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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2011
여러분 소뱅의 손정의 입니다.
바쁜 와중에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오프닝 비디오를 보셨습니다.
금년은 정말 료마전이 있어 료마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인데 이 비디오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에 만든 것으로, 여러분의 핸드폰이라던가 여러 곳에 쓰이는 소뱅의 로고마크 =(equal sign)는 사실 료마의 해원대의 배 깃발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만큼 제가 사카모토 료마를 동경해왔고 그런 이유에서 정해진 로고입니다.
지금은 그야 말로 당시의 막부시대와 같은 시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년 동안 일본은 거의 GDP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정치적, 경제적 문제등으로 나라 전체가 활력을 잃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일본은 다시한번 부활해 여명을 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료마와 같이 높은 포부, 또한 그런 뜻을 이루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다시 한번 활성화 시킬 것이다 라는 그런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소뱅은 적어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업을 하고 있고 물론 소뱅 이외에도 다른 인물, 회사 조직들 역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분기(奮起)하고 여러분들 같이 젊은 사람들이 일념발기(一念発起)*해서 일본에 다시 한번 여명을 맞이 하게하려는 기개를 가지고 힘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념발기 : 지금까지의 생각을 모아 어떤 것을 완수하려는 결의 또는 열심히 힘쓰는 것.
오늘은 올해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회 설명회를 하려는 것이 원목적입니다만 동시에 ustream을 사용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실 수 있도록 Live 발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twitter를 통해 지금 제가 말하는 내용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 학생 여러분 뿐 만이 아닌 그런 마음가짐(뜻)에 대해 이런저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동시에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메인 테마는 소뱅의 회사안내 보다는 제가 무슨 생각으로 소뱅을 사업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일을 이루려하는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메인으로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소뱅의 하나하나의 사업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가장 소뱅이란 회사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큰 뜻을 품어라"
이것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누군가 제 싸인을 원한다거나 좌우명을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합니다.
뜻을 높게 품고 인생을 살아간다.. 뭐 그런겁니다.
제가 어떤 계기로 이렇게 살고 싶어진 것인가 하는 것인데
한 권의 책 때문입니다.
15살 때 읽은 "료마가 간다" 입니다.
시바 료타로가 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진 밝은 학생으로 친구들과 여러 스포츠(축구, 야구등)를 하며 저녁 때까지 노니는 생활을 했습니다만 가끔씩 책을 읽는다 치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 같은 좀 어두운 책을 읽었습니다. 그렇다가 "그런 책 보단 남자다운 책을 읽는게 어때!" 라는 가정 교사 선생의 말로 인해 읽은 것이 바로 "료마가 간다" 였습니다. 1번 밖에 없는 인생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랄까요.
*目からウロコ(메까라우로코) : 직역하면 눈에서 비늘이 나온다 라는 뜻인데
잘 알지 못하던 것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다 라는 뜻.
여러분 중에 NHK 드라마 "료마전"을 보고 있는 분 있으면 잠시 손 들어주시겠습니까?
오~ 대단하군요. 손 들은거 보니 8할이나 되는군요.
이 세상 일반 사람들 보다 여기에 와 있는 여러분쪽이 8할이나 본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료마전을 보면서 전 어제도 눈물이 막 났습니다만 탈 번을 해서 가족에게 폐를 끼칠지도 모르는 와중에 오토메 누나(료마의 친 누나)가 다녀오라고, 넌 토사에 갇혀 있을 인물이 아니라고, 뭔가 큰일을 해야 한다고, 그렇기 위해선 가족들은 괜찮다고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는 장면에서 저 역시 눈물을 흘린 이유는 탈번하는 것이 제 인생과 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입니다.
제가 16세에 미국에 갔는데요.
그때 제 아버님이 피를 토해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가족들도 걱정하고 집안이 어떻게 될지등을 포함해 불행의 수렁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혼자서 미국에 가겠다고하니 친척으로 부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부모가 쓰려져 입원해 있는데 넌 미국 간다는 말을 하느냐~ 냉정한 녀석이구나 라고 말이죠.
담임 및 교장선생을 비롯해 같은 반 급우으로부터도 뭐 아직 고딩1년에 그런 상황에 자퇴까지 하면서 미국에 가려고 하느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결국 굳게 맘먹고 미국에 갔습니다. 료마가 탈번하여 낭인(떠돌이)이 되는 것이, 저로써는 곧 병상의 아버님을 두고 미국에 가는 것이었죠.
전 그때 어머님께 울면서 말했습니다.
병원 의사에게 들으니 아버지는 죽지 않을거라고.. 피는 흘렸지만 죽지는 않으실거라고 가까운 몇년을 생각하면 학교에서 공부하고 그런게 중요할지 몰라도, 앞으로의 몇십년을 생각하면 가족을 위해서라도, 가족을 넘어 내 스스로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 인생을 바치고 싶다며 눈물을 꾹참고 미국에 갔습니다.
즉 제게 있어서 마음가짐(뜻)은 "료마가 간다" 라는 책을 통해 싹텄습니다.
뜻은 뭘까?
그때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는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뭔가 큰 일을 이뤄,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 라는 마음이 강했던 것입니다.
백만 천만의 사람들을 돕고 싶다. 라는 것이죠.
금전욕 같은건 아니였습니다.
그런게 아니라 뭔가 많은 사람들에게 '저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라는 말을 듣고 싶어 결심했던 겁니다.
제게 있어 인생에 5가지 큰 승부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쇼부는 바로
1. 뜻을 품고, 미국으로 도망!
15살 여름방학 때 어학연수겸 미국에 갔다 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문명이 발달된 힘이 있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전 눈을 뜨게 되었죠.
료마가 해외에 미국에 유럽에 보고 싶다 했지만 갈 수 없었죠.
요시다 쇼인 선생*이 어서 미국에, 외국에 가자~ 하며 밀항하려 했다가 발견되어 참수당했는데 그만큼 목숨을 걸고 보고 싶다 했던 사람들이 못간 외국에 저는 갈 수 있는 찬스가 있어 가서 보고나니 "이건 얼마나 놀라운가 일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하다"고 느껴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탈번이다~ 하며 고딩 1학년 1학기때 자퇴원서를 낸거죠.
*吉田松陰 : 요시다 쇼인은 료마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페리의 쿠로후네(흑선)를 접하고 개국론을 주장한 사상가였습니다. 이후 정한론(정조론)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메이지 유신의 주축이 되었습니다.(그 중엔 우리에게 친숙한 이토 히로부미가 있죠) 암튼 일본에서 방영한 료마전의 쇼인선생 역할에 캐스팅된 배우는 일드매니아 라면 다들 알만한 고쿠센이나 트릭에 출연해 유명한 나마세 카츠히사 입니다.
교장이나 담임선생은 적어도 미국에 가려면 휴학하는게 어떻냐고 대학에 가서, 대학 졸업하고 그쪽 상황을 대충 살피고 가는게 어떻겠냐고 했죠. 하지만 전 교장에게 말했습니다. "선생, 전 약한 남자입니다. 미국에 가도 영어도 모르겠고 혼자서 어떻게 생활할지도 모르겠고, 난관에 부딪히면 부서질거 같은 약한 마음이라 그냥 돌아올거 같습니다. 즉, 퇴로가 있으면 난관에 맞설 수 없으니 휴학이 아니라 퇴학시켜 달라고 말이죠.
전 이 고딩학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불만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만을 가지고 퇴학하는게 아니며 모두 멋진 친구, 선생님들이며 이렇게 혼심으로 절 말려주시는 걸 보니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그렇니 미워서 가는게 아닌 도전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니 퇴학 시켜달라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 가서 미친듯이 공부했습니다.
제가 바라고 좋아해서 간것이니 변명할 여지 없이 죽을만큼 공부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대학생이죠?
지금 대학생인 현재하고 당시 저의 상황이랑 비교하면, 5000명의 사람들이 있는데..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건, 저만큼 공부한 녀석은 이 중에 없다는 겁니다.
어떻게 자신하냐.. 도중에 페렴에 걸렸어도 페렴인지 모를정도로 기침하고 머리는 띵하고 그 상태에서도 일절 쉬지 않고 수업 빠지지 않고 교실 중앙에 앉아 선생을 잡아 먹을 듯한 기세로 바라보며 공부하고, 화장실에 갈 때도 절대 책을 손에서 떼지 않고 읽으면서 들어갔었습니다.
길 걸을 때도 책 읽고, 운전할 때도 이어폰으로 수업 내용을 테잎으로 복습하면서 자는 시간도 최소한으로 해서 자는 시간 외에는 전부 공부했습니다.
영어를 잘 모르겠다 그런 것도 전 변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 일본에서는 고 1때까진 공부 정말 싫어 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변명을 해댔죠. 하고 싶지 않은걸 하니까 뭐땜에 이런걸 하냐구 이런거 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겠어? 하며 거의 공부에 손을 떼었었죠.
