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라는 나라가 있다. 우리는 흔히 고구려 하면 삼국시대에 존재했던 나라의 하나로서 으례 기억하곤 한다. 고구려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자존심이자 한국적인 의지로도 승화되곤 하는 대상이다. 그런 고구려의 이 국호는 어떻게 해서 형성된 것일까? 아마도 추모왕이 그냥 고구려라고 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 고(高)
①높다, 높이다, 뽐내다, 높은 곳, 높은 자리, 높이 ②성 위에 높이 세워진 망루를 본뜬 글자로 상형문자.
①곱다, 맑다, 빛나다, 붙다(부착), 매다, 짝(짓다)(儷), 수(수효), 마룻대, 나라 이름 ②(붙을 려) + 鹿(사슴 록)로 이뤄진 회의문자.
이상이 대개 한문적인 의미로 풀어쓴 고구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고구려라고 하는 국호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고구려라고 하는 의미는 일반적인 사전적 의미로 '고(高)' 는 한자의 뜻을 미칭(美稱)으로 덧붙인 것이며 '구려(句麗)' 는 고구려語로서 성(城), 읍(邑), 골(谷) 등을 의미하는 홀(Khor), 골(Kor), 구루(Kuru) 등의 음을 표기한 것으로 여겨진다 할 수 있겠다.
'위서' 에 고구려의 건국지로 적혀있는 <홀승골성> 이나 북옥저를 두고 <치구루> 라고 한 기록이나 고구려가 한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조공을 받아갔던 <책구루> 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아울러 중국 사서는 '구루' 가 고구려말로 성이라는 뜻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럼 고구려라는 국호는 단순히 높은 성, 커다란 성, 커다란 읍(도시)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일까?
고구려에서 떨어져나간 백제라는 국호의 기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여러 학설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주인장은 이것이 고구려라는 국호는 고구려가 기존에 있던 국호, 혹은 세력을 흡수하면서 성장한 나라였기 때문에 정통성이나 계승 의식같은 부분에서 기존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데 반해 백제는 고구려에서 떨어져나간 지파로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고구려보다 미흡하였기 때문에 독자적인 국호 사용에 민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대강 백제 국호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1. 국가 성장 단계에서 十제 -> 百제로 변경 2. 백가제해(百家濟海)에서 한글자씩 따와서 정함 3. 시조 이름에서 기원. 온조의 '온' 은 百의 옛말이므로 백제는 곧 온조의 異稱 4. 밝잣, 곧 광명(光明)한 성(城)에서 기원함. 濟를 성과 연결, 위례성이 곧 광명한 성 5. 맥족(貊族)의 국성(國城)이라는 의미, 맥은 박 혹은 백이므로 곧 백제를 가리킴
여기서 4번째, 5번째 부분은 고구려의 국호와도 상호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하겠다. 고구려를 흔히 크다란 성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백제를 광명한 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백제 국왕을 두고 '어라하(於羅瑕)' 라고 했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라' 는 '크다(大)' 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이 어라가 바로 위례와 상통되기 때문에 백제는 광명한 성이라는 의미이고 위례성은 큰 성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또 732년경에 세워진 돌궐 귀족 퀼테긴 비문을 보면 역대 합한(可汗)들의 치적을 적고 있으면서 '모쿠리' 라는 국호로서 고구려를 소개학 있다. 이는 맥구려, 맥구루, 맥구리 등으로 볼 수 있는데 부여-예맥족이었던 고구려를 두고 하는 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를 보면 모쿠리는 곧 맥의 성이라는 의미도 되는 바, 백제 역시 이와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있다는 견해다.
어찌했든간에 백제와 달리 고구려는 국호 제정에 있어서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 주인장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고구려 건국 이전에 분명 구려(句麗)라고 하는 명칭이 사서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라는 단어가 미칭의 의미가 주(主)라면 추모왕은 북부여에서 떨어져나와 단순히 고대에 존재했던 국명 혹은 세력명에 미칭만 붙여 사용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단군조선) 멸망이후 '구려국(句麗國)' 이 고구려 건국 이전까지 약 1천년간 한반도 북부 지역과 지금의 중국 동북부 지방을 지배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단군조선 이후 고구려가 건국되기 이전까지의 열국 시대를 이 구려국으로 대체해 보고 있으며 이것이 곧 고구려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환단고기에서 단군조선 이후 북부여기를 통해 공백 기간을 교묘히 메꾼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래에 북한 역사학계의 주장을 잠시 적어보겠다.
1. 구려국의 고조선 승계설 근거
중국의 전한시기(기원전 206 ~ 기원후 24) 에는 고구려를 '구려' 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고구려의 원래 국호가 '구려' 인데서 연유한 것이다. 구려는 고조선의 '후국(거수국)' 으로 존재했는데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서' 에는 "구려가 본래 조선(고조선)땅이었다" 고 기록돼 있으며 '제왕운기' 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또 구려가 위치했던 지역에서 발굴된 고조선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도 구려국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2. 구려국의 국가형성과정
구려는 고조선 내부에서 단군조선과 후조선사이의 교체과정이 진행되던 역사적 전환기를 이용하여 기원전 14세기 경 고조선의 '후국' 지위에 서 탈피하여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적으로 독립적인 고대국가로 등장했다. 고대 중국역사를 전하는 '일주서' 나 '상서' 에는 기원전 11세기에 구려국이 중국의 고대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3. 구려국의 영역
오늘날의 중국 동북부 지역 랴오닝성(遼寧省)과 지린성(吉林省) 일대 및 북한 자강도 지역이었고 중심지는 졸본이었다.
