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얘들아--”
“ 이번 소보름날은 어찌 하드래--”
“ 뭘 하드래--”
“ 니들 다 알고있제이--”
“ 뭘--”
“ 보름전날 잠자면 눈썹흰다 하던데--”
“ 야--아--- 그말 믿나”
“ 거. 죄다 공갈이다.”
“ 어릴때 많이 속았다--”
“ 이젠 우린 6학년,,, 6학년 이다...”
“ 애들같이 놀고있네--”
“ ㅎㅎㅎㅎㅎㅎ, 히히히히히히히---”
“ 구래서 뭘 할거인지. 얘기해봐라--”
“ 그래 개건너에 순녀있잔아”
“ 그래 그 착하고 얌전한 순녀말이야--”
“ 그래--”
“ 그 순녀집에 가서 날 밤까자아--”
“ 순녀 엄마가 허락하겠어?”
“ 그래 순녀 어마이 맘씨좋나--”
“ 얼마나 좋다고--”
“ 그래서 순녀가 다 허락받아 놨다..”
“ 그러면 됐다. 근데 누구 누구가냐?”
“ 5대 5다”
“ 5대 5라니--”
“ 야. 야. 임마 봐라---”
“ 척하면 삼천리 아니냐--”
“ 검-- 남자 다섯 여자 다-----서---ㅅ--"
“ 그래---”
“ 야--아--검---누구 누구 델고 가나--”
“ 우리 반 여자아이들 있잖아--”
“ 허--- 끝내준다 야---”
“ 검--남자는 누구누구로 하냐---아---”
“ 으-음 그건 다 뻔하지--- 우리 4형제 있잖아”
“ 운석이, 승덕이, 상덕이 그리고 나--”
“ 검 여자애들은----”
“ 으-음--- 순자, 경숙이, 정숙이, 연옥이 있잔아--”
“ 검 4대 4잔아...”
“ 으--으-- 그리고 진섭이하고 순녀까지 합하면 딱 5대5잔아”
“ 야-- 진섭이는 순녀하고 사촌이라며--‘
“ 그래--- 개네들은 그냥 둘러리로 끼워넣는거야--”
“ 순녀는 집주인이니 끼는 거구---”
“ 그래--- 야 --- 뭐----이렇게 잘 풀리다니 --”
정바우 장터 메밀국수집을 하던 연옥이네 사랑방에서 과외를 하던 우리는 이미 전략을 끝내고 있었다.
“ 야--그럼 니들---내일은 과외끝나자마자 집으로 가지말고 기다려라”
“ 으---‘
일제히 함성이 나갔다.
“ 그리고 내일은 잠 안자는 날이라, 순녀네 집에서 밤새 논다고 해라--”
1963년 정월 소보름!
오늘은 과외가 좀 일찍 끝났다.
9시경...
앞산에서는 부엉이가 부엉 부엉거리며 퍼드득 대고있었다.
“후-어-엉---후--엉--”
당시 우리동네에는 야생새들이 우글거렸다. 낮에는 제비 참새 종달새가 지저귀었고 까치 까마귀떼도 많았다. 또 이들의 천적 매도 많았다. 밤이면 올빼미 부엉이가 밤하늘의 멜로디를 하염없이 울렸다.
4대4로 길을 나섰다.
일조량이 적고 고도가 높은 설악산 깊은 산속의 깡촌에는 대한의 추위가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길바닥은 눈이 쌓이고 얼음이 꽁꽁얼어 발을 띨때마다 뽀드득거렸다.
검정운동화를 신고 걷다보니 발이 아려왔다.
‘뽀- 드-득, 뽀드득--드르르륵륵’
1개분대가 행진을 하고 있으니 눈소리 또한 요란했다.
진섭이는 이미 순녀와 집에 가 있었고 순녀 옆집에 사는 상덕이가 우리를 앞에서 안내하였다.
낮에 교실에서나 과외 공부방에서만 얼굴을 마주하던 우리는 가느다란 떨림과 흥분이 일고있었다.
이 한밤중에 함께 길을 걷고있으니 말이다.
어디 또 그뿐인가!
오늘밤 좋아하는 여자애들과 한방에서 함께 지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냔 말이다.