그치만 피를 토하는 부친을 두고, 우는 모친을 뿌리치고 미국에 온 거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내가 변명하고 공부를 안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학생인 내게는 공부가 본업이라고 공부하지 않으면 벌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있는 여러분들 보다 적어도 1일 절대 공부시간량에서는 내게 이길 자 없다고 한거죠. 전 물리적인 한계를 초월해서 공부했었죠.
그렇게 퇴로를 끊고 미국에 간 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이자 승부였습니다.
그렇게 간 미국에 고교 1학년으로 입학했습니다.
1주간 만에 교장이랑 타협해서 이제 됐다 2학년으로 바꿔 달라 했고 2학년 교과서를 3일동안 다 보고 다시 3학년 교과서 달라해서 3일만에 교과서 다 읽고 이것도 됐다며 안녕~ 하며 그대로 대학에 갔습니다.
그렇니까 고딩 생활은 일본에서 1학년 1학기 3개월간 + 미국 합계 2주간을 끝으로 대학에 간거죠. 대학에선 아까 말한듯 죽을듯이 공부했었습니다.
대학 3학년때, 만남은 돌연 찾아왔습니다.
19살 때 처음으로 마이크로 컴퓨터의 칩 사진을 봤습니다.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마이크로 컴퓨터의 칩… 과학 잡지에서 보고 꽝! 하고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길에서 읽으면서 걸었죠. 미래 도시 설계도 같은 컬러 사진이 있었고 뭔가 처음보는 신기한 사진이라서 다음페이지를 보니 이게 알고보니 마이크로 컴퓨터 칩을 확대한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게 사람 손가락 끝에 올려져 있는 크기 였죠.
그걸 보고 눈물 범벅이 되었습니다. 전율을 느끼면서 말이죠.
인류는 이렇게 대단한걸 만든걸까!
인류는 처음으로 스스로의 뇌를 뛰어넘는 것을 발명한걸지도 모른다.
이 정도의 굉장함 감격에 쇼크를 받고 감동한 것이죠.
이것에 의해서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의 어떤식으로 인류 사회가 발전해 나갈지 상상을 시작하면 정말 무서울 정도로 충격을 받은거죠.
그래서 그것을 이용해서 발명에 전념하게 된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아까도 말했듯 부친은 병원에 몇년간 입원해 있었고, 경제적으로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대학3학년 때 하루 하나씩, 1일 5분간 공부 이외의 것에 사용해보자 말이죠.
그전까진 밥을 먹을 때도 반드시 왼손에는 교과서 오른손으로는 젖가락으로 했는데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한번 편하게 두눈으로 보며 식사를 하면 얼마나 맛있을까? 그런 호화스러움이 있긴 한걸까? 라고 생각한거죠.
여러분은 식사할때 대개 양눈으로 접시 보며 식사하죠?
하지만 전 그런 호화스러움이 없었어요. 그게 안됐어요. 반드시 식사할 때도 교과서를 보면서 시야의 끝자락에 어렴풋 보이는 접시에 찔러서 집히는 걸 먹었죠.
가끔은 후추 같은 것 그대로 먹고 아~악 한적도 이는데요 (웃음) 그정도로 공부한 거죠.
그래서 5분간은 자신을 위해 한번 써보자. 얼마나 사치스러운걸까.
호화스러운 이 시간을 발명을 위해 한번 써보자 해서 한거죠.
1일 하나씩 뭔가 발명해서 그중에 1개를 1년 걸려 선택해 그 발명으로 대박내 보자했죠.
1천만 정도 벌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지금 시대도 1일간 5분의 아르바이트로 1년간 힘내서 백만엔 벌면 여러분들도 좋은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1일 5분 일하고 1년간 일해서 백만엔 모은다.
지금도 그런 아르바이트는 왠만해선 없을 겁니다.
그런데 30년도 더 된 옛날이니 그 당시 화폐가치로 따지면 그야말로 헛된 목표였죠.
친구에게 그렇게 좋은 아르바이트 없나 물어보면 다들 비웃었죠. 바보 아니냐며…
하지만 전 진지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발명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했고, 마츠시타 고노스케도 작은 발명으로 부터 회사를 세운것이니 나도 발명 해보자.
* 松下幸之助 : 마츠시타 고노스케는 지금은 파나소닉으로 이름이 바뀐 마츠시타전기산업을 설립한 사람으로 많은 발명과 함께 책을 저술 했다고 함. 파나소닉주식회사에서 나오는 대표적 브랜드로 National, Panasonic, JAC가 있음
그렇게 스스로에게 준 여가 시간, 즉 발명의 시간으로 하루에 하나씩 발명해보자하여 그래서 해냈습니다.
250여개 발명했습니다. 최근 트위터에서도 해냈습니다! 라는 걸 적는데요.
정말 해냈습니다. 1년간 1일 5분간 250개를요.
물론 그 안에는 시시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가 세계 첫 포켓 컴퓨터였습니다. 지금의 아이폰 같은거죠.
이걸 19세에 발명했는데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어서 조수를 모아보자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 교수나 연구원 5~6명으로 프로젝트팀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5분 밖에 시간을 못 내니 선생들에게 남는 시간에 저를 위해서 아르바이트 해달라며 꼬셨습니다. 급료로 1시간에 얼마나 받고 싶은지는 선생이 원하는 금액을 적어달라고 했죠. 단, 한가지 조건이 있는데, 선생이 적는대로 드리겠지만 발명을 완성시켜서 특허가 팔리면 거기서 드리겠다. 지금은 돈이 없다. 잘되면 말하는대로 드리고 안되면 선생님들은 허탕치는 것이다. 라고 말이죠. 선생님들은 웃으면서 재밌는 학생이다라며 잘은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자해서 프로젝트팀이 결성된 것이죠.
그때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겁니다.
그때 연구원이 왼쪽의 아저씨.. 그가 프로젝트 팀원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매일 보스라고 다음엔 뭘 하면 좋으냐며 지시를 기다리는 뭔가 신기한 관계였는데요.
그때 저는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죠. 19살에..
20대 이름을 알린다.
30대 사업자금을 모은다.
40대 사람에 승부를 건다.
50대 사업모델을 완성한다.
60대 다음 세대에 사업을 계승한다.
그렇게 5개 단계의 lifeplan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번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19살때 만든 제 자신의 계획을 한번도 바꾸지 않았어요.
그때는 돈이 1엔도 없었습니다.
발명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설계도로 특허를 내고 거기까지는 내가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방금전 말한 교수진과 함께 한거죠.
돈은 없었지만, 그래도 뜻은 있었기에 몇백, 몇천만에게 유익한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 지식 열정 같은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해서 20대에 소뱅을 설립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돌아왔습니다.
대학 졸업하기 조금 전에는 우수한 학생은 보통 대학원에 진학해서 박사과정으로 갑니다.
제 주변에도 우수한 학생이 많았고 대학 4학년 때 저 역시도 미친듯이 공부했으니 대학원 중에서도 하바드나 스탠포트나 MIT등에서 학비 대줄테니 오지 않겠냐고 초대장을 받았었습니다. 그만큼 교수에게 추천도 받은건데 다 거절하고 일본에 돌아가겠다고 해서 돌아왔습니다.
이미 일본에 왔을 땐 회사를 세웠었습니다.
19세에 발명한 특허료로. 아까도 말한 포켓 컴퓨터로 특허를 받아서 1년 반만에 1억 7~8천만엔 정도 벌었습니다.
Sharp에 팔아서.. 또 다른 게임 프로젝트도 해서 1억 5천만엔 정도 벌었죠.
제가 19세 학생 때 당시 화폐가치로 3억 이상 벌은거죠.
젤 처음 세웠던 목표, 하루에 5분 일해서 1천만엔 벌자 했던게
실제로는 1년 반만에 3억 수천만을 벌었으니.. 지금의 화폐가치로는 훨씬 높겠죠.
그대로 계속 고향에서 발명을 하자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좀 더 큰 걸 해보자 해서 회사를 세운거죠.
일본에 돌아와서 학생 때 만든 회사는 매각하고 소뱅을 세웠는데요.
하지만 일본에 돌아온지 1년 반 정도는 고민에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분명 지금의 여러분들도 대학 졸업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 여러 가지로 고민할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인생을 살면 좋을까 여러 선택지가 있겠죠.
저도 여러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안이하게 결정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우연한 무엇인가로 결정되기 싫었습니다, 자신이 결정한 직업 자신이 결정한 일 이런걸 막 바꿀 수는 없죠.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소비할지, 자신이 오르고 싶은 산은 어디인지, 자신이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오르고 싶은 산을 정하자. 이걸로 인생의 반이 정해진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으로 돌아와 1년 반간 생각해서 나온 것입니다.
자신이 오르고 싶은 산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돼! 이걸로 인생의 반이 결정돼 그런것입니다.
자신의 테마, 인생의 테마, 인생의 뜻입니다.
한번 더 료마전으로 돌아옵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자신은 태어났는가..
