또 일단 수용된 뒤에는 그와 똑같거나 다른 사례들과 함께 후세(後世)의 과학자들이 그것으로부터 자신이 할 일을 배우게 될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
그것들은 단순히 장식이나 증거 문서로서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의 이론을 깨우치는 과정은 연필과 종이, 또는 실험실에서 기기에 의해 실제문제를 푸는 응용연구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뉴턴의 역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힘·질량·공간, 그리고 시간과 같은 용어의 의미를 깨우치는 경우, 대개는 이들 개념을 문제-풀이(problem-solution)에 적용시켜 관찰하고 관여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어서, 교재에 불완전하게 실린 정의로부터 터득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 중략 ─
과학자들은 대부분 당시의 구체적 연구주제에 내재하는 특정한 개별적 가설에 대해서는 쉽게, 그리고 잘 논의하지만, 그들 분야에서 확립된 기반이나 타당성 있는 문제들과 방법들을 특성화함에 있어서는 비전문가에 비해 별로 나을 게 없다. 과학자들이 그런 추상적 개념화를 터득하는 경우, 그들은 주로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런 능력은 게임의 가설적인 규칙에 의지하지 않고도 이해될 수 있다.
과학 교육의 이러한 결과들은 패러다임이 개념화된 규칙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직접 모형이 됨으로써 연구의 지표가 된다고 보는 세 번째 이유를 제공한다는 논의를 성립시킨다. 정상 과학은 관련되는 과학자 사회가 이미 성취된 특정 문제 - 풀이를 의문 없이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규칙 없이도 진행될 수 있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나 모형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경우에는 규칙들이 중요해지게 될 뿐 아니라, 규칙들에 대한 특유의 무관심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특히 패러다임 풀이의 표준에 대한 심각한 논쟁이 빈번해질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정상 과학의 시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소위 말하는 과학 혁명, 즉 하나의 패러다임이 공격을 받게 되고 다음 단계에서 바뀌게 되는 시기 직전(直前)까지의 과정에서는 여러 논쟁들이 규칙적으로 되풀이된다. 예를 들어 뉴턴 역학으로부터 양자 역학으로의 이행은 물리학의 성격과 규범에 관해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는가. 규칙을 찾아낸다는 일은 과학자 사회에서 해당 분야의 기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 비로소 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안전하게 지탱되는 동안에는 합리화에 대한 동의, 또는 합리화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할 필요도 없이 패러다임은 고유의 기능을 나타낼 수 있다. 패러다임이 공유된 규칙과 가정에 우선하는 지위를 차지하는 네 번째 이유를 설명함으로서 결론을 맺으려고 한다. 이 에세이의 서론에서는 대규모 혁명들뿐만 아니라 소폭적인 혁명도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했으며 어떤 혁명들은 세분화된 전공 분야의 구성원들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했고, 또 그런 그룹들에게는 새롭고 예기치 않은 현상의 발견조차도 혁명적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 중략 ─
정상 과학은 단일 체제의 통합적인 활동으로서 모든 패러다임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패러다임들의 어느 하나와도 운명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그런 일이 매우 드물거나 전혀 그런 적이 없음이 분명하다. 모든 분야를 총체적으로 개관하면, 과학은 다양한 분야 가운데서 거의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상당히 줏대 없는 구조를 가진 듯이 보인다. 규칙 대신에 패러다임을 대치하는 것은 과학의 분야와 세부 전공의 다양성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만들 것이다.
명시적인 규칙들은, 그것들이 존재할 때에는, 매우 광범위한 과학자 집단에 공통적인 것이 상례지만 패러다임은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천문학과 식물 분류학처럼 크게 동떨어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책들에서 설명된 다른 업적에 접하며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똑같거나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에서 동일한 책들과 업적들을 많이 공부하는 것으로 출발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전공의 세분화 과정에서 상당히 차이 나는 패러다임을 얻을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모든 물리학자들로 구성된 방대한 과학자 사회를 생각해 보자. 요즈음은 그런 그룹의 구성원은 누구나 양자 역학의 법칙들을 배우며, 그들 대부분은 연구라든지 강의의 어느 시기에 이르러 이들 규칙을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 모두 이 법칙들의 동일한 적용을 배우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들이 양자 역학의 실제 변화에 의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전공이 세분화되면 어떤 물리학자들은 양자 역학의 기본 원리들에만 접하게 된다.
