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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사랑 고백 시리즈 4
겨울바다 보라빛 사랑
옥이는 나보다 키도 컸고 긴 머리, 하얀 얼굴에 긴 양말을 신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나는 운동장 한 쪽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사방치기를 하고 있는 그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우리 집과 반대쪽으로 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갈림길에 서 있곤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옥이네가 서울로 이사를 갔다.
6.25가 끝난 후에도 우리학교에는 피난 온 아이들이 많이 다녔고 그들은 우리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동네 아이들보다 옷도 잘 입고 말쑥했다. 옥이도 서울말을 썼고 공주처럼 예뻤다. 그 여름 짧은 블라우스 소매 사이로 뻗은 하얗고 긴 팔은 남포동의 쇼윈도에서 본 마네킹과 같았다. 나는 말 한 번 건네 보지도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굴이 화끈거려 스스로 놀라 자리를 피했다.
그가 서울로 떠난 후 나는 우울해졌다.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 한구석에서 조약돌을 차며 서있었고, 학교를 마쳐도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왜 6학년 졸업을 앞두고 이사를 갔을까? 나는 늘 그게 궁금하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후에 내가 크면 서울에 올라가서 꼭 다시 만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때는 그런 기분이 무언지 잘 몰랐지만 짝사랑이었고 내게는 첫 사랑이었다.
우리 집 골목 입구 이발소 옆에는 공터가 있었고, 여름날 저녁나절에 동네아주머니들이 평상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아이들은 엄마 옆에 앉아서 어른들 이야기도 엿듣기도 하고 주위를 뛰놀며 술래잡기도 했다. 중학생인 나는 아이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집을 들락거리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옆을 지나치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에 못 보던 아주머니 한 사람이 갓난아기를 안고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아주머니라고는 하지만 아직 갓 스물을 넘었을까, 앳된 얼굴의 새댁이었다. 무심히 지나쳤지만 한참을 지나도 소녀티를 막 벗어난 그 얼굴이 눈에 어렸다.
며칠 후 늦게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공터 평상에는 구멍가게 순애 할머니와 젊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 앞에 와서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눈앞에 새댁의 가슴이 보였다. 저고리 고름을 풀고 한쪽 젖가슴을 드러내어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탄력 있는 상아빛 젖무덤 위로는 부메랑처럼 완곡히 타고 올라가는 목덜미가 보였다. 이발소 창가 불빛에 드러난 하얀 목덜미는 너무 희고 고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가슴에 맷돌이라도 올려놓은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집을 드나들 때 평상 가까이 와서 그 새댁이 있나하고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 아주머니 남편은 늦게 퇴근을 하는지 저녁시간이면 자주 볼 수 있었고, 그럴 때면 나는 그곳을 지나며 가까운데서 몰래 젊은 새댁을 훔쳐보곤 하였다. 가까이서 보니까 아주머니의 왼쪽 귀밑에 까만 점 하나가 있었는데, 나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고 내 귓불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며칠 보지 못했을 때는 약간 마르고 지쳐 보였던 새댁의 해사한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보고 싶었다. 물론 그 새댁아주머니는 까까머리 꼬마 중학생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을테고 저녁밥을 지어놓고 평상에 나와 앉아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여름이 다가고 날이 서늘해지자 나는 가끔 골목에서 아기를 업고 지나가는 새댁아주머니를 볼 수 있었는데, 서로 가까워지면 뺨이 화끈거려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주보지도 못하고 지나쳤다. 그때는 그 젊은 새댁의 어떤 점을, 무엇을 좋아했는지 뚜렷이 생각나는 게 없지만 그냥 자꾸 보고 싶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통 새댁아주머니를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안달이 나서 어느 날 어머니께‘그 새댁아줌마가 왜 보이지 않는지’를 물었더니, 남편이 직장을 잃어서 시골에 있는 시댁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보고 싶은 마음보다 먼 시골로 갔다고 해서 한 동안 마음이 아팠다. 그때는 왠지 잘 몰랐지만 그것도 짝사랑이었던 것 같고 그 새댁을 사모했던 것도 같다. 내가 좋아했던 두 번째 여인도 그렇게 떠나고 말았다.
