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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지맥 산줄기 타기
무척지맥 산줄기타기
제1구간 창암취수장~사명산 분기점~무척산~여덟말고개
제2구간 여덟말고개~석룡산~영운리고개~분성산~구지봉
가지줄기 마사리~작약산~무척산
<신산경표>는 낙남정맥의 끝이 용지봉에서 불모산, 화산, 굴암산, 보배산을 거쳐 봉화산 자락에서 입바위로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용지봉에서 산경표를 따라 분성산으로 가다가 무척산을 거쳐 낙동강에 이르는 산줄기를 '무척지맥' 이라고 했다.
다음은 이 지맥 중 산경표 구간인 용지봉에서 분성산 분기점까지를 생략하고, 구지봉에서 분성산, 무척산을 거쳐 낙동강에 이르는 구간을 역으로 답사한 기록이다.
제1구간 창암취수장~사명산 분기점~무척산~여덟말고개
6시35분 마사리행 60번 버스를 타고 북곡 마을 정류장에서 내렸다. 오른쪽 도로를 따라가다가 시민체육시설 표지가 보이는 건물 앞에서 왼쪽 길로 들어 창암취수장과 생림배수문, 그리고 창암 마을표지석을 지나 기념비와 공덕비가 서있는 곳 오른쪽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왼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잠시 따라가다가 곧장 올라가니 큰 구덩이가 있고 뚜렷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5~6분 나아가 오른쪽에 묘가 있는 조그만 봉우리에서 오른쪽이 환히 트여 안양리 마을과 그 건너 작약산 산줄기를 짚어본다.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넓은 수레길을 만나 그 길을 따라서 고속도로 터널이 바로 아래를 통과하는 중계탑에 이르고, 그 위로 올라서니 낙동강과 건너의 삼랑진읍이 내려다보인다.
마루금까지 올라온 과수원은 복사꽃이 피어나고 있고, 농로를 따라가는 길에서는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붕어등에서 산줄기가 끝나는 밀양강 하구에서 삼랑진읍과 오른쪽의 천태산 일대가 시원하게 바라보인다. 166m봉은 오르다가 만나는 묘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고, 커다란 묘가 있는 안부를 지나서 올라간 142.1m봉은 묘가 차지하고 있고 삼각점(건설부 439)이 있다.
묘에서 내려가면 2차선 도로가 지나는 도요고개다. 도로에서 과수원 오른쪽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가다가 과수원 길을 만나 곧 오른쪽 능선으로 붙으면 뚜렷한 길이 이어지고, 사명산 분기점을 향해 가는 길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어 반겨준다, 오른쪽 선주암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에는 국제신문 표지기가 붙어있고, 5~6분 오르니 사명산 갈림길이다.
주능선은 오른쪽으로 이어지지만 왼쪽 사명산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서 244.2m봉에 이르니 커다란 묘가 자리잡고 있고,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왕복 3km인 사명산에 갔다가 올 계획이었지만 발품을 아끼려고 되돌아섰다.
능선이 왼쪽으로 꺾이는 345.2m봉을 내려서는 곳에는 조그만 돌탑이 있고, 내려선 안부에서 양쪽 길에 표지기가 많이 붙어있다. 오르막이 끝나면서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산길이 보이고, 곧 앞이 확 트이면서 무척산 정상부가 바라보인다. 평탄하게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갈 봉우리 아래에서는 길이 좌우로 갈린다. 왼쪽은 북쪽이라서 방향이 틀리는 것 같아 길이 뚜렷한 오른쪽 길로 갔더니 허리를 돌아 오르는 길이고, 봉우리를 넘어오는 길을 다시 만난다.
곧이어 생림면과 상동면 경계선을 만나기 직전에 있는 커다란 전망대 바위를 돌아오르니 낙동강 건너에 KTX가 달려가고 있고, 그 뒤로 천태산 일대가 바라보이고,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성포 마을과 그 뒤 무척산으로 이어지는 작약산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면 경게선의 봉우리에서는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무시하고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급한 경사를 올라가니 오른쪽에서 오는 능선길이 보이고, 바로 전망대바위가 있는 589.2m봉이다. 이 봉우리 바로 아래 터널을 통과해 동쪽으로 쭉 뻗어가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바라보면서 식사를 하고, 15분쯤 나아가 양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났다. 오른쪽 천지못에서 왼쪽 백운암으로 가는 길이다.