다른 학자들은 이들 원리들의 화학 분야에의 패러다임 적용에 관해 상세히 연구하게 되며, 다른 학자들은 고체 물리학에의 적용에 관해 연구하는 등등 다양해진다. 양자 역학이 과학자들의 각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의 문제는 그가 무슨 과목을 택했는가, 무슨 책들을 읽었는가, 어떤 문헌을 공부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양자 역학 법칙에서의 하나의 변화는 이들 그룹 모두에게 혁명적이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양자 역학에서의 이런저런 패러다임 적용에만 영향을 미치는 변화는 세분화된 특정 분야의 구성원들에게만 혁명적인 것이다.
전공 세분화의 영향에 대하여 예를 들어보자. 어떤 연구자가 과학자들은 원자론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는가에 대해 좀 알고 싶어서 특출한 물리학자와 유명한 화학자에게 헬륨의 단일 원자는 분자인가요,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양쪽 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으나, 그들의 대답은 같지 않았다. 화학자에게는 헬륨의 원자는 하나의 분자였는데, 왜냐 하면 기체의 운동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분자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한편 물리학자에게는 헬륨 원자는 하나의 분자가 아니었는데, 왜냐 하면 그것은 분자 스펙트럼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동일한 입자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으나, 그들 특유의 연구 훈련과 활동을 통해서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풀이에서의 그들의 경험은 분자는 무엇이라야 하는가를 깨우쳐 주었다. 그들의 경험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으나, 그 경험들은 두 전문가에게 동일한 내용을 말해 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3. 작품해설
이 제시문은 패러다임이 객관적 현상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글이다. 패러다임은 그것만 독립적으로 교육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유포된다. 그렇기 때문에 패러다임의 정확한 개념과 한계, 특성을 밝히는 것이 곤란해진다. 왜냐하면 패러다임의 공유는 추상적 일반화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개념이나 이론틀을 이용하여 특정 주제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하지만, 그들 분야에서 이미 기정 사실화되어 있는 인식적 기반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일반적 개념화를 요구받았을 때 타당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같은 패러다임이라도 세부 전공에 따라 현상을 해석하는 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바로 현상에 대한 패러다임의 우위성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현상과 이론, 객관과 주관, 실재와 관념, 객체와 주체를 엄밀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경우 객관적인 현상보다 해당 공동 사회에서 공유하는 신념 체계가 더 우위를 점유하는 경우가 많다.
4. 정상과학과 패러다임
그는 과학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 도전하여 새로운 과학사관(科學史觀)을 제시한다. 과학의 역사적 측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과학적 지식이 아무런 내부 갈등이나 모순 없이 양적인 축적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는 종래의 귀납주의적 과학관에 반대한다. 대신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대체되는 비축적적(非蓄積的)인 변화를 가리킨다.
