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참, 시원하다.” 무더운 날씨 속에 땀을 흘리며 뜨거운 탕을 먹고 시원하다고 느끼는 한국인의 정서는 독특하다. 5월말, 연일 한낮의 날씨는 30도를 웃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더위가 찾아 온 이맘때 사람들은 더위로 기력이 떨어지거나 입맛을 잃어 고생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럴 때, 떠올리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보신탕이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처럼 더위에는 차가운 음식보다 뜨거운 음식을 섭취해 열을 다스린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배어있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보신탕이다.
보신탕은 다른 말로 하면 ‘영양탕’ 혹은 ‘사철탕’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유래는 보신탕을 먹는 한국인을 서양인들이 보기에는 ‘동물학대’라는 차원으로 비춰졌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수많은 보신탕집들이 몰락하고 뒷골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보신탕은 혐오식품 단속을 피하기 위해 ‘영양탕, 사철탕’ 등으로도 변신했다.
하지만 음지 속에서도 보신탕은 꾸준히 찾는 고객들의 수요에 부응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제대로 된 보신탕집의 특징 중 하나가 뽀얀 국물이 담백하고 맛의 깊이가 있는 집을 으뜸으로 쳤다. 충남 태안의 한 유명한 보신탕집은 ‘사골국물이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고 했을 정도로 보신탕에서 국물은 각별했다. 청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보신탕집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몇몇 보신탕집은 여름철이면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가 맛본 보신탕집들은 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고기가 푸석하거나 양이 지나치게 적어 만족도가 그리 높지 못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용암동 골목영양탕은 탕은 평범했지만, 수육만큼은 남달랐다. 고기의 질도 좋았고, 맛도 일품이라는 평이었다. 부추를 바닥에 깔고 은근한 불로 김으로 데워진 수육은 기름져 달면서도 입에 착착 감겼다. 찰지면서도 깊은 맛이 있었다.
옛날부터 여름 더위가 가장 심했던 삼복(초복·중복·말복)에 개고기를 주로 먹었다. 특히 삼복 날에 먹었던 것은 음양오행설에서 개고기는 화(火), 복(伏)은 금(金)에 해당하여 더운 성질의 개고기를 먹음으로써 더위에 지친 몸을 이열치열(以熱治熱)로 회복시켜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도 오래 전부터 개고기를 평하기를 '일황, 이흑, 삼화, 사백(一黃, 二黑, 三花, 四白)'이라고 했다. 맛있는 개고기의 순서인 것이다. 누렁이가 첫째이고 그 다음은 검둥이 세 번째는 얼룩이, 마지막이 흰둥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다연(茶煙)' 편에는 “개고기를 먹고 찬 물을 마시면 몸에 마디 회충(촌충)이 생긴다.”는 표현도 나온다. 그만큼 개고기가 흔했고 널리 먹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산림경제>에서는 <증류본초>의 이야기를 따서 “황구가 으뜸이고 검둥이와 흰둥이가 그 다음”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개고기의 맛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 집 보신탕 수육은 특히 맛있어요?” “가마솥에 몇 시간 푹 고은 후 고기는 수육으로 만들고 국물은 탕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고기를 고을 때 나는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부재료를 넣지요. 그것이 우리 집만의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보통 탕에는 토란과 고사리, 파, 고기 등으로 미리 양념하여 끓이며 맛을 우려낸다. 전골에는 부추, 파, 미나리, 쑥갓, 깻잎 외에 여러 가지 야채를 전골 남비 밑에 깔고 위에 수육을 얹는다. 그리고 전골 특유의 양념을 넣고 육수를 부어 끓인다. 고객의 주문에 따라 건더기는 먹고 국물은 각종 야채와 참기름으로 밥을 볶아 먹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