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동차 생산대수는 일본, 중국에 이어 아시아 3위. 1970~80년대 이후 자동차 생산량은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실질적인 자동차의 역사는 매우 짧고 자동차 문화는 일천하기 그지없다. 특히 클래식카의 경우 한국은 불모지나 다름없다. 지금은 한국에 자동차 생산량에 추월당했지만 태국은 한국에 앞서 자동차에 눈을 뜬 나라로, 그에 걸맞은 다양한 자동차 문화와 클래식카들이 존재한다. 아시아 클래식카의 현주소를 태국, 일본 순으로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국에도 자동차 문화라는 말이 생긴 지 오래되었지만 정작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는 한국 자동차 산업과 비교해서 한국 자동차 문화, 특히 자동차를 즐기는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 좀 모자라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같은 아시아의 자동차 수출대국인 일본이나 태국과 비교해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두 나라에서는 벌써 1970년대부터 모터쇼뿐만 아니라 클래식카 이벤트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80년대 말 초보적인 모터쇼가 처음 열렸고 클래식카 이벤트는 2004년 삼성교통박물관이 주최한 올드카 페스티벌이 최초였다. 아시아 국가들의 자동차 기술이나 품질은 이제 어느 정도 세계 수준에 도달했으나 자동차를 즐기는 방법에 있어서는 자동차 문화의 본고장인 유럽이나 미국에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필자는 아시아인들이 자동차를 즐기는 문화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일본과 태국에서 열리는 클래식카 이벤트를 취재했다. 취재 대상을 클래식카로 정한 이유는 오직 하나. 새차를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데도 일부러 불편한 차를 택할 정도로 차를 좋아하고 즐기는 각국 자동차 매니아들의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먼저 이달에는 부유층들에게서 인기 있는 태국의 클래식카를 소개하고, 다음달에는 이미 저변확대를 이루고 이제는 고급화를 추고하고 있는 일본 클래식카의 현주소를 짚어보기로 한다.
쾌적한 공간에서 격조 있게 열리는 행사 아시아인 최초의 F1 드라이버(1950년 Bira 왕자)가 나온 나라, F1 등 여러 모터스포츠의 스폰서로 유명한 음료수 Red Bull의 본고장, 아시아에서 가장 관람객수가 많은 모터쇼가 열리는 나라(방콕국제모터쇼가 도쿄모터쇼나 서울모터쇼보다 많다), 세계 1위의 픽업트럭 수출국……. 이처럼 태국은 자동차와 관련해서 얘깃거리가 많은 나라다. 그리고 자동차를 즐기는 문화도 잘 발달해 있다. 태국에서 클래식카는 주로 부유층과 태국에서 은퇴생활을 즐기는 백인들을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태국 클래식카 협회는 매년 많은 이벤트를 기획,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세계의 명차를 감상할 수 있는 클래식카 전시회가 자주 열린다.
무덥고 비가 자주 내리는 태국의 특성상 클래식카 이벤트는 대형쇼핑몰과 같은 옥내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쇼핑몰에서 열리는 행사라 해서 규모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 태국 특히 방콕의 쇼핑 사정을 알게 되면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져 버린다. 한국과 달리 태국에서는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이 동거하는 초대형 쇼핑몰이 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방콕 중심가 시엄에 있는 쇼핑몰인 시엄 파라곤에는 대형 수족관은 물론 콘서트 개최도 가능한 커다란 다목적홀이 있다. 방콕 북부 란싯(RANGSIT)에 있는 쇼핑몰 퓨처파크(FUTURE PARK)에는 같은 건물 안에 백화점 2개, 대형 할인매장 1개, 대형 수퍼마켓이 1개 있다. 대형쇼핑몰들은 건물 안에 넓은 다목적 광장이 있으며, 그곳에서는 주말마다 콘서트나 바겐세일, 미술품 전시회 등이 열린다. 클래식카 이벤트도 종종 만날 수 있다.
클래식카 이벤트가 날씨 걱정 없고 습도와 온도를 쾌적하게 맞춰놓은 옥내에서 열리니, 오너 입장에서는 안심하고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할 수 있다. 관람객 입장에서도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차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Classic Car Exposition Ⅴ ‘Classic Car Exposition’은 매년 5월 방콕 동부에 위치한 대형쇼핑몰인 시콘 스퀘어에서 열리는 태국 최대 규모의 클래식카 이벤트다. 행사기간 중 시콘 스퀘어는 거대한 클래식카 전시장으로 변해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지난해 이곳을 취재했을 때도 100여 대의 클래식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부유층이 모이는 행사답게 옥내 광장에서는 재즈음악이 흐르는 등 전시장 분위기가 매우 고급스러웠다.
전시 내용도 클래식카 매니아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알차고 풍성했다. 2차대전 전의 유럽차부터 1970년대의 일제차 그리고 군용차나 수퍼카 등 다양한 차가 전시돼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루마니아 국왕 페르디난드 1세의 어차(御車)로 사용된 1927년형 메르세데스 벤츠 630K/SS, 현재 태국에 1대밖에 없는 메르세데스 벤츠 170V 카브리올레, 그리고 전세계에 85대밖에 없다는 1951년형 메르세데스 벤츠 220 쿠페 등 메르세데스 3총사가 단연 주목을 받았다. 또한 1961년 경영난으로 파산한 서독의 완성차 메이커 보르크바르트(Borgward)가 1952년에 발표한 ‘한자’(Hansa)와 같은 의외의 모델도 전시됐다.