이미 우리의 기분은 더 한층 부풀어 올랐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허연 달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과외방을 나서 20여분을 걸으니 어느덧 개건너 섶다리에 올라섰다.
섶다리를 지나는 우리의 기분은 마치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는 개선군대 영국군이라고나 할까!
휘청휘청하는 섶다리위에 8명의 악동과 선녀들은 한껏 부풀은 욕망을 누르며 서서히 건너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다시 20여분을 걸어 조그만한 언덕으로 올라섰다. 그 언덕위에 순녀네 안채와 사랑채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사랑채에 올라서니 저멀리 금방 우리가 출발했던 장터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장터앞을 흐르는 주천강 상류의 물줄기가 하얗게 얼어붙어 순녀네 집앞을 휘돌아나가고 있었다.
난 항상 이 풍경을 연상하노라면 이동원 박인수의 향수가 떠올랐다.
아마도 향수의 노래가사를 지을때 우리 동네를 방문한 후 진것이 아닐까하고 늘상 생각한다.
‘ 넓은벌 동쪽끝으로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게을은 울움을 우는곳~~’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유우-----”
“ 안녕하세요으--”
순녀어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 아이고 정바우 장터 귀한 도련님들이 어이 할라고 오늘 여기까지 오셨대--”
“ 아이고 뭔 말씀을---”
“ 오늘 실컷 놀드래--”
“ 예----”
“ 오늘 잠자면 눈썹흰다하니---”
우리는 사랑채 방으로 들어갔다.
넓은 온돌방에 장작불을 얼마나 땠는지 후끈후끈거렸다.
잠시후 순녀가 정지에 들어가더니 떡과 과질, 밤, 고구마 그리고 식혜와 수정과를 갖고 나왔다.
과외끝나고 여기까지 걸어온다고 잔뜩 출출했겠다, 침이 꿀꺽거렸다.
악동들은 허겁지겁 먹어댔다.
부럼을 먹고나서 우리는 얼음이 잔뜩 담긴 식혜를 한사발씩 들이켰다.
방이 뜨겁다보니 오히려 식혜맛이 일품이었다.
이냉치냉이라고 나 할까..
“ 야 다 마셨으면 이제 한바탕 해야지”
우리는 빙둘러 앉았다.
남북으로 갈라져 아랫목은 여자애들이 윗목은 남자애들이 앉았다.
아무리 5대5라지만 우리는 쌍쌍이 짝을 맺지는 못했다.
쑥스럽고 챙피했다.
그것이 당시 우리의 정서였다.
짝짝이 아니더라고 야심한 밤에 한방에서 논다는 것만으로도 천국이었다.
하지만 다들 나름대로 누구를 점찍었는지는 이미 알고있었다.
ㅎㅎㅎㅎㅎ,,,,,흐흐흐흐흐........
“ 나무이름 대기 착-착-”
“ 착-착-소나무 밤나무--”
“ 착-착-밤나무 전나무--”
“ 착-착-전나무 측백나무-”
“ 착-착-측백나무 향나무--”
우리는 학교마당에 심은 모든 나무이름을 대었다.
아니 설악산맥에서 보았던 모든 나무를 들먹였다.
무릎치고 손뼉치고 오른검지 왼검지를 올리며 열심히 우측으로 이어져갔다. 촌놈들이라 나무이름은 끝내줬다.
그러나 끝은 있는 법--
드디어 상덕이가 걸렸다.
“ 착---착--깨금나무-- 참나무--”
“ 야 그거 아까 순자가 했다---”
“ 안했다”
“ 했다.”
“ 아이고---ㅎㅎㅎㅎ"
“ 팔목대라--”
“ 철썩--”
팔목이 터져라 손가락으로 내려쳤다.
두 어시간여를 나무이름 과일이름 사람이름 등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놀이를 끝내고 우리는 이불을 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가슴이 쿵덕 쿵덕거렸다.
가운데 이불을 펴고 빙둘러서 발을 뻗었다.
이불속에 발을 묻고있자니 두근거렸다.
어두컴컴한 남포불밑에 여자애들 발이 닿았다.
