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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참
전남초등도덕과교육연구회에서 수련회를 가자고 연락이 왔다. 혼자서도 충분히 산에 가고 놀 수 있는데 그 틀 속에 갇힐 필요가 있나 하며 고민 끝에 동참하기로 한다. 사람 만나는 문제를 떠날 수 없음에, 절에서 수련하는 프로그램에 적극 동의하고서 말이다. 사람을 떠나 살 수 없다고 변명하지만, 얼굴 내밀기는 아닌지, 정말 내가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잠깐 고민한다. 여전히 서투른 아이 같다.
절에 오르기
사람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다. 총무인 건 형님은 전화로 바쁘다. 그가 작성한 명단에는 초록 형광펜으로 그어지고 볼펜으로 그어진 사람들 이름이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분류되고 계급 지워지는 지도 모른다. 호객하는 식당 사람들 무시하고(편치 않다) 정읍식당에서 산채 비빔밥을 먹는다. 어제 술 뒤끝이지만 맛있다. 그러고 보니 아침을 안 먹었다.
절로 오르는 길은 신록이다. 광주 어느 대학의 사회복지과에서 홀로 계신 어른들을 모시고 나들이 나왔다. 그늘에서 확성기로 노래하는 그 팀들에게 마음 속의 미소를 보낸다.
옷을 갈아 입다
범종각 앞에 사무소에 등록을 한다. 지갑과 핸드폰과 열쇠를 맡긴다. 그것이 언제부터 내 것이었던가? 가지고 있은 들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귀중품 맡기라하고, 또 남들 하는지라 나도 품목을 쓰고 이름을 쓴다. 내 물건은 작은 면 보자기에 다른 물건과 섞였다. 그리고 묵언이라고 한자 아래에 내 이름이 쓰인 옅은 초록색 명찰과 옅은 잿빛의 개량 한복같은 수련복을 받는다.
‘냉장고 아니면 전자레인지’ 같은 카메라로 절 뒤의 하얀 봉우리를 찍어본다. 입구에 하얀 작약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사람 찍기는 서툴고 풍경을 보는 나의 눈도 서툴러 차라리 맡겨버릴 걸 하는 생각도 한다.
발우공양
주지는 출타하였다하여 진행하신 원명 스님 혼자서 일을 진행하고 키 크고 잘 생긴 과장이라는 이와 보살이 옆에서 돕는다. 원명 스님은 포교국장이라는데 그 직위가 얼마나 높은지 모르지만, 눈빛이 빛나고 턱 선이 또렷하여 결단 있고 공부를 많이 한 것처럼 보인다. 가끔 미소를 보이며 세상의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그는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발우공양을 한다. 97년엔가 제석사에서 아이들 ‘호연지기 학교’라고 하면서 해 본 적은 있지만 긴장된다. 그 때 바켓스에 남은 청수물을 마시던 관일 스님이 생각난다. 3?V트를 준비하여 밥을 먹는데 마지막 우리의 청수에 시래기국 이파리 찢어진 것이 남아 있다. 건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냈는데 스님은 나눠 마시랜다. 물엔 기름기도 떠 있다. 모두들 정말이냐는 표정이다. 모두 마신다. 나중에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 맛을 달래는 이들도 있다. 스님은 지나친 걸까? 우리가 동의하지 못한 걸까? 나는 이런 경계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글쎄 이 세상의 깨끗함과 더러움은 우리 마음이 정하는 것 아닐까? 청결한 세계가 질병의 습격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녁예불 시간의 웃음
발우공양 후 양치질 등을 하는데 나는 준비도 안했다. 나의 몸에서는 술과 화학 조미료에 찌들고 찌든 냄새가 풀풀 풍길 것이다. 내가 모르는데 무슨 소용이랴. 범종각 앞에 웅성거리며 법고며 목어며 범종 운판 두드리는 것을 본다. 저런 형식이 문화를 전승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효과적이겠다, 저 수행자들은 의미를 새기며 저러하면 참 재미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지만, 문외한인 나는 그저 억지로 의미를 찾으러 생각을 그리 모아보지만 별로다.
북치는 것 끝나면 법당으로 가라는 말 못들었냐는 스님의 꾸중 섞인 지시를 받고서야 우리는 대웅전으로 향한다. 나이 든 스님 몇이 앞에 그리고 그 뒤에 스님들 여럿이 우리 자리는 양쪽 가이다. 난 비어있는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경 소리를 듣는다. 그 사이 스님들은 몇 번이나 절을 하는데 어쩔 때는 앉아 있고 어쩔 때는 서 있다. 어쩔 때는 오래 엎드려 있고---. 절을 하는 건지 스님을 엿보는 건지 분간이 안가고 마냥 따라하기에 바쁘다. 그러다 옆에서 주재경 형이나 박기홍과 눈이 마주치자 웃음이 나온다. 웃지 말아야 할 곳에서 웃었다. 글쎄 웃지 말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나.