일을 이룬다. 일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에게 있어서 사업가가 되고 싶다였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걸기에 어울리는 일은 무엇일까? 1년 반간 40여가지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안하는 것, 새로운 것,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제일이 되는 것, 이득이 되는 것, 자신이 계속 호기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 의욕을 가지는 것,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되는 것 등
계속 기술 혁신이 이뤄지는 곳이 아니면 열정이 식기 때문에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결론이 나왔습니다. "디지털 정보 혁명"
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지식이 공유할 수 있는 뭔가 큰 네트워크 플랫폼 그런 서비스 사업을 만들어서 뭔가 큰 데이타베이스를 이뤄서 공유가 된다면 사람들이 보다 행복하고 일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즐길 수 있고 병에 걸린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그런 일이라면 인생을 걸기에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뜻으로 좋아! 이거다! 하고 내가 일을 거는건 바로 이 뜻이다 라고.. 이걸 위해 인생을 거는 것이다 해서 결의를 하고 소뱅을 세웠습니다.
일본 소프트뱅크.
후쿠오카의 작은 마을에서 세워졌습니다. 자본금 천만엔.. 알바 2명을 두고 말이죠.
그들에게 앞으로 소뱅이란 회사를 세워서 여러 일을 하자 정보 혁명, 컴퓨터로 디지털한 사회 정보혁명을 일으키자~ 그렇게 1시간 정도 얘기(조례)를 했습니다.
2명의 알바를 두고 말이죠. 귤 상자에 앉아서 30년 후의 우리 회사의 모습을 보자~ 조례를 했습니다. 적어도 소뱅 우리회사는 30년 후에는 두부 장수와 같이 수의 단위를 1조 2조같이 세겠다. 두부 장수는 이름 아침부터 1정 2정(우리나라로 치면 한모 두모 하는 식)이라고 외치죠.
1천억, 5천억이 아닌 1조 2조로 세는 규모의 회사가 될거야.
그렇게 일주일 지나자 알바 2명이 그만 뒀습니다. 이 사람 이상하다면서 에어콘도 없이 선풍기만 있는 이런 뜨거운 방에서 이건 뭐냐며 말이죠. 전 다시 혼자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제 뜻은 굽히거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생 2번째 승부..
2. 창업 1개월 후의 대 승부 (자본금 1천만엔)
자본금 1천만엔의 회사입니다. 아까 학생 때 미국에서 만든 회사는 매각했다고 했는데요.
당시 2번째 였던 부사장에게 매각했습니다. 돈은 후불로도 좋다 하고 폼잡아 말했었죠. 그래서 수중엔 돈이 없었죠.
일단 1천만엔으로 자본금으로 창업해 1개월만에 다 써버렸습니다.
오사카 일렉트로닉스 쇼에 이름을 올리고 800만엔을 사용해서 말이죠.
지금부터 퍼스널 컴퓨터(PC)라는 것이 이 세상에 넘쳐흐르는 시대가 올것이다.
그 PC에는 내 소프트가 필요할 것이다. 그 소프트는 여기서 팝니다.
라는 것에 800만엔이 든겁니다. 그리고 소프트 카탈로그로 200만엔이 들었습니다.
즉 회사를 창업 1개월 만에 1천만엔을 다 써버린것이죠.
이 얼마나 무모한건지 하지만 이름은 알린 거라고 그런거라고 앞으론 어떻게 되겠지 라며 전액을 쓰고나서 고객이 없으면 끝나는거였죠. 실제로 그 뒤 고객은 없었습니다만…
그렇게 1개월이 지나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죠신 전기인데, 일전의 쇼에서 소프트뱅크 전시 코너를 봤습니다. 놀랬으며 거래를 해달라"고 말이죠.
그렇게 거기서 거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급격한 상승으로 0 매출에서 1년만에 30억엔의 매출로 이어졌습니다.
승부가 맞았다 하는거죠.
손님이 몰리고, 사원 2명에서
1개월 후에는 15평으로 이사해서 사원이 15명이 되었습니다.
다시 1개월 후엔 100평에 100명, 그리고 또 300평 150명~200명 사원
1년만에 30억엔으로 된건데요.
처음 1개월엔 맞을지 안맞을지 모르는 큰 도박이었습니다.
그렇게 주간 아사히에 특집에 "혜성 나타나다" 등 좀 흥행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큰 고난이 있었습니다.
창업해 1년반, 건강진단을 받으니 간이 안좋으니 즉시 입원하라고..
그렇게 3년 반 동안 입원하기를 반복하였는데. 동료들과 사원이 떠나가고 고객들도 떠나가고 자금이 부족해져서 곤란 투성이었습니다.
라이벌에서는 광고도 거부되고 수렁에 빠진 상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지해준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사원, 파트너, 고객들로 인해 어떻게든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30대가 왔습니다.
병도 나았고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 더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학생시절을 떠올리며 미국에서 도전하려고 했습니다.
슬슬 자본금이 모였지만 더 많이 모아서 주식 상장, 공개를 하자 그리고 막 도래하기 시작한 인터넷에 도전하자 했습니다.
그리고 인생 3번째의 승부가 됩니다.
3. 주식공개, 미국 진출
당시 상장해서 소뱅의 시가총액은 2천억엔 정도 되었습니다.
그때 그 자금을 써서 일단 미국에서 세계 최대 컴퓨터 전시회인 "comdex" 를 인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업 때는 오사카에서의 전시회에선 800만엔을 썼었습니다만, 이번엔 800억엔을 써서 인수하려고 했는데 이건 좀 큰 모험이었죠. 게다가 출판도 했었는데요. 컴퓨터 업계 세계 최대의 출판사인 "Ziff Davis" 도 인수하자 였습니다. 이게 인생 3번째의 승부입니다.
컴덱스 800억엔 + 지프데이비스 2천300억엔을 써서 합계 3천100억엔을 쓴거죠.
회사 전체 가치가 2천7백억엔인데 다시 전액을 쓴거죠.
이번에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가 승부였습니다. 왜냐면 인터넷 시대가 올거라고, 새로운 그 시대를 열기위해서는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물 찾기를 할 때는 가장 중요한건, 먹을것도 아니고 약도 아니고 지도와 나침반 입니다.
여러분이 무인도에서 보출 찾기 할때 지도와 나침반만 있으면 하루만에 찾아서 돌아올 수 있을겁니다. 가장 중요한건 바로 그 두개죠. 그런 의미에서 컴덱스와 지프데이비스인거죠.
세계 최대의 전시회, 세계 최대의 출판사를 인수해서 찾아낸 보물이 Yahoo 였습니다.
아직 당시 야후의 미국 직원이 5~6명이었습니다. 막 생긴 야후에 그때 100억엔을 투자해서 대주주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야후 재팬을 세웠죠.
그렇게 30대의 승부를 했습니다. 여러 곤란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넘어섰고 그리고 40대가 왔습니다.
30대 마지막 정점에서는 인터넷 거품으로 주식이 올랐고 절정기엔 정말 대단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소뱅 지분만으로도 1주일만에 1조엔씩 증가했었어요.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1주일에 1조엔씩 증가한다고 쳐봐요.
돈이 필요없어져요 ㅎㅎ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매주 그렇니까..
긴자든 어디 가든, 구매한다는 기쁨이나, 가지고 싶었던 것에 대한 망설임이나 사고 싶은것을 구매했을 때의 기쁨이 완전히 제로가 되어버렸습니다. 1주일에 1조엔씩 증가하니 이대로 계속되니 몇조엔이 될려나 말이죠.
긴자의 미츠코시*에 가서 살까? 뭘 살까? 아예 백화점 통채로 사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죠.
*三越 銀座店(미츠코시 백화점) : 긴자에 있는 대표적인 백화점
암튼 그런 구매의 기쁨이 사라져서 1조엔씩 늘어가니 누가 가져갔으면 했습니다. 좀 방해가 된다는 기분이 었는데 여러분은 그런적 없죠?
금전감각에 대해 이상해 지더군요.
하지만 돈이 아니라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일이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감사받고 기쁨이 되는 걸 말입니다.
돈은 아무래도 좋다고 말이죠.
그렇게 40대 사람에게 걸자고 생각하고 돈에 대한 이야기는 더이상 하지 않았으면 하는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 직후 인터넷 거품이 붕괴했습니다. (일본 버블의 붕괴)
그때 소뱅의 주식가치가 1/100로 떨어졌습니다.
버블 정점일 때 3일정도 빌게이츠 보다 부자였을 때가 있었어요.
돈 필요없어~ 하던 직후에 버블이 붕괴하고 돈이 1/100이 되니 범죄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인터넷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기꾼 처럼 완전히 범죄자 취급을 하는거죠.
어느 잡지를 펴봐도 말이죠. 인터넷 기업=사기꾼집단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큰일이었죠.
돈 필요없어 하다가 이젠 돈이 없는거죠.
개인적으로 조금 빚을 졌었다면 그때 가지고 있던 주식보다 훨씬 넘어섰을 뻔한거죠.
이제는 돈 필요없어~ 라는 사치스러운 말은 안하게 되었어요.
그 수렁에서 이제는 자포자기다, 어차피 돈도 없고, 이제는 최후의 승부로 가자는 맘으로 이미 준비를 시작한 큰 승부였던, 브로드밴드로 가자 였습니다.