고3이라고 요즘처럼 수능과 논술준비로 몇 개씩 과외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입시준비에 마음이 조렸다. 제대로 보지도 않는 참고서나 문제집을 옆구리에 끼고 친구 집도 가고 독서실에도 나가는 등 바쁘게 쏘다니기만 했다. 그 즈음 건너편 동네 사는 같은 반 의주라는 친구와 잘 어울렸는데, 의주는 자기 이웃에 사는 J여고에 다니는 학생을 좋아했고, 나도 우리 동네 사는 연희를 좋아하게 되었다. 저녁 먹고 공부 하자고 만난 둘은 여학생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친구는 몇 번 데이트를 했지만 잘 만나주지 않는 J여고생에게 열심히 편지를 써 보냈는데 그가 대강 써놓으면 내가 마무리를 지어주었다. 내가 좋아했던 연희네는 같은 동네라고 하지만 떨어져 있어, 어릴 때 같이 놀지도 않았고 커면서는 서로 고개만 숙이면서 지나치는 어색한 사이였다. 의주의 연애편지를 손봐주면서 나도 연희에게 편지를 썼다. 대학노트 몇 장에 길게 써서 사각형으로 곱게 접어 기다리기를 여러 번, 어느 날 저녁 집으로 가는 연희에게 건네고는 옆 골목으로 달아났다. 그런지 한 주일이 지나서 작은 우편엽서 한 장을 받았고 우리는 처음 둘이 만났다.
처음 만나 간 곳은 해운대 백사장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동백섬까지 걸었고 시내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나란히 앉아 창밖 바다풍경만 바라보았다. 첫 만남은 얼굴 한 번 마주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그 후로 우리는 늘 바다를 찾았고 계절 따라 그 모습을 바꾸는 바다를 지켜보면서 바다색깔에 함께 물들었다. 서로 말은 없어도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해조들의 울음소리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함께 걷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흩어져있는 조가비 하나 조약돌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였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게 바다는 보화 가득한 넉넉한 가슴으로 금빛은빛으로 반짝이는 모래는 수많은 언어로 다가왔다. 한적한 광안리 해변을 걸었고 달뜨는 해운대 사장을 거닐었다. 다리가 아픈 줄도 배고픈 줄도 모르고 걸었고, 젖은 모래에 난 발자국 메우고 쓸려나가는 파도를 보며 마주보고 웃었다.
그 겨울의 진보라빛 바다색으로 두 사람의 가슴이 멍들 때까지 우리는 바다에 빠져있었다. 아니 서로에게 빠져있었다. 여름의 연한 파스텔 블루, 가을의 사파이어 파랑으로 점점 짙어져가는 바다색을 따라 우리의 사랑도 깊어져가고... . 때로는 해가지는지 달이 뜨는지도 모르고 동백섬의 바위, 수영의 모래톱에 앉아 달빛 어린 바다를 지켜보았다. 겨울 바닷가는 추웠다. 얇은 운동화 속에서 얼얼해진 발가락은 감각이 없어지고 차가운 바닷바람에 뺨이 얼었지만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연희의 손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 손길에서 마음을 느꼈고 진땀이 나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바다를 보았고, 나중에는 바다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통했다. 우리의 만남은 사춘기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여름을 지나면서 가슴은 사랑의 느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공부도 해야 하고 데이트도 나가야 하고 고3 시절은 왜 그렇게 할 일도 많았는지.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벌써 12월이 되었다. 그 동안 의주와는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어쩌다 마주치면 입시 걱정으로 한 숨만 쉬다가 헤어졌다. 우리는 머릿속 보다 철없는 사랑으로 가슴만 가득 채운채로 입시를 봤고 두 사람 다 낙방했다.
의주는 여전히 그 J여고생에게 속을 태우기만 했는데, 졸업이 가까워지자 가끔 소주병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으스름 저녁이면 집뒤 언덕에 올라가 마른 오징어를 뜯으며 소주병 채 나누어 마셨고, 나는 무슨 채무라도 진 것처럼 의주의 통한을 들어주어야 했다.
학교를 졸업하자 정월의 삭풍을 맞은 듯 우리들 마음에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내일을 걱정하게 되었다. 연희와의 데이트도 뜸해지고 마음을 잡지 못한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담배도 배우는 등 어른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의주는 나중에 진학한다면서 공군에 지원입대 했다.