그리고 혁명에 의해 과학이 변화한다면 그런 혁명들 사이에는 과학자들이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안정된 활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정상 과학(正常科學 ; normal science)이라 규정한다. 따라서 과학 혁명은 어느 정상과학이 심각한 이상(異常) 현상들의 빈번한 출현에 의해 위기에 부딪침으로써 붕괴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며, 그 결과는 새로운 정상 과학이 된다. 정상 과학은 과학자 사회의 전형적 학문 활동의 형태로서 패러다임에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쿤의 과학사관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패러다임이란 원래 언어학습에 사용되는 표준예(examplar)란 뜻의 단어이다. 정상과학을 해 나가는 과학자들이 힘, 질량, 화합물 등의 용어에 대한 정의를 배우지 않고서도 일치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용어가 나오는 문제를 푸는 표준적인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언어를 배우는 학생이 먹는다, 먹었다, 먹겠다를 익혀 그 표준형을 그 밖의 동사에 적용하는 절차에 비유할 수 있다고 보고, 언어 교육에서 표준적인 활용·굴절형을 보여 주는 예를 패러다임이라고 하듯 표준적인 과학 예제를 패러다이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 예제 풀이의 의미로 쓰이던 것이 어떤 특정한 과학사회의 소속원들이 공유하는 전체적인 신념의 집합을 뜻하게끔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기본법칙을 적용하는 표준적 방법, 법칙들과 자연현상을 연결시키는 데 필요한 실험기술과 장치가 패러다임의 구성요소로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정규적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는 형이상학적 원리들도 패러다임의 기본 요소를 이룸으로써, 예컨대 이론의 정확성, 간결성, 체계성을 중시하는 그 분야의 가치관, 과학자 사회의 공유된 관념, 관습까지도 패러다임에 포함된다.
요컨대 패러다임은 주어진 (과학) 공동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념·가치·기술 등의 전체적인 집합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과학도들은 명문화된 규정으로부터 패러다임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육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터득하게 된다. 특히 교육과정에서는 과학연구의 결과를 평가하는 그 분야 과학자 사회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익히게 된다. 따라서 패러다임과 정상 과학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연구의 대상이라는 일차적 자료보다는 도리어 과학자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 요구된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 예컨대 기본 이론의 타당성에 대한 질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 과학자들에게는 공유된 가치관이 너무나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과학혁명
혁명은 항상 어떤 틀을 거부·대체시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과학 공동 사회가 구체적인 작업을 할 토대로 받아들이는 과거의 모범적 업적에 굳게 기반을 둔 연구를 정상과학이라고 한다면, 쿤은 이러한 정상 과학에 틈이 생기고 의문이 생겨 정상 과학에서 설정한 인식틀이 전면적으로 변하는 것을 과학 혁명이라고 한다. 정상과학 내부에는 아직 미해결된 작업을 계속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는데(이를 수수께끼 풀이라고 한다), 연구가 패러다임에 따른 기대를 어기게 될 때, 즉 변칙이 발견될 때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과학혁명은 기존 패러다임이 스스로 기왕에 지향했던 자연의 한 측면에 대한 탐구에 있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식이 고조됨으로써 촉발된다. 이전 체제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차츰 인식하게 되면서 혁명의 기운이 고조된다. 정상과학이 수수께끼로 삼는 모든 문제는 관점을 달리함으로써 반례로 보일 수 있으며, 따라서 위기의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정상 과학과 혁명은 표리관계에 있다.
정상 과학에 의해서 싹튼 변칙과 위기에의 인식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함으로써 결실을 보게 된다.
과학상의 혁명에는 기능 불능이던 이전 패러다임에 대한 파괴가 있고, 혁명의 여파로 종래의 개념이 틀렸다는 생각이 팽배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혁명 뒤에는 과학자들이 전혀 다른 세계에 반응하게 된다.
5. 실증주의자들과의 차이점
위와 같은 과학 철학은 종전의 실증주의자들의 견해와 대치되는 것이다. 실증주의자는 과학의 목표가 과학 이론들과는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험을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쿤은 과학이 영원한 진리들의 축적으로 성장한다는 생각을 배척한다. 과학적 혁명은 광범위하고 격렬한 변혁과 관계된다.
