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민신문>, 2012. 1. 2.
희망의 길
맹문재(시인, 안양대 교수)
「마이웨이」를 개봉하는 날 보았다. 이 영화를 발 빠르게 관람한 이유는 300억 원대의 제작비가 투자된 사실에서 보듯이 한국 영화사상 최대의 대작이라거나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 등 한국, 일본,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들이 출연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독일군 포로로 붙잡힌 한 동양인이 바로 조선인이었는데, 그의 사진 한 장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감독의 말이 흥미로웠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역사적 운명에 맞서는 한 조선인의 모습을, 처절하게 마이 웨이라고 외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사실 한글 제목이 아니어서 불만이었다).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소련군 포로가 되었고, 다시 독일군 군복을 입어야했고, 그리고 노르망디 전투에 투입되었던 한 조선인. 그는 어떤 자세로 기구한 운명을 헤쳐 나갔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기대했던 것과 상당히 달랐다. 귀를 찢는 듯한 총소리와 폭탄의 폭발음, 폭탄을 몸에 지닌 채 탱크에 뛰어드는 일본군들, 천지를 가득 메운 시커먼 연기, 하늘을 지배한 수많은 비행기, 바다를 채운 거대한 구축함 등 엄청난 전쟁의 장면들이 영화를 압도했다. 그리하여 폭풍처럼 밀려드는 전쟁의 상황에 맞서는 주인공의 모습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민족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증오심이나 연민, 안타까움, 불안감, 욕망, 우정 등이 그만 전쟁의 장면들에 휩쓸려가고 만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 준식은 일본인 지주의 아들인 타츠오에게 강한 경쟁의식을 품고 자라났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인 지주의 하인이라는 신분상의 열등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는 조선인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준식은 조선을 대표하는 제2의 손기정 선수를 꿈꾸며 일본을 대표하는 타츠오와 1938년 경성 마라톤대회에서 맞붙는다. 준식이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지만 대회를 주관하는 인본인들은 준식이 다른 선수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억지를 들고 실격 처리했고 대신 타츠오에게 1위를 주었다. 이에 조선인 관중들이 들고 일어나자 일제는 조선 청년들을 강제로 징집했다. 준식도 그 속에 포함되어 엄청난 운명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전쟁 장면보다는 식민지 지배를 받는 한 조선인의 삶과 정신적인 고통을 역사적인 차원에서 좀 더 부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무엇이 마이 웨이인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아마 기구한 운명 속에서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가족의 품에 안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면서도 구체적인 지향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영화의 전쟁 장면을 지우고 대신 주인공의 간절한 희망을 품기로 했다. 주인공이 1939년 노몬한 전투, 1941년 독일 대 소련의 전투, 1944년 노르망디 전투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기적은 하늘이 도와서라기보다 꼭 살아서 돌아가 가난한 부모와 형제들을 만야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실제로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죽고 마는데, 그것도 불만이다). 그리하여 인질로 잡혀가던 주인공 ‘표범 발’이 우물 속에 숨겨 놓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가혹한 운명을 뚫고 달리는 「아포칼립토」를 떠올렸다. 노신이 「고향」의 끝부분에서 한 말도 떠올렸다. “희망이라는 것은 본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