홀로 남아 갈 곳도 만날 친구도 없이 지내던 나는 학급 재수생들이 모여 있는 독서실을 들리거나 연희와 걸었던 바닷가를 찾았다. 생각은 파도너머 먼 곳으로 흘러갔지만 마음은 머무를 데 없는 삭연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남빛 봄 바다도 낮게 날아가는 갈매기도 내게는 아무른 의미가 없었다. 연희를 만나고 싶었지만 대학 노트에 낙서만 하면서 편지 한 장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봄은 왔건만 마음은 여전히 얼어 붙어있었다. 잃어버린 나의 봄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그해 여름 나는 재수하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이듬해 서울로 진학했다. 내가 서울에 있는 동안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방학 때를 기다렸다. 보고 싶어도 바닷가를 거닐고 싶어도 기차로 열 두 시간, 우리는 멀리 떨어져있었다.
첫 여름방학은 너무 바빴다. 짧은 2주 동안 친척집에 인사도 다니고 저녁마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등 가봐야 할 곳도 만나야할 사람들도 많았다. 연희와는 몇 번 다과점이나 찻집에서 만났을 뿐 바닷가를 찾을 틈이 없었다.
나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소풍날을 기다리는 초등학생처럼 겨울 방학을 기다렸다. 서울의 가을은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갔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단풍이 들었는지 매일 보는 관악산이 붉게 물들었는지도 보이지 않았고, 흐린 하늘에 눈발이 뜨는가했더니 기다렸던 겨울 방학이 왔다.
보고 싶은 얼굴, 가고싶은 바닷가를 그리는 내게 증기기관차는 너무 느렸다. 연희는 좀 수척해졌으나 완연한 숙녀티가 나고 뒷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해운대 종점에 내리자 우리는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달려갔다. 듣고 싶고 이야기 하고픈 말이 많았던 것 같았는데 서로 말이 없기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여름을 지나면서 키만 훌쩍 커버린 해바라기처럼 예전 같은 싱그러움이나 가슴 뛰는 애틋함도 없어져 버렸다. 어깨를 붙이고 걸으며 바라보기만 해도 내밀한 언어로 가슴을 가득 채워주었던 보라빛 겨울 바다도 무심하게 보였다.
바쁜 생활 속에 그렇게 이태가 지난 세 번째 겨울방학이었다. 그 즈음 서로 편지는 뜸했지만 여전히 방학은 기다려졌고, 바다냄새가 풍기는 고향,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기대로 가슴은 벅차올랐다. 나는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그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그의 어머니 음성은 예전과 달랐고 연희는 지금 집에 없다고만 하셨다. 나는 이튿날 용기를 내서 그의 집을 찾아갔고 너무나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연희는 얼마 전에 정혼을 했고 혼인 날짜를 받아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동안 시골에 있는 친척집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무어라고 하고 싶은 말도 더 듣고 싶은 말도 없었다. 내게는 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집안의 막내이고 아직은 앳된 22살의 꽃돼지띠가 아니던가.
나는 바닷가로 달려갔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울먹이는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내 앞에 출렁이는 바다는 그때 그 바다가 아니었다. 함께 바라만보고 있어도 뛰는 가슴으로 수많은 언어를 엮어주던 그 겨울의 보라빛 바다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누가 변하지 않는 것이 바다라고 했던가, 바다를 두고 마음을 함께 했던 우리가 아닌가.
연희는 갔다. 내 곁을 떠났다.
어쩌면 내가 먼저 그를 떠났는지도 몰랐다. 아니 노래 탓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바닷가를 거닐 때 가끔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때 유행했던 짐 리버스의 ‘He'll have to go'를, 연희는 콧노래로‘ 금발의 제니’나 ‘메기의 추억’을 잘 불렀는데 중간에 한 두 소절은 가사를 넣어 부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의 약간 허스키한 음성이 바다위에 깔리는 저녁안개에 묻혀 아득히 멀어지는 것 같이 들렸다.
그때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만나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그래서 말없이 걸으며 바다에 띄워 주고받았던 언어들. 그 바다 속에 묻어둔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언제까지나 기다려달라는 말이 꼭 필요했던 것일까.
