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리 카페, <쏭아>를 가다
최근 전설이나 신화라는 말이 너무 남발되고 있지만 ‘전설적’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과장되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평가의 기준은 결코 현재의 성취가 아니다. 사람들의 폭발적인 지지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설’은 오랜 시간의 풍상 속에서 형성되며 내용을 담는 깊이 뿐 아니라 넓이를 통해서 인정된다. 문학이나 인문사회과학의 ‘고전’이 만들어지듯이 전설적 인물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 수식어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붙여졌을 때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설적’인 말이 어울리는 두 명의 가수가 있다. 한 명은 ‘조용필’이고 또 다른 이는 ‘송창식’이다.
이들이 갖는 음악적 성취는 깊고도 넓다. 이들은 또한 모든 음악적 생산에 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다. 그들이 창조해 낸 노래는 국악과 서양음악에 걸쳐있고 수많은 장르에 다양한 ‘르네상스’적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오랜 시간 그들의 음악은 수많은 사람들의 위로, 낭만, 지지가 되었다. 어떤 예술가보다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며 대중들의 일상과 호흡했던 것이다. 조용필은 대형무대를 중심으로 전국 순회를 통해 여전히 집단적 교감을 나누고 있다. 그에 비해 송창식은 공개무대에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노래를 중단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미사리에 있는 음악 카페 <쏭아>에서 수, 금, 토, 일주일에 세 번씩 무대에 서고 있다. 그는 현재 진행형 음악인이라 할 수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미사리 카페 <쏭아>로 갔다. 주변에 살고 있는 병철 부부와 만남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오후 10시 송창식이 무대에 올랐을 때 객석에는 우리 팀을 비롯 단 2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사리를 가득 채웠던 라이브 카페가 사라진 것도 벌써 오래 시간이 지났다. 현재 운영 중인 라이브 카페는 미사리에 <쏭아>, <열애> 그리고 고양동의 <쉘부르> 단 세 곳뿐이라 한다. 그런 사정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썰렁한 분위기에서도 일흔이 넘은 인자한 얼굴의 노가객은 편안한 느낌으로 등장하였다.
관객이 적다는 것은 운영자에게는 나쁜 일이지만 나 같은 관객에게는 행복한 기회다. 대규모 무대의 떼창보다는 소극장의 읊조리는 무대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일대일로 대면하여 대화할 수 있고 더구나 눈치 안보고 신청곡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송창식은 분명 무대를 가리지 않는 완벽한 가수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노래는 듣는 사람의 내면을 격동시켰다. 특히 갑작스럽게 신청한 <당신은>이란 노래를 기대 이상으로(음반보다 더 진한 느낌) 듣게 되었을 때 그 감동은 더욱 깊게 다가왔다. 늘 쓸쓸함을 동반하며 듣던 노래였는데 조금은 다른 정서로 감상할 수 있었다. 병철이 신청한 노래는 <담배가게 아가씨>, <돌돌이와 석순이>였다. 경쾌하고 해학적인 노래이다. 노래를 신청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갖고 있는 특징을 절묘하게 반영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그동안 살아온 그 사람의 개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부분일 것이다. 내가 아직 ‘감상적’이라는 경계 속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지 않는 이유처럼 말이다.
약 1시간에 걸쳐 듣고 싶은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우리 팀과 이야기를 나누고 들려준 <고래사냥>은 80년대 ‘대학축전’의 피날레를 장식하던 그때 그 노래가 주었던 ‘뜨거움’을 회상하게 만들어 주었다. 완벽한 사운드와 함께 아직도 생명력 넘치는 그의 목소리와의 만남은 7월의 여름밤을 의미있는 하루로 만들었다. 오랫동안 꿈꿨던 송창식의 라이브 무대를 거의 ‘독대’형식으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70이 넘은 노가객이 언제까지 노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와 싸우면서 노래하고 있었다. 나도 늙어가고 있다. 나의 젊음 속에서 나의 절망과, 나의 허무와 함께했던 많지 않은 예술가들이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에 <쉘부르>의 ‘이종환’이, <당신은 몰라>의 ‘최헌’이 세상을 떴다. 이제 남아있는 사람은 모두의 전설이면서 나에게는 특히 ‘감상’의 깊이를 전달한 두 가수만 남았다. ‘정서’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학은 미래로 향할 수 있지만, ‘예술적 감상’은 과거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의 살아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뜨거운 열정을 끊임없이 지지하고 싶다. 그것은 현재의 나를 지속시켜 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때론 의무적이고 당위적인 과제를 멈추었을 때 갑작스럽게 힘겨운 허무가 밀려온다. 그것을 정화시키지 위해서도 그들의 음악은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조용필의 뜨거운 정열도 좋지만, 송창식의 차분한 열정도 아름답다. 두 사람의 멋진 협연을 보고 싶은 희망을 아직도 꿈꾸면서 지속적으로 두 사람의 음악을 소유하고 소비하고 싶다. 그것은 오래된 ‘감상’이지만 새로운 ‘즐거움’을 끊임없이 제공해 준다.
첫댓글
-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노래와 술, 그리고 친구와의 이야기가 있는 밤, 무엇이 더 필요하랴!!!!!!!!
송창식 좋아해서 늘 콘서트 기다렸는데, 거기 가면 만날 수 있군요!!
좋은 정보 감사!
효종씨, 잘지내죠?
오랫만에 소식 나누니 반갑습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기회되면 미사리 카페에서 보게 되면 좋겠군요
'송창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요
@오딘-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