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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래에 대해 알고 있나요? > *
사물이나 일이 생겨난 과정을 '유래' 라고 해요.
우리가 쓰는 말이나, 놀이에도 어떻게 해서 생겨났다는
과정이 있겠죠?
유래에 대해 알고 나면 그 대상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알 수 있을 거예요.
********** 1호선 **********
[ 1 ] < 노량진역 >
한자로는 '백로가 노닐던 나루터' 란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용산에서 수원쪽으로 가려면 노들나루를 이용하였는데,
이 곳에 도성을 지키기 위하여 노량진을 설치한 다음부터 마을 이름을
'노량진' 이라 부르게 되었다.
[ 2 ] < 용산역 >
도심 서쪽에 있는 모악의 남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만리동과
한강변을 향하여 꾸불꾸불 나아간 모양이 마치 용이 몸을 비틀어
나간 것 같고, 지금의 용산구와 마포구가 맞닿은 곳의 모양은 머리를
든 용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 3 ] < 남영역 >
광복 후 동명을 제정할 때 서울 남쪽에 군영이 있다 하여 남영동
으로 명명하였기에 남영역으로 지정함.
[ 4 ] < 서울역 >
광무 4년(1900년)에 남대문역으로 출발한 서울역은 우리나라
철도의 대표적인역으로 주요 철도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1923년 경성역으로 개칭되었으나 광복 후 1947년에 서울역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사적 284호로 지정된 서울역사는 1925년에 지어진
건물로 서울의 관문이다.
[ 5 ] < 시청역 >
시청역에 위치한 태평로는 1914년에 서소문동에 있던 중국사신을
맞던 태평관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명(明)의 사신이 오면 이 길
을 거쳐 태평관에서 경복궁으로 들어갔다.
[ 6 ] < 종각역 >
종각은 조선왕조 500년동안 밤에는 인정, 새벽에는 파루를 쳐서
도성 8문을 여닫게 하는 종루가 있었는데 보신각이라는 편액을 달면서
보신각으로 유래하였고, 현재는 종각이라고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3-1절, 광복절, 새해를 알리는 제야에 종을 쳐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종으로
사랑받게 되었다.
[ 7 ] < 동대문역 >
동대문은 흥인지문의 속칭으로 도성 4대문의 하나이다.
보물 제1호로 지정된 동대문은 조선초 태조때의 세워졌지만 조선말
고종때의 완전히 해체하여 바닥을 높인 다음에 건축한 것이다. 이 문을
특별히 옹성으로 쌓은 것은 이곳의 지대가 낮아 외적을 방어하기 어렵
기 때문이다.
[ 8 ] < 신설동역 >
신설동은 조선중기 동부 숭신방(성외)에 새로 설치된 마을이므로
신설 계좌 한테서 동명이 유래되었다. 즉 영조 27년(1751년)의 기록
에 처음으로 신설계가 나타나고 있다.
[ 9 ] < 제기동역 >
제기동은 조선6대 왕이 성종이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이 마을에
친경대를 만들고 왕이 친히 제사를 지내던 자리라는 데에서 동명의
기원을 두고 있다.
[ 10 ] < 청량리역 >
청량리는 청량리1동 61번지에 있는 사찰 청량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찍부터 도성 사람들의 성외 피서 및
교외로 나가던 곳이며 이때부터 청량동으로 불리어 지게 되었다.
[ 11 ] < 회기역 >
산 5번지에 있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묘소가 있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 12 ] < 신이문역 >
조선시대 때 이문밖으로 도둑이 많아 포졸들의 방범초소를 이문에
설치함으로써 그 이후로 이문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 13 ] < 석계역 >
석관동(石串洞)과 월계동(月溪洞)의 경계지역에 위치하여
석관동의 첫글자인 석(石)와 월계동의 두 번째 글자인 계(溪)자를
조합하여 제정됐다.
[ 14 ] < 성북역 >
이 지역이 한양성의 북쪽에 있다 하여 유래되었다.
