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사경 하는 법
2009/08/10 08:51인도철학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본체론과 현상론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본체와 관련되어 현상계 안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는 業說(karma-v?da)?輪回說(sa?s?ra-v?da) 그리고 解脫論(mok?a-v?da)으로 설명한다. 인도철학에서 본체론이나, 현상론, 업설과 윤회설 등은 해탈론을 위한 서론이며 전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도철학의 본론은 해탈론이다. 인생의 목적은 오직 해탈에 있으며, 그 해탈을 얻는 방법을 알고, 실천하기 위해서 있는 철학이 곧 인도철학의 정통(正統)이며, 전통(傳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도철학의 이상을 잘 구현해 주는 것이 ??법화경, saddharma-pu??ar?ka-s?tra??이다.
??법화경??은 ??반야경??이 대승의 이상을 소승에 대립시켜 논하고 있는 대립적 견해를 초월하여 이승(二乘)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중생을 일불승(一佛乘)으로 귀입(歸入)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법화경??은 불타(佛陀)의 여러 교설들은 결국 모든 중생의 교화를 위한 방편(up?ya)에 지나지 않고, 성문(?r?vaka), 연각(Pratyekabuddha), 보살(Bodhisattva)의 3승(三乘)은 결국 일승(一乘, ekay?na) 혹은 일불승(一佛乘)에 귀결한다는 대승불교의 포용적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1) 이 일불승에 의하여 모든 중생은 성불(成佛)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불교인들에게 ??법화경??은 초기부터 궁극적인 진리를 포함하고 스스로 해탈이 가능함을 계시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성경?? 이상의 몫을 한 경전이다. 중국의 어떤 관료는 30년 동안 매일 이 경전을 암송하였고 여든 살이 넘어서는 하루에 세 차례씩 암송하였다고 한다. 어떤 중국 고승은 30년 동안 ??법화경??을 37,000회 암송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일련(日蓮, 1222∼82)의 가르침을 따르는 많은 일본 불교도들은 ??법화경??을 해탈의 수단만이 아니라 말법시대에 수행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적절하고도 유일한 경전으로 여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본부를 둔 ‘법화정사(法華精舍)’에서는 도림(道林)스님의 지도하에 100만 명이 넘는 법화행자가 사경수행을 하고 있다.
??법화경??이 동아시아에서 널리 유포될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는 붓다가 자신의 가르침을 청중들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방편(up?ya, up?yakau?alya)을 사용한 것을 ??법화경??이 주된 가르침으로 사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방편은 불교에서 오래전부터 사다리나 혹은 강을 건너기 위해 쓰이는 뗏목과 같은 비유로 사용되었다. 사실상 ??법화경??의 방편은 단순히 교리를 대중의 수준에 맞춘다는 것 이상으로 확대된다. 붓다나 보살의 행위는 중생의 이익과 안락을 위한다는 자비로운 동기로 행하는 것이다. ??법화경??의 방편의 교리는 붓다의 가르침을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적용시킨다는 점에서 무한한 유연성을 갖는다. 보살의 자비와 지혜가 살아 있는 한 가르침의 내용이 아무리 변용되었더라도 그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면 그것은 불교라는 것이다. 방편의 교리는 모든 것은 지혜롭게, 자비라는 동기를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또 하나는 ??법화경??을 믿고 독송하고 사경하면 공덕을 성취한다는 신통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2) 이 경전에는 현세 이익과 미래세 이익과 성불까지 할 수 있다는 여러 요소가 있어,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수용된 데 연유하고 있다.