4. 브로드밴드 사업 시작
이건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버블의 정점인 돈이 남아돌 때, 좋아! NTT와 승부해보자!
그 NTT와 쇼부해서 이겨버리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승부하려는 순간 아 돈이없어~ 하는 수렁에 빠졌지만 물러설 수는 없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의 인터넷은 세계에서 가장 느리고 비쌌습니다.
이래서는 인터넷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부끄러웠습니다. 실리콘 밸리 무리에 대해 부끄러웠습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GDP인 나라인데, 선진국 중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느리고 비싸다고 하면 그게 무슨 나라냐라는 부끄러움이 있었죠.
그래서 일본의 인터넷 업계 전부를 위해 일본 인터넷 유저 전부를 위해 내 인생보다 그쪽이 중요하다, 소뱅도 중요하지만 소뱅의 경영자로써 책임을 가지고는 있지만 소뱅이 망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왜 태어난 것일까? 내 뜻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되새기며 '디지털 정보 혁명'때문에 인생을 바치고 있는데 여기서 물러서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세계에서 가장 느리고 비싼 인터넷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싸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 있어서의 메릿은 야후 재팬뿐만이 아니였습니다. 물론 자회사라 메릿은 있겠지만 말이죠. 더불어서 라쿠텐*도 기뻐하고 니프티*등 여러 회사들도 기뻐하는 걸 보고 한 임원이 사장 그래도 괜찮습니까? 하는것에 대해 바보녀석! 그런 찌질한 생각으로 어떻게 할꺼야?
야후 재팬과 더불어 라쿠텐 그리고 모바게임 등등 모두 기뻐하는 것만으로 좋은거 아닌가?
중요한건 우리랑 경쟁하는 라이벌이 기뻐하는거다 하니 야후 재팬만 싸게 하죠~ 하길래 바보야 모두에게 싸게 해주자! 한거죠.
*楽天(라쿠텐) : 일본 최대 경매 구매대행 사이트
*nifty : 일본 검색 포털
그래야 인터넷 유저들이 전원이 기뻐한다.
일본 국민이 전부 인터넷 유저가 될거야
그럼 언젠가 국민이 기뻐해 줄거야!!
하지만 사장님 우리가 한것에 대해 감사받지 않고 그렇게 흘러가면 누구 덕분에 그렇게 된건지 다 잊어버릴거예요. 라는 걸 듣고 저는 이랬죠
"좋지 아니한가 이름도 돈도 지윈도 명예도 필요없다 그런 남자가 가장 귀찮다. 그런 신경 쓰이는 남자가 아니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라는 말을 한게 막부말의 사이고 다카모리*입니다.
*西鄕隆盛 : 도쿠가와 막부를 종결 시키고 메이지 유신을 이끈 주역 중 하나입니다. 앞에서 나온 요시다 쇼인의 제자중에 한명이죠. 료마전을 보시면 역시나 나옵니다. 료마가 싸스마 번과 죠슈 번의 동맹을 이뤄냈죠.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쓰마 번의 대표였음)
이름도 돈도 지위도 명예도 생명도 필요없는 귀찮은 남자는 이기려 해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귀찮은 것이지요.
NTT쪽에서 보면 그래요.
당시 NTT가 내논 요금제의 1/5이었으니까요.
세계 최고속으로 NTT의 4배의 속도였고 미국이나 유럽 중국의 10배의 속도였습니다.
그런데 가격은 NTT의 1/5 였고, 다른 외국과 비교해도 세계에서 가장 쌌죠. 그런 브로드밴드를 제공한 것입니다.
뭐 그야말로 암것도 필요없어! 라는 상태였어요. 죽여~ 라는 거죠.
그 만큼의 영혼이 없으면, 열정이 없으면 혁명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걸 발표한 날, 하룻밤 만에 신청이 100만건을 돌파했습니다.
그야 말로 100만의 사람들을 돕겠다는 각오가 그렇게 온것이죠.
그만큼 기재를 준비못했었죠. 그만큼 신청해올줄 몰랐으니까요.
그 뒤로 반년 고객들이 기다리면서 사기꾼 소리를 들었죠.
암튼 그렇게 폭주해 대니 NTT가 연결 시켜줄리가 없었어요.
귀찮은 수속만 핑계를 대가며 결국 총무성에 가서 얘기했습니다.
*총무성(総務省) : 행정조직·인사·지방자치·선거 제도·정보통신·방송·우정·통계 등을 담당하는 정부기관
총무성인 당신들이 말하지 않으면, 그 독점적인 회선을 가지고 있는 NTT가 연결해주지 않는다. 이건 명백하게 수속이 수상하고 독점법 위반이며 당신들이 제대로 안해주면 난 100만 고객에게 면목이 없으니까 기자회견을 열어서 "신청 받았지만 제공이 안되서 죄송하다" 할테고 그런 사죄의 의미에서 책임을 지고 난 여기서 내 몸에 불을 붙이겠다고 하니 총무서 관리자가 잠시 기다려 달라! 하며 여기서 불 붙이는건 참아달라 했습니다.
그래서 전 그런 문제가 아니다, 당신 책임을 다해달라!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자리에서 다른 요구는 안할테니 그저 NTT사장에게 전화해서 "fair" 정정당당하게 해달라 한마디 전해달라고 해서
겨우 수속이 진행되었었습니다.
이래서 이 야후 BB 빨간 봉투 여러분도 기억하시나요?
역이나 터미널에서 야후 브로드 밴드를 경험해 보라며 무료로 나눠주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인터넷 버블이 붕괴되고, 돈도 없는데 잘 해냈네 하겠죠 하지만 그건 결국 하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뜻)을 이룬다!
그것이 뭔가? 하니 일본의 최대의 인프라 회사인 NTT는 독점적으로 네트워크를 운용하고 지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NTT의 회선이 아니면 인터넷 서비스를 할 수 없었죠.
전 몇번이나 NTT사장을 직접 만나러 갔습니다.
전 브로드밴드 시작하시죠. ASDL시작하세요. NTT로써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일본은 곤란해진다. 했더니 NTT사장은 "NTT로써는 ISDN을 하기로 결정했다" 라는 것입니다.
IDSN? 그런거 하는건 셰계적으로 일본 밖에 없었어요.
그런 이유로 비싸고 느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 얘기가 NTT에 전혀 안먹히니, 내가 하겠다 해서 결의해서 한게 야후 BB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야후 BB라는 것은 소뱅이 돈을 벌려고 한것도 아닌, 명예욕을 위해서 시작 된것이 아닌 생명의 외침으로써 생명을 내리려고 한 것입니다.
이걸 했을 때 전, 얼마전에도 들었던 말이지만.. 손회장님 눈은 피를 토할 독기가 있어요. (의역)
"당신이 만나러 오라고 해서 알았습니다."
"할 얘기가 있으니까 와" "알았습니다 몇시쯤이 좋겠습니까?" 하니
"오늘 와줘" "몇시에 가면 되겠습니까?"
"3시다" "알았습니다 어디로 가면 좋습니까?"
소뱅 본사 맞은편 작은 빌린 사무소에서 엔지니어들과 같이 숙박을 했는데요.
3시가 바로 새벽 3시 오라고 하는 시간이 새벽 3시인겁니다.
새벽 3시에 가면 양계장 같이 빽빽한 곳에서 작업 책상이 전부 그 작은 방에 있는 상태였어요.
2시에 오면 3시까지 미팅하고 미팅 끝나면 부하한테 한 말이
"6시까지 끝내놔 난 집에 갔다 올테니까"
6시라는게 저녁 6시 아니라 그날 새벽 6시 인거예요. 3시간 정도죠.
그렇게 1년간 피토할만큼 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인터넷 버블이 붕괴된 뒤에 2천 수억엔의 시가 총액이 떨어졌을 때 다시 4천억의 적자를 잘도 만들었구나 생각되는데요. 어떻게든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높은 뜻이 있었던 것 때문이죠.
그야말로 우리에겐 벼랑 끝 전투였어요.
작은 우리 회사가 말이죠 일본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고 게다가 거품으로 꺼진 뒤에 하는 전투, 정말 대단한거였죠.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것도 NTT나 eAccess에 대항해 말이죠. 그걸로 좋았어요.
누군가가 팍 연못에 돌맹이를 던지면 말이죠, 물에 파장이 일어나죠.
그런 그 파장이 적에게서 되돌아 오고 그걸로 되었어요.
적인 NTT나 eAccess도 정보혁명을 일으키고 싶다 라는 의미에서는 같은 뜻을 가진거였습니다. 디지털 정보혁명을 일으키고 싶다. 브로드밴드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는 것에서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적도 같은 편이 되는거죠
최악의 경우 우리 회사가 망한다 해도 그 결과 일본에 브로드밴드의 여명이 밝아온다면 그건 그거대로 목적은 달성된거다 라고.
일본의 유저나 국민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결과적으로 버려지는 돌이 된다 하더라도 막부 말의 존황양이* 혁명의 지사가 도중에 죽음을 당한다 해도 결과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다면 그걸로 훌륭한 일은 이룬거다라고 말이죠.
