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빗 뱅커(Private Banker)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것은 불과 몇년 전이다. 소수의 초우량 고객에게 제공되는 '맞춤형 금융.' 고유명사처럼 불리는 PB 서비스는 사실 기존에 없던 신개념 서비스가 아니다. VIP 고객에 대한 특별관리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압구정역부터 포스코 사거리, 강남역까지 몰려있는 30개의 PB지점들. 이 중 동양종합금융증권은 90년부터 휴비스 빌딩에서 부자 고객을 타깃으로 삼고 삼성동을 지켰다. PB의 원조격이다. 포스코사거리 청담동 방향으로 100미터, 지금의 동양종합금융증권 빌딩으로 옮긴 것은 95년.
"지리적으로 삼성동은 PB영업을 하기에 좋은 곳은 아닙니다.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도 초고층 주상복합도 없이 상업 빌딩만 들어서 있으니까요. 그래도 오랜 기간 기반을 다져온 곳이라 장수 고객이 많은 편입니다."
골드센터 강남점 설태희 지점장의 설명이다. 빌딩숲을 비집고 홀로 들어선 것은 단점이자 강점이다. 들어선 입지와 달리 계수(전체 예탁금)의 90%를 개인고객이 차지하고 있다. 역대 지점장들과 시집간 창구 직원을 줄줄이 꿰고 있는 고객이 있을 정도. 대를 이어 2세 고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6월말 기준 계수는 7663억원. 타워팰리스 단지에만 기업은행과 국민은행 등 PB센터가 5개 있지만 타워팰리스로 이사간 고객도 골드센터 강남점을 찾는다. "1대 1로 장기간 신뢰를 쌓은 고객은 지리적으로 멀어져도 다른 금융사로 갈아타지 않더라구요. 신뢰 빼면 PB는 시체입니다."
신뢰감이 가지 않는 PB는 수익을 아무리 많이 내도 고객이 이탈하기 마련이다. 설 지점장은 인터뷰 내내 신뢰와 비밀 보장을 이유로 '오프 더 레코드'를 연발했다.
골드센터 강남점 고객들은 자산의 70~80%가 부동산이다. 이 때문에 상속, 증여, 양도 등 세무관련 문의가 빗발친다. 일주일에 하루 세무사가 상주하며 세무 상담을 전담하고 있지만 부동산 세무 만큼은 PB들도 전문가 못지않다.
"아침부터 어음 결제가 몰려 정신이 없었어요. 많은 날은 200억 단위의 어음에 만기가 돌아오기도 합니다." 골드센터 고객의 상당수가 단기 금융상품으로 CP(기업어음)를 선호한다. 은행금리보다 높고 3개월 단위로 만기가 돌아와 목돈을 단기적으로 운용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큰 손'이라 일컫는 고객들은 어음 만기에만 지점을 방문한다고 한다.
설 지점장은 82년 입사 후 2년간 법인영업을 맡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종금사 출신들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바닥을 체험한다. 갑과 을이 분명한 법인영업은 출납부터 섭외까지 '맨땅에 헤딩'하는 3D 업무다. 그렇게 말단에서 2년을 구르다 보니 장인정신이 생기더란다.
금융권에는 의외로 수학과나 통계학과 출신이 많다. 설 지점장도 그 중의 한명이다. 법인영업이후 18년간 전산실에서 외길을 걸었다. 현재의 고객수를 바탕으로 5년, 10년 후의 고객수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시스템을 기획했다. 금융상품 개발부터 운용에 이르기까지 전산 업무를 진두지휘했다.
"골드센터 고객의 99%가 수비형 투자자입니다. 리스크가 큰 투자는 부담스럽죠. 수학과를 나와서 그런지 저 역시 안정적 성향이 강해 고객들과 코드가 맞아요. 전산실에서 금융업무 개발은 제가 도맡아 했으니 상품과 회사 돌아가는 시스템은 모르는 게 없었습니다. 문제는 고객들을 대해 본 지 너무 오래라는 것, 네트워크가 없다는 것이었죠."
2002년 11월 골드센터 강남점에 합류하고 이제 2년 반이다. "마누라는 못 믿어도 설 지점장은 믿는다"는 거물급 고객이 적지 않다. 이들 고객들은 연이율 4.1%에 5000만원까지 원금이 보장되는 정부보증 발행어음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3% 초반의 은행예금에 비하면 고금리다. 주식은 자산의 10% 내외에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우량주를 보유한다고 한다.
부자들은 숨죽인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지금은 관전 타임입니다. 굳이 움직일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요. 어쨌든 부동산 임대수익이 은행금리보다 높고 장기 투자로 묻어두면 언젠가는 값을 한다는 생각이죠. 매도한다 해도 옮겨갈 만한 투자처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PB센터에 거리감을 느끼는 중산층을 위한 재테크 조언을 부탁했다. 설 지점장은 중산층은 폐쇄된 고급 정보를 찾기보다 상식화된 재테크를 실천하는데 우선순위를 둬야한다고 강조한다. 또 증권사나 종금사 홈페이지에 네티즌이 문의한 재테크 상담 답변을 꼼꼼히 챙겨 읽으면 의외로 실속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