이런 열렬한 열의를 가지게 한 ??법화경??은 梵?藏?漢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며 漢譯에는 3종이 있다. 산스끄리뜨본은 주로 단편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이본(異本)들이 현존하고, 문헌학적인 역사가 복잡하다. 현존하는 최초의 한역본은 축법호(竺法護, Dharmarak?a)가 286년에 한역한 ??正法華經??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가장 중요시되고 널리 유포된 한역본은 구마라집이 406년에 한역한 ??妙法蓮華經??이다.3) 또 다른 한역은 사나굴다(?那堀多) 및 달마급다(達摩?多)가 601년 공역한 ??첨품묘법연화경(添品妙法蓮華經)??이다. 본고에서는 가장 대중화되어 있는 구마라집 역을 가장 정밀한 판본으로 보고, 이 역본이 실려 있는 ??大正藏??을 이용하여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논지 전개에 있어 논자는 구마라집 텍스트를 주축으로 하되 Wogihara, W, &C, Tsuchida(1958)의 ??梵文法華經, Saddharma pu??ar?ka-s?tram??을 대본으로 참고하여 연구하기로 한다.
본고의 목적은 ??법화경??에 나타난 사경 공덕의 내용을 究明하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럼 먼저 사경의 의의와 역사에 대하여 일별하자.
Ⅱ. 사경의 의의 및 역사
Ⅱ-1. 사경의 의의
사경(寫經)이란 불교경전을 옮겨 쓰거나 베껴 쓰는 일을 말한다. 불경(佛經)은 불교에서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법보로서 법신 사리이다. ??법화경??에서는 불경을 전신사리(全身舍利)와 동일하게 설하고 있다.4) 이와 같이 불경은 불상이나 탑 이상의 신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사경에는 불상이나 탑의 조성 못지않은 정성이 따라야 한다.
사경의 ‘사(寫)’란 옮김의 뜻으로 부처님의 마음과 가르침을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가득 채우는 성스러운 행위이다. 불경의 문자(文字), 진언(眞言) 등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우리의 본성(本性)이며 부처님 마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사경은 부처님의 마음과 말씀을 옮기는 행위로서 한 글자 한 글자에 한 부처님이 함께하신다고 해서 우리 조상들은 한 자 쓰고 삼배 올리는 정성을 다하여 필사했다.
불교 경전은 전신 사리로서 불상이나 불탑과 마찬가지로 예배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경은 부처님 사리를 대하는 자세로 필사하는 신앙행위이다.5)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사경에 임하는 일은 부처님의 마음을 가장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기도이며 수행이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정좌하여 호흡을 가다듬어 정신을 통일한 후 무아(無我)의 심경으로 행하는 사경은 중생의 미혹과 번뇌의 마음을 벗어나 청정한 심신(心身)이 되어 부처님의 마음과 통하게 된다. 자기의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과 하나로 통하게 되면 스스로를 비추는 自明性(svaya?prak??a)이 드러난다. 그때 마음과 몸이 안락과 청량을 느끼면서 모든 생명에게 자비심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사경의 의의이다.6)
사경의 목적은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각인시켜 부처님과 같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따라서 사경 수행의 과정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회광반조(廻光返照)하는 과정이 된다. ??법화경??의 ?법사공덕품?에서는 어느 누구나 사경을 하면 아래와 같은 공덕을 성취한다고 자상하게 설하고 있다.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이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거나 해설하고 옮겨 쓰면, 이런 사람은 반드시 팔백 가지 눈의 공덕과 일천 이백 가지 귀의 공덕과 팔백 가지 코의 공덕과 일천 이백 가지 혀의 공덕과 팔백 가지 몸의 공덕과 일천 이백 가지 뜻의 공덕을 얻을 것이니, 이 공덕으로 육근(六根)을 장엄하여 다 청정하게 되리라. 이 선남자?선여인은 부모로부터 받은 청정한 육안으로 삼천대천세계의 안과 밖에 있는 산과 숲과 강과 바다를 다 보되, 아래로는 아비지옥에서 위로는 유정천(有頂天)까지 다 보게 되리라. 또한 그 가운데 있는 일체 중생을 다 보고 업의 인연과 과보로 태어날 곳을 다 보고 알리라.7)
??법화경??의 ?보현보살권발품?에는 “만일 어떤 이가 이 ??법화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며 바르게 생각하거나 닦고 익히며 옮겨 쓰면, 이는 곧 석가모니 불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직접 이 ??법화경??을 설하심을 들은 것과 같으니라”8)고 하였다. 또 ??법화경??의 ?약왕보살본사품?에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법화경??을 듣고 스스로 쓰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쓰게 하면, 그 얻는 공덕은 부처님의 지혜로 그 많고 적음을 헤아릴지라도 그 끝을 알 수가 없느니라”9)고 교시되어 있다.