[ 15 ] < 월계역 >
이 지역의 동쪽으로 중랑천이 흐르고 동북쪽에서 서쪽으로 북한산의 지
맥이 이어진데다 지형이 반달처럼 생겨 월계라는 지명이 생성되었다.
[ 16 ] < 녹천역 >
이 지역에 홍수로 인해 폐허가 된 마을 뒷산에서 사슴이 내려와
마을앞 중랑천에서 목욕을 하고 간 이후부터 농사가 잘 되고 마을
일도 순조로와져 녹천이라 불린데서 유래되었다.
[ 17 ] < 창동역 >
나라의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인 조선시대 후기 어영청의 북창이
이곳에 있었기에 유래했다.
[ 18 ] < 방학역 >
곡식을 찧는 기구인 방아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말로 방아
골로 불렀던 곳이 한자음이 비슷한 방학리로 되어 방학동이라는 명칭
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19 ] < 망월사역 >
인근에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만월을 보는 사찰이라 하여
망월사라 붙여진 절이 있어 유래되었다.
[ 20 ] < 회룡역 >
조선시대 태조가 함흥에서 한양으로 환궁할 때 가마가 화룡사라는
절 부근의 이르러 움직이지 않아 무학대사가 축원을 드리자 비로소 가
마가 움직였으므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회룡사로 개칭한데서 유래됐다.
[ 21 ] < 의정부역 >
각 대신들이 이 곳에서 정무를 논의하였다 하여 의정부라는 지명이
생성된데서 유래되었다.
********** 2호선 **********
[ 22 ] < 충정로역 >
충정로란 지명은 순국열사 중 최초이며 대표작인 인물인 민
충정공(閔 忠正公)의 이름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다.
충정로는 1946년 10월 11일부터 부르게 된 동명이다.
[ 23 ] < 아현 >
아현동은 조선 고종 31년 갑오경장때부터 기록으로 전해오며 남쪽
에 만리현과 서북쪽의 대현이라는 두 큰 고개 중간을 잇는 이 고개가
작기 때문에 '애고개' 즉 아현으로 부르던 것이 아(兒)가 아(阿)로 변하
여 아현(阿峴)로 젼해 내려오고 있다.
[ 24 ] < 이대역 >
가까운 곳에 이화여자대학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886년에 선교사 스크랜턴이 이화학당을 처음 설립하였고,
1945년에 이화여자 대학교로 바뀌었다.
[ 25 ] < 신촌역 >
신촌은 조선 왕조가 세워질 때에 도읍의 중심지로 얘기되던 곳이다
원래 이름은 '새말' 이었는데,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 작은 부락을 이루고
있어서 '새로 생긴 마을' 이라는 뜻으로 불렸다. 그러다 일제 식민지 시대
때 한자로 '신촌(新村)'이 되었다.
[ 26 ] < 합정역 >
옛날 양화나루 가까이 있던 마을로, '조개우물' 이라는 우물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조개 합(蛤)' 자와 '우물 정(井)' 자를 써서
'합정동(蛤井洞)' 이라고 불렀는데, 일제 식민지 시대 때 일본인들이 쉬운
한자로 쓰기 위해 합정동(合井洞)이라고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 27 ] < 당산역 >
마을 언덕에 '동제당' 이라는 당집이 있어 유래되었다.
웃당산과 원당산, 벌당산이 합쳐진 마을로 웃당산에는 5백 년
된 은행나무가 있고, 원당산은 당집이 있던 곳이며, 벌당산은
벌판에 생겨난 마을이다.
[ 28 ] < 대림역 >
1949. 8-13 대통령령 159호에 의한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편입
에 따라 경기도 시흥군 구로 리, 도림리, 전대방리를 편입, 구로동, 신
대방동, 신도림동 등으로 명칭이 변경. 신대방동의 '대'자와 신도림동의
'림' 자를 따서 대림동으로 명하였고 1984. 5. 22. 2호선 서측간 개통에
따라 대림동으로 명하였다.