*尊皇攘夷 : 천황의 권위를 절대시하여 높이고, 서양인(오랑캐)을 물리치려 하는 사상
이제 곧 료마전에서는 쿠사카 겐즈이*가 죽어요. 이미 요시다 쇼인 선생도 죽고, 다케치 한페이타도 할복이예요. 료마전 스포일러 하지 말라~ 하겠지만 이건 역사적 사실이니까요 ㅎ
*久坂玄瑞 : 요시다 쇼인이 가장 사랑했고, 제일의 제자라고 일컫어졌던 초슈번 사람. 쇼인의 여동생과 결혼 함. 25세에 자결. 드라마에서는 크라우즈 제로등에 출연했던 야베 쿄스케가 역할을 맡음. 설령 자신의 몸이 썩어, 자신의 생명이 없어진다 해도, 유신의 뜻이 일어난다면 그건 그거대로 멋진 걸 이룬 것이라고 말이죠.
설령 만약 NTT라는 일본 최대의 회사에 챌린지해서 망한다해도, 소뱅이라는 회사가 망한다 해도, 손정의가 죽는다 해도 말이죠. 그렇게 서로 파장이 일어나 가격경쟁이다 스피드 경쟁이다 해서 그런 느려터진 엄청 큰 회사가 말이죠. 뭐 지금 NTT관계자가 트위터나 유스트림으로 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굳이 말해 버립니다.
그런 큰 회사가 이래서 눈을 떠준다면, 너(NTT)도 동지다! 말이죠.
라이벌로써 싸우는 거지만, 맘속으로는 동지라고 생각해요. 팔로해서 힘내야 겠어요 (트위터에서 NTT팔로해야 겠다는 얘기)
그런거였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온다면 그걸로 된거다 라고 말이죠.
소뱅의 주주들, 회사 직원들에겐 면목없지만 미안! 함께 죽어줘~ 이런거예요.
형명이란 그런 것이다. 생명,돈, 명예도 필요없어 결과적으로 소뱅이 없어지고 명예가 없어져도 괜찮지 않냐고, 그래서 일본의 인터넷, 브로드밴드의 여명이 밝으면 그걸로 된거 아니냐고 그정도의 각오가 없으면 뜻도 못 이룬다고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결국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싸게 되었습니다. 세계 제일의 속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나쁘다던가 정치가가 나쁘다거나 경기가 나쁘다거나 그런 변명이나 불평으로는 암 것도 안된다는 겁니다.
불평은 자신의 그릇을 작게합니다.
푸념한다해서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푸념할 여유가 있다면 자기 혼자의 생명이라도 좋으니 생명을 버릴 각오가 있다면 파문을 일으키시라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그런 연유로 인생 5대 승부, 40대의 큰 승부가 브로드 밴드 참가.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승부인 모바일 인터넷 때문에 보다폰 재팬을 인수합니다.
몸을 버릴 각오였지만, 그래도 경영자로써 회사 사장이기에 일단 부서지지 않도록 해야 했죠. 직원들도 함께 죽어줘~ 했지만 역시 그들의 삶도 있으니 그런 책임이 있는 저로썬 일단 여러 전략이나 계산을 하고 기술적 준비를 해야 했죠. 당연한 것이니 그저 쓰러져버리면 안되니 이런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브로드밴드도 성공했습니다. 겨우 이익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버블 상처도 조금은 회복하고 어떻게든 이익이 나오기 시작한 쯤에 한번 더 승부를 건거죠. 왜냐면 이미 19살에 결정한 것이니까요.
40대 제가 경영가로써 승부를 하자고 말이죠. 48세가 되었습니다.
40대 한 승부… 브로드밴드로 전 재산을 던졌지만 이건 아직 아니다.
아직 2살 남았다 해서 한번 더 승부를, 전재산을 던지자 한거죠.
2조엔의 시가총액이 부활하고, 인터넷 버블이 꺼지고 야후 BB를 시작하면서 2천억까지 떨어졌었어요. 그런데 10배 다시 오른거죠. 그런데 그렇게 오른 2조에서 다시 전재산 털어내면서 2조엔의 인수 금액을 써서 최후의 승부를 건건데 이게 보다폰 재팬 인수입니다.
그때는 번호 Portabliity(우리나라의 번호이동과 동일, 2006년에 시행됨)이 시작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보다폰 재팬도 두들겨 당해버릴 거라고 소프트뱅크도 당해낼 수 없을거라고 모두가 말했습니다.
그때 4개의 개선하지 않으면 안되는게 있었습니다.
보다폰 단말기가 촌스러
네트웍이 연결이 안돼
영업이 약해 브랜딩이 약해
그리고 컨텐츠가 없어
반대로 말하면 이것 밖에 없었습니다.
4가지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해서 이렇게 공약을 내걸고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화이트플랜이다 뭐라 여러가지 하면서 어떻게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이겁니다. 아이폰! 소뱅크만 일본에서 가지고 있는 아이폰.
아이폰 덕분에 소뱅은 다시 더더욱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금년 1년간 봐도 DOCOMO, AU 보다 더욱 순 사용자 증가수가 연속 1위가 되었습니다.
(표 바뀌고) 이 빨간부분이 보다폰 재팬의 시대입니다.
거의 올라가지 않았는데, 회색 부분 소뱅이 되고 나서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고객도 늘어나고 TV선전도 호감도 3년 연속 1위
하얀 아빠 개 CF* 이것도 3 연속 1위죠.
*아빠 개 CF : 가족중 엄마 딸은 사람, 아빠는 개라는 재밌는 발상의 CM.
딸 역에 우에토 아야가 나오는 CF인데, 여러 버라이어티에서도 우에토 아야의 아빠가 개라는 식의 쯧코미나 개그를 합니다. 그만큼 사회적 인식이 넓게 이뤄졌다 할 수 있죠. 직접 유투브 같은데서 찾아보시면 이해가 빠를듯.
어떻게 마지막 큰 승부도 무사히 넘어서고 있습니다.
전 지금 50대에 있습니다.
50대에 비지니스 모델을 어느정도 완성시킨다.
이것이 19살에 세웠던 계획입니다.
20대에 이름을 알린다.
30대에 사업자금을 모은다. 1~2천억 정도 규모의 말이죠. 주식 상장말이죠.
40대에 사람에게 건다. 말도 안되는 숭부인데, 이게 바로 야후BB와 보다폰 재팬의 인수입니다. 참고로 2조엔 현금 인수는 일본 역사가 시작된 이래 최대의 인수입니다.
경제사 이래 말이죠.
전 세계가 봐도 현금인수라는 측면에선 2위 입니다. 미국에서 한번 있었을 정도니 그만큼 큰 도박이었던 거죠. 일단 일본의 역사상 최대의 큰 인수, 승부였는데 거의 빚 내서 한거였습니다.
50대에는 사업모델을 완성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2012년도에는 빚을 반으로 하고, 2014년엔 빚을 전부 탕감한다. 그런 것으로 순조롭게 밟아 나가고 있습니다.
영업 이익쪽에서도 아까 수렁에 빠졌었다 했었는데요. 지금은 점점 이익을 내서 1년간 5천억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정도로 지금 성장했습니다. 보다폰 재팬의 인수는 1~2조엔의 승부였지만 성공한거라고 봅니다.
어느정도의 규모냐 하면 금년 예상으로는 일본 전 회사중 6위입니다.
학생들 여러분 만약 오늘 제 얘기를 듣고 소뱅에 입사하고 싶은 경우에는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봤을 때 그런 영문도 모를 회사, 소프트 빵(ㅋㅋ)같은 회사 입사하면 망하는거 아니냐는 식의 거긴 빚 많아 보이던데 같은 이미지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이익면에서는 5천억 돌파, 창업 30년 만에 이런 이익을 내는건 별로 없죠.
우리 보다 큰 회사는 50년 100년 200년 회사들인데요. TOP 15 중에선 가장 젊은 회사입니다. 물론 증가율도 높죠.
그런것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오면서 참 파란만장 했습니다.
10대 20대 30대 40대 쇼부 인생 5회 말도 안되는 승부를 해지요.
파란 만장했지만 어떻게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다시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지금 소뱅의 핸폰이 여러분들도 쓰겠지만, 가끔 권외(수신지역 이탈)되는데
얼마나 권외가 되냐면 98% 정도는 자택에서 잘 연결되지만, 2%의 고객은 전파 연결이 안된다 하는데요. 우리의 조사 결과인데 DOCOMO나 AU의 경우 99% 입니다. 99 vs 98인데 그래서 우리가 좀 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아이폰이나 AQUOS핸폰이나 화이트정책 등 여러면에서 1% 차이라면 소뱅 사볼까? 하는 고객들도 있는게 사실입니다만.. 지금까지는 경역적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다폰 재팬을 인수한 시점에 비해서는 전파 기지국 수가 2배 이상 늘었습니다. 보다폰 재팬을 샀을땐 전혀 안좋았는데 2배 늘리고 괜찮아 보였는데, 3개월간 트위터를 해보니 고객분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매일 엄청 들려옵니다.