Ⅱ-2. 사경의 역사
우리나라에서의 사경이란 佛經의 내용을 그대로 묵서, 금은, 자혈(刺血)로 옮겨 쓰는 것을 말한다. 경전의 간행 방법은 석경이나 금판경의 조성 그리고 대장경의 판각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경이 부처님 재세시부터 행해졌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교법은 제1결집(sa?g?ti)에서부터 ‘제3결집(Tatiya-sa?gaha)'에 까지 암송으로 구전(口傳)되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구전단계를 지나서 빨리어 삼장(三藏, Tripi?aka)이 문자화 되었던 것은 기원전 1세기경 스리랑카의 밧따가미니 아바야(Va??g?min? Abhaya)왕 시대였다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러니까 부파불교시대까지 경전을 수지?독송?해설을 하였으나 사경의 문화는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경문화는 대승불교 운동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대승불교운동가들은 왕이나 장자(長者, se??hi)들의 지원 아래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출가승들의 안일한 삶과, 신도들의 물질적 공양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들만의 정신적 평안만을 구하는 그들의 소극적이고 현세도피적인 경향에 반발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할 것을 목표로 새로운 대중적 불교를 제창한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이 ??금강경??의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경전의 가르침을 살펴보도록 하자.
①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아침에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 다시 갠지스 강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도 또한 갠지스 강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無量百千萬億劫 동안을 몸으로써 보시를 했다고 하자.
② 만약 다른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역하지 아니하면 그 복이 저보다 수승하리니, 어찌 하물며 이 경을 베껴 쓰거나 지니고 외워서 남을 위해 알도록 해설해줌이랴. 수보리야, 요점만 추려서 정확히 말한다면 이 경은 가히 생각할 수도 없고, 가히 칭량할 수 없는 무변한 공덕을 지니고 있느니라.
③ 여래는 大乘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한 것이요, 最上乘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느니라.10)
위의 본문 ①과 ②의 내용은 우리가 하루에 한 번 갠지스 강의 모래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기도 어려운데 세 차례나 해도 四句偈 외운 공덕을 따르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실로 이 경의 受持讀誦과 解說과 書寫의 공덕이 지대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金剛經??이 初期 大乘經典으로서 대승불교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종교적 理想을 담은 것을 나타낸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대승불교운동은 종래의 불교를 ‘小乘(H?nay??na)’이라 부르고 그것이 출가자만을 위주로 하는 편협한 불교라고 비판하였다. 대승불교의 지도자들은 왕(r?j?)이나 長者(?re??ha)의 지원으로 인한 경제적 안정된 위에 스님들이 자기 자신들만의 安心立命을 추구하는 소극적이고 현실도피적 경향에 반발하면서 대중적 불교를 제창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布施이다. 소승불교에서의 보시는 재가 불자들이 스님들에게 물질적 供養을 행하고 세속적인 功德(pu?ya)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을 의미했으나, 대승 불교는 그것을 보살들 자신이 실천해야 할 六波羅蜜 중 첫 번째의 항목으로 삼은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본문 ②의 의미는 ‘經典의 受持, 讀誦, 書寫의 실천(法施)’이 ‘물질적 보시(財施)’보다 훨씬 殊勝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 또한 그런 사상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국왕이나 長者들만이 할 수 있는 寺院이나 塔의 建立이나 莊園의 寄進 등과는 달리, 범부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로서 대승불교가 일어날 당시 확고한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던 小乘敎團에 대한 大乘의 반발이라고도 볼 수 있다.11)