[ 29 ] < 구로공단역 >
구로동은 옛부터 불리어오던 동명으로 나이많은 노인 9명이 오래
도록 장수하였다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한국 수출산업공단이 인접하고
있어 구로공단역으로 명명하였다.
현재는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뀌었다.
[ 30 ] < 신대방역 >
신대방동은 360년전에 '높은절'과 번뎅이(번당리라고 하는데
낙천군과 연령군의 묘를 모신 계동궁 연못이 있던 곳)라는 두 마을로 이루
어진 곳이다. 1936년 4월 1일 경성부로 편입되면서 당시의 신갈리와
번대방리를 합하여 신대방으로 하였다.
[ 31 ] < 신림역 >
옛날 이름은 '서원말' 이었는데, 이 곳에 '서원정' 이라는 정자
가 있어 강감찬 장군이 자주 들렀다고 한다. 지금의 신림동은 서원리,
신림리, 난곡리로 나뉘어 있다가 1911년에 합쳐졌다.
[ 32 ] < 서울대입구역 >
마을 버스를 타고 가면 서울대가 나온다. 보통 역 이름에 '입구' 라는
말이 들어가면 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역에 있는 마을의 이름은 '봉천동(奉天洞)' 인데, 관악산이 둘러싸고
있어 산이 험하고 높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 33 ] < 낙성대역>
가까이에 낙성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곳은 고려 시데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무찌른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장군이 태어난 날 밤애 큰 별이 떨어졌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 34 ] < 강남역 >
강남구의 중심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강남은 '한강 넘쪽' 이라는 뜻이다.
1970년대에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만들어져 주택가와 상업지역이
크게 발달한 곳이다. 요즘에는 특히 첨단 산업과 국제무역을 위한 고층
빌딩들이 늘어나 활발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 35 ] < 역삼역 >
옛날에 역마을이었던 말죽거리와 하방하교, 상방하교가 엇갈리는
곳으로 '세 개의 역마을' 이라는 뜻으로 역삼리라고 한데서 나온 이름이다.
말죽거리는 지금의 지하철 양재역 주변이었는데, 한강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 36 ] < 선릉역 >
가까이에 선정릉이 잇어 붙여진 이름이다.
선릉은 조선 제9대 성종의 묘이며, 정릉은 제11대 중종의 묘이다.
그리고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 묘도 함께 있어 '삼릉공원'
이라고도 불린다.
[ 37 ] < 삼성역 >
강남구 삼성도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역 이름이다.
삼성동은 봉은사와 무동도, 닥점이라는 세 마을이 합쳐지면서 지어진
이름이다. 봉은사는 신라시대 때 지어진 절이며, 무동도는 한강의 있는 섬
이다. 닥점은 닥나무를 파는 상점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38 ] < 잠실역 >
조선시대의 나라에서 양잠(누에 농사)을 장려하기 위해 세운
잠실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된 이름이다. 잠실이란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기르던 곳을 말하는데, 지금의 잠실동과 잠원동 두 곳에 설치하였다.
잠원동의 원래 이름도 '잠실리' 였으며 그 때의 뽕나무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 39 ] < 뚝섬역 >
옛날에 이 곳은 임금의 사냥터였는데, 늘 '독' 이라는 커다란 깃발
을 나부끼며 행차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처음에는 '독섬' 이라고 불리다가 뚝섬으로 바뀌었다.
또 '살곶이벌' 이라고도 불리었다.
[ 40 ] < 동대문운동장역 >
가까이에 동대문운동장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26년에 육상 경기장과 야구장, 정구장을 완공하면서 경성운동장으로 불리었다.
육상 경기장은 조선시대 때 군사 선발과 무술 훈련을 하던 훈련원 터였다.
또 야구장은 훈련도감의 군대인 하도감이 있었고, 조선 말기에는 별기군
이라는 신식 군대가 훈련을 받던 곳이다.
2009년 10월 29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변경되었다.