실증주의(實證主義; positivism)에서는 과학이란 인간의 마음과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사물을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관찰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봄으로써, 지극히 피상적인 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쿤에서는 과학상의 혁명을 거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과학자는 동일한 사물을 보고 있다고 의식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들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결국 과학상의 인식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개념화하느냐 그리고 그 개념을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문제로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심성(心性; human mind)이 본질상 어떠한 것이냐 하는 문제로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 출처: 대학교육협의회 홈페이지
국부론 - 아담 스미스(Adam smith) (구분 : 경제, 사회)
◈ 본문읽기
교환성향(交換性向)은 이기심에 의해서 촉진되어 분업으로 유도한다. 우리가 스스로 필요로 하는 상호적인 호의의 대부분을 서로 주고받는 것은 협의교환 및 구입에 의해서이지만 분업을 발생시키는 것도 이와 동일한 인간의 성향인 것이다. 예컨대 사냥이나 목축하는 종족 중에서 어느 특정한 사람이 다른 누구보다 더욱 재빠르고 교묘하게 활과 화살을 만든다고 하자. 그는 흔히 활과 화살을 동료들의 가축이나 사슴 고기와 교환하고 그리하여 드디어는 이렇게 하는 것이 자기가 벌판에 나가서 그런 것들을 잡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가축이나 사슴 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이익에 관심을 둠으로써 활과 화살 제작이 그의 중요한 일이 되어 그는 일종의 무기 제조공이 된다.
다른 한 사람은 자기들의 작은 집이나 이동 가옥 또는 지붕을 만드는 데 탁월하다고 하자. 그는 이 솜씨로써 이웃 사람들을 위해서 가끔 일을 해 주게 되고, 이웃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그에게 사례로 가축이나 사슴 고기를 준다. 이리하여 드디어 그는 전적으로 이 일에 헌신하여 일종의 목수가 되는 것이 자기의 이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사람은 대장장이 또는 놋쇠공이 되거나 의복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수피의 제혁공 또는 완성공이 된다.
이리하여 사람은 누구나 그 자신의 노동 생산물 중에 자기 자신의 소비를 초과하는 잉여 부분을 다른 사람의 노동 생산물 중 그가 필요로 하는 부분과 교환할 수가 있다는 확실성에 의해서 어느 특수한 직업에 전념하게끔 자극 받는다. 또한 그 특수한 업무에 대해서 갖는 재능이나 천분(天分)이 무엇이든 그것을 발전시키도록 자극 받는 것이다. 사람이 제각기 갖는 타고난 재능의 차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실제로는 훨씬 적은 것이다.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성숙 상태에 도달했을 때 얼핏 보아서 대단히 다른 것같이 구별되는 천분(天分)의 차이는 대부분 분업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결과인 것이다.
비슷한 데가 전혀 없어 보이는 인간 사이의 차이, 예컨대 학자와 거리의 짐꾼과의 차이는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습관, 관행 및 교육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리고 6세 내지 8세가 되기까지에는 아마 대단히 비슷하여서 양친도 동무들도 그들에게서 별로 뚜렷한 차이를 찾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나이 또는 그 후 머지않아 그들은 서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 이 때가 되면 재능의 차이가 눈에 띄게 되고 그것은 점차로 커져서 드디어는 학자 쪽은 허영심에서 거의 어떠한 유사점도 인정하려 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래하고 교역하고 또 교환하는 성향이 없었더라면 모든 사람은 자기가 필요로 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을 모두 자신이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의무를 수행하고 같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재능의 커다란 차이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 같은 일의 차이는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성향이야말로 갖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렇듯 현저한 재능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이 같은 성향이 또한 그 재능의 차이를 유용한 것으로 하는 것이다.
모두가 동일 종류로 인정되는 많은 동물 종족은 타고난 능력의 차이를 자연으로부터 받고 있고, 또 그 차이는 습관이나 교육이 가해지기 이전에 인간 사이에 생긴다고 생각되는 천분의 차이에 비하면 훨씬 뚜렷하다. 학자가 타고난 천분이나 성향과 거리의 짐꾼의 차이는 매스티프종 개와 그레이하운드종 개 또는 스패니얼종 개와 셰퍼드 개와의 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갖가지 종족의 동물은 모두가 동일종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상호 간에는 거의 아무런 유용성도 없는 것이다. 매스티프종 개가 힘이 강한 것은 그레이하운드 종 개의 민첩한 것에 의해서도 스패니얼종 개의 영리한 것에 의해서도 또는 셰퍼드 개의 유순한 것에 의해서도 조금도 도움을 받지 않는다.