대승불교의 지도자들은 각종 신앙 행위에 있어서 自身의 이익뿐만 아니라 生死의 세계에서 고통 받는 一切衆生을 제도하겠다는 願(pra?idh?na)을 발하는 菩薩道를 제창하였다. 이런 사상은 본문의 ③에서 잘 나타나 있다. 菩薩道는 出家者나 在家者를 막론하고 菩提心을 發하는 것이었으며, 利他의 願을 세운 자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승불교운동의 지도자들은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利他行을 대승경전의 사경에서 찾은 것으로 생각된다.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서는 “…… 가죽을 벗겨 종이를 삼고 뼈를 쪼개어 붓을 삼고(折骨爲筆), 피를 뽑아 먹물을 삼아서 경전쓰기(書寫經典)를 수미산 높이 같이 하면서 법을 소중히 여기므로 목숨도 아끼지 않거든, 하물며 임금의 자리나 도시나 촌락이나 궁전이나 동산 따위의 일체소유는 말할 것도 없다.”12) 즉 무상도를 구하는 자세가 어떠한 것인가를 우리는 여기서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문증을 통해서 ??화엄경??이 유통하던 시대에 이미 사경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13) ??법화경??에서는 여래의 가르침의 목적은 모든 중생을 佛과 동일한 깨달음으로 인도함에 있다고 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만일 선남자 ? 선여인이 여래가 멸토한 후 ??법화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해 해설하고 옮겨 쓰면 일천 이백 가지 뜻의 공덕을 얻느니라.14)
이렇게 성립된 인도의 대승경전은 중국에 전래되어(A.D. 67)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 고구려 소수림왕 13년(A.D. 372) 6월, 진(晋)나라 왕 부견(符堅)은 순도(順道)를 시켜 불상과 불경(佛經)을 전하였다. 우리나라도 불법이 전해진 이래 사경이 크게 성행하였다. 왜냐하면 초기 대승경전에서 사경의 공덕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사경문화재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지에 먹으로 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2축(軸)이다(국보 196호).
이 사경은 경주 황룡사의 연기(緣起)법사가 어버이의 은혜와 법계의 모든 중생이 모두 불도를 이루도록 박ㄹ원하여 경덕왕 13년(754) 8월 1일에 시작하여 다음해인 755년 2월 4일까지 6개월 14일이 걸려 완성하였다고 한다.15) 그 사경의 발문을 통하여 신라시대 행해졌던 사경의 의식절차와 방법들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의 성립은 당시 사경의 사성이 활발했었다는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시대 경전 신앙에 의한 사경 의식이 이어져 더욱 발전하게 된다. 고려 3대 정종 원년(946)에는 국왕 발원으로 은자대장경이 사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종 3년부터 의종 10년 사이에 금?은자 ??화엄경??을 위시한 ??법화경??의 사성 기사가 ??고려사??에 수 회에 걸쳐 나타남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경이 장엄경으로 많이 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16)
고려시대에는 필사의 근본정신이 퇴색되어 복을 빌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불사의 일부분으로 성행하였다. 이 시대의 사경은 외난이 잦았던 만큼 난국을 구제하고자 하는 국가적인 신앙의식의 하나로 이루어진 불사였다.
고려 초기에 북송에서 최초로 개보칙판대장경(開寶勅板大藏經)이 간행되어 성종 10년(991)에 수입되자 크게 자극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종 2년(1011)에 거란족의 침입이 있자 이를 계기로 야만족의 침입에 대하여 부처님의 가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판각한 것이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다. 이 대장경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새겼기 때문에 초조대장경이라 부르는데 현재 전래되고 있는 초조대장경은 약 200여권에 이르고 있다.17) 이를 보면 정성들여 필사한 판하본을 훌륭하게 생긴 정각본(精刻本)이어서 당시 목판 인쇄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때의 판하본은 인쇄용 대장경 필사본이었다고 한다.