4. 구려국의 정치, 군사 및 산업
최고 통치자는 '왕' 이었고 중앙통치기구의 하나로 '제가협의회(諸家協議會)' 를 두었다. 이 협의회는 '귀족민주주의적 합의기구' 로 특권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지방행정단위는 5부(연나부, 적나부, 관나부, 순나부, 계루부)로 군대는 보병과 기병으로 편성돼 있었으나 군의 주력은 기병이었다. 철기와 청동기 문화가 발달, 농기구와 공구 등이 생산됐고 중국의 여러지방과 무역을 했다. 농산물로는 조, 기장, 수수, 콩 등이 주로 재배됐다.
이상이다. 여기에서 고구려는 중국 사서에 이미 오래전부터 구려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있음을 이유로 이것을 고구려와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역시 남한 역사학계는 북한이 남한에 비해 경쟁적으로 건국연대를 올려잡는 것 뿐이다, 라고 말하며 구려국이라는 열국이 있었다는 정도만 이해하고 있다. 주인장 역시 마찬가지다. 구려국이 있었다해도 그것은 고구려국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즉, 고구려의 전신(前身)이 될 수는 있어도 동일시하기는 힘들다는 소리다.
환단고기 등에 의하면 이미 고대 종족을 가지고 구려(九黎)라고 칭하고 있고 삼국유사에도 구이(九夷), 구한(九韓)등으로 종족명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또한 주나라 역사서인 '일주서(逸周書) 왕회(王會)' 편을 보면 주나라가 동부지역을 통합하기 위해 낙읍(洛邑-낙양)에 제 2의 도읍으로서 성주(成周)를 건설한 후에 열었던 '성주대회(成周大會)' 에 각지의 종족들이 대표를 파견하는데 그 와중에 '고이(高夷)' 라는 세력이 참석한다. 그리고 그 주에는 고이는 동북의 이로서 곧 고구려라고 적혀 있어 주목을 끈다. 이는 기원전 12세기에 이미 고구려라고 불리는 세력이 동북방에 존재했다는 소리가 된다. 앞서 북한 역사학계의 주장과 맞물리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만주 지역에는 적석총의 묘제를 사용하는 종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을 두고 고고학계에서는 '고구려族' 이라고 부르고 있다. 동두철액(銅頭鐵額)으로 유명한 치우천왕이 구려족(九旅族)의 대족장으로서 위대한 군신(軍神)으로서 활약했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여러가지 사정들을 종합해 봤을때 고구려 건국 이전에 고구려의 지배계층이라고 볼만한 세력은 존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윤내현님은 이 고구려족이 기원전 11세기경에는 최소한 존재했고 그들이 기원전 7세기를 전후해서 이동하지 않았을까 하신다. 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고구려 건국 이전에 부여-예맥계의 국가들이 단군조선의 거수국으로서 대륙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적석총을 쓰는 고구려족이 고구려 건국 이전에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통해 봤을때 고구려의 국호 명칭은 이들과 연관시키면 될듯 싶다.
어쩌면 고구려는 큰 성, 커다란 성(읍)이라는 의미보다는 '위대한 구려' 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도 생각한다. 높고 크다는 의미는 곧 최고의 존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과거에 존속했던 위대한 민족을 지칭하는 존칭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구려라는 의미를 가진 고구려를 건국하고서 해추모는 고씨를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시조만 고씨이고 그 아들부터 해씨라는 것은 조금 맞지 않는다고 본다.
아마 이 기록은 후대의 고씨가 해씨인 동명성왕부터 모본태왕까지의 왕력 중에서 시조인 동명성왕에 한해서만 고씨를 추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고 하고 미칭인 앞글자의 '고(高)' 를 본따 성(性)으로 삼았다는 것이 더욱 그렇게 느끼게끔 한다. 이는 즉 고구려 고씨가 선주민이었던 해씨에 비해 후대에 형성된 집단이라는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씨 계루부의 형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후술하도록 하겠다.
훗날 고구려를 두고 '고려(高麗)' 라는 약칭으로 부르는 경향이 보인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고구려가 북부여를 제외하고 단군조선의 정통으로서 대내외적으로 이렇게 알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훗날 백제가 '남부여(南夫餘)' 라고 국호를 바꾸면서 더 이상 백제가 고구려의 지파가 아닌 북부여의 정통 계승 국가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함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백제가 단군조선 - 북부여 - 남부여(백제)에 이르는 계승 의식을 표방한 것처럼 고구려도 북부여를 제외하고 동이족 - 구려(고리, 고이) - 단군조선 - 고구려에 이르는 직계 정통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한번 생각해본다.
고구려, 그 위대한 제국의 국호는 분명 오늘날 우리에게 '다물(多勿)' 이라는 국가적 스타일(Style of Empire)과 맞물려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