그가 떠난 후로 나는 다시 바닷가에 나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젊은 한 때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겨울바다 파도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보라색은 내가 싫어하는 색이 되었고‘금발의 제니’는 콧소리로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첫댓글 엄지선생님은 자잘 한 것만 쓰시고 핵심을 피해 가실 요량입니까? 그래도 첫 번, 두 번 다 재미 있습니다. 세번째가 퍽 기대됩니다. 여러사람을 쓰다보면 자연히 수필과는 멀어집니다. 그냥 체험적 단편 소설로 가시지요. 그래야 엄지님 사랑을 다 읽을수 있을 것 같네요. 기대합니다. ㅎㅎㅎ. 잠 안자고 있던 보람으로 일착으로 읽습니다. 수필로는 두번째 것으로 훗날 따로 엮으시면 괜찮을 것 같아요. 다음것도 다 봐야하는데 열 번까지면 될라나요? 이거, 너무 재미있네요. 제가 1차 배턴 받기를 잘했군요. 다음 분 미리 찍어야 준비 하겠지요? ㅎㅎㅎ 어느 카페에도 이런 첫사랑 시리즈는 없을것이니 잘 엮어서 수출할까요?
어릴 땐 송사리지요. 머리가 크지면 매기가 될지 월척이 될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단편소설로 묶어서 내야하는건데 시작이 좀 빗나간 것 같기도하고... . 그래도 배턴을 받았으니 성심성의껏 있었던대로 엮어나갈 생각입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라도... . 다음 배턴 받을 분 저한테 귀뜸 좀 부탁합니다.
생도시절, 여름 해양훈련 받던 '강원도 송정해수욕장' 모래 밭에 앉아서 밤하늘의 별을 헤이면서 나누었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회장님의 사랑은 초등학교때 서울로 가버린 첫사랑 '숙이', 중등학교때 시골로 떠나버린 목이 하얀 옆집 아줌마, 고등학교시절 연애편지를 건냈던 '연희', 다음으로 계속되는 대학시절의 OO씨, 그리고 또 ..........아! 엄지님의 가슴에 담겼다 떠나간 여성들이여. 언제가 끝이될지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생각은 날아가는 새'라고 했습니다. 단지 내 머리에 새집을 짓지 못하도록 할 뿐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몇 인지, 찬찬히 손가락을 꼽아봐야 ㅎㅎㅎ 그렇습니다. 가슴에 머무르다 간 사람들을 다 펼쳐놓으면 원고지가 얼마나 쌓일까요. 사랑에는 끝이 없다고들 합니다. 90이 넘은 시인, 90, 또 여든을 내다보는 수필가님들이 한 결같이 하시는 말씀 '지금이라도 사랑을 하라!'였습니다.
지존님, 서운하면 또 한 번 받으셔서 다음 얘기도 하시지요. 지존님도 줄줄이 있을 듯 합니다. ㅎㅎㅎ. 그리고 엄지님 말씀에 사랑은 끝이없다고 하시니 저도 다시 한 번 시작해 볼까요? 아이, 좋아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시요. 그리고 사랑하십시요. '사랑에 빠져서 영원을 만나는 때 이땅이 천국인 줄을 알리라' 이 말은 선인들의 말을 종합해본 제 말입니다. 사랑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인 것을.
두분의 대화를 보니 이런글들이 생각나는 군요. "사랑은 샘물 처럼 항상 새롭게 솟는것" " 지금은 젊음의 뒤안 길에서 거울 앞에 앉은 내 누님같은 꽃이여" 언제부터인가 저는 거울보기가 싫어지고 사진을 찍지 않기로 했습니다. 조각같았던 내 얼굴이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음을 발견하고 부터. 이 처지에 새로운 사랑을 할수 있는건지, 참
조각같던 얼굴? 이쯤되면 저는 은방울 같던 목소리가 쇠어서 노래도 못부릅니다. ㅎㅎ 그래도 시작해야지. 사랑. 그런데 저 여기 몇 번 들어오나요. 저는 어떤 집이던 한 번 들어가고 말지는 못합니다. 특히 [사랑방]에는... 지존님도 그러시네요. 헤어보니 무려 여섯번을 들어왔네요. 내 방도 아닌터에 엄지님 죄송합니다.
봄비님은 '나를 떠난 여인들'을 다할 때까지는 이야기를 들어주셔야할 겁니다. 이렇게 제 가슴을 파헤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말입니다. 여섯 번이 아니라 예순 번이 될지라도 하소연을 들어주실거죠?
당근입니다. 600번이라도 귀 기울이겠습니다. 더구나 엄지님 얘기인 바에야. 아마 속이 좀 후련해 지실걸요. 심리치료 중이신겁니다. 치료비 비싸게 받을 예정이니, 준비하시지요.
재미있어요.
초록님은 재미있으시겠지만 고백하는 저는 진땀께나 빼고 있습니다. 이럴 땐 위로 말씀이라도 한마디 해주시면 잊지 않을텐데- .