이어서 대각국사 의천(1055∼1101)에 의해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여 나라 안에 흩어져 있던 것은 물론이고 송(宋)?요(遼)?일본으로부터 대장경에 대한 연구 주석서를 집대성하여 1010부 4740여 권을 간행하였다. 이것이 의천의 속장경으로 1090년에서 1101년까지 10여 년 동안 간행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8)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은 고려 고종 때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판각한 대장경판으로 초조대장경판이 몽고군의 침입으로 불타서 다시 만든 것이다. 이 대장경은 1232년에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고 몽고의 침입에 대항하면서 판각한 고려인의 호국 의지가 모인 문화유산이다. 이 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을 대교(對敎)하여 한역 대장경 역사상 가장 완벽하고 정확한 대장경으로 최대의 인쇄용 사경 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대장경이 여러 차례에 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사경을 주로 한 경전 신앙 의식이 성행했기 때문이다.19)
고려시대 사경은 국왕이 발원한 사경과 귀족들이 개인의 신앙을 위해 발원한 개인 발원경으로 크게 나누어 발전했다. 개인 발원경에서 공양왕 때의 것으로 1390년에 희순 고산(禧順 高山)이 판서 강우춘(姜遇春)과 시주들의 도움으로 백지에 금니로 사성한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이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조의 사경은 고려사경의 양식을 그대로 전승하였으며 발원자 역시 왕실이거나 사대부가 대부분이었다. 태종 때 사경으로는 태조 셋째 아들로 2차 왕자난 때 방원(芳遠; 후에 태종)을 도와 정사공신(定社功臣)이 된 익안대군 방의(益安大君 芳毅, ?∼1404)가 그의 부인과 함께 시주하여 감지에 은니로 쓴 ??법화경?? 권 5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세조 3년 (1457)에 세자가 죽자 명복을 빌기 위해 ??금강경??과 ??반야경??을 세조가 손수 사경하였다가 하니 이 무렵까지는 사경이 크게 배척당하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경의 의의는 한글의 창제로 한글 사경이 출현한다는 것이 특색이다. 조선사경으로서 특기할 만한 일은 조선시대 후기에 사성된 자혈(刺血) 사경이 건봉사 보림암(普琳庵)에서 사미 仁元이 사성한 유물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사성된 사경의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 개인적인 사성이 많다는 것이다.
둘째, 사경의 목적이 亡者에 대한 追福이 많다는 것이다.
셋째, 고려사경보다 체제가 거대해지는 경향이라는 것이다.
넷째, 서사 재료와 서체가 보다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다섯째, 시대가 내려가면서 집단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여섯째, 19C 이후로는 선장본으로 장정양식이 바뀐다는 것이다.
일곱째, 사성기의 내용이 다소 길어진다는 것이다.
여덟째, 서사 체재에 있어서 상징성들이 간과된다는 점이다.20)
이런 특징들은 조선조 500년 동안의 억불정책에 따른 시대상의 반영이라고 할 수 ㅇ있다.
Ⅲ. ??법화경??에 나타난 사경 공덕의 내용
Ⅲ-1. 현세이익의 공덕
??법화경??은 모두 28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14품은 적문(迹門)이고, 뒤의 14품은 본문(本門)이다. 적문이란 석가모니불이 가비라성(迦毘羅城)에 태어난 금생(今生)의 자취요, 본문은 무량겁(無量劫) 전에 佛身常主觀을 제창하고 있다. 최초 14품의 要旨는 일체중생을 일불승(一佛乘)에 귀입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단지 근기(根機)의 다름에 따라서 이에 상응하여 성문?연각 등 이승(二乘)을 설하고, 보살을 설하고 있으나, 이것은 방편가문(方便假門)으로, 三乘은 一乘으로 섭취(攝取)하려는 것이 부처님 출생의 본의(本意)라고 한다. 그리하여 本經은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火宅喩’, ‘長子窮子喩’, ‘草木喩’, ‘化城喩’ 등으로 교묘히 이해시키고 모두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을 인도한다는 것이다.21)
우리 인간이 생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생계유지(生計維持)다. 경제적 독립이 없는 곳에 정신적 독립이 없다. 경제적 독립이 될 때에 사회적 독립, 정신적 독립, 인격적 독립, 양심적 독립이 가능하다. 그래서 부(富)란 행복한 삶의 조건이 되는 물질적인 풍요를 의미한다. 우리가 ??법화경??을 수지독송 사경하면 불안(佛眼)이 열려 인생의 이치와 일에 막힘이 없어 저절로 부(artha)를 성취한다는 가르침이 ?보현보살권발품?에 다음과 같이 교시되어 있다.
