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포리는 예전에 화산면의 대표적인 포구마을이였다.
포구에 모래가 많아 살포리, 색금이라고도 칭했었고 사포리라는 지명
을 낳았다. 지금은 옛 영화를 뒤로한 채 낡고 작은 선창가로 FRP 조
선소와 김양식장 14개가 길게 늘어서 있을 뿐이다.
이 마을은 인근 구성리, 송평리, 평발리 중 가장 큰 마을로 해안쪽에
는 제주도에서 온 돌들이 있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마을 내에 제
주맷돌이 있어 연자방아를 돌리는 등 제주도와 왕래가 잦았던 곳이었
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마을 내에 옹기를 굽던 가마터가 2곳이 있었고 현재 화산남초등
학교 근처 도로변에 옹기점이 있어 사포리가 이 지역의 중심 마을이
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680년대로 입향조는 밀양박씨들이
며 진도에서 옮겨왔다. 그후 서촉명씨가 입주하여 가장 큰 성을 이루
었으며 인구가 3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190
여명으로 줄었고 그나마 살고 있는 이들은 13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포리는 해안과 인접해 1km가 넘게 길게 늘어선 마을로 예전부터
해태와 굴 등이 유명했으며 미맥중심의 농업에 종사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53세 된 이가 가장 나이가 젊은 노령화 된 농촌의 모습으로 변
해버렸다.
또한 김과 고막, 석화, 게 등이 풍부해 삶의 풍요를 베풀어주던 바다
는 이제 더 이상 개발이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고천암 간척사업으로
인해 어장이 소멸돼 버렸고 그나마 3년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한 고
막양식장은 무분별하게 들어선 14개의 김가공공장에서 배출된 폐수
로 인해 생산이 크게 감소한 실정이다.
또한 김가공공장에서 지하수를 대량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영농철에
는 관정이 말라버려 일부에서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지경
에 처해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주 소득원이 미맥에 의존하고 있어 작목전환으로 소득을 높
이고 바다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60세
이상의 노인이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화산남초등학교가 있어 삼호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는
데 예전에 400여명에 달했던 학생들이 지금은 70여명으로 줄어 분교
로 격하될 상황이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 준다.
김선주 이장은 “마을회관은 지난 72년에 마을 주민들이 돈을 모아
자력으로 지은 건물로 지금은 노후돼 대부분 노인들인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하다”며 “마을회관 신축이 주민들의 숙원”이라고
말했다.
옛 영화를 뒤로한 채 간척사업과 농산물 수입개방 등에 밀려 이제는
노령화된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린 사포리는 제2의 도약
을 위해 바다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예전 화산면 제일의 포구였던 사포리는 세월에 밀려 부두에 정박한
어선 몇 척만이 옛 영화를 추억케 하고 있다.>
자료출처 : 해남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