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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하나로 만들어낸 구수한 맛의 진수…. 그러나 먹고나서 돌아서면 바로 배가 고프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 선생의 문학 혼이 살아숨쉬는 강원 평창군 봉평면을 비롯, 이 일대에서 열리는 5일장 장터를 찾으면 다소 이색적인 별미를 맛볼 수 있다. 다름아닌 ‘올챙이 국수’다.
이곳을 처음 찾은 관광객들에게 “올챙이 국수 한그릇 하며 시장기부터 달래시죠”라는 인사말을 건네면 대부분 손사래를 친다.
이내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올챙이 국수에도 올챙이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설명을 듣고나서야 표정들이 밝아진다. 올챙이 국수는 짧고 굵게 끊어진 노르끄레한 면발이 마치 올챙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짧고 굵게 끊어진 면발이 올챙이 닮아
처음 이 국수를 접하게 되면 “이거 간장맛밖에 모르겠는 걸…. 이름만 독특했지 별맛 없잖아”라는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다.
외지관광객들이 올챙이 국수를 먹고 실망감을 표시할 바로 그때 현지 주민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한번 더 드셔보시죠”라고 권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극적인 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씹을 틈도 없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올챙이 국수의 참맛을 단 한번에 느끼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천히 곱씹다 보면 토종 메옥수수를 재료로 면발을 뽑아 그 어느 국수보다 단백하고 고소한 맛이 돋보인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옥수수 특유의 달착지근한 맛도 올챙이 국수의 또다른 매력이다. 미식가들이 평창 하면 이효석 선생이나 스키장을 떠올리기보다 올챙이 국수부터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시절, 강원 산간지역 주민들은 모자라기만 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화전(火田)을 일구고 척박한 땅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는 옥수수, 감자, 메밀 등을 주로 심었다.
이같은 구황작물을 많이 재배하다 보니 메밀 막국수, 메밀전, 메밀묵, 메밀전병, 감자떡, 감자옹심이, 감자부침개 등 메밀과 감자를 주재료로 한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올챙이 국수도 옥수수를 맷돌에 대충 갈아 밥을 짓거나 그냥 삶아 먹는데 진력이 난 주민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별식이란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처럼 주민들의 삶 속에서 묻혀 자연스럽게 생겨난 음식인 터라 올챙이 국수의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서민들의 애환 담긴 담백하고 고소한 맛
장터에서 만난 백발의 할머니들은 올챙이 국수에 대해 묻자 “옛날 아낙네들이 강냉이(옥수수의 강원도 사투리) 먹는데 지쳐서 만들었겠지….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어떻게 알아 촌사람들은 좋아하는데”라며 빙긋이 웃는다.
평창뿐 아니라 양구, 인제, 홍천 등 강원 산간지역 곳곳에서도 간혹 올챙이 국수를 만들어 먹는 것을 보면 할머니의 설명이 현답인 듯하다.
평창의 올챙이 국수는 이 지역 주변에 관광명소가 산재해 있어 유명세를 탈 수 있었다.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입소문을 통해 그 독특한 맛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전해지자 요즘은 장날에 맞춰 이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올챙이 국수를 만드는 과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노란색을 띤 메강냉이 알맹이를 맷돌에 갈아 체에 거른 다음 가라앉은 침전물을 삶아 묵이나 죽처럼 만든 후 틀에 넣어 면발을 빼내면 된다.
국수틀은 대개 바가지에다 구멍을 뚫어 사용하거나 판자로 사각형틀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이때 찬물에 면발을 떨구어야 국수모양이 변하지 않고 풀어지지 않는다.
올챙이 국수의 요리법이 묵과 흡사해 ‘올챙이묵’ 또는 ‘올창묵’으로도 불린다. 재래식 간장에 풋고추를 썰어 넣어 만든 양념장으로 간을 맞추고 묵은 김치나 열무김치를 곁들이면 제격이다.
또 흐물흐물해 젓가락으로 잘 집히지 않기 때문에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보통이다. 소화가 너무 빨리 돼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프다는 말도 있지만 면을 씹을수록 새로워지는 풋옥수수의 향은 고향의 향취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올챙이 국수가 이 고장의 독특한 별식이긴 하나 이것만을 파는 전문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겨울철에도 맛볼 수 있지만 여름철 풋옥수수로 만든 것과 그 맛이 비교가 안되는 데다 가격 또한 한그릇에 보통 1,500~2,000원선으로 가락국수 값보다 싸 이것만으론 가게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올챙이 국수는 여름철 장마가 끝나고 옥수수가 익어갈 무렵부터 늦가을까지 평창장, 진부장, 대화장, 봉평장, 미탄장 등 평창지역에서 열리는 5일장 장터에서 주로 맛볼 수 있다.
