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비전은 제2의 부모다. 육신의 부모는 우리를 낳아 주었지만, 우리를 빗어가는 것은 꿈과 비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한편의 영화나 연극을 선택하여 보듯, 무엇을 꿈꾸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꿈과 비전은 제2의 부모라 할 수 있다. 육신의 부모는 우리를 낳아 주었지만, 우리를 빗어가는 것은 꿈과 비전이기 때문이다.
최근 음란물을 모방한 청소년이 성폭행사건을 일으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뉴스를 접하고는 안타까운 심정에 모교에 "20세기의 큰 인물" 위인전기를 기증한 적이 있다. 상업적인 음란물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꿈나무인 어린이들과 청소년을 보호하고 통일한국의 주역으로서 21세기 지구촌을 누비는 위대한 인물로 키워가기 위해서는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위인전기를 즐겨 읽는 독서문화를 새롭게 일으킬 필요가 있다.
『큰 바위 얼굴』은 반세기에 가까운 4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한결 같은 감동으로 자신의 진정한 꿈과 비전을 발견하게 만든 아름다운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주홍글씨』의 작가로 잘 알려진 나다니엘 호손(1804~1864)이 만년에 쓴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한 작품으로 꿈꾸고 바라보는 대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다.
주인공인 어니스트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바위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을 듣는다. 어니스트는 언젠가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면 하는 꿈과 비전을 품고 “큰 바위 얼굴”을 우러러보며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자, 장군, 정치가, 시인을 만났으나 모두 어니스트가 기대하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위대한 인간의 가치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 등의 세속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개발 노력과 언행일치의 인격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짜’ 큰 바위 얼굴들의 세속적인 가치를 초월하는 어니스트의 소박한 진실과 겸손이 얼마나 큰 덕목인지를 일깨운다.
엿장수 가위소리에 가슴 설레며 위인전기 읽기를 즐겨했든 초등학교 시절, 6.25전쟁의 상흔인 녹슨 포탄파편과 탄피가 지천으로 깔린 낙동강 여러 강변의 들과 산은 보물창고요, 야외 도서실이었다. 학교를 파한 후 지게나 꼴망태를 지고 나갈 때면 항상 뿔피리와 위인전기를 챙겼다. 소를 몰고 마을 뒷산에 오르면 학교운동장 너머로 멀리 가야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고개를 돌리면 굽이치는 낙동강 너머로 비슬산과 팔공산이 바라다 고향산천은 어린 나에게 포항제철이나 현대조선소와도 비길 바 없는 꿈의 제조공장이요, 은하수 동동배 지구선의 비전을 건조하는 조선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