소년의 순진무구한 첫사랑은 너무 이쁘고, 두 번째는 성에 눈뜨는 사춘기 소년의 성장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이어질 세째 네째는 어떤 사랑 모양일까? 지존님의 암시에 의하면 끝이 없을 듯한 이야기는 봄비님 말씀처럼 소설로 엮어야 할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를 일.ㅎㅎㅎ 엄지님, 배턴을 받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이 기대됩니다.
배턴을 넘기시고는 팔짱을 끼고 쩔쩔매는 꼴을 느긋하게 내려다보고 계신 분도 계시군요. 무심하기로는 진정 그럴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지존님은 그때 몇 년간을 보셨는데 넘겨집는데 제가 넘어간 건 아닌지 좀 얼얼해졌습니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이때 소설로 엮어나가기로 270도 회전을 할까도 싶네요. 제발 물에 빠진 저에게 새끼줄이라도 던져주실 분은 어디에...... .
기왕에 빠져버렸으니 물 깊이가 얼마인지 갈때까지 들어가 보시지요. 가다보면 지금 준비하고 계시는 ㅇ,ㄱ,ㄹ,ㅁ,ㅂ, ㅅ,ㅊ,.......님들중 누가 쩔쩔매는 엄지님이 안타까와서 새끼줄 던지시지 않을가요.
변죽만 울려놓고 팔짱끼고 회심의 미소만 짓고 있는 분은 봄비님이지요. 들미소와 엄지바우는, 너무 순진합니다. 저는 겨우 빠져나왔는데 물소리 마음소리에 귀기울이느라 느긋할 틈도 없었답니다. 어쩌나, 우선 물에 빠진 엄지님부터 구해드려야 하는데...보따리 내놓으라 해도 할 수 없는 노릇. 옳아! 얼른 산에가서 칡넝쿨 뜯어다가 던져드려야지. 너무 깊이 빠지면 안 되니까요. 사랑 늪이 얼마나 깊고 무서운 줄 체험하게 모른척 눈감아버릴까 보다.ㅎㅎㅎ
당해보니까 절실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이 순간 믿을 분은 들미소님 뿐입니다. 어서 오대산 칡넝쿨을-- . 오늘같이 좋은 날에 왠 봄비만 종일 내리는지... . 원망스러운 님도 계십니다.
물에 빠지시다니요? 얼토당토않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인데요. '연희' 의 이야기가 몹시 기대됩니다.
한별님, 그렇게 태평으로 있다가 배턴 넘어오면 어쩌려구 그러우? 별님, 별님, 한별님.
한별님의 위로 말씀에 힘을 얻어 원고 마감일 전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한마디가 바로 물에 빠진 저에게 동아줄을 던져주신 겁니다. 봄비님은 첫사랑 시리즈 첫 배턴을 받으시면서 이리저리 웅덩이를 건너뛰면서 피해가셨는데 저는 그만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ㅠㅠ
맞습니다. 봄비님 것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그件은 엄연한 반칙입니다. 모든 정례 경기 끝나면 봄비님은 再 경기해야 인정합니다. 회장님, 심판 정확히 보세요.
아닐 걸요. 일단 모두 1차 경기가 다 끝나야 재경기 시간이 오며, 엄지님은 저하고 무지 친하여 절대 그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목은 매혹적이고 본문은 아릿하고 댓글은 싱그럽습니다. 첫사랑 시리즈 방을 따로 하나 차리시죠.ㅋ
찬웅님 조심하십시요. 선생님도 절대 피해가지 못하실 것입니다. 제가 제일 궁금해 하는 분이시거든요. 이찬웅 님은.
등 떼밀려 시작을 했습니다만 끝맺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사랑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어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본문이 좀 아릿하지만 아직은 더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 갑에라도사실을 은폐하거나 엄폐하지는 않을 작정입니다만... .
은폐와 엄폐의 차이를 알면 군필 확실함.ㅋㅋ
ㅋㅋ 저도 이찬웅님의 생각에 동감합니다.
그건 확실히 해야겠지요. 급하면 엄폐를 할 수 있는 넓직한 등판을 가진 분을 미리 찾아봐야겠습니다.