곧이어 이정표(무척산 0.3km, 백운암 2.0km, 생철리 3.4km)를 만나고 3~4분 가다가 등산로를 버리고 왼쪽 산길로 들어서보지만 이내 등산로와 다시 만나고 곧 무척산 정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남족으로 분산과 이어져 있으며 매우 높고 크다고 설명했고, 이름은 식산으로 썼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삼각점(밀양 311)이 있고, 바위 위에 태극기도 새겨져 있다.
정상에서 내려서서 바로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음에 만난 갈림길에서는 왼족으로 내려갔다. 왼족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는 곳을 지나고 철탑을 지나 하사촌 왼쪽 1.3km 이정표를 만났다. 여기서 하산하면 교통편이 좋을 것 같지만 올라올 것을 생각해서 직진한다. 커다란 묘를 지나 오른 시루봉 정상 일대는 묘들만 줄줄이 자리하고 있다.
내려가는 길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삼각점(밀양 463)도 보인다.
바로 아래의 묘에서 왼쪽의 비포장 길을 따라 60번 지방도가 지나는 여덟말고개에 내려섰다. 무척산 정상 2.7km 이정표와 주요등산코스 안내판이 서있다. 도로 따라 내려가다가 도중에 희미한 산길이 보여 따라 내려가서 하사촌의 (주)성일정판 앞 58번 국도로 내려섰다.
여기서는 60번, 61번 김해시내버스와 김해-밀양간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제2구간 여덟말고개~석룡산~영운리고개~분성산~구지봉
버스를 타고 상사촌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30여분 오르니 여덟말고개다. 철망울타리 왼쪽에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다소 급하지만 지그재그로 산길이 잘 나있다. 15분쯤 올라 납작한 묘를 지나고 다시 15분쯤 더 올라 466m봉에 이르기 직전의 왼쪽으로 난 석룡산 가는 산길을 따라갔다. 석룡산은 좌우로 비슷한 봉우리가 있어 양쪽을 다 가봤지만 별 특징이 없고 조망도 나뭇가지에 가려 시원치 않다.
되돌아나와 466m봉에 오르니 동쪽으로 시야가 확 트인다. 석룡산을 다녀오는 데는 약 30분이 소요됐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뚜렷한데 서남쪽으로 가야할 능선은 고사하고 능선 자체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상에서 250도 방향으로 급경사를 내려가다가 오른쪽에서 허리를 타고 오는 산길을 만났다. 삭룡산 갈림길에서 곧장 466m봉을 오르다가 오른쪽 사면으로 난 산길인 것 같다. 왼쪽 아래로 사촌 마을의 공장지대를 바라보면서 내려가 광재고개에 이르니 왼쪽에 광재 마을로 가는 산길이 뚜렷하다.
묘 둘을 지나고 산길은 왼쪽으로 꺾여 경주이씨 묘에 이르는데, 마루금을 고집한다면 왼쪽으로 꺾는 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왼쪽으로 꺾어 철탑을 지나 곧장 능선을 따라야 하지만 길이 사납다. 경주이씨 묘에 이르는 산길을 따라 내려가서 휘어 올라가는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따라 내려가 상동면 표지판이 서있는 차선 도로인 마당재로 내려섰다.
바로 앞의 우계축산 안으로 들어서서 축사를 벗어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무시하고 왼쪽으로 난 산길로 올라갔다. 왼족에 너덜지대가 보이고, 곧 너덜지대를 왼쪽으로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른다. 산길은 중간 중간 끊기고 있다.
납작한 묘를 지나서 만나는 T자 갈림길에서 주능선은 오른쪽으로 이어지지만 왼쪽으로 나아가 바위들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국립건설연구소 소삼각점이 있는 322.7m봉이고, 여기서는 동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되돌아나와 갈림길을 지나서 곧 왼쪽으로 내려가는 산길을 버리고 곧장 직진하여 5분쯤 가서 만나는 조그만 바위가 있는 곳은 길이 애매하지만 오른쪽으로 길이 보인다. 곧 신어산과 가야골프장이 바라보이는 이씨 묘에 이르고 여기서 10여분 내려가면 바로 왼쪽에 아랫묵방 마을이 보이는 시멘트포장도로다.