여러가지의 것들이 있지만 일단 전파 연결이 안돼 어떻게 좀 해줘! 라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옵니다.
마음에 상심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아이폰 굉장해! 소뱅도 화이트 플랜도 뭐 좋아 하지만
전파 연결 안되면 소용도 없자나! 하니 마음이 좀 아픈겁니다.
좀 격렬한 것도 가끔 있고, NTT랑 싸우고 있지만… 저도 마음이 아픈겁니다.
뭐 어떻게 하면 안되겠다.
은행으로부터 2조엔이나 빌리고 있고, 반환하는 걸 우선해야 하고 경영적으로는 그쪽을 우선시하고 있지만 뭐때문에 소뱅을 한거지, 무엇을 위한 삶이지 라는 것을 트위터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눈을 떴습니다.
해머로 꽝 하고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전파 연결 안되면 소용도 없자나! 라는 말에 엄청나게 반성했습니다.
이래선 안되겠다 마음이 좀 어두웠습니다.
2조엔의 빚을 지고 빨리 갚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것으로 머리가 가득차 있었는데,
가장 중요했던 뭐때문에 이걸하고 있나 뜻을 이룬다, 무엇을 위한 삶이냐 하는 생각을 하니
전파가 연결 안되면 소용없자나! 라는 소리를 들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 연유로 어제 선언했습니다.
소프트뱅크 전파 개선 선언! 입니다.
다시한번 배를 굶주리고, 다시한번 자신을 십자가에 묶고 빚도 예정대로 약속을 어기지 않도록 갚고 그것들을 지키면서 더더욱 전파를 더 연결되도록 한다!
라는 것입니다. 100%는 말도 안되겠지만 영원한 과제이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되는 만큼 기지국 수를 늘리자 입니다.
전파를 연결되도록 전파를 발신되도록, 핸드폰 말이죠, 여러분들도 주머니에 가지고 있겠지만 이거 무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전화끼리 바로 직접 접속되는게 아니라, 여러분이 발신하면 반드시 전파 기지국 갔다가 다시 교환기에 가서 다시 여러분의 친구나 가족등의 기지국으로 중계되어 연결되는 겁니다.
그렇니 핸폰 to 핸폰이 직접 연결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 근처의 기지국에 연결되어 교환기 백본까지 연결되서 그 뒤에 다시한번 기지국에서 단말기로 연결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지국을 늘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배로 늘리자 인겁니다.
3년 반 걸려서 보다폰 시대보다 배로 늘렸습니다.
이렇게 배로 늘린걸 다시한번 배로 늘리는 겁니다.
그래서 어제 선언했습니다.
사내에서는 경영회나 임원회에서 전전긍긍이었습니다.
사장~ 무모합니다. 그만큼 돈 없습니다.
그만큼 단기간에 공사 못합니다. 여러 말을 들었습니다.
마음을 바로 세우주십시오!
시끄럽다! 닥쳐라~ 나는 가겠다! 나는 목숨을 걸기로 약속했단 말이다!
트위터에 이미 써버렸단 말이다! 라고 말이죠.
난 이미 말해버렸으니 너희들 아~ 저 사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럴 작정이냐고 나는 이미 목숨을 걸기로 약속했으니 이거 어길순 없다 입니다.
물론 100% 약속한건 아니예요.
저녀석 목숨 걸었는데, 나 여기 화장실에서 연결 안되니 목숨 내놔! 이건 좀 곤란한거예요.
100%를 약속한게 아니라 적어도 전파를 크게 개선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크게 개선시키는 건 뭐냐, 쉽게 말하면 지금 3년 반 걸린 기지국을, 이미 98% 연결되고 있는 것을 말이죠. 99% 만들기 위해 겨우 1% 늘리기 위해 배로 시키는 겁니다. 그렇니 경영효율 면에선 말도 안되는 겁니다. 보통 계산을 하는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연결을 위해 300만엔을 소요하는 겁니다. 그렇니 산속의 작은 마을등 같이 단지 1~2명을 잡기 위해 300만엔을 들여 기지국을 지어도 500만엔을 들여도 말이죠. 그 3인 가족이 평생 핸폰 요금을 지불해줘도 그만큼 이익이 안나옵니다.
뭐 지금 화이트플랜으로 꽤 많이 싸게 하고 있는데 말이죠.
계산적으로 봐서는 98% 인것을 다시 배로 늘리는 것은 무모한 결정입니다.
하지만 돈으로 계산하면 안된다 말이죠.
배를 움겨잡고 크게 개선하기로 했으면 해야 한다.
변명 없는거다. 100%는 안되도 적어도 우리로썬 성의를 다하자.
전파 발신수가 프리한 녀석만 받게 하면 안된다. 그런 변명이 없도록
우리가 할수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자 해서 결의한겁니다.
그렇니 네트워크 개선 제1탄 기지국 배로 늘리자
2탄 그래도 연결되지 않는 주택에 있는 고객이 1% 나오니, 그런 고객에게 주택용 소형 기지국, 펨토셀을 무료로 제공하는 겁니다. 마지막 1%의 고객에게 가정 전용의 무상으로 제공한다. 브로드밴드에 이어지는데요 브로드밴드 회선도 공짜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변명없이..
펨토 전용 ADSL회선 말이죠 반드시 연결됩니다.
게다가 또 가게에서 회사에서 연결 안된다 하는 고객이 있습니다.
가게도 회사도 공짜다 ! 해서 제공합니다.
더욱이 더 빠른 속도가 원한다 하는 고객에게는 Wi-Fi 라우터를 공짜로 제공합니다.
이래도 100%는 안됩니다만,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성의는 다 보인다.
우리의 밑바닥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4가지 전파 개선 선언… 우리가 브로드밴드에 참가하면서 일어난 결의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 4가지 브로드밴드 개선 선언
1. 기지국 늘리기
2. 자택용 기지국 무상제공
3. 기업 가게용 기지국 무상제공
4. 기업 가게용 wi-fi라우터 무상제공
그럼 여기까진 그런걸로 우리 소뱅의 방향이었습니다. 우리의 뜻입니다.
앞으로 더욱 여러분은 젊으니까요 앞으로 더욱 우리 소뱅이 뭘 향해야 할지 좀더 보고자 합니다.
2가지 방향입니다.
일단 모바일 인터넷으로 세계 제일의 회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아시아 인터넷에서 제일이 되자
이 2가지 입니다.
애시당초 인터넷 혁명이란 뭘까 인데요.
산업 혁명이 있었습니다.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에서 넘어온거죠.
제 1의 산업혁명이 영국을 중심으로 경공업입니다.
제 2차 산업혁명은 중공업입니다. 이건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지금은 제 2차 산업혁명의 말기입니다.
일본이 최근 빛을 잃은것은 2차 말기, 후기에서 일본의 존재 의의가 흔들리고 있는겁니다.
즉, 미국을 중심으로썬 일본이 압도하고 있는게 산업, 공업혁명 부분에서 보다 임금이 싸다 보다 재료가 싸다는게 중국 인도로로 옮겨가니 일본의 경쟁력이 없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일본이 경쟁력을 되찾는 방법으로는 거의 앖다고 저는 단언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20대가 막 된거죠. 여러분은 앞으로 50년의 인생이 있습니다만, 일본에 있어서 앞으로 50년의 인생에서 걸어볼만한, 일본이 제조업국가로써 경쟁력을 되찾고 세계 1~2를 다투는 경쟁력을 얻는 시대가 올것인가. 전자, 제조, 자동차 산업으로 다시 빛나는 시대가 올것인가? 저로써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일부는 있을 수 있어요
일부 회사, 세그먼트로 보면 말이죠. 하지만 큰 산으로 보면 임금이 싼 중국, 인도와 국내의 볼륨과 겨뤄서 어떻게 경합이 말이죠.
적어도 지금의 연장선상에서는 말이죠. 지금대로라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이 유일하게 부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건 뭘까?
그건 인구 수가 아니라 머리로 승부하는 것입니다.
머리수로는 승부가 안납니다. 임금도 말이죠.
머리로 승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쪽이라면 유일하게 일본에게 최후의 기회가 있는거라고 봅니다.
그 IT의 첫번째 혁명은 미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경우 1차가 영국, 2차가 미국이었던 것처럼 제1의 IT혁명이 미국이었듯 2차는 아시아가 중심으로 IT혁명이 되어야 한다 입니다.
PC중심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다시 스타트라인으로 나란히 설수있는 기회입니다.
이 2가지 측면에서 기회가 도래한다는 겁니다.
아시아를 지배하면 세계를 지배하면, 모바일을 지배하면 인터넷을 지배한다..
다시한번 더 최후의 출발선상에서 서는 것이므로 저는 모바일 인터넷 1위를 향하는 겁니다.
왜 모바일 인터넷이냐? 하면..
근 10년간 모바일 인터넷의 통신속도가 750배 향상되었습니다.
핸폰안의 CPU처리속도도 500배 되었죠. 무서운 속도로 진하하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산업혁명의 말기에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 분야 입니다.
