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제 : 2010년 5월 22일(토)
어디로 : 경남 남해군 남해 금산보리암( 701 m)
금산매표소 - 쌍홍문 - 제석봉 - 좌선대 - 상사바위 - 단군성전 - 금산정상 - 보리암 -쌍홍문 - 매표소
얼마나 : 산행시간 11시10분 ~ 15시 00분 = 약 3시간 50분
이번 남해도 산행은 올해 들어 지난 2월의 망운산 산행에 이은 두번째 산행이다..
청주에서 4시간여를 달려야 도착하는 꽤 먼거리지만 그만한 매력이 있는 산이리라.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타산이었다고 하는데...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이산에서 초당을 짓고 수도를 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부르고 초당이름을 보광사로 불렀다가.
훗날 조선태조 이성계가 새 왕조를 열게 해 달라고 이 산에서 기도를 하며 소원이 이루어지면 온 산을 비단으로 감싸겟다고
산신께 택도 없는 약속을 햇다는데...
산신의 도움인지 어쨋던 새로운 조선 왕조를 열게 되자 약속은 지켜야 겠고 비단으로 산은 도저히 감쌀 수 없고
하여 잔머리를 굴려 산 이름을 비단금(錦)자를 써서 금산으로 부르게 했다 한다..
하여간 그 뒤로는 금산으로 불리게 되엇단다..
출발 하는 아침시간의 날씨는 흐렷고 일기예보는 꽤많은 비를 예보하고 있었다.
비 때문에 상당한 인원이 참석치 못하리라 예상 했는데 예상외로 참석인원이 41명이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를 달렸을까...아니나 다를까..빗방울이 차창을 적신다.
미쳐 비옷을 준비하지 못한분들은 휴게소에서 임시 우의를 구입하고.....
산행 출발지인 매표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빗방울은 제법 굵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비 때문에 산행을 하지 않겠다는 분은 보이지 않는다..
묵묵히 비옷들을 챙겨 입고 주섬주섬 산행 준비들을 한다.
11시 15분 - 비록 빗속이지만 다들 화이팅~을 외치며 단체사진을 찰칵~@@
비를 맞으며 하는 산행이지만 모두 표정들이 밝고 즐거운 얼굴들이다.
비가오던...눈이 내리던...해가 쨍쨍하던....그 모두가 산의 모습이니..산을 즐기는 진정한 산꾼은 날씨탓을 하는게 아니니~
그런 의미에서 여기 모인 으뜸인들은 다들 진정한 산꾼임이 틀림없다~ ^^
보리암을 오르는 길에 약수도 한모금~
행복 曰 : 핑크야 이거라도 먹고 힘내~~~ !!
12시 10분 - 한 시간쯤 오르자 금산 38경의 하나인 쌍홍문이 보인다.
멀리 다도해의 섬들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 하다.
맑은 날에 보는 풍경과는 또다른 신비로움이 느껴진다...우중산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림~
쌍홍문에서 바라본 산빛~
비에 젖은 산빛은 더더욱 제 빛깔이 선명하다. 이또한 비오는 날에만 볼수 있는 산빛....
맑은 날에는 결코 볼수 없으니..
12시 30분 - 그나마 비를 피 할수 있는 쌍홍문 안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비 때문인지 산행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시간 쌍홍문은 우리 으뜸이 접수한다.~!!
사마천이 쓴 중국사기에 의하면 진나라의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오로지 한 걱정이 죽게 되는 일이라.
그리하여 신하들께 명하여 죽지않는 불로초를 구해 오라 했다고 한다.
그때 제나라의 방사였던 서불이란자가 자기에게 어린 동남동녀 삼천명만 주면 불로초를 구해 오겠다고 진시황을 꼬드겨
배 60척에 삼천명의 동남동녀를 태우고 불로초를 찾아 나서게 되었는데.그가 찾아온 곳이 여기 남해도라..