쓰래기더미와 묵은 대나무 원두막을 지나 내려서면 아스팔트 포장도로고, 여기서 올라서서 조금 나아가니 골퍼들이 보인다. 굳이 골프장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보고 도로로 되돌아내려와 도로 따라 영운리고개에 올랐다. 육교 옆에서 올라가보니 여기도 골프장이다. 마침 골퍼들이 그린에 올라와 있고 짧은 구간이라 그린 바로 위의 골프연습장 울타리를 따라 산길로 들었다.
철탑이 서있는 분성산 갈림길로 가는 동안 오른쪽에서 올라온 흔적들이 두어 곳 보였다. 골프장을 피해 골프연습장 북쪽 끝 도로에서 길을 만들고 올라온 흔적인 것 같다. 나밭고개를 지나온 산경표의 낙남정맥은 영운리 고개 직전의 철탑이 서있는 곳 바로 위의 능선 삼거리에서 분성산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간다.
여기서부터는 산경표상의 낙남정맥으로 무척지맥의 주능선에서는 벗어나 있는 산줄기다. <신산경표>의 낙남정맥이 강의 끝을 쫓아 용지봉에서 불모산을 거쳐 봉화산 자락에서 입바위로 가고, 무척지맥은 <신산경표>에서 제외한 산경표의 산줄기를 따라 용지봉에서 구지봉까지 갔다가 무척산으로 이어가는 것을 기대하고 이름 붙인 것이다.
철탑을 두개 지나고 왼쪽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 바로 아래의 도로로 내려서서 바로 산길로 들었다. 5분쯤 가다가 다시 도로로 내려서서 잠시 따르다가 다시 앞 봉우리의 산길로 들고, 김해천문대가 있는 봉우리에 삼각점(김해 412)이 있다.
천문대에서 왼쪽 화장실 앞으로 난 길(약 240도 방향)로 방향을 잡고 보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이다. 온통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 불에 탄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려 맨 살을 허옇게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라니.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든다.
빤히 보이는 길을 내려서서 밀양박씨 묘가 있는 조그만 봉우리를 내려서니 오른쪽에 아파트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뚜렷하고, 바로 앞의 묘가 있는 봉우리에서 수로왕비릉으로 능선이 이어지고 있지만 길이 없다. 아파트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따라가다가 왼쪽 능선으로 붙어 내려가 절개지를 만나고, 절개지는 오른쪽으로 내려갔어야 했는데 왼쪽으로 어렵게 내려갔다.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이 서있는 밭을 지나면 능을 에워싸고 있는 담이라 바로 갈 수가 없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굳이 능선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계속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 길 건너 구지봉 주차장으로 갔어야 했다. 주차장에서 '구지봉은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탄강한 성스러운 장소다. 구릉의 모양이 거북이를 닮았다 하며, 구수봉, 구봉 등으로 불린다'는 안내문이 있는 문을 통해 구지봉 신단수에 오른다.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지는 '龜旨峯石(구지봉석)' 이란 글자가 음각된 고인돌을 살펴본 후 몰운대쪽을 가늠해봤다. 산경표는 이곳에서 남으로 몰운대를 마주보고 몰운대 북쪽에는 강물이 세 갈래로 갈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터널 위를 지나서 수로왕비릉을 둘러본 후 14번 시내버스를 타고 외동 버스터미널로 나가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가지줄기 마사리~작약산~무척산
6시35분에 도착한 60번 시내버스는 30분을 달려 종점인 마사리에 내려준다. 마을길을 따라 낙동강변쪽으로 나아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왼쪽 산속으로 들어섰다. 길은 묵어서 없어지고 나뭇가지를 헤치며 봉우리에 올라서니 묘가 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낙동강이 내려다보인다. 내려선 안부는 왼쪽으로 길이 보이고 올라가는 길은 묘들이 있어 길이 좋다.
