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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예수님을 알게 된것은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를 사랑하는 선교사님의 헌신과 수고 때문입니다. 너무 살기 힘들었고 ,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얏보고 있을 때 한국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은 선교사님이 계세요 이 선교사님을 소개하고 싶어요 이름은 아펜젤러 선교사님인데 이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1885년 미국 펜실비니아에서 태어났어요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집안이 예수님을 믿는 집안이라 항상 가정예배와 주일이 되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아펜젤러 선교사님 14살이 되던해 친구들이 놀러 왔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예수님의 부활을 가슴으로 믿어지냐"는 말에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매우 힘들어 했어요 그래서 이 힘든 가슴을 가지고 성경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했어요 성경을 읽다가 요한복음 20장에 예수님의 죽음맞이한 제자들이 뿔뿔히 흩어져서 있을 때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의심이 많은 도마에게 "구멍난 손바닥을 보이시며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참되도다" 라고 하신 말씀을 보고 자신이 도마와 같다는 생각에 예수님께 회개를 하였어요 그 뒤로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매일 성경과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였어요
그리고 얼마 있다가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조선이라는 나라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 선교사님이 가슴에 깊이 박히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선교사로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1885년에 배를 타고 부인과 함께 일본으로 갔어요 일본에서 맥클레이 선교사님과 만나서 조선이라는 나라에대해서 연구하고 선교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1885년 4월5일인천 제물포 항을 통해서 한국으로 들어 오게 됩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그 당시에 선교의 명목으로 들어 올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육을 목적으로 들어와서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시골 허름한 집을 빌려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점점 그 곳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서양 사람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 때문에 서양사람을 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가르치는 교육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님의 기도를 들으셨어 그 다음에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영어와 한글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조정에서는 아펜젤러 선교사님에게 정식적인 학교를 허락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배화학당이었습니다. 조정에서 학교를 허락하니깐 사람들이 더 모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당에서 예베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과 사람들은 기도를 하였고 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정동감리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사람들은 더 모이기 시작하였고 선교 활동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한편 선교사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을 더욱 전하기 위해서는 한글로 된 성경이 많이 필요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 선교의 위해서 목포에서 한글 성경 번역회의 모임 창설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목포로 사람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는 중에 폭풍이와 서 배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배로 갈아타는데 같이 오돈 조한규라는 친구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조한규형제를 구하러 원래 있던 배로 가는 중에 숨지고 말았습니다. 한국을 그토록 사랑하던 아펜젤러는 선교사님은 한국을 가슴에 뭍고 순교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국을 사랑하는 선교사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알았을까요? 우리는 선교사님의 헌신의 열매를 먹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알지못하는 나라에 이 선교사님처럼 예수님을 전해야 될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