100% 이해가 되는 사랑이야기 입니다. 대부분 어려서는 짝사랑이 많고, 좀 자라서는 특별한 원인도 없이 헤어지게 되지요. 그 마음이 이 마음과 같으면서도 엮이는 방법을 몰라서 우물쭈물 하다가 그만, 경포 바다를 보면서 마음 아프셨던 까닭을 알겠습니다. 먼저의 글(경포 바닷가에서)에 연희님의 이야기를 한 두줄 넣었어도 좋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입니다. 혹여 이글 쓰시다 옛일이 생각나서 많이 편찮으셨던가요? 미안합니다. 괜히 '첫사랑 시리즈'를 만들어서 남의 속을 아프게 하고...
모두가 지난 옛 이야깁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추억을 더듬어보기도 하고 내일의 사랑을 생각하기도 해보고 ㅋㅋ. 소설 쓰던 때가 생각납니다. 밤새 수십장을 쓰놓고 이튿날 다시보면서 반은 꾸겨 버렸던. 첫사랑은 아름답고 아프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 번 다 첫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연희는 지금 한 아름 손주를 거느린 할머니가 되어있겠지요.
숙이에서 이웃집 새댁으로 다시 연희로 이어지는 상큼한 사랑 이야기가 입가에 미소를 가시지 않게 합니다. 마음 아프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하고 .... 그러면서 그 수줍던 소년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도 털어 놓을 정도로 너무 성숙해버린(?) 어른이 되어 버렸네요.ㅎㅎㅎㅎㅎ
누구나 자랄 때 한 두 번 겪는 일인데 그때 마음이 아팠는데 또 오래동안 숨기고 사느라 마음고생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네요. 서양에서는 편히 말하고 이해하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남의 집 담 넘어 이야기가 궁금하고 재미 있으시겠지만 아쿠아님도 언젠가는 관람료를 내셔야할지도... . ㅎㅎㅎ 08.04.05 22:08
글을 마무리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연희씨가 먼저 떠난 것이 오히려 마음이 덜 아프실겁니다. 아마 지금 쯤 연희씨가 엄지님을 생각하며 더 많은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름다운 추억은 삶의 활력소가 되지요?
숙제 제출이 좀 늦었습니다. 저보다 그가 더 많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면 저 또한 가슴이 아파지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려다가 어느 분 때문에 이렇게 고백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삶의 활력소가 될거라고 생각하면서... .
엄지님의 '사랑시리즈' 후속편 연희와의 '겨울바다 보라빛 사랑'의 사연을 읽으면서 귀절귀절에 함축된 표현들에 경탄했습니다. 어찌 저런 언어들을 가져와서 아름다운 글귀를 엮을 수 있는가. 다양한 글을 읽고 쓰는 고뇌 속에서만이 저런 깊은 사연이 편안한 글귀로 탄생할 수 있는구나. '젊은 한때 우리들의 사랑은 그렇게 겨울바다 파도 너머로 사라져 갔다' 아 !! 어쩜 이런 표현을....... 대단한 우리 회장님.
'첫사랑 시리즈4'를 쓰면서 처음 시작한 분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고백이라기보다 지난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면서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누군가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사람의 일이라 가슴 아픈 일도 있었지만 첫사랑은 역시 아름다운 추억임에 틀림없는 것 같네요.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겨울바다 보라빛 사랑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사랑은 언제나 변치 않는 아름다움으로 머물러 있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사랑에 약하고,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을 기억하고 사랑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이 댓글을 쓰게 하고...
늘 산하정님의 사랑의 시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한 편의 시를 대할 때마다 사랑의 힘과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시고자 여러 방편으로 깨우쳐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첫사랑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하기엔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기억으로 사랑을 알고 사랑의 힘으로 다시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닐런지요.
사랑은 은밀한 기도처럼,......손광성선생님의 수필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첫사랑의 아련한 추억들이 회장님의 주옥같은 글 솜씨로 ... 선배님들의 댓글에 계속 눈팅만 했습니다.어쩜 글로써 이처럼 아름다운 표현들을 하시는지요?등단후 계속 숨죽이고 있습니다.사랑 시리즈로 잠시나마 가슴 설레이게 해주신 지존님,봄비님,들미소님.회장님께 감사^^*
보셨군요. 말미를 어떻게 쓸까하고 고민하다가 손선생님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탓했지만은 저는 당시 유행했던 노래중에서 패푼의 'Be faithful darling'(?) 도 곧장 흥얼거렸는데 제목이 그래서인지 'He'll have to go'가 늘 마음에 걸렸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