산길로 들어선 지 40여분만에 바로 아래에서 화포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116m봉에 올랐다. 화포천은 배수펌프장을 통해 낙동강 제방의 둑 안으로 흘러들고 있고, 낙동강 건너 비슬지맥의 끝인 붕어등 주위는 허허벌판이다. 내려가는 길은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르다가 모정굴 위를 지나서 파란 물탱크가 있는 곳에 이른다.
오른쪽 농로를 따라 내려가서 마사리에서 금곡리로 넘어가는 차선 도로인 모정고개를 지나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가서 길이 왼족으로 휘는 곳에서 오른쪽의 묘들을 따라 올라갔다. 묘가 있는 능선 삼거리는 오른쪽 길이 뚜렷하므로 역 방향으로 진행시 폐 무덤이 있는 곳으로 꺾어 내려서애 할 곳이다.
묘를 지나서 급한 경사를 오르니 오른쪽에 묘가 있고, 다음 봉우리에도 묘가 있다. 베어 넘어진 나뭇가지와 씨름하면서 사나운 길을 올라 묘를 지나고 멧돼지나 지나다닌 것 같은 험한 길을 올라 이등삼각점(밀양 23)이 있는 작약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은 시야가 막힌 덤불지대로 지저분하다. 정상에서 160도 방향으로 들어 곧 산길을 만나 내려가는데, 왼쪽으로 성포 마을이 바라보인다.
안부를 지나 잠시 오른 봉우리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왼쪽 성포 마을과 오른쪽 금곡 마을로 가는 길이 뚜렷하다. 길이 없을 것이라는 산불감시원의 말을 뒤로하고 직진하여 내려가다가 김밥 한줄 먹고 능선이 동쪽으로 꺾이는 봉우리는 산길을 따라 허리를 타고 돌아갔다. 유난히 파란 지붕이 많은 성포 마을을 왼쪽으로 바라보면서 350m봉에 오르니 묘가 자리하고 있고, 조망은 볼품없다.
묘 바로 위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는데 넘어진 나무 밑을 통과하여 내려가다보니 아래쪽에 보여야 할 저수지는 보이지 않고 오른쪽 바로 옆에 능선이 따르고 있어 지능선으로 빠진 것을 알고 넘어진 나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올라갔다.
길을 찾을 수 없어 넘어진 나무 바로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10여m쯤 이동하여 저수지를 목표지점으로 하여 약 70도 방향으로 내려가니 희미한 길이 보이다가 끊어지다가를 반복하다가 임도에 이른다. 임도에 올라서서 뚜렷한 산길을 따라가 다시 오른쪽으로 휘돌아 온 임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저수지가 보이고 길은 사납다.
도로에 내려서기 전의 마지막 봉우리에서는 도로 맞은편의 절개지 홈통을 겨냥하고 내려가 58번 국도가 지나는 말티고개에 내려섰다. 도로 건너 홈통 오른쪽으로 올라가 오른쪽으로 오른 봉우리에서는 길이 막힐 것 같지만 나가보았다. 자동차 폐범퍼가 쌓여있는 공장 건물 뒤에서 공장을 통과하여 원진화성 앞 도로로 나섰다.
도로 따라 올라가 앞에 보이는 공장이 마루금이지만 그 왼쪽을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 왼쪽에 광성(주) 건물이 있고, 도로가 끝나는 곳ㅇ서 과수원 산길로 접어들어 오른쪽의 공장 건물을 바라보면서 과수원 오른쪽 끝의 숲을 겨냥하고 올라갔다.
묘 셋이 있는 곳을 지나고 또 묘를 두번 지나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급경사를 올라가는 산길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다가 커다란 암봉 아래 약 20m 지점에 이른다.
여기서 암봉으로 오른쪽으로 휘돌아가면서 너덜지대를 지나 오르다가 왼쪽으로 희미한 급경사를 올라 암봉 위에 이르니 부산공원묘지와 지나온 능선이 환히 내려다보인다. 이후로 바위들을 돌아 오르면서 뚜렷이 이어지는 급경사 길을 다 올라서서 2~3분 나아가 왼쪽에서 올라오는 반질반질한 등산로와 만났다.
