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대책 이후 ‘빈익빈 부익부’ 현상 심화
8월 중순에 독자 한 분이 이런 편지를 보내셨어요. “아파트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불안해하던 차에 212호에 소개된 ‘집값 거품론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기사를 읽고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기사에서 어느 지역, 어느 물건에, 얼마나 거품이 끼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었으면 합니다. 또 행정수도를 이전한 뒤 수도권 집값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뤄주세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지역, 어느 물건에, 얼마나 거품이 끼었다고 콕 짚어 말하는 기사를 쓰기는 어렵습니다. ‘거품이 얼마만큼 끼었다’는 건 곧 ‘앞으로 얼마가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건 신의 영역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신만큼 많은 정보와 식견, 직관력을 가진다면 인간도 신의 계획을 조금은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제겐 그런 능력이 없고요, 일반인보다는 정보와 식견이 풍부한 부동산전문가들이 요즘 시장을 보는 포인트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먼저 현재의 시장 상황을 요약해 말씀드릴게요. 매매값 추이로 봤을 때 서울, 수도권 아파트시장은 4월 말부터 쭉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동산 포털 닥터아파트는 8월20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의 주간 변동률이 매매값은 평당 -0.07%, 전셋값은 평당 -0.13%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원래 7, 8월이나 11, 12월엔 방학, 이사철이라 주택 거래가 늘어나곤 한다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아파트시장이 얼마나 얼어붙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으세요? 거래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시세가 형성되는 걸까요? 여기서 요즘 부동산시장을 읽을 때 놓치면 안 될 첫 번째 포인트가 있습니다. 지금 부동산 중개업소나 부동산 포털에서 제공하는 시세가 반드시 실제 거래가를 나타내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말씀입니다.
포인트1-시세를 믿지 말라
제가 만난 부동산시장 분석가들은 다들 “요즘 시세는 고무줄 시세”라고 말합니다. 매도호가와 실제 거래가가 많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죠. 어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손님을 끌어들이려고 일부러 값을 낮춰 부르기도 한답니다. 한 부동산 분석가의 말을 들으니, 부동산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값을 보고 전화한 손님한테 “그 물건은 방금 팔렸으니, 그와 비슷한 다른 물건을 보겠냐”고 둘러대면서 매수를 유도하는 중개업자도 있다고 하더군요. 반대로 어떤 부동산 중개업자는 해당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세보다 높게 매도가를 매겨놓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하간 거래가 확 줄어 매도호가와 매수희망가의 차이가 큰 지금 상황에선, 나붙은 시세만 보고 시장 흐름을 판단하면 안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시장 심리를 파악하는 지표로서 매매값만큼 유용한 건 없죠. 고무줄 같다는 서울 수도권의 아파트값 변동 추이를 좀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좀 다른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10·29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지난해 10월 말과 올해 8월 중순의 매매값의 아래 그림에서 00색은 평당 매매값이 하락한 지역입니다. 서울, 수도권 67개 시, 구, 군 중 14개 지역이 떨어졌습니다. **색은 평당 매매값이 상승한 곳입니다. 67개 중 45개 지역이 올랐습니다. &&색으로 표시된 8개 지역은 보합세를 보였습니다. 뜻밖에도 하락 지역이 많지 않죠? 하락폭도 크지 않습니다. 하락폭이 그 중 가장 큰 경기도 화성시가 -0.08%, 서울시 송파구가 -0.06%의 변동률을 기록했으니 말입니다.
김수현 닥터아파트 시황분석팀장은 “가장 정확한 건 매물 동향”이라고 말합니다. 고무줄 시세는 판단에 좋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실제적으로 매물이 얼마나 나오고 매물량이 어떻게 변했느냐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조언합니다. 매물량에 대해선 해당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가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거의 다 협회를 통해 매물을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발품 팔기’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믿을 수 있는 부동산 투자전략입니다.