교환한다는 힘이나 성향이 결여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천분과 재능의 효과는 이를 하나의 공동 자산으로 할 수가 없고 그들의 생활 조건과 편의를 한층 개선하는 데 조금도 공헌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동물은 어떤 것이든 오늘날 여전히 각자가 독립해서 자기를 부양하고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자연히 동류들을 구별한 그 재능의 다양성에서 그들은 아무런 이익도 끌어내지 않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인간 사이에서는 분명하게 다른 여러 천분이 서로 유용한 것으로 된다. 즉 인간의 갖가지 재능이 생산하는 각종 생산물을 거래하고 교역하고 교환한다는 일반적 성향에 의해서, 말하자면 하나의 공동 자산이 되고 누구든지 거기에서 딴 사람들의 재능의 생산물 중 자기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어떤 것이든 구입할 수가 있는 것이다.
◈ 작품소개
1. 시대적 배경
『국부론』이 쓰여진 18`세기 영국은 중상주의(重商主義) 시대였다. 중상주의 시대에는 국가의 부강이 주로 금·은의 획득과 축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 이것은 무역 차액에 의해서 생긴다고 생각하였다. 즉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국의 생산물을 해외에 많이 수출하고, 해외로부터 수입은 가능한 한 억제함으로써 무역 차액을 크게 하고, 그 무역 차액을 금이나 은으로 받아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역 차액의 확대는 개인적인 이해(利害)보다 앞서는 국가적인 과제였기 때문에 중상주의적인 경제 정책은 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실행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무역 차액 확대에 도움이 되는 산업 부문은 보호하는 한편, 외국 산업의 압력을 막아 그들의 국내 시장을 독점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부 무역 상인에게는 독점적 특혜를 주어 다른 상인이 경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이와 같이 국내 산업에 대한 철저한 보호와 통제, 잇따른 정복 전쟁, 그리고 식민지 방위와 경영 등을 위해서 영국은 근대적인 조세 제도를 체계화하고, 화폐 재산의 축적과 자본화를 진전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중상주의라는 국가가 앞장서서 이룩한 독점적 통제 경제 체제는 이미 18`세기 중엽 이후 그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곧 무역 차액의 불안정, 빈번한 불경기, 산업 보호 정책의 지나친 확대, 식민지 유지 경비의 과도한 팽창 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몰락해 가는 수공업자, 하층 직공 및 빈민들의 폭동이 잦았고 급진적 사상과 운동이 싹트기 시작했다. 스미스는 이러한 독점적 통제 경제 체제와 대결하는 자유 방임의 사회를 이룩할 것을 주장한다.
2. 이기적 인간
스미스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어머니 뱃속으로부터 죽을 때까지 간직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총체적으로 볼 때 이기적(利己的)인 것이며, 인간 행동의 기본적 원동력은 이기심에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스미스는 이타적인 면도 지적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총체적으로 볼 때는 이기적이며, 인간 행동의 기본적인 동력은 이 이기심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이기적 본능이 이타적 본능보다 우위를 점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이기적 본능을 주어진 그대로 발휘하게 하는 것이 신의 뜻에 맞고, 따라서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스미스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관계를 문법과 수사학의 관계에 비유했다. 즉 문장은 문법에 의해서만 성립되나, 수사법은 문장을 아름답게 하거나 호소력을 강하게 할뿐이다. 따라서 수사법이 없더라도 문법에만 맞는 문장이라면 뜻을 전달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3. 국부(國富)
스미스는 부(富)를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이라 생각하고 이 부가 증가되는 것이 국력이나 경제력 증대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 나라의 부를 증가시키는 것은 그 나라의 생산력 증진이라고 본다. 그에게 있어 생산력은 토지와 노동이다. 그는 이러한 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분업을 들고 있다. 여기서 분업은 기술적인 분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직업간, 산업간, 사업간, 도시와 농촌간의 분업 등 사회적 분업까지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산력의 증대를 위해서는 단지 기술혁신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정비하고 합리화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산력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사유재산 제도가 있고, 둘째로 절약과 축적에 의해서 한 나라의 부를 끊임없이 증대시켜야 한다고 스미스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것은 자연 가격론과 그 분석 이론으로, 둘째 것은 자본 이론, 자본 축적과 재생산 이론으로서 각기 후세에 이름을 남기게 한 이론적 핵심이다.
