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小白山)"은 나에게는 고향같이 푸근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산이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밝음(白)'을
숭상했기에 신령스러운 산이름에 백(白)자를 넣었으며, 백두대간의 시원인 백두산을 비롯해 함백산,
태백산,소백산 등 여기서 백은 밝음의 뜻만이 아니라 '높음, 거룩함'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지기가 강해서 주변에 산신각 등이 산재하고 해마다 주변마을에서는 제를
올린다고 한다.
이번 구간은 출발부터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느킴이다. 작년 8월말부터 시작한 남진 13차례 구간들은
무리없이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는데 이번에는 북진하는 것도 그렇고, 출발시간도 1시간 당겨지고, 지난번
남겨두었던 마구령~고치령(8km)를 합처저서 산행길이(최소 33km 이상)도 길어지고, 날씨도 산행하기에
좋지 않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주 이 구간을 먼저 다녀온 산우님이 소백산 등로에는 눈이 녹아
쌓인곳이 없고, 음지의 얼음만 조심하란다. 이말을 믿고 아이젠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동대문에서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평소처럼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해서 양재동으로 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버스
창너머로 만남의 광장이 보이고, 나가야 할 나들목을 지나서 거침없이 달린다. 이젠 어디로 나가야 하나, 산행
대장님의 헨폰이 갑자기 바빠졌다. 양제동과 복정에서 탑승할 산우들에게 연락하고, 운전기사님도 당황하고,
시간은 산우님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흘러간다.
버스는 분당까지 나갔다가 유턴해서 왔던길을 다시 돌아오는 소동끝에 기다리던 산우들을 싣고서 죽령으로
출발한다.
새벽 2 : 20 분 죽령...
비도 눈도 아닌 눈안개가 내리는게 아니라 떠다니는 느킴이다. 철책으로 막아놓은 산행들머리 출입구를
넘어서자 마자 시멘트 포장길에는 전부 녹았다던 눈이 10cm 이상 쌓여 있지 않은가. 원위치 했는 모양이다.
다행히 쌓인 눈은 습기를 품고 있어 생각보다는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아이젠을 신을 정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위를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어중간하다. 앞에서 22명이 밝고 지나간 길은 물기가 배어나
와 질퍽하고 바닥에 눈이 적당하게 눌러저 미꺼덩거려 걷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문명화되고 난후 시멘트, 아스콘, 콘크리트 등 포장된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자동차 등이 다니는
길로 인식되어지고, 사람이 다니는 길은 보도불럭이 깔린 길이나 비포장된 길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제2연화봉을 지나 천문대(한국전자통신연구소, 국립천문대, 공군통신대)까지
눈비가 내린 미끄러운 시멘트 포장길 7km이상을 등산화 끝만 바라보며 무작정 오른다. 간간히 능선의
오른쪽 아래에는 풍기읍의 아름다운 야경이 눈에 잡히지만, 눈길을 오래동안 머물게 할 수도 없다.
선두에서 달리는 산우들이 야경을 구경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질 않는다.
천문대를 지나 넓은 비포장 자갈길은 잛은 구간이지만 몸에 전달되는 느킴은 시멘트 포장길 보다 부드럽다.
연화봉에서 제1연화봉까지의 숲길은 환상적이지만 오늘은 볼 수가 없다. 해마다 걸었던 철쭉이 만발한 길을
상상하는 것 외에는, 30cm이상 쌓인 눈길을 재미없이 걸어간다. 제2연화봉을 오르기전 눈덮인 계단길도
그냥 오른다. 능선이 아름다운 연화봉과 제1연화봉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치한 조망대도 지나친다.
제1연화봉에 올라서서 숨을 고르고, 물 마시는것 외에는 할일이 별로 없는 산우들이 중간 인원 점검을 마치고
아름다운 풍경을 삼킨 어둠을 헤치고 가던 길을 가는것 외에는 달리 할 일도 없다
제1연화봉에서 비로봉 아래 주목군락 감시초소까지는 소백산 등로 중에서도 오르내림과 바위도 있어 산행
느낌을 느낄수 있는 길도. 주목 군락지역도. 비로봉도 부드러운 능선도 어둠에 잠겨있다...
특히 해발고도 1,300~1,400m 의 능선은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지형으로 봄,여름, 가을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초원지대가 펼처지고, 그 초원 위에는 온갖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있고,
낙엽이 진 늦은 가을에는 누런 빛깔의 능선이 산 아래 풍기, 영주, 봉화 들녘의 황금빛 들판과 어울어져 숨을
멎게하고, 겨울철에는 쌓인 눈이 환상적인 설경을 연출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어둠속에서 지나간다. 가슴이 아프다. 아니 슬프다. 아름다움이 어둠에 묻혀서..
오늘은 바람이 별로 불지 않아 다행이지만,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소백산 만큼 오르는 코스별로 느킴이 다른 산도 드물다. 죽령에서 오르는 길은 최악의 시멘트포장길, 희방사에
서 오르는 길은 가파른 돌계단과 거친 숨을 몰아 쉴때 쯤 반겨주는 소나무들이 아름답고,
비로사에서 오르는 길은 두사람은 충분히 지날 수 있는 넓은 철쭉터널 꼬부랑길이 멋있고,
천둥에서 오르는 길은 깊은 계곡물 소리와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 정상부근의 주목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고, 어의곡리에서 비로봉까지 오르는 아주 가파른 길은 조경된 낙엽송이 하늘을 가리고,
맨발로 걸어도 좋은 푹신푹신한 흙길이 일품이다.