7~8분 올라간 전망대바위에서는 밀양강의 서쪽 울타리인 비슬지맥이 붕어등에서 산줄기의 흐름을 마감하고 낙동강을 건너 그 바로 맞은편 봉우리에서 시작한 이 산줄기가 이곳에 이르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백운암 이정표를 지나 곧 무척산 정상이다.
*낙남정맥, 신어산으로 가야 하는가?
산경표가 원전으로 삼았다고 보는 문헌비고 여지고 산천총설1은 지리산에서 시작한 산줄기를 불모산(지금의 용지봉까지 불모산으로 보고 있다)을 지나 구지봉에서 끝을 맺고 '구지봉에서 남쪽으로 몰운대를 마주보고, 몰운대 북쪽에 세 갈래 진 강이 있다' 라고 산줄기 끝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그리고 그 산줄기에서 가지 친 산줄기들을 차례로 기재하면서 맨 끝부분에 '구지봉에서 남쪽으로 분산(지금의 분산성)에 이르고 그 아래에 김해부 관아가 있다'고 했다.
산경표는 낙남정맥을 불모산-분산으로 끝을 내어 산줄기의 흐름은 그 끝이 낙동강에 닿도록 하고 구지봉이란 독립된 난을 만들어 산천총설1과 똑같이 '南對沒雲之臺於三又之北' 이라고 덧붙여 낙남정맥의 끝이 구지봉임을 밝히고 있다.
중간에 구지산을 넣은 것은 산천총설1처럼 불모산 다음에 구지봉을 기재하면 이미 산줄기의 끝에 이르렀으므로 산경표 체계상 그 다음에 분산을 기재할 수 없다. 그래서 산경표는 구지봉으로 내려서기 전에 구지산이란 분기점을 나타내는 임시 명칭을 사용하여 분산으로 이어준 다음 되돌아 구지봉을 별도로 기재하여 낙남정맥을 마무리한 것이다.
구지산이 임시명칭이라는 것은 표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산경표에 나타난 거리를 보면 구지산은 김해 북쪽 5리에 있고, 구지산 남쪽에 있는 분산에서 남쪽으로 3리를 가면 김해 관아가 있다고 했으니 구지산에서 분산까지의 거리는 2리다. 10리를 5.4km로 본다는 견해에 따르면 분산은 김해도호부 관아(현 김해 동상시장 일원)로부터 1.6km이고 분산에서 구지산은 1.1km이니 이를 현 지도에서 보면 분산은 분산성이고 구지산은 김해천문대가 있는 분성산 정상이다.
분성산 정상에서는 구지산과 분산성으로 가는 산줄기가 나뉘고 있다. 그러니 구지산이 임시명칭이 아니고 실존하는 산이름이라면 본줄기를 구지산에서 둘로 나뉜다하고 그 아래에 구지봉을, 그리고 가지줄기인 분산을 구지봉 옆에 나란히 기재했을 것이다.
이와같이 낙남정맥의 끝은 구지봉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종주자들은 신어산으로 가고 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나전현(현 나밭고개)을 지난 산줄기가 신어산을 지나고 있고, 현지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 산줄기가 끝나는 곳까지 바다였다고 하여 낙남정맥의 끝이 신어산을 거쳐 김해시 상동면 매리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나왔고, 지금도 낙남정맥 종주자들은 거의가 이 주장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어 이 주장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첫째, 대동여지도와 산경표는 산줄기 구분 방법이 다르다. 대동여지도는 산세에 따라 그 굵기를 달리하여 산줄기를 그린 것이지 주요 산줄기라고 해서 굵게 그리지 않았다. 산의 세력이 강한 백두대간의 대부분은 굵게 표현되고 대간이나 정맥이라도 산의 세력이 약한 구간을 보면 다른 지맥들과 다름이 없다.