[ 41 ] < 을지로입구역 >
조금 떨어진 곳에 을지로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을지로는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의 성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구리개' 로 불리었으며, 1941년경에는 '황금정' 으로
고쳐 부른 적도 있다.
********** 3호선 **********
[ 42 ] < 양재역 >
양재동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양재동은 어질고 재주 있는 사람이 많이 산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말죽거리' 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을 지나가다 유생들이 팥죽
을 급히 쑤어 바치자, 말 위에 탄 채로 팥죽을 드셨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 43 ] < 남부터미널역 >
역을 나서면 바로 남부터미널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화물터미널이었다가, 화물터미널이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곳에 남부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 44 ] < 신사역 >
신사동은 1914년 새말(新村)과 사평리(沙平里)의 두 마을을
합칠 때 각각 첫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곳은 광주군 언주면에 속해
있을 당시에는 모래 벌판에 '새말' 나루터가 있던 한적한 곳이었으나
1063년에 서울시에 편입된 후 크게 변했다.
[ 45 ] < 압구정역 >
조선시대 세조와 성종 때의 신하인 한명회가 지은 '압구정' 이라는
정자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옛날에 이 곳은 돛단배가 떠있는 한강과
닥나무가 무성한 닥섬이 있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고 한다.
[ 46 ] < 약수역 >
약수동은 신당 3동 지역에 위장병에 특효가 있는 약수가 있어서
유래된 것이다.
전에는 이곳에서 한남동으로 가려면 높은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 이름을 버티고개라 칭했다.
[ 47 ] < 동대입구역 >
조금 떨어진 곳에 동국대학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06년에 불교계에서 동대문 밖에 있던 절인 원흥사에 명진학교를
처음 세웠으며, 1946년에 동국대학교로 바뀌었다.
[ 48 ] < 충무로역 >
임진왜란 때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의 호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이 지금의 인현동1가였기 때문에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충무로로 지었다.
옛날에는 '남촌(南村)', 또는 '아랫대' 로 불리던 마을이었다.
[ 49 ] < 안국역 >
안국동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안국동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할 구역이었던 10방 가운데 하나인
'안국방(安國坊)' 에서 그대로 따온 이름이다.
이 곳은 '북촌(北村)', 또는 '웃대' 로 불리던 서울의 중심이었다.
[ 50 ] < 경복궁역 >
역 바로 옆에 경복궁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으로 정하고 나서, 새 왕조를 상징하는 궁궐
로 지었다. 1395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때 많은 건물이
불에 탔는데, 1869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 51 ] < 독립문역 >
우리나라의 자주 독립을 상징하는 독립문이 세워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독립문은 1897년에 서재필 박사의 노력으로 영은문
대신 세운 것으로,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 4호선 **********
[ 52 ] < 대공원역 >
서울대공원, 서울랜드와 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대공원은 1984년에 일제가 창경궁에다 만든 동물원인 창경원을
옮기면서 세워졌다.
서울랜드는 1989년에 새워진 놀이공원으로 대공원과는 코끼리열차로
연결되어 있다.
[ 53 ] < 경마공원역 >
서울경마공원을 편리하게 찾아가도록 하기 위해 만든 역이다.
경마공원에는 국제 대회를 열 수 있는 크기의 경마장이 먼저 만들어졌
다. 나중에 시민들을 위한 여러 놀이시설과 휴식 공간을 만들어 경마공원
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 54 ] < 남태령역 >
남태령은 서울과 삼남(호남, 영남, 충남)을 잇는 길목이었다. 관악산의
북동쪽 능선을 가로지르는 고개의 남서울쪽에는 우면산 정상이 각각 자리
잡고 있다. 남태령의 이름이 '여우고개' 로 불리고 있을 때 조선시대 정조는
이 고개를 넘어 수원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자주 참배했다고 한다.
정조가 이 고개를 넘을 때 시종들에게 이 고개 이름을 물었을 때 남태령
이라고 답했었다고 한다. 그후 이 고개를 남태령이라고 불렀다.