불교 문화를 이해하자 - 이순규
법당에서 나오니 스님은 줄을 세운다. 차수하고 소리 내지 말며 안행(雁行)하란다. 다시 수련관으로 온다.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문화유산 기행 공부를 한다. 강사는 이순규 박사라는데 서남대 의대 교수이며 광주불교대학원 원장이란다. 슬라이드 조작에 시간을 지체하다 우리 앞에 서신 그 분은 불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으나 우린 잘 모른다.
불교 신앙의 주 대상이 초기에는 재가불자에게 시켜 장례를 치른 후 얻은 사리를 나눠 세운 탑이었다가(무불상 시대), 알렉산더의 인도 침입 이후 불상이 나서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한다.
세계에 학명으로 등록된 한국종(Korean Bell)에 대해서도 우린 건성으로 듣는다. 민족대표를 33인으로 정하고, 제야의 종으로 보신각종을 33회 치는 것이 불교의 33계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통일 신라의 범종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형상의 비천상 등이 새겨진데 반해 고려의 석탑은 불상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한다.
신라계의 탑은 무덤에서 비롯되고, 백제계의 탑은 사람이 거주하는 양택에서 비롯되었기에 옥개석이 기단보다 넓단다. 비 맞지 말라고. 나의 관심사는 천박한 상식 수준의 가십거리에만 귀가 열린다. 그 속에 깃든 신앙이나 철학은 아직 모른다.
의사 선생이면서 불교와 불교문화 이해에 대한 공부가 신앙과 함께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긴 파브르도 시골학교 교사를 하면서 곤충을 관찰했다는데, 나는 무얼 보지. 뭘 볼 필요 있나. 산에 가서 해방되면 되는 거지 뭐.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전임 정동술 고광창 회장님이 위문을 오셨다. 우리의 묵언은 문제없이 깨지고, 정 회장님은 하실 말씀이 많으신가 본데 분위기가 영 아니다. 뒷전에 서 있다가 가시는 길에 고개만 숙인다.
새벽에 달을 봄
9시에 잠자리에 든다. 몇 사람이 세면하고 오느라 늦어도 금방 불이 꺼진다. 크기가 같은 이불 두장을 반으로 접어 하나는 요로 깔고 하나는 덮는다. 바닥의 딱딱함이 약간 느껴지지만 편안하다. 가운데로 발을 대고 가로 빙 둘러 잔다. 몇 번 뒤척였지만 편안하다. 먼 곳에서 들리는 목탁소리가 들려도 일어나라는 소리인지 모르고 누워 있었는데 몇 사람이 일어난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라 했는데 정확하다. 일어나 이불을 개고 밖으로 나오니 파랗다. 군데군데 하얀 전등이 켜져 있고 하현달이 동산 나무 위로 오르고 있다. 하현달을 본지 언제던가? 지리산에서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던 때에 비하면 몸도 몸은 가볍고 서늘하기도 하다. 범종각에서 연주하는 것을 보고 대웅전 법당으로 간다. 어젯밤의 예불 시간의 경험 때문에 모두 스님들 뒤에 자리를 잡는다. 난 여전히 앞으로 간다. 두 번째라고 눈치가 빨라졌다. 엎드리고 일어나고 앉는 것을 잘 따라 한다. 가만히 보니 그림자도 있고, 목탁이나 쇠붙이로 소리를 내 주는 것도 일정한 규칙이 있는 듯하다. 몇 번 더하면 그럴싸한 폼은 잡아지겠다.
108배, 나의 수준에서 허우적대기
불빛의 도움으로 수련관으로 돌아오니 4시쯤. 원명 스님의 죽비에 맞춰 108배를 한다. 절을 시작하려 무릎 꿇고 일어날 때마다 죽비를 친다. 그 분은 더 힘들겠다. 잘 세고 있는지 얼마나 힘드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생각만 하는 나는 참 천박하다. 세는 것도 잊고 시간이 지나자 호흡이 가빠지지만 견딜만하다. 삼보일배나 오체투지에 비하면 우리의 108배 몸 움직임은 얼마나 허약한가? 나는 나의 수준에서 부지런히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다. 나의 호흡이나 순환 등 몸 다루기(섬기기)는 파충류의 그것보다 나을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머리 속으로 하는 사유보다 몸으로 땀 흘리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서 산에 가고 달리기 하는 사람 많아지나 보지.