10년간 자동차 엔진속도 발전이 겨우 1.1배 입니다. 겨우 1.1 배인거죠.
성숙된 산업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들이 이상해 지고 있는거죠.
그토록 번성했던 미국의 자동차 회사가 전멸하는 상태예요.
얼마전 토요타가 세계최대의 자동차 산업에서 큰 이익을 내고 일본에서 큰 이익을 내고 천하를 그대로 유지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적자로 전락해 버렸죠.
하지만 부활할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앞으로 얼마나 빛나는,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가?
라는 의미에서 물음표(의문)입니다.
왜냐면 성숙 산업이니까요. 성숙된 산업에선 임금, 자원이 싼 자국의 소비자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로 수요가 이동하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렵다는 거죠.
하지만 모바일 인터넷의 세계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이 가운데 아이폰 쓰는 사람 손 들어주세요
오~ 굉장하네요. 8할 정도 되네요
이중에 트위터 쓰는 사람 손들어 주실래요?
오~~~~ 대단! 98% 정도군요 (ㅋㅋ)
오 대단!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한건 말이죠. 야후 재팬을 시작하고 1년 후 가진 설명회에서 야후 재팬을 쓴지 1년, 거의 일본 국민이 쓰지 않을때 말이죠. 그때 학생들이 98%가 야후를 쓴다고 했습니다.
일본 전체 국민으로 보면 아직 8할정도 아이폰을 쓰는 상태가 아니고 98%가 트위터가 사용하는 상태는 아니지만, 여기에 있는 여러분이 그정도로 쓴다는 점에서 전 참 기쁩니다.
그야말로 여러분은 본능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 보다 먼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 핸폰 유저가 7억명에서 10년간 50억명으로 늘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늘겠죠. 모바일 인터넷 세계 유저가 앞으로 속속 늘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전화를 중심으로 한 핸폰이 아닌,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인터넷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핸폰은 전화회사가 보통 시작했어요. 인터넷 회사가 핸폰회사를 매수해서 한건 아마 우리 회사가 첨이라 생각되는데요.
그러나 앞으로는 다를겁니다(즉 인터넷을 중심으로 할거란 얘기).
핸폰이 음성을 중심으로 한 전화란 시대에서, 핸폰 인터넷이란 시대가 될겁니다.
아이폰은 더 강해지고 안드로이드 같은 스마트폰도 속속 나오죠.
이런 시대가 올거라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아이폰도 무척 잘 팔립니다.
트위터도 말이죠.
많은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30년 후의 교육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식간에 1시간에 230건의 의견이 들어왔습니다.
그야말로 뇌, 한사람 한사람의 지혜와 지식이 모여서 그런 것들이 송신되어 인류의 사회 발전에 행복에 공헌하는게 바로 소뱅의 이념인데요. 포부인데요.
바로 트위터가 그런 상태라는 거예요.
제가 트위터를 열심히 하는게 그런 이유입니다. 트위터에만 해당되는건 아니지만, 사람의 지혜와 지식이 모여서 사람들이 보다 행복해 지는 그런 사회가 되고 싶다
그런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해서
어제 트위터에 "해봅시다" 리스트를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제가 트위터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리퀘스트를 받아서 해봅시다 하는 덕분에
직원들이 우왕자왕하고 있습니다만, 말한 건 지켜야 하기 때문에
공정표를 만들어서 합시다, 했습니다.
검토합니다. 리스트 3가지로 나눠 보기 좋게했습니다.
앞으로 점점 경영 의사 결정 속도를 빠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경영 의사 결정을 하는 유저 여러분과 직접 대화하는 상황을 가지고 싶은겁니다.
게데가 오늘도 흐르는데요 유스트림으로 문자만이 아닌 실시간으로 영상으로 세계의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더욱이 트위터를 통해 문자로 의견을 쌍방향으로 주고 받는겁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마음을 연결한다. 그런 것입니다.
결산회에서 발표를 했는데, 이것도 처음 유스트림으로도 흘렀는데 그 동안 1만 500개의 트위터 의견이 왔어요. 1번의 결산회에서 실시간으로 말이죠.
엄청나죠. 말도 안될 정도로 흘렀습니다.
그런 의견이 흐르는 트위터 상태가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녹색 문자로 흐르는 거 같았습니다.
그런 시대가 온것이죠.
라이브 중계로도 발신하고 여러 스포츠 뉴스 컨텐츠가 흐릅니다.
그야 말로 모바일 인터넷이 이제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한가지 였고
다른 것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것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GDP가 금년 일본을 이길겁니다. 세계 2위가 되는것이죠.
미국까지 넘겨볼 세계 최대의 GDP 국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중심도 수년 전 미국이 5할 이었어요. 아시아는 19%였어요.
그런데 이제 아시아가 50%가 될거라고 예상됩니다.
즉, 아시아를 지배하면 인터넷을 지배하는 시대가 틀림없이 올거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경우에도 인터넷과 연결되죠.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시아 소뱅 그룹도 착착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가장 큰 시장인데요.
중국의 기업간 e-Commerce , B2C , C2C 일본으로 말하면 라쿠텐이나 야후쇼핑, 미국이라면 아마존 이베이 같은게 타오바오가 있는데. 중국에서 전부 온라인 쇼핑의 8할을 점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독 최고죠. 온라인 지불 결제도 9할의 점유율을 가지며, SNS 소셜네트워크 일본의 mixi같은 부분에서도 압도적인 넘버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e-Commerce가 일본을 능가합니다.
우리 소뱅의 타오바오가 3조엔에서 5조엔 될거라 생각되고, 라쿠텐이 뭐 8천억엔 정도 되니 몇배나 넘어가는거죠. 압도적이죠. 소뱅과 알리바바가 1:1로 투자해 합작으로 만든게 타오바오 입니다.
아리페리(아리바바 결제 서비스) 등록 유저 역시, 중국 전체의 크레딧 유저를 넘겼구요.
인인+카이신의 등록도 일본 mixi에 비교될 회사인데 8할의 마켓 쉐어를 이루고 있죠
이런거 단순히 계산하면 소뱅에 의한 중국의 인터넷 유저가 6억인이 됩니다.
단독 최대입니다.
게다가 모바일 인터넷으로써 중국 1위의 차이나 모바일, 유럽 1위의 보다폰, 미국의 1위 버라이존 회장을 설득해 4사의 조인트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이게 JIL입니다.
일단 초대회장은 제가 맡게 되었는데 추천도 있었지만..
지금 고객 규모가 10억명 정도 됩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슬슬 들어갑니다만,
지금 50대 입니다만 저 52살입니다만, 60대가 된다면 여러분 세대에 바통을 넘기겠습니다.
경영을 넘길까 합니다.
거기서 올해 6월 주주총회에서 소뱅의 30년 비전을 발표합니다.
올해 9월이면 30주년 입니다만, 다음 30년간의 비전을 발표하는 겁니다.
30년 전에 세운 비전 그건 마이크로 컴퓨터 칩이 인류의 미래에 공헌한다 였는데 지금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에어콘 컴퓨터 TV에 들어가 있죠.
그때의 비전이 실현이 된겁니다.
다른 포인트는 30년 전 수의 단위를 1조 2조의 규모로 늘려보이겠어 였는데
그야 말로 현재 매출이 2.7조엔이 됩니다. 2조엔의 인수도 있었고, 규모적으로 정말 그렇게 되었죠.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 큰 틀을 보면 컴퓨터는 뇌세포를 뛰어넘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세포에는 300억개의 시냅스라는게 있는데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건데요. 인간의 뇌세포는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 2000년 후나 300억개 입니다.
인간 뇌 세포는 결정되어 있는거죠 DNA로..
하지만 컴퓨터는 다릅니다.
2018년의 하나의 칩안에 집적되는 트랜지스터 수가 300억개를 넘어갑니다.
인간의 뇌세포도 시냅스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기억하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것 처럼 트랜지스터도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전류로 인해 on/off 됩니다. 인간이나 컴퓨터나 2진법입니다.
컴퓨터의 칩이 하드웨어 능력적인 면에서 인간의 뇌세포를 기능적으로 2018 전후에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이런걸 전 20년전에 계산해서 예측을 했는데, 실제로 이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시 계산을 고쳤지만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것처럼 진화가 이뤄질때 인간사회는 어떻게 되는가?
기술은 어떻게 되는가?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떻게 되는가?
앞으로 이런걸 정리해서 6월에 발표합니다.
소뱅이 나아가야 할 21세기 사람들의 라이프 스탈에 대한 비전
거기에 소뱅이 어떻게 해야 하는냐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 뜻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뜻을 실현하기 위한 비전입니다.
그리고 제가 60대에 은퇴한 뒤에 뭘 하냐 하면, 저의 꿈은 소뱅 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거기의 초대 교장이 되는 것이 소박한 제 마지막 꿈입니다.
소뱅 아카데미아는 뭐하는 곳인가요? 묻는다면
아카데미아의 어원, 최초 기원은 말이죠.
기원전 387년전 플라톤이 설립했습니다. 철학을 전공하는 교수로..