[ 55 ] < 사당역 >
사당동은 옛날 이 곳에 큰 사당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된 것으로
전해온다. 또한 이곳은 백제 중기 이후에 토기 생산지로 한강변의
백제요지로는 유일한 곳이다.
[ 56 ] < 동작역 >
조선시대에 용산에서 수원으로 통하는 나루터였던 '동재기나루터'
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한자로 하면 '동작진' 이 되고, 이것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금은 동재기나루터가 있던 자리에 동작대교가 놓여져
있다.
[ 57 ] < 이촌역 >
이촌동은 옛날부터 모래 벌판이어서 여름에 큰비만 오면 홍수를 피해
강변으로 옮겨 살았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원래는 '마을을 떠난다' 는 뜻의 이촌동(移村洞)이었다가 지금은 이촌동
(二村洞)으로 바뀌었다.
[ 58 ] < 신용산역 >
새 용산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한강가에 용을 닮은 산인 용산이 있는데, 지금의 용산은 이 산과는
멀리 떨어진 한강로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 59 ] < 삼긱지역 >
한강과 이태원, 서울역 방향으로 도로가 나 있어 땅 모양이
세모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60 ] < 숙대입구역 >
숙대입구역이 위치한 갈월동은 갑오개혁때 붙여진 명칭으로 칡이
무성하여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곳은 산줄기가 불룩하게
나와 있어 '부룩배기' 라고도 불린다.
[ 61 ] < 회현역 >
회현동은 조선초기 때의 이름 '호현방' 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고종 때 처음 붙여졌는데, 조선시대 때 정광필과 김상헌 형제 등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 62 ] < 명동역 >
조선시대 때 이름인 '명례방' 에서 유래되었다.
1894년에 갑오개혁 때 처음 불리었는데, 1914년 일제식민지시대 때
'명치정' 으로 바뀌었다가 해방 뒤에 다시 명동으로 바뀌었다. 옛날
에는 주택가 였지만, 지금은 상업지역으로 활발한 경제 활동이 이루
어지고 맀다.
[ 63 ] < 혜화역 >
조선 태조 때,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쌓을 때 만든 4소문 가운데 하나인
'혜화문' 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는데, 일제식민지시대 때 전차가 다닐 길을 내
면서 완전히 헐어버려 흔적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 5호선 ********************
[ 64 ] < 여의도역 >
여의도는 한강이 넘쳐 오랜 세월동안 모래가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섬이다. 쓸모 없는 땅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너나 가질 섬' 이라고 불러 그것을 한자로 써서 '여의도(汝矣島)'
가 되었다.
[ 65 ] < 여의나루역 >
옛날에는 한강을 건너기 위해서 나룻배를 이용했다.
나룻배가 닿아 짐을 부리고 사람들을 내려주는 곳을 '나루터'
라고 한다.
[ 66 ] < 마포역 >
우리말 삼개로 불리어지는 포구 이름 마포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삼(麻)개(浦)의 한자음에서 따왔다.
[ 67 ] < 공덕역 >
우리 말로 좀 높은 곳을 '더기' 또는 '덕', '언덕' 으로 호칭하는데
공덕동 일대는 대개 만리현, 아현, 대현 등 고개마루에서 서남쪽으로
펼쳐 내려간 언덕 지대이기 때문에 이 지역을 옛날에 우리말로
'큰더기', '큰덕이','큰덕' 으로 불려지던 것이 당시 음이 비슷한
한자의 공덕(孔德)으로 된 것으로 보여진다.
[ 68 ] < 애오개역 >
애오개는 '작은 고개' 또는 어린애와 관련이 있는 고개라는 의미
를 가지고 있으며, 만리현과 서북쪽의 대현이라는 두 큰 고개 사이에
있는 작은 고개라는 의미에서 아기고개, 아이고개, 애고개, 애우개로
호칭되어었다.
[ 69 ] < 서대문역 >
서울 4대문 가운데 하나인 서대문 터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서대문은 1915년애알재가 도로를 넓히는 공사
를 한다며 철거해 버려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서대문의 정식이름은 돈의문이다.