만일 후세상에서 이 법화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은 의복·침구·음식 등의 생활하는 물품을 탐내지 않아도 그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며 또한 현세에서 그 복의 과보를 받으리라.22)
우리가 ??법화경??을 지극정성 일심으로 받아듣고 깊은 뜻을 잘 해석하고 설한대로 수행하면 받는 복이 한량없다고 ?수희공덕품?에서 예증하고 있다.23)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의무와 사회인으로서의 의무를 잘 이행하려면 심신이 건강해야 한다. 우리는 심신이 건강해야만, 아버지의 구실,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직장인 구실, 친구 구실, 사회인 구실을 할 수가 있다. 원기발랄(元氣潑剌)하고 생기약동(生氣躍動)해야만 인간은 살아가는 것이 기쁘고 일하는 것이 즐겁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반갑다. 몸과 마음이 약하면 모든 것이 귀찮다. 사는 것도 귀찮고 일하는 것도 지겹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기쁘지가 않다. 그래서 건강은 인생의 대본이다. 건강은 인생의 주춧돌이요, 기둥이다. 인간 세상에 건강만큼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없다. 인생의 관리 중에서 건강관리가 제일 중요하다. 건강을 해치는 것은 병(病)이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는 ??법화경??을 수지 독송사경하면 병이 소멸되고 ‘不老不死’의 정신적인 건강을 얻는다고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이와 같이 ??법화경??은 중생들의 일체 고통과 일체 질병을 여의게 하며 능히 일체 생사 속박에서 해탈케 하느니라.24)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약왕보살본사품’을 듣고 능히 따라 기뻐하고 거룩하다고 찬탄하면 이 사람은 현세에서 항상 입으로부터 푸른 연꽃의 향기가 나고, 몸의 아홉 구멍에서는 우두전단의 향기가 항상 나며, 그가 얻은 공덕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리라."25)라는 신앙의 영험을 설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천수경??의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이라는 句節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건강의 토대 위에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고, 행복한 인생을 창조할 수 있다. 인생성취 기념탑을 쌓을 수 있도록 사경을 통하여 건강하자.
우리가 뜻을 세우고 힘을 기르는 목적은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뜻과 힘의 목표가 일에 있다. 일은 나무의 열매와 같다. 나무가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다. 뜻이 뜻만으로서 머무르고 힘이 힘만으로서 머무른다면, 뜻과 힘에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겠는가. 뜻을 세우는 것도 힘을 기르는 것도 모두 다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공동선을 위하여 일하기 위해서다. 나무는 그 열매에 의해서 가치가 판단되듯이 사람은 그 행동에 의해서 가치가 결정된다. 우리는 일을 하는데 무장무애를 발원한다. 공동선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야 한다. ??법화경??의 ?다라니품?에는 법화경을 수지?독송하는 자를 보호한다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는 사람을 위하여 옹호하여 그의 재앙과 걱정근심과 어려움을 없게 하오리다. 만일 어떤 이가 이 법사의 허물을 찾아내려 하여도 그로 하여금 찾아내지 못하게 하겠나이다.26)
또 ??법화경??의 ?안락행품?에는 “법화경을 읽는 이는 근심 걱정 항상 없고 병과 고통 전혀 없어 얼굴빛이 아름답고 가난하고 천박하게 태어나지 아니하고 병과 고통 전혀 없어 얼굴 빛이 아름답고 가난하고 천박하게 태어나지 아니하고 중생들이 좋아하여 어진 성현 보듯 하며 하늘나라 동자들이 따라와서 시중들고 칼막대로 못 해치고 독약으로 못 죽이며 만일 누가 욕을 하면 욕한 입이 막히리니 두려움이 없기로는 사자왕과 같으오며 그 지혜의 밝은 광명 태양처럼 비추리라”27)는 가르침으로 독송한 이는 일을 원만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법화경??에 나타난 현세이익적 공덕은 부·건강·일의 무장무애같은 내용의 가르침이 설해지고 있음이 인지된다.