대동여지도는 산세를 따라 생긴 대로 그린 지도다. 산이 높으면 산줄기를 넓게, 그리고 산이 낮으면 산줄기를 좁게 그렸다. 그래서 수치표고 자료와 위성영상을 이용하여 산의 세력만을 감안한 산맥 체계를 연구한 사람은 그 결과물이 대동여지도의 산줄기 체계와 매우 흡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동여지도는 산줄기를 특정한 기준을 정해서 구분하여 그린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그린 지도이기 때문에 아무리 첨단장비와 자료를 사용했다 해도 산세만을 위주로 만든 산맥체계는 이와 크게 다를 수가 없다. 그러나 산경표는 10대강의 울타리를 기본으로 하여 생활권을 구획하는 산줄기를 주요 산줄기로 하는 구분 기준이 있기 때문에 대동여지도에 굵게 표시된 산줄기도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은 것은 이름 없는 가지 줄기로 기재됐다.
둘재, 신어산 줄기가 끝나는 상동면 매리의 낙동강변은 강이 끝나는 바다가 아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김해부편에서는 부 남쪽 10리에 있는 죽도와 부 남쪽 12리에 있는 덕도는 둘 다 강 중앙에 있다고 했고, 양산군편에서는 바다가 칠점산 밖 2리에 있다고 했으니 이를 현 지도에서 보면 김해국제공항의 북쪽은 바다로 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산경표가 편찬했다고 추정하는 시대에 살았던 이긍익(1736~1806)의 연려실기술 별집 제16권 지리전고 총지리편의 낙동강 하류쪽을 보면 '또 동쪽으로는 삼랑창이 있고 남쪽으로 흘러 왕지연 황산강이 된다. 또 남쪽으로 양산의 동원진이 되며, 또 남쪽으로는 세 갈래 물이 되어서 김해부 남쪽 취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기록하여 취량을 낙동강의 끝으로 보고 있다.
이 부근을 대동여지도에서 보면 황산강, 동원진, 삼차하, 취량이 차례로 보이고 취량 서쪽에 금단곶이 있고, 서낙동강은 태야강으로 기재되어 있다. 낙동강 하구둑으로 이어지는 2번 국도가 지나는 성고개 부근에서 금단곶보 유적이 발굴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 당시에도 낙동강의 끝을 현재 하천법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녹산수문에서 낙동강 하구둑으로 이어지는 낙동강의 종점과 비슷하게 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어산을 거쳐 동신어산에서 내려선 산줄기나, 분산성에서 남쪽으로 내려선 산줄기 모두가 바다에 이르기 전의 낙동강으로 내려서고 있는 것이다.
산경표의 정맥은 반드시 바다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바다 또는 강, 즉 물을 만나 끝난다. 물을 만나지 않고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한남금북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을 독립된 산줄기로 보는 것은 산경표를 잘못 본 것이다. 한강권의 경계인 한남정맥은 속리산에서 문수산으로 이어지고, 금강권의 경계인 금북정맥은 속리산에서 안흥진으로 이어진다. 한남굼북정맥은 표의 구성상 이 두 산줄기가 중복되는 구간을 따로 떼어서 기재한 것이다.
셋째, 주장을 달리하여 세력이 강한 산줄기를 따른다고 한다면, 영운리고개 이후의 산줄기는 무척산과 신어산으로 가는 두 개의 산줄기가 있는데, 무척산(702.5m)이 신어산(630.4m)보다 높고 무척산 산줄기가 신어산 산줄기보다 4km 이상 더 길다.
이와같은 기록과 사실로 볼 때 산경표를 따라 낙남정맥을 간다면 구지봉으로 가야할 것이고, 산경표의 끝을 무시하고 산세를 따라 더 이어 간다면 무척산으로 가야할 것이다. 그리고 낙동강이 끝나는 바다로 간다면, 용지봉에서 불모산을 거쳐 봉화산에서 녹산교로 내려서거나, 봉화산 자락에서 입바위로 가야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녹산교에서 이어지는 낙동강 하구둑이 강과 바다의 경계가 되고 있지만, 위성사진에서 보면 강의 세력은 그 아래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입바위로 간다면 그 이남의 산업단지는 강이나 바다의 영역을 인위적으로 메운 곳이므로, 여름철 파라솔이 빽빽한 백사장 정도로 보고 도로를 따라 물가에 이르면 될 것이다.
위 글은 <신상경표> 저자 박성태씨의 산행기를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