그렇다면 아파트 매매값이 1억원씩 떨어졌다는 뉴스는 어떻게 된 걸까요? 여기에 시장을 읽는 두 번째 포인트가 있습니다. 요즘 시장은 구별, 시별이 아닌 아파트별로 움직인다는 점 말입니다.
포인트2-거품의 정체를 파악해라
최근 아파트 매매값의 평균을 끌어내린 건 가격이 폭등했던 재건축 아파트였습니다. 올해 초 급등했던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은 시장 안정에 나선 정부가 4월 말 주택거래신고제를 실시했을 땐 휘청했고, 7월 중순에 ‘개발이익환수제 도입을 위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입법했을 땐 크게 꺾였습니다.
지난해 말, 올해 초 급등한 분양권이나 아파트는 손을 많이 타면서 값이 올라갔습니다. 특히 인테리어, 조경, 전망, 쇼핑시설 등 생활여건이 ‘웰빙’형이 아닌데도 값이 오른 아파트들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올랐습니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경기도 용인 지역의 아파트가 그렇게 값이 올랐죠.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거품’의 정체입니다. 아파트값이 현재의 자산가치가 아니라 미래의 기대가치에 의해 올랐는데 어느 날 그것이 실현될 수 없는 미래가치, 즉 ‘과잉 기대’였음이 밝혀지면 가격하락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그것을 일컬어 나중에 ‘거품이었다’고 말합니다.
8월 들어 일부 단지에서 1억원 이상 매매값이 떨어지는 사례가 속출한 것도 그 탓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재건축 아파트인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국제아파트와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값을 보세요. 7월 중순에만 해도 11억5천만~12억5천만원에 거래됐던 국제아파트 48평형은 최근 10억~11억2천만원선에서 매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7억5천만원에 거래되던 은마아파트 34평형은 6억5천만~7억원 정도에서 흥정이 오갑니다.
안명숙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은 “강남 재건축 아파트 말고 다른 아파트는 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그의 설명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재건축 외 일반 단지는 값이 많이 떨어진 곳도 1천만원 정도 하락했어요. 이 정도면 약보합세라고 봐도 됩니다. 재건축 아파트가 서울, 수도권의 집값 하락을 주도했죠. 재건축 아파트 가격하락세는 연말에 정부가 개발이익환수제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입법 예고할 때까지는 안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재건축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아직 조합 승인을 받지 않은 아파트 중엔 되레 매매값이 올라간 곳도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한신8, 9차 아파트가 대표적인 예죠. 이런 곳엔 여전히 미래에 대한 기대가치가 높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정부의 규제가 미치지 않을 미래까지 내다보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는 탓이죠.
조지현 신한은행 프라이빗뱅크사업부 감정평가사는 “요즘 소비자들이 똑똑해졌다”고 전합니다. “소비자들이 재건축 조합에서 승인을 반려하는 곳이 늘어 공급이 줄어들고 아파트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정부도 일정 기간 후 제약을 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건축 승인을 받은 아파트값은 떨어져도 재건축을 할 수 있는 오래된 아파트값은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소비자가 똑똑해졌다’, 정확히 말해 ‘투자자가 똑똑해졌다’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뭘까요? 여기에 요즘 시장을 보는 세 번째 포인트가 있습니다.
포인트3-미인주 아파트의 인기는 계속된다
요즘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을 만나면 “부동산시장이 주식시장 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인터넷에 부동산 포털 사이트가 발달하고 부동산 중개업소끼리 네트워크가 강화되면서 정보가 빨리 돌게 되자 대중이 대개 비슷한 정도의 정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어느 지역에서 살든 상관없이 투자 목적으로 아파트 매매를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러면서 주식시장에서처럼 부동산시장에서도 더 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종목’이 실제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식시장 용어로 표현하면 ‘미인주 선호 현상’이 뚜렷해진 것이죠. 반면 시장이 싫어하는 ‘폭탄주’ 기피 심리도 분명해졌습니다.