Ⅲ-2. 내세이익의 공덕
불교에서는 원래 죽음이 없다고 한다. 그것을 지눌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생사(生死)란 본래 없는 것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그것은 마치 눈병이 있는 사람이 허공에 어른거리는 것을 볼 때, ‘있다’고 하나 눈병이 다 나으면 허공의 꽃도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을 알게 되는 경우와 같다”고.
생사란 본래 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닌 것을 깨달은 경지에서는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眞諦). 그러나 중생이 생멸의 눈(俗諦)으로 탐진치를 여의지 못하고 임종에 이르게 되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의 업인이 각인되어 내세에서 지옥·악귀·축생의 과보를 피할 수 없게 되고 혹 인간세계에 태어난다 해도 생각이 천박하고 방종하여 고통을 면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탐진치를 여의고 원력으로 사무쳐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사경 수행을 하면 도리천상에 태어난다는 ??법화경??의 ?보현보살권발품? 교설을 알아보자.
만일 법화경을 옮겨 쓰기만 하여도 그 사람의 공덕이 커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마땅히 도리천(?利天)에 태어나리니, 이때 말만 사천의 천녀들이 여러 가지 기악을 연주하며 와서 맞이하오리다.28)
또 ??법화경??의 ?약왕보살품?에는 “만일 여래가 열반한 뒤 후 오백 년에 이르러 어떤 여인이 이 ??법화경??을 들고 그 설한 바와 같이 수행하면, 그 목숨을 다 마친 뒤에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큰 보살 대중들이 둘러싸고 설법 듣는 곳에 가서 연꽃 속에 있는 보배 자리에 태어나리라. 그리하여 다시는 탐욕의 괴로움을 받지 않으며, 다시는 성냄과 어리석음의 괴로움을 받지 않으며, 또한 교만하고 질투하는 여러 가지 적의를 품는 아픔과 고통을 받지 않으리라”29)고 설하고 있다. 생사가 본래 없으나 업인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직관하고 오온 번뇌 망상을 타파하도록 사경하여야 한다. 우리가 사경 수행하면 결정코 불도를 이루니, 삼독(三毒)이 변ㄴ하여 계(戒)·정(定)·혜(慧)가 되느니라.
Ⅲ-3. 성불의 공덕
??법화경??에는 ?如來壽量品?을 중심으로 하는 本門이 있다고 말해진다. ?여래수량품?은 ‘開迹顯本’의 가르침이며, 석가불이 ‘久遠實成’의 불타임을 보임으로써 ?방편품?에서 밝힌 佛性常住를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80세로 입멸한 석가모니불은 중생을 佛道로 유인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음을 보이고, 상주하는 久遠의 本佛을 개현하고 있는 것이다.30) 이것은 본문의 중심 사상이 되는 것이다.