◈ 생각해 볼 문제
다음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발췌한 글이다. 제시문을 참고로 하여 분업 생산 체계가 현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론하고, 분업 생산 체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사회의 일반적 업무에서 분업의 효과를 비교적 쉽게 이해하는 데는 어떤 특정 제조업에서 분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고찰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 예로서 대단히 보잘 것 없는 제조업이기는 하지만 그 분업이 흔히 세상 사람의 주목을 끌고 있는 핀 제조 작업을 들어보자. 만약 혼자서 핀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이 일에 대해 교육을 받지도 않고 또 거기에 사용되는 기계들의 사용법도 알지 못하는 노동자는 제아무리 전력을 다해서 일한다 할지라도 아마 하루에 한 개의 핀을 만드는 일도 힘들 것이며, 20개의 핀을 만드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방식을 보면, 작업 전체가 하나의 특수 직업일 뿐 아니라, 그것이 많은 부문으로 나뉘어 있어 그 대부분도 마찬가지로 특수 직업인 것이다.
한 사람은 철선을 늘이고 다음 사람은 바르게 펴고, 셋째 사람은 자르고, 넷째 사람은 뾰족하게 만들고, 다섯째 사람은 핀 머리를 붙이기 위하여 끝을 간다. 핀 머리를 만드는 데도 두셋의 공정이 필요하며, 그것을 붙이는 것이 특별한 작업이라면 핀을 희게 만드는 것도 또 다른 일이며, 핀을 종이에 포장하는 것까지도 하나의 작업인 것이다. 이리하여 핀 제조라는 중요한 일은 약 열 여덟 종류의 작업으로 나뉘어 있어 어떤 제조 공장에서는 그러한 작업이 모두 다른 직공에 의해 이루어진다.
나는 이런 종류의 작은 공장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겨우 열 명이 일하고 있었고, 그 중 몇 사람은 두세 가지의 다른 작업을 겸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약 12파운드의 핀을 제조할 수 있었다. 1파운드의 핀은 중침으로 4천 개 이상이 되므로 10명의 직공은 하루 4만8천 개 이상의 핀을 제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해설
스미스는 분업의 효과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분업은 기능의 개량을 가져온다. 곧 분업에 의해 모든 사람의 일은 단순 작업으로 환원되고, 또 이 작업은 그 사람의 생애에서 단 하나의 일이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기능은 크게 증진된다는 것이다. 둘째, 시간이 절약된다. 즉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옮겨 갈 경우 보통 시간이 상실되지만, 그 시간의 절약에서 생기는 이익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셋째, 기계를 발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저한 분업 체계에 의한 노동 과정은 60년대 이후 인간 소외 현상 등과 같은 심각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곧 지루하고 반복적인 분업의 노동 과정은 그 비인간적 속성으로 말미암아 노동자의 저항을 증대시켰다. 비인간적인 노동 과정인 분업 체계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 증대, 이에 따른 노동 생산성의 저하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끔 만들고 있다. 예를 들면 기계의 비약적 발달 결과인 자동화 생산에서 노동자들의 적응력을 높이고 자발적 동의를 끌어내고자 하는 여러 장치들이 고안되고 있다.
새로운 노동 과정 모델은 분업 체계에서의 대량 생산 방식에서와 같이 일반 조립 공정에서 노동자들이 고정된 작업 라인에 각자 배치되는 일관 작업보다는, 한 팀을 이루어 작업하고 한 팀이 반(半)자율적인 작업 및 의사 결정 집단의 성격을 이루고, 그것을 통해 제품의 질이 개선되는 팀웍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구상(계획)과 실행 분리, 특히 생산 노동자들이 구상(계획) 노동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단순 작업만 반복하던 것이 구상과 실행 기능의 부분적 결합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