한때는 도성 서쪽의 정문으로 중국과 통하는 의주로의 관문이었다.
[ 70 ] < 광화문역 >
가까이에 광화문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광화문는 경복궁 남쪽에 있는 정문이었다.
처음 세워질 때 이름은 '사정문' 이었다가 세종대왕 때 집현전
에서 광화문으로 바꿔 불렀다.
[ 71 ] < 청구역 >
청구란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로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지하철역명을 제정했다.
[ 72 ] < 아차산역 >
광진구 능동 일대에 있는 아차산을 고유지명으로 아차산과 아
차성은 예로부터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사랑과 온달장군이 전사
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 73 ] < 천호역 >
천호동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천호(千戶)' 라는 이름은 사람이 사는 집이 수천 호가 살만한 땅
이라는 풍수지리설에서 유래됐다.
원래 이름은 마을 앞에 있던 굽은다리의 이름을 딴 '곡교리' 였다.
[ 74 ] < 올림픽공원역 >
올림픽공원과 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올림픽공원은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6년에
문을 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는 여러 편의시설을 갖춰 시민들의 휴
식공간으로 자리잡았다.
[ 75 ] < 방이역 >
병자호란 때 마을이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청나라 병사들을 막아
내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오랑캐를 막아다고 하여 '막을 방(防)',
'오랑캐 이(夷)' 자를 써서 '방이(防夷)골' 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다가
그 뜻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여 '꽃다울 방(芳)' 자와 '흰비름 이(荑)' 를
써서 '방이(芳荑)골' 로 고쳐 불렸다.
******************** 6호선 ********************
[ 76 ] < 효창공원역 >
가까이에 효창공원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왕족의 묘역으로 '효창원' 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조선 왕조
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일제가 '공원' 으로 그 이름을 바뀌었다.
백범로와 효창공원 길의 교차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역은 인근에
효창공원(문화재 사적 지정 330호)이 자리잡고 있으며 공원 내에는
김구 선생묘, 삼의사 묘(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및 임정요인 묘(이
동녕, 차이석, 조성환)가 있어 사적지로 유서가 깃들인 곳이다.
[ 77 ] < 녹사평역 >
조선시대 고종까지만 하더라도 수림과 잡초가 무성하여 인가가 희소
하던 곳이라 해서 녹사평(綠莎坪)이라 불리어진 것에서 유래했다.
[ 78 ] < 이태원역 >
조선시대 때 이태원(梨泰院)이란 역원(驛院)이 있었기 때문
에 이름이 붙여졌는데 역원으로써의 이태원은 오래 전에 없어지고 그 명칭
을 가진 동네가 용산구 동북쪽에 자리잡아 현재의 이태원동이 되었다.
[ 79 ] < 한강진 >
한강진터가 있던 곳에서 유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제천정
에서 소서행장(小西行長)과 싸운 곳이다.
[ 80 ] < 버티고개역>
한남동에서 약수동으로 넘어가는 다산로(茶山路)고개를 버티고
개라고 하는데 옛날 순라군들이 야경을 돌면서 "번도!" 라 하며,
도둑을 쫓았으므로 번티(番峙)라 하다가 변하여 버티고게 또는 한자명으
로 부어치(扶於峙)가 되었다고 한다.
[ 81 ] < 신당역 >
조선 영조 27년(1751년)에 반포된 수성 책자 [도성 3군무 분계총록]
에 의하면 남부 두모방(성외) 신당리계였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 남서
두모방(성외) 왕십리계의 신당리동으로 되었는데 신당동은 신당(神堂)을
모신 동네라는 뜻과 함께 무당들이 받들어 모시는 신령을 모시는 집을
말하며 광희문 밖에 위치한 이곳은 많은 무당들이 모여 살아 무당촌을
이루어 신당(新堂)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 82 ] < 동묘앞역 >
중국의 고전인 삼국지에 나오는 명장 관우의 사당(보물 제142호)으로
정식 명칭은 동관왕묘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꿈에 관우를 현몽
한 후 왜병을 격퇴했다고 하여 명의 신종이 난(亂) 후에 비용과 친필로 쓴
현액을 보내와 선조 때(1601년) 창건하였다.