??법화경??에는 아직 ‘불성’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그와 동일한 것이 “諸法의 본성은 항상 청정(prabh?svara)하다”31)라고 표현되어 있다. ‘諸法本性淸淨’이란 말은 ??반야경?? 등에 나오며, ‘心性本淨’과 같은 의미이다. 이 ‘心性本淨說’이 ‘悉有佛性’이나 如來藏說로 발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화경??에서 말하는 ‘正法’이란, 교설로서는 ‘開三顯一’의 ‘一佛乘’의 가르침이지만, ‘理’로서는 ‘諸法實相’으로서의 제법의 本性淨이며 주체적으로는 보살행을 행하는 보살의 ‘자기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는 자각이다. 이 청정한 법(自性淸淨心)은 비록 번뇌에 덮여 있지만 본성이 청정하기 때문에 연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32) 그래서 ??법화경??의 ?분별공덕품?에서는 자기도 사경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사경하게 하는 것이 ‘自覺覺他’의 길이라고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이 경을 듣고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듣게 하고 자신도 간직하고 남에게도 간직케 하며, 자신도 쓰고 다른 사람에게도 쓰도록 하며 또는 꽃과 향과 영락과 당번과 증개 그리고 향유와 소등으로 법화경에 부처님의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갖추게 되느니라.33)
누구나 사경을 하면 ‘無上正等正覺’을 체득한다고 ?여래신력품?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여래가 열반한 뒤에 이 ??법화경??을 일심으로 받아가지고 읽고 외우며 해설하고 옮겨 쓰고 설한 대로 닦아 행하라. 너희들이 있는 국토에서 만일 이 ??법화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며 해설하고 옮겨 쓰거나 설한 것과 같이 닦아 실천하라. 이 ??법화경??이 있는 곳이 동산이거나 숲속이거나 나무아래거나 절이거나 거사의 집이거나 전각이거나 또는 산골짜기거나 넓은 들일지라도 그 곳에 탑을 세우고 공양할지니라.
왜냐하면 이곳은 곧 도량이니 여러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으셨고, 여러 부처님께서 다 여기에서 열반에 드시기 때문이니라.34)
?여래신력품?에서는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이런 공덕 이런 이익 듣고 보아 내가 열반 보인 뒤에 마땅히 법화경을 받들어서 가질지니 이런 사람 성불하기 결정코 의심 없다”35)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또 ?방편품?에서는 “성문이나 보살들이 내가 설한 법문 듣고 한 게송만 기억해도 성불함은 의심 없다”36)고 하였다. “모든 법은 본래부터 그 자성이 고요하여 불자들이 도 닦으면 오는 세상, 부처된다”37)고 사경을 강조하고 있다.
??법화경??에서는 해탈을 얻기 위해서는 사경을 하는 것이 당위라고 주장한다. 사경을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것이고(?ravana), 항상 그 가르침에 대해서 음미하는 것이며(manana), 부처님의 마음과 계합하는 명상이다(nididhy?sana).
우리가 무아의 일념으로 사경을 하면 자아에 대한 그릇된 지식(mithy?-jn?na)이 사라져서 자아는 욕망과 충동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고 행위(karma)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38) 결국 윤회로부터 벗어나 성불한다는 것이다.
Ⅳ. 맺음말
사경은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마음으로 전환시키는 수행이다. 누구나 사경을 무아의 일념으로 정성스럽게 행하면 자성불(自性佛)의 自明性(svaya?prak??a)이 태양빛 보다 더 밝게 빛나 드러나게 된다.39) 그리하여 우리는 현세와 내세의 삶에서 행복해지고 보람된 人生을 살게 되어 구경엔 성불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의 註 9)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자기가 사경하는 것은 ‘自覺’의 길이요, 다른 사람을 사경하게 하면 ‘覺他’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사경운동은 대승보살도와 같이 ‘自覺覺他 覺行窮滿’의 길이다.
??법화경??의 ?제바달다품?에는 다음과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앞으로 오는 세상에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이 ??묘법연화경??의 ?제바달다품?을 들고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빋고 공경하여 의심을 내지 않는 사람은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시방의 부처님 세계에 때어나 그곳에서 이 법화경의 법문을 항상 들을 것이며, 만일 인간이나 천상 가운데 태어나면 가장 훌륭하고 미묘한 기쁨과 즐거움을 받을 것이며 또 부처님 앞에 태어나면 연꽃으로 화생하리라.40)
첫댓글 잘봤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