참선 - 다리의 고통
108배 후에 참선을 한다. 화두를 붙잡고 생각하라 한다. ‘이뭣고’다. 이것이 무엇인가? 무엇하는 짓인가? 나는 날마다 무엇 하는가? 무릎과 발이 금방 아프고 허리도 휘려 한다. 반가부좌인데도 몸은 금방 싫어한다. 눕는 것이 좋겠다. 저 깊은 땅 속으로. ‘이 뭣고’ 잡으려 잡으려 해도 무언지 모르겠다. 이 뭣고????
포행
아침 식사는 죽이다. 밥도 있다. 어제 경험에다 스님의 지도로 어시발우는 아에 손대지 않은 이들도 있다. 무슨 죽일까? 녹두가 섞였나? 보리인가? 나의 능력으로는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밥까지 한덩이 얹고 반찬까지 섞어서 먹는다. 우리 모둠만 빼고 나머지 두 모둠은 건더기 나왔다고 청수를 마셨다. 모두 한번씩 마셔보라는 스님의 작전이었을까? 어제 한 팀이었는데 오늘은 두 팀이나 나왔으니 우리의 발우 공양은 아직 멀었다.
식사 후 포행1)을 나선다. (글을 쓰며 포행의 뜻을 컴퓨터에서 찾아보는데 지리 용어만 나왔다. 짐작만 한다.) 수련관 아래 내리막기로 박물관까지 돌아온다. 연못도 지나 학인 스님들의 작업 나섬에, 나이 많으신 노스님은 밀립 탐사용? 모자를 쓰고 지팡이로 풀을 쳐 넘어뜨리고 있다. 다리를 건너고 연못사이를 돌아 나무 아래로 고개 숙이며 돌아온다. 나의 포행은 어떤가? 아침은 차까지 걷기, 점심은 양치질하기도 바쁘고, 저녁은 술 먹고 나서 컴퓨터에 앉거나 TV 보는 거. 나의 생활에서는 어떻게 찾아볼까 잠시 생각해 본다. 아침에 빨리 일어나면 가능할까, 점심을 먹고 반대쪽으로 돌아서 교실에 오는 것도 괜찮겠다.
유나2) 지선 스님의 법문 -
80년대 후반부터 사회민주화 운동에 이름이 높은 지선 스님은 산 위 운문암에서 7년째 지내고 계신단다. 건장한 체구에 한가닥 힘도 쓰게 생기셨지만, 위인가를 수술하신 후의 병색이 보인다. 자리에 앉으신 스님은 편하게 차 마시며 대화하듯 말씀하고 싶어하신 듯하지만 우리는 학생들처럼 경직되어 있다. 이런 정도의 수련대회를 통해 웰빙하겠다는 세상의 경박함 못마땅하다 하신다. 어떤 것이 진실로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생각없이 일상은 개판으로 하면서 이러 데 다녀가면 무슨 수행이나 한 것처럼 뻐기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시내엔 교회와 디스코 텍이 위 아래로 있어, 신나게 춤추고 나서 기도하면 마음의 정화는 잘 되겠다는 누군가의 말도 생각난다. 緣起論에 의한 관계가 세상살이로 독립을 추구하면 고통이 따른다는 말씀도 하시지만 나는 깊이 새기지 못한다. 졸음이 공격한다. 반가부좌한 다리도 아프다. 졸다가 듣다가 한다. 생명의 줄은 연결되어 있다. 투명한 의식, 영적인 안목 등의 글씨가 꼬불꼬불하게 써 진다. 386정치지도자들에게 했다는 말은 귀에 들어온다. 개혁과 변화를 바랐던 초심을 잃었고, 도덕심과 자립심의 하심을 잃었고 또 평상심도 잃었다고 지적하셨단다. 열린 우리당이 아니라 닫힌 우리당이라고 하셨댄다. 인연과보(因緣果報)가 존재의 법칙으로 그것이 곧 업(業)이라고 하신다.
불교 이야기도 하신다. 불교의 가르침은 너무 쉽단다. 세 살 아이도 아는 쉬운 것이지만 80살 노인도 행하기 어렵댄다. 또한 너무 어렵기도 한데, 석가모니가 다시 오셔도 모를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신다. 현대의 우리 삶은 반성과 초월로 가는 통로가 막혀 있는데 불교(종교)는 그에 대한 방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집중해서 듣지 못하게 하는 나의 몸은 서투른 바보다. 적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만 난 여전히 문자에 의존하고 수단을 구별 못하는 바보다. 불립문자(不立文字)하라 했는데.