강현구 닥터아파트 정보분석실장이 꼽는 ‘미인주’와 ‘폭탄주’의 요건을 전해드릴게요. 먼저 ‘미인주’의 요건을 볼까요? 첫째, 직장이 많은 지역과 가깝고, 교육 여건 및 편의시설이 좋은 아파트. 둘째, 지역 내에 재개발, 재건축, 지하철 개통, 대형 할인마트 개장 같은 호재가 기다리고 있는 아파트. 셋째, 단지 규모가 크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단지. 넷째, 그런 단지 안에서도 해당 지역에서 인기가 높은 평형, 희소가치가 있는 평형의 아파트.
‘폭탄주’는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 개통, 대형 할인마트 입점 등 생활여건이 좋아질 만한 호재가 없고 분양 물량이나 가구수가 적은 단지, 그래서 설사 재건축이 된다고 해도 실수요자들의 선호가 그리 높아질 것 같지 않은 단지는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폭탄주’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수원시 영통동의 A아파트 37평형은 지난해 10월 말 3억2천만원 하던 매매상한가가 올 8월 중순 3억4천만원으로 올랐습니다. 반대로 김포시 북변동 B아파트 49평형은 같은 기간에 2억8천만원에서 2억4500만원으로 값이 떨어졌습니다. 수원시 영통동엔 삼성전자 공장이 있어 중형 평형 수요가 꾸준히 생길 전망이지만 김포시 북변동엔 대형 평형에 살 만한 자산가가 늘어날 기미가 없기 때문이죠.
분석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미인주’를 찾는 방식이 정말 미인대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인대회 심사위원이라면 내게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도 모두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사람한테 점수를 줘야 욕먹지 않잖아요. 아파트, 주식시장에서도 마찬가지 원리로 내게 편한 아파트, 내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파트보다는 다른 실수요자도 보편적으로 편하게 느낄 만한 아파트, 다른 투자자들도 객관적으로 미래가치를 인정하는 아파트, 그래서 다들 좋아할 만한 아파트를 골라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편의시설도, 학교도 없는데 ‘앞으로 강남 사람들이 옮겨올 거야’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오른 용인 지역 아파트보다는 정부가 편의시설과 교육여건을 계획해 개발하고 있는 판교 신도시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단순히 내집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심리까지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배우자를 고르는 것처럼 내가 살 집, 내가 좋으면 그만인 거죠. 하지만 내집 마련과 동시에 자산 불리기를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읽으셔야 합니다. 연예인 매니저가 스타감을 발굴하는 마음가짐으로 말입니다.
참,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물으셨죠? 분석가들은 그 변수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더군요.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영향으로 보기엔 미미한 요인”이라고 말했습니다. “행정도시 이전의 첫 삽을 뜨는 것이 2007년입니다. 이주는 그로부터도 한참 지나야 일어날 겁니다. 과거 신도시 때 경험을 보면 서울, 수도권 아파트도 새 행정도시 입주에 임박해 값이 움직일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정책 집행 속도와 분위기를 봐가면서 대처할 시간은 충분히 있습니다.”
독자님께서 내집 마련 희망자이신지, 아파트를 보유하신 실수요자이신지 혹은 투자자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처지에 따라 다른 대처방식을 쓰셔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내집 마련 희망자이시라면 내년까지는 아파트값이 오를 요인이 없으니 소득 흐름을 체크하시면서 느긋하게 좋은 곳을 고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파트 보유자이시라면 지금 갖고 계신 아파트가 ‘미인주’인지, ‘폭탄주’인지 얼른 판단하셔야 합니다. 내년까지 이어질 조정장세에서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너무 불안해하진 마세요. 서울, 수도권의 아파트 수요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한 금융사 분석자료에 따르면 서울, 수도권 주택보급률이 정부가 얘기하는 것만큼 높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단독가구수와 불량 노후주택의 멸실률을 감안한 주택보급률은 서울이 63%, 경기가 80%, 인천이 84%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