그 후 영조 15년(1736년)에 중수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 83 ] < 안암역 >
큰 바위가 있어 편히 쉴만하고 그 바위 이름을 '앉일바위' 라
하였으며, 그것을 한자로 안암(安岩)으로 옮겨 쓴 것에서 유래됐다.
[ 84 ] < 월곡역 >
하월곡동에 있는 산의 형세가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그 산에 연해
있는 마을을 다릿굴(골), 월곡(月谷)이라 부른데서 연유되었다.
[ 85 ] < 상월곡동 >
상월곡동은 천장산의 형세가 마치 반달과 같다하여 그 산에 접해
있는 마을을 '다릿굴(골)' 이라 부른데서 유래, 이중 높은 지대에 위치
한 지역을 '웃다릿골(上月谷里), 아래 지역을 아랫다릿골(下月谷里)' 이
라 불렀는데 1894년 갑오개혁 때 월곡상리로 명명. 이후 1914년 경기
도 고양군 상월곡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7호선 ********************
[ 86 ] < 어린이대공원역 >
서울 어린이대공원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73년 어린이 날에 문을 연 이곳에는 어린이날을 정한 방정환
선생의 동상이 있다. 건너편에 세종대학교가 있어 '세종대역' 이
라고도 불린다.
[ 87 ] < 뚝섬유원지역 >
옛날에 '독섬' 또는 '살곶이벌' 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1980년대에 한강종합개발 계획에 의해 유원지로 가꾸어졌다.
그래서 역 이름도 '뚝섬유원지역' 이 되었다.
지금은 유람선 선착장이 없어지고, 한강 유원지 가운데
하나인 뚝섬지구로 바뀌었다.
[ 88 ] < 청담역 >
한강 연안에 위치하는 마을로써 현재 청담동 105번지 일대에 옛날
맑은 못이 있었으며 현 134번지 일대의 한강변 물이 맑아 이 부락을
청숫골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제 때 청담리라 불리
졌고 이후 서울시에 편입되어 청담동으로 지칭됐다.
[ 89 ] < 학동역 >
마을 모양이 학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학실' 이나 '학곡' 으로 불렸다.
지금은 행정상으로 '학동' 이란 마을은 없으며,
학동역이 있는 자리는 강남구 논현동에 속한다.
[ 90 ] < 논현역 >
논고개라는 고개의 지명을 본떠서 만들어진 이름으로 현재 논현동
에 위치하고 있는 천주교회 위치가 마루턱이 높은 고개였으며, 또한
강남우체국 위에서 반포아파트까지의 산골짜기 좌우로 벌판이 펼쳐져
논밭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논현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 91 ] < 반포역 >
반포라는 지명은 마을로 흐르는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하여
서릿개 즉 반포(蟠浦)라 하다가 변음되어 반포(盤浦)로 칭했다.
[ 92 ] < 고속터미널역 >
1976년 9월 1일 강북에서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이 이전하였고
3호선 고속버스터미널과 환승역으로 동일 역명을 제정하였다.
[ 93 ] < 내방역 >
방배동은 관악구와 서초구의 경계에 솟은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는 뜻의 방배(方背)라 한데서 연유한다.
현재 운영중인 지하철 2호선 방배역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방배동 안쪽에 (內) 자리한다고 하여 내방이라 제정했다.
[ 94 ] < 이수역 >
이수(梨水)란 옛날 배나무를 많이 재배하던 마을 동쪽에 한강물
이 흐른다고 하여 유래되었다.
[ 95 ] < 남성역 >
남성동의 유래는 효성이 지극한 정조대왕이 수원에 있는 사도세자
능행시 행차길인 현재의 사당동 일대가 예전에 여시고개, 살피재 등으
로 불리었으나 임금의 행차길이 이물스러운 지명이라 하여 여시고개를
남쪽의 큰 재라하여 남태령으로 고쳐부를 때 태령의 재 성(城)자를 따
서 남성동이라 일컬었다.