숲을 지나 암자로
법문을 들은 후 모두 내공이 깊어진 느낌이다. 잘 알아도 사는 것이 그리 팍팍하고, 열심히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표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다 아는 애기 누가 모르나 하는 듯하기도 하다. 나는 어디에 해당하지?
천왕문 밖으로 나오자 제복을 입은 숲해설가인 국립공원관리사무소의 직원들이 5-6명이 서 있다. 인사하고 세 팀으로 나누어 숲으로 들어간다. 나무와 풀과 새소리에 대해 말한다. 아닐 비(非)자를 닮아서 비자(榧子)나무, 층층나무, 산딸나무(십자화(가?)나무), 굴참나무와 서어나무, 생강나무, 누리장나무, 박쥐나무, 소나무 나무가 많기도 하다. 짧은 시간에 숲 해설가는 많이 알려주려 하고, 우리는 그 몇 마디에 고개를 끄덕인다. ‘적으면 산다.’고 열심히 적는 한연자 선생의 자세가 좋다. 이렇게 알아가는 나무는 나에게 얼마나 다가올까? 책 들고 찾아보며 익힌 나무와 풀이 얼마나 내게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반복해야지. 나무 이름 몰라도 먹을 것 못 먹을 것, 생활의 쓸모에 잘 활용했던 자연의 일부였던 농업시대가 아닌 바에야 우리들은 이렇게라도 자연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약사암 오르는 경사에 느긋하게 가다보니 시간에 ?i겨 나중엔 오르기가 바쁘다. 모두 숨 가빠하면서 급경사를 20여분 오르니 약사암이다. 신록이 우거진 골짜기 속에 백양사가 있다. 더 지나 영천굴까지 간다. 100m인가 된다는데 오르막길이 가파르다. 절벽 속에 굴이 뚫려 있고 지붕을 공사 중이다. 대리석 불상이 서 잇고 불을 가득 켜 놓은 바닥 위에 나이 많은 한 노인이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왼다. 그 아래 샘에서 물을 마시고 내려온다.
회향
내려와서는 점심 공양을 한다. 발우공양 아닌 비빔국수다. 양념장을 넣어야 할지, 육수를 부어야 할지 난감하다. 다 넣은 사람도 있고, 비빔에 따로 먹는 사람도 있지만 무슨 상관이냐며 모두들 잘 먹는다. 어쩌면 발우공양의 까다로움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속박에서 벗어난 해방감의 분위기가 돈다.
돌아와 수료식을 한다. 수료식이래야 간단한 설문지에 응하는 것과 모두가 소감을 말하는 것이다. ?? 하나의 형식으로 나를 강제하여 부담을 준다. 여행자 클럽에서 온 사람과 우리 도덕과 회원들이다. 모두들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나도 이곳에서의 경험이 생활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거라고 말한다.
옷을 갈아입고 묵언과 이름이 쓰인 명찰을 반납하고 배낭을 매고 내려온다. 당초 건이 형님이 계획했던 백암산 산행은 약사암 숲기행과 108배의 운동으로 대신하기로 하고, 식당에 내려가 해단식을 하기로 한다. 수료식 때부터 오신 신 경우 회장님과 함께 전날 점심을 먹었던 정읍 식당에서 동동주를 시켜 먹는다. 금방 술탐을 부린다.
열심히 적었다고 우수한 수강생 상을 나와 한연자 선생이 받았다. 서옹 스님의 1주기 추모집인 ‘참사람의 향기’ 책이다. 불교의 조사선을 현대에 맞게 참사람 운동으로 승화시킨 분이라 한다. 신문 읽듯이 바로 읽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이 글을 정리하는 2주 후까지 몇 쪽 읽지 못했다.
구태어 글로 정리함이 구속이라고도 여기면서도 며칠 동안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글을 마무리 한다. 초등학교 도덕과 교과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학습과 더불어 이러한 반성과 초월의 ‘이벤트’도 필요하다 싶다.
나의 기록은 그 때 나의 생각의 수준이 꼭 그 정도였노라고 나에게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05. 6. 10. 밤)
1) 포행(匍行)
??지리? 지표 부근의 흙, 표토(表土), 응고하지 않은 퇴적물 따위에서 일어나는, 몹시 느리게 사면(斜面)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운동.
2) 유나2(維那)
??불교? 절에서 재(齋)의 의식을 지휘하는 소임. 또는 그 소임을 맡아 하는 사람. ≒도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