발이 닿을 적마다 알 수없는 미묘하고 미세한 떨림이 일어났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좋아하는 아이들끼리 살짝 발을 갖다 대었다. 아이들이 앉아서 재잘거리기는 하지만 발에서 느껴오는 감촉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 호수위에 백조라니’
‘ 몸은 가만히 있지만 물밑에서는 갈퀴가 끊임없이 물을 졌지 않는가’
바로 그거였다.
아마도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왔는가!!!
“ 야아 밀지마--”
영역싸움이 치열했다.
말하자면 우리의 팬클럽은 대단했다.
웅변도 잘하고 깨끗한 미모의 최고 킹카 순자.
깍아 놓은 듯한 단정한 얼굴의 정숙이.
조선의 전형적인 미인 면장 딸네미 경숙이.
앙증맞은 연옥이.
구수하고 인심좋은 순녀....
그 가운데 나의 필은 경숙이에게 꽂혀있었다.
방앗간집 둘째아들, 전교 1등 운석이..
개건너의 부자, 전교 4등 상덕이..
고무줄 끊기의 명수이자 싸움꾼, 대지주의 아들 승덕이..
그리고 전교 3등 나...
전교 2등 영춘이는 뭐가 그리 고고해서인지, 아버님의 통제때문인지 우리와 어울리지를 못했다. 아님 안했는지 모르겠다.
창호지 창문 틈으로 바깥을 보니 벌써 보름달이 서편중턱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 잠을 자면 눈 썹흰다--아--ㅇ-”
계속하여 승덕이가 경고를 날렸다.
그러나 피곤했는지 상덕이가 먼저 서서히 곯아 떨어졌다.
이 틈을 놓칠세라 우리는 밀가루를 상덕이 눈썹에 떡칠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 타자에게도---
그렇게 우리의 대보름의 전야제는 서서히 무르 익어갔다.
창호지를 뚫고 강렬한 태양이 들이치고 있었다.
늦게들 잠을 잤는지라 이제사 눈들을 비비고 있었다.
“ 야--아-------야-----”
“ 야----누가 그랬어---”
아침부터 상덕이와 연옥이가 씩씩거렸다.
눈썹이 허여졌으니 난리법석이었다.
베개를 던지고 이불을 걷어내고 한바탕 대소동이 일어났다.
“ 히히히히히히히, 흐흐흐흐흐---”
“ 그래 누가 니들 먼저 떨어지래--”
“ 아--우--우-----”
2008. 02
차 명 호
첫댓글 킹카 순자가 그런 일이 있었구만 정말 재미있다 야 순자야 이곳을 꼭 들려보렴 웃긴다 어찌 쪼만한 아이들이 그렇게 모여 놀았을까 상상이 안가내 대단한 일이 벌어질뻔 했구먼 요즘은 우리 딸만 하드라도 코엑스 가서 논다 메가박스 영화보고 그 옛날이라야 그것이 다지 안그래 너희들은 참 재미있게 재냈구나 글 쓰면서 더 젊어졌으리라 믿습니다.
오래만에 선배님의 글이 산고를 깨고 또나왔군요..ㅎㅎㅎㅎ나도 이동원의 향수가 나올때마다 고향 강림의 노고장을 떠올리곤 한답니다..
아니!!세상에 그럴수가!!! 쌔까만 남자애들 속내도 모르고, 우린 순녀 네서 남자 애들은 상덕이네서 논다고 햇드랫는데... 한 밤중 쯤일까? 남자애들이 여장으로 다- 분장을 하고 쳐들어 왔엇는데 그게 작전이였드란 말이야? (oh! my GOD !!!) 그래!!맞다 우린 서로 누가 누굴 좋아하는지? 다알고 있엇지!! 그래! 이제 고백 컨데 운석이였다 나는 ... 순녀와 진섭이는 고모와 조카 사이로 한집에 살았어 야! 명호님! 가슴 콩닥 뛰는 이야기 10년은 젊게 해준것같다. Thank you
저희때도 그래는데 선배님 의 영향이있어나싶네요~ㅎㅎ
아~~선배님들도 그런 추억이 있구나~~난 40회 이전 선배님들은 낭만이 없는 줄 알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