태국에서는 광고가 제품의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태국의 기업들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많은 광고비를 투자하는 편이다. 그 결과 태국의 광고문화는 매우 노골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련되고 성숙된 면도 엿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클래식카 이벤트에서도 마찬가지다. 행사장 여기저기는 물론이고 전시차에 스폰서 기업의 스티커를 붙이는 경우도 많다. 또한 완성차 업체들이 자사의 클래식 모델을 전시하면서 그 옆에 신차를 전시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알파로메오와 토요타도 클래식 모델과 최신 모델을 함께 내세우며 관람객들에게 어필했다. 새차와 달리 클래식카를 통해 비즈니스를 창출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취미 수준의 클래식카 이벤트를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태국의 Classic Car Exposition에서는 그런 문제를 대형쇼핑몰과 광고로 해결했다. 태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이런 방식이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태국에서는 ‘클래식카+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The 32nd Vintage Car Concours The Glossy Heritage Awards 2008 ‘The Glssy Heritage Awards’는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된 태국에서 가장 전통 있는 클래식카 이벤트다. 요즘은 매년 5월 방콕 중심가 BTS 시엄역 앞의 쇼핑몰 시엄파라곤의 로얄파라곤홀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 이벤트는 외국의 콩쿠르 스타일로, 완벽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명차들의 빈티지카(1940년 이전), 2차대전 이후의 자동차(1940~1955년), 클래식카 그룹-A(4도어 세단), 클래식카 그룹-B(2도어 스포츠카), 레플리카, 커스텀카, VW, 미국차, 재규어 등이 분야별로 잘 정리되어 전시된다. 필자가 지난해 이곳을 찾았을 때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등 모두 180대의 차가 전시되었다. 이들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수백억원에 이른다 하니 가히 부유층의 자동차 축제라 할 만하다.
전시 모델을 살펴보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태리나 미국의 콩쿠르 델레강스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클래식카 이벤트로서는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 행사에서는 재규어와 오스틴을 비롯한 역대 영국차의 전시가 돋보였다. 오스틴 7이나 미니 쿠퍼와 같은 대중차는 물론 재규어 XK150 로드스터나 MG TF와 같은 스포츠카 그리고 롤스로이스까지 다양한 모델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치 영국차의 황금시대를 보는 듯했다. 그밖에도 역대 메르세데스 벤츠나 1956년형 알파로메오 줄리아 SS, 1926년형 피아트 티포 509 그리고 1962년형 DKW 주니어/F12와 같은 희소 모델들도 완벽한 상태로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태국의 클래식카 문화를 이끌어 온 이벤트답게 출품차들의 컨디션이 완벽했을 뿐 아니라 2차대전 전의 태국 자동차 광고를 전시하고, 태국 영화에 자동차가 등장한 명장면을 상영하는 등 태국 자동차 문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볼거리도 많았다. 그냥 클래식한 자동차를 보는 것도 좋지만 이런 차들을 옛날에 어떻게 즐겨 탔는지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주최측의 배려가 돋보인다. 아울러 태국 최고의 클래식카 이벤트를 통해 단순히 경제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카에 대한 지식과 열정을 두루 갖춘 부유한 사람들의 취미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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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동차 생활에 아주 좋은 글이 실려 소개합니다... 제 280s도 있군요. 원 기사에는 많은 사진이 있지만 용량과 너무 길어져 생략했습니다..!
참 유용한 기사입니다. 우리도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때가되면 우리 카페가 힘이 될 수도 있겠죠...^^ 주피터님께서 선봉에 서시지요 ..ㅎ
태국을 보니 더욱 좀 그렇습니다. 우리와 차이는 우리는 자동차 생산국으로서 우리 국민은 자동차 회사를 먹여 살려야한다는 겁니다. 그럴려면 새 차를 사야하는 쪽으로 정책이 이루어져야 하겠죠. 이게 좀 성숙하면 독일 처럼 될텐데 언제 그런 시절이 올지...결국 일본 독일을 2-30년 차로 따라가고 있는 걸 보면 그 정도 세월은 지나야할까요.
올드타이머를 아끼고 보존하는 문화가 자리잡음으로 인해 신차의 판매와 발전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우리 관련 부처에서에서 그런 것 까지 아직 깨닭지 못하기 때문이죠...ㅡ.ㅡ
이런 경우를 닭대가리 같은넘들 하고 욕하는 것이지요 머 ^^
태국의 자동차문화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지도 모릅니다. 튜닝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있다는 말도 여러번 접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우리보다는) 더 인정을 해준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을 몰라서 패스..
그런 얘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올드타이머 문화의 수준은 태국이 높다고...!..ㅡ.ㅡ
부럽네요.. 부자는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문화의 성숙도가 부자인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우현선생 감사합니다. 많이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군요 ^^
고연히...제 마음이 급해서...ㅋㅋ 우리도 빨리 바뀌길 바라나 봅니다...ㅡ.ㅡ
태국엔...신형보단 124, 140가 더 많습니다. 특히 AMG로 겉모습을 꾸민 차량이 많이 보이더군요^^ 차량을 보면서... IMF의 영향력을 느끼는 제가.. 우습기도 합니다^^;
차를 아끼고 받아들이는게 아무래도 영국의 영향을 받은듯 합니다...! ^^
만들어 팔기에만 급급한 우리 자동차 산업이 부끄럽기도 하네요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도 발전을 유도하고 많은 부가가치 창출을 하는 좋은 것이다라는 인식이 매우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