불로초를 찾지 못한 서불은 돌아가면 죽게 될것을 두려워하여 제주도를 거쳐 일본으로 도망쳐 잘먹고 잘 살았다는데...
그때 서불이 다녀간 흔적을 여기 남해 금산에도 남기고 제주 정방폭포 에도 남겼는데.
이를 서불과차(徐市過此)석이라 한다...서불과차란..서불이 다녀갔다...머 대충 이 비슷한 뜻..
금산의 서불과차석은 쌍홍문 지나 바로 위에 있다는데..나는 미쳐 이 암석을 찾지 못하여..
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 온사진이다~
허나 아무리 보아도 내 눈에는 서불과차로 읽기는 어려운데..진시황이 기원전 220년 경이니 지금으로 부터
2,200년 전에 새겨진 글이라 그때 한문이 지금 우리가 읽는 글자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리라 짐작하고~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구분한다면.한문이 아니라.상형문자? 암각화?...
어쨋던 대부분의 금석학자들은 서불과차로 해석을 한다..
이런 흔적들로, 자료들로 하여 전설이 더이상 전설이 아닌 역사의 한 장으로 옮겨 오게 되나 보다.
보리암 뒤 장군봉에서 본 다도해..
눈길 닿는 곳곳이 명승이요 명경이다....오죽하면 이 작은 산이 38경이나 있을까..
상사바위~
이웃집 아씨를 사랑하다 죽어서 구렁이가 된 머슴의 전설이 스민 바위다.
여기서 빌면 사랑이 이루어 진다는데..우리가 간날 .상사바위 고인물에는 올챙이만 오골 거렷다.
남해 금산 정상석앞에서~
온몸이 비에젖고, 빗방울이 카메라 렌즈에 튀어 사진이 흐리거나 말거다...마냥 즐거운 표정들~^^
금산 정상 봉수대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횃불을 피워 비상 연락을 했다는 봉수대
남쪽 끝섬인 이곳에서 혹여 왜구라도 출몰 할적이면.. 여기서 봉화를 올리면 사천, 진주를 거쳐..한양으로 전달 되었다 한다.
13시 50분 - 보리암에서 바라본 다도해
보리암전삼층석탑
보리암의 관세음보살상이나 건물들은 비교적 근래에 조성된것들이나.
보리암앞의 삼층석탑은 고색이 창연하다.
일설에 의하면 가야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후가 인도에서 귀국하는길에 풍랑이 심하여 파사석을 배에 실엇더니
풍랑이 가라앉아 무사히 오게 되었다 한다.
그때 허황후가 인도에서 싣고 온 파사석으로 원효대사가 탑을 지어 세운것이 지금의 삼층석탑이라는데.
신기하게도 석탑 기단에서는 남북을 가르켜야할 나침반이 그 방향을 잃는다.
혹자는 석탑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그런 영험함이 나타난다 하고..
혹자는 파사석의 영험함 때문이라는데.
그 불가사의한 원인은 과학으로도 여태 풀리지 않고 있으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 많은 제가 지난 산행때 직접 나침반을 석탑기단에 올려서 시험을 해 봤다는..
결과는..?....나침반이 방향을 잃고 빙글빙글 돌았슴.....``-.-
우리가족 건강하고 화목하게해 달라고...기와불사도 한장~!!.
15시 00분 - 41명전원 무사히 금산 보리암 완주하고 주차장에 도착~!!
15시 50분 - 삼천포 횟집에서 하산주로 마무리~
이번 금산 보리암 산행은 지난 산행들과는 사믓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출발부터 비가오는 와중에도 취소자 없이 41명 전원이 참석하여
그 비를 맞아가면서도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가 산행을 완주 하였다...
이는 진정으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이니...
이런 진정한 산꾼들이 모여 있는 우리 으뜸의 앞날이
비에젖은 산빛 만큼이나 곱고 푸르게 보이는것은
내 눈의 착시만은 아닐터~
보리암 완주하신 모든분들 복 받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