[ 96 ] < 보라매역 >
보라매란 순우리말로 생후 일년이내의 사냥을 위해 길들여진 매를 말
하는데,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새가 보라매이다.
보라매공원은 공군사관학교가 자리잡고 있던 곳으로 공군사관하교가
청주로 이전하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면서 공군을 기념하기 위
하여 이름을 보라매공원으로 하였다.
******************** 8호선 ********************
[ 97 ] < 암사역 >
암사동 산 23번지 일대에 신라시대에 절이 9개나 있어 구암사
라 하였고 속칭 바위절이라 하였으므로 그 한자명으로 암사리(岩
寺里)라 한데서 연유하였다.
[ 98 ] < 몽촌토성역 >
고대 삼한 때부터 이곳을 곰말이라고 했는데 곰말은 고어로 큰마을
을 뜻하며 한자음으로 고쳐서 몽촌이 되었고 3세기경부터 5세기말까지
북쪽으로부터의 침공을 대비해 자연 구릉 상에 방어용 토성을 축성하여
현재까지 올림픽공원 내에 사적 제297호로 보존되고 있으며 역세권 인
근에 위치하여 몽촌토성역이라 명명했다.
[ 99 ] < 잠실역 >
조선초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하여 국립양잠소격인 잠실도회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잠실이라 불리어졌다.
[ 100 ] < 석촌역 >
병자호란 때 조선을 침입한 청군이 진지를 만들기 위해 돌을 옮겨
다 놓아 이곳에 돌이 많게 되어 주민들은 돌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으
로 [돌마리]라고 불렀다. 이것이 한자음으로 [석촌(石村)]으로 표기 되
고 현재의 석촌동이 되었다.
[ 101 ] < 송파역 >
예로부터 삼남(三南)에서 올라오는 물산의 집산지로 조선조 5대 향시
중의 하나로 교통의 요충지였던 송파는 언덕 위에 소나무가 푸르게 우거
진 산 좋고 물 맑은 강변마을이었으며 이로부터 '소나무가 푸르른 언덕'
이라는 뜻의 송파(松坡)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 102 ] < 가락시장역 >
가락동은 조선시대 가락골을 중심으로 띄엄띄엄 마을이 있어 자연
부락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을축년(1925년) 대홍수때 한강이 범람
하여 송파동 일대가 침수되자 그곳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가히
살 만한 땅] 즉 좋은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농수산물 종합도매
시장이 1985년 6월 1일에 개장되어 서울시민에 신선한 야채와 과일,
어물, 축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 103 ] < 문정역 >
조선중기 병자호란 때 인조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가시다가 이곳
우물에서 물을 드시고 물맛이 매우 좋고 문(文)씨가 많이 산다고 하여 문씨
의 문(文)자와 우물의 정(井)자를 합하여 문정(文井)이라 하였다.
[ 104 ] < 장지역 >
장지동은 잔버들이 많은 지역이라 잔버드리라는 설과 또는 마을이
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105 ] < 복정역 >
복정동의 명칭은 복우물(福井)에서 유래한다. 구전에 의한면
큰 우물이 있었던 곳은 현 정수장 뒤인데 안골로 가는 길, 또는
길과 밭 사이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영장산 복정동쪽 상봉에 있
는 칠성대의 감로천이 우물이라고 한다.
[ 106 ] < 산성역 >
조금 떨어진 곳에 남한산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남한산성역' 이었다가 1998년에 '산성역'으로 바뀌었다.
남한산성은 백제 시조인 온조 임금 때부터 도읍지를 방어하기
위해 쌓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산성이다.
{ 출처 } 1. 지하철로 떠나는 365일 현장 학습 ( 이명혜 지음 )
2. 교컴 - [ 사회 ] 지하철 역명의 유래 [ 함영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