15세기에는 메디치 가문에 의해 플라톤 아카데미로 부흥했죠.
다시한번 21세기에는 소뱅 아카데미아로써 진화시키고 싶은 겁니다.
아카데미아 입구에 적혀 있는 문구가 "기하학 모르는 사람은 이 문을 지나지 말지어다"입니다.
소뱅 아카데미아 문에 적고 싶은건 "디지털 정보 혁명을 맘에 새기지 않은 사람은 이 문을 지나지 말이어다" 이런 걸 적고 싶습니다.
소뱅 아카데미아는 소뱅의 리더 경영진을 키우는 학교입니다.
리더에 이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바로 큰 포부 입니다.
여러분 전부 리더가 될 자격이 있고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덧붙여 내 후계자가 될 사람은, 일단 소뱅의 사장이 될 사람은 스톡옵션으로 100억 정도는 주고 싶다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소뱅에 들어와 퇴직금으로 1천만 3천만 받자같은 작은 생각을 하지 말고 할거면 100억엔 정도는 달라고 할 각오가 좋을 겁니다.
하지만 돈을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구요. 할거면 그정도로 생각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제 그룹 전체 후계자가 되지 않는다 해, 소뱅의 그룹으로써 앞으로 5000개 정도 만들려고 하는데 말이죠. 지금은 800개사 정도되는 그룹입니다만 예전에 4~5개 될 때 전 말했었습니다. 소뱅을 앞으로는 800개로 늘리겠다고 말이죠.
그 800개란 숫자 어디서 왔냐고 부하가 물어왔습니다. 무슨 근거입니까?
근거는 없고 거짓말이라도 100개로 늘리겠다 해서 정말 그렇게 된겁니다.
800개사 된 뒤에 은퇴될 때 까진 5000개로 늘리고 싶습니다. 근거는 없지만 그정도로 하고 싶다는 이미지는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경영진만으로도 5000명이 되는거죠.
그렇니 여러분은 5000명의 CFO, CTO 등의 재무, 기술책임자가 될 자격이 있는거죠.
역시나 부사장이 될 임원이 될 자격이 있는겁니다.
5000개 회사면 사장+재무+기술 담당해서 총 15000명은 될겁니다.
게다가 소뱅을 떠나서도 보다 넓은 세상으로써의 인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소뱅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싶습니다.
돈을 남기기 보다 명예를 남기기 보다 사람을 남기고 싶다.
사람에게 뜻을 남기고 싶다 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게 30년후 비전을 올 6월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30년 후 비전의 주역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오늘 인연이 있어 앞으로 소뱅의 신입 사원으로 들어갈 사람도 있겠고, 안그런 사람도 많이 있을 겁니다.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이 여러분과의 첫 만남이고 생으로 제 목소리를 듣고 눈을 보고 한 곳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게 오늘이 마지막인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9할 이상… 하지만 1가지 기억해 줬으면 하는건 뜻을 높게 품어라 라는 것입니다.
인생 한 번 밖에 없어요.
여러분이 오르고 싶은, 자신이 오르고 싶은 산을 금년에 결정했으면 합니다.
뭐에 인생을 걸지 결정했으면 합니다.
너무 늦으면 실현할 가능성이 줄어 들어요.
빨리 뜻을 품고 강한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해요.
여러분 부디 한번 밖에 없는 인생 소중히 해주세요.
"자신이 오르고 싶은 산을 결정하지 않고 걷는 것은 방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두 열심히 살아요. 부모님도 친구도 친척도 말이죠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을 결정하지 않는 사람이 99% 랍니다.
어떻게든 인생을 살고 싶다, 이럴 작정이 아니였는데.. 라고 부모님들은 말하죠.
99%의 사람이 제대로 자신의 꿈이나 뜻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부디 이것만큼은 명심해 주세요.
모처럼 접한 오늘의 만남이니… 이것만큼은… 아까 말한 소뱅의 숫자같은거 다 잊어도 되요.
그런거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제가 말한거 다 잊어도 좋으니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에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소중히 결정해 줬으면 합니다.
향해야 할 산 이걸 정해줬으면 하는거죠.
회사란 제게 있어서 말이죠. 료마의 책과 만난거라 생각합니다.
뜻 이뤄라 라는 겁니다.
그런 포부로 소뱅을 세운겁니다.
혹시 인연이 되서 소뱅에 입사하셔서 소뱅과 같이 산을 오른다! 뭔가 손정의가 얘기한 것으로 인해 감명 받은 사람이라면 보다 직접적인 동료가 될 것입니다.
혼자서 오르는 산, 그건 그거대로 오르는 산도 의미가 있지만
함께 오르는 산 그건 그거대로 즐겁습니다.
학우들과 함께 가면 즐겁잖아요. 회사도 역시 그래요.
일본에서 처음으로 회사를 만든 사람 누군지 알고 있나요?
일본 최초의 주식 회사, 바로 사카모토 료마예요.
알고 있었나요?
바로 사카모토 료마가 만든 귀산사중* 입니다.
*龜山社中(카메야마사츄) : 료마가 카츠 선생에게 영향을 받아 세운 회사로 이후에 해원대로 이름이 바뀌는데, 무역 회사다. 당시 이를 통해 쌀을 수입하여 쵸수와 사쓰마번에 지급하는 것으로 결국 사쵸동맹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주식회사입니다. 같이 산을 오른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예요.
회사라는건 Company입니다.
Com = 함께 , Pany = 빵 즉, 빵을 함께 먹는 동료다. 회사라는 어원입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빵이 아닌 포부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했습니다. 제가 회사를 시작하고 1년 반만에 간장이 망가져서 3년간 입원했을 땐데요.
전 병원 침상에서 울었어요. 아직 회사 시작하고 1년 반인데 입원하지 않으면 안되니.. 빚도 갚아야 하고, 고객이랑 사원도 있고 딸도 있고 의사에게서는 앞으로 5년 밖에 못산다고 들으니 말이죠.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열의를 가지고 뜻을 이룰 회사를 만들었더니, 내 생명은 겨우 5년이냐.. 라니 정말 그지 같았습니다.
뭐 때문에 회사를 만든거냐 말이죠. 엄청 울었어요 혼자서…
더 이상 자동차 옷 집 같은 물건에 대한 욕심은 없었어요.
그저 목숨을 원했죠.
목숨만 있다면, 가족과 만날 수 있으니..
여러분도 앞으로 5년이라는 얘기 들으면 충격 받을 거예요.
고객이나 회사나 상관없다고 저는 그때 생각했어요.
목숨만 있으면 갓 태어난 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그때는 말이죠.
전 침상에서 료마의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참 부끄러웠습니다. 료마는 33세에 죽었으니 말이죠.
마지막 5년에 큰 일을 이루자..
생명이 남아있는 5년안에 나 이룰게 있지 않냐고, 힘내다 보면
딸의 웃음을 다시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의 침상을 벗어나 의사에게 혼나가면서 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결국 난 뭐 때문에 한걸까 생각해 보면, 딸의 웃음이 보고 싶었다 는 겁니다.
큰 대의명분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어요.
그저 웃음이 보고 싶다, 딸의 웃음만으로도 좋은가?
아니 부모나 형제 가족 모두의 미소가 보고 싶다.
같이 일하는 사원의 웃음도 보고 싶고 고객의 웃음도 보고 싶었어요.
고객이라는 것의 의미가 어느정도냐 비유하자면 얼굴도 모르는 어느 딴 나라의 캄보디아인지 어딘지 모르는 나라의 5세 정도의 작은 소녀가 '고마워요'하고 허공을 보며 말하는 정도의 것을 포함하는 겁니다.
누구에게 감사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냥 중얼거리는 겁니다.
그런 것이 된다면 난 행복한 거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궁극적인 자기만족이란 거였습니다.
물론 자기가 만족하기 위해 일을 하는 거지만, 정말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기심이나 명예욕 물욕이 아닌 궁극적인 자기 만족은 영문도 모를 안면도 없는 어느 먼 나라의 이름도 모르는 아이로 부터 감사하다는 중엉거림을 듣는 것이다 라는게 제가 내린 결론이었던 겁니다.
즉 일을 이룬다 라는 멋진, 혹은 여러운 말은 필요없다는 겁니다.
인생에 있어서 내게 주어진 것은 한가지.
인생의 명제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인터넷을 통해 디지털 정보 혁명을 일으킨다.
이 디지털 혁명을 이룸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야 말로 트위터 처럼 지헤와 지식을 공유하고 500년 후 1000년 후에 사람들이 감사를 해준다면 영문도 모르게 직접적으로 감사하는건 아니지만 쭝얼거려준다면 그걸로 된거다 라고..
그것이 저에게 있어, 저를 따라주는 회사로써도, 소뱅의 회사의 사원들이 공유해 줬으면 하는 겁니다.
소뱅의 사원이 아니더라도 오늘 여기 있는 여러분 지금 트위터나 유스트림을 보면서 제 마음을 공유하는 여러분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행복해주셨으면 그리고 모두가 그런 기분을 공유해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함을 제공한다면 인류가 평화롭고 행복해 지겠죠.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