그렇게 맹목적으로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 국망봉이 잘힐듯 바라 보이는 곳에서 부터 눈꽃 세상이 펼쳐졌다
물기를 많이 머금고 쌓인 눈은 미끄럽지 않아 좋고, 나무가지에는 환상적인 눈꽃과 상고대가 가지가 부러질듯
열려있고, 지나가는 안개는 지나온 소백산 능선을 잠깐식 보여주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사락눈이 사락사
락 내리지만 맞아도 좋고, 상고대와 눈이 같이 열려 있는 철쭉과 상수리 나무터널 능선길을 어둠에 잃어버린
풍경을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듯이 황홀한 기분으로 온 몸으로 받아 들인다.
샌드위치와 우유 한모금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나서, 후미대장을 후미님에게 부탁하고 선두를 따라서 달린다.
상월봉, 늦은맥이재를 지나 선두를 따라 잡을려고 물마시는 시간도 절약하기 위해서 갈증이 나면 지천으로
쌓인 눈을 한움큼 뭉처 입 속에 집어 넣는다. 나무 가지마다 열려있는 상고대도 따서 입에 넣어 맛을 본다.
차가운 맛은 몸의 열기도 내리고, 눈녹은 시리도록 차디찬 물은 갈증을 줄여준다.
앞서가는 산우를 발견하고 뒤에 가까이 붙어 한 숨을 돌리려고 하는데 어느사이 뒤에는 산행대장을 비롯하여
산우님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줄줄이 붙어서 바람같이 다가온다.
그렇게 뒤따라오는 산우도 신경써면서 앞선 산우를 따라 잡기 위해서 얼마나 달렸을까,
고치령을 약 5km 정도 남겨두고 능선길을 비켜 산허리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간다.
산우들에게 길이 맞는지 확인했지만 이 길이 맞단다.
내려가는 가파른 길이 어색하지만 별 수 없이 얼마간 내려간후 뒤에서 누군가 알바라고 소리친다.. 이런 된장~
앞서서 달린 선두그룹 6,7명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선두와 연락은 해야하나 이 산중에 연락할 방법이 별로없어
원초적인 방법으로 목이 터져라 외처본다. 목소리가 큰 산우님이 외쳐보지만 별 효과가 없다
혼자서는 안되겠는 모양이다. 다같이 단체로 외쳐 보자고 한다...
"하나, 둘, 셋 !! 그~린~.... 알~바~ "
알바가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듯이 소백산 산자락에서 목이 터저라 불러본다.
선두에 간 산우들이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돌아오는 것은 숲이 울리는 메아리..... "알~ 바~" 따라하면서 놀리는 것 같다.
다행히 핸폰이 터져서 선두와 겨우 연락하고, 안해도 될 된비알을 오르는 길은 다리의 힘을 빠지게 한다..
알바한 산우들도 전부 복귀한 고치령을 약 2km 남긴지점, 시간은 11:30분을 지나고....
오늘의 목표지점인 마구령까지 갈지,말지 논의가 벌어졌다. 이때까지의 분위기는 무조건 마구령까지 가는것이
었다. 컨디션이 별로라서 아침 식사하면서 바람을 잡아보았지만 먹히질 않았다. 그런데 알바를 하고나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들어내어 말하기는 그렇지만 앞으로 10여 km를 더가는 부담감이 눈빛을 통해 전달 된다.
바람을 잡으니 바람이 먹혀든다. 산행대장님의 제안으로 회장님이 마구령까지 갈지, 말지 투표에 붙인다.
가자 7표, 가지말자 16표 앞도적인 표차로 오늘 산행은 고치령까지만 가기로 한다.
쉬고있던 산우님들의 분위기가 환하게 밝아지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마구령까지 가면서 먹고 마실려고
아켜두었던 음료수, 과일, 떡 등 먹을 거리가 각자의 베낭에서 마구령같이 마구마구 솟아져 나온다.
눈 때문에 갈 수 없었던 고치령~마구령 구간은 백두대간을 종주한 후 졸업산행 구간으로 정해서 산행은 빨리
잛게 마치고, 뒷풀이를 길게, 버스타고, 동해 바닷가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즐겁게 보내기로 했다.
그것도... 1박 2일로....
벌써 올 11월이 기다려 진다... 갈매기 소리와 파도소리 들으면서 부딪치는 술잔이... ㅎㅎㅎ
고치령에서는 1진은 좌석리 이장님 트럭을 타고서 잘 내려왔지만, 2진은 국공분들과 눈길이 마주쳤지만
헌신적인 산우님 덕분에 최선으로 방어를 하였다.
추후 어떤 결과가 결정되면, 기쁨과 슬픔을 대간길을 타는 산우들이 모두 같이 나누어야 할 것이다.
조그만 소망이 있다면, 어둠속 산행은 가능하면 잛게, 밝음속 산행은 길게하는 대간길이 되기를...
10시간 가까운 눈길 산행동안 같이 산행한 산우님들 즐거웠습니다
2010. 3. 7
대간 소백산 구간을 마치고... 마바르
첫댓글 소백산은 몇번 다녀 왔지만 거의가 철쭉제 시즌이여서...겨울 소백산 정말 아름답습니다 ! 감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