#‘메밀꽃 필 무렵’ 봉평 5일장터서 맛볼까
5일장이 서면 시골 아낙네들은 커다란 다라이에 올챙이 국수를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장거리 모퉁이에 나타난다. “올챙이 한그릇해…. 구수한 맛이 그만이야” 정겨움이 물씬 풍겨나는 시골장터 속에 아낙네의 외침소리가 울려퍼지면 장을 보러왔던 많은 사람들은 올챙이 국수를 맛보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다.
한편 지난 2일부터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였던 평창 봉평장터가 전통적인 모습으로 부활돼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올챙이 국수 맛이 한층 더 구수해질 것 같다.
“면발 삶고 식히는 시간 딱 맞아야 제맛” ◇하리 재래시장내 한임직씨 좌판
5일장이 서지 않는 날 평창지역에서 올챙이 국수를 맛보려면 평창읍 하리 재래시장 내 금방 앞에 위치한 한임직씨(60·사진)의 좌판을 찾아야 한다. 상호도 없이 시장 한 모퉁이에서 장사를 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한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자리에서 무려 30년 동안 올챙이 국수를 팔다 보니 그는 시장상인과 이곳을 자주 찾는 주민들 사이에서 올챙이 아줌마로 불린다.
음력 3월부터 10월까지 그는 어김없이 좌판에 앉아 올챙이 국수를 맛깔스럽게 말아 낸다.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 쉴 때도 됐으나 한씨의 손맛을 잊지 못해 시장터를 기웃거리는 단골손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쯤 일어나 가마솥에 미리 갈아놓은 지방 노랑강냉이를 끓여 올챙이 국수의 면발을 뽑아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끓이는 시간과 찬물에 식히는 시간이 맞아떨어져야 제맛이 나죠. 그래서 당일 팔 올챙이 국수는 반드시 그날 아침 만들고 있어요”
한씨 아줌마는 하루에 3되의 옥수수를 올챙이 국수로 만들어 시장에 나온다. 50~60그릇 분량이 다라이에 담겨 있다보니 풍성해 보이지만 낮 12시 이전에 동나기 일쑤이다.
조선간장에 고추, 파 등을 넣어 만든 양념장과 열무김치를 함께 내는 것이 전부여서 다소 소박해 보이지만 단골 손님들은 한씨 아줌마의 올챙이 국수 맛엔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구수함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입소문이 나다보니 서울, 대구, 울산 등지에서 택배 주문도 쇄도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한 식품회사가 올챙이 국수를 건강식품으로 개발해 보겠다며 한씨를 찾아 샘플을 가지고 가기도 했다. 올챙이 국수와 함께 팔고 있는 메밀칼국수, 수수전병, 메밀부침 맛도 일품이다(각 2,000원). 문의 019-280-1446 올챙이 국수의 영양학
옥수수전분은 백색으로 아밀로오스 25%, 아밀로펙틴 75%의 비율로 되어 있으며 찰옥수수는 거의 아밀로펙틴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올챙이 국수는 아밀로오스 성분을 가지고 있는 메옥수수로 만드는 것이 좋다.
옥수수는 단백질의 질이 다소 떨어지고 무기질 중 칼슘이 비교적 적게 들어 있으므로 올챙이 국수 조리시 우유, 생선, 야채 등을 곁들이면 부족한 아미노산, 칼슘, 비타민류 등을 보충할 수 있다.
옥수수의 씨눈(배아)에는 지방이 25~27%가량 들어 있으며 옥수수 기름은 가벼운 풍미를 가지고 있어 드레싱, 마요네즈, 튀김 기름 등에 많이 이용된다. 또 불포화 지방산인 리놀레산이 풍부하여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이밖에 신경조직에 필요한 레시틴과 토코페롤(비타민 E)이 들어 있는데, 비타민 E는 피부의 건조와 노화를 막으며 습진 등에 대한 피부의 저항력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옥수수는 프로테아제 인히비터가 존재하는 식품으로 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을 예방한다는 설이 있다.
옥수수는 신장병, 수종에 효과가 있고 옥수수 수염은 예로부터 이뇨제로 사용하여 왔으며 부종과 신장병에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다. 특히 옥수수차는 고혈압 및 소화에 좋으며,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식품의 산화 및 흡수에 필요한 니아신의 함량이 적어 오랫동안 옥수수만 섭취할 경우 펠라그라라고 하는 피부병을 유발한다. 옥수수는 삶거나 구워서 먹기도 하며 그외에 빵, 과자, 죽, 팝콘, 전분, 기름, 아침식사용 시리얼, 통조림, 알코올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옥수수는 벌레가 먹지 않고 입자가 고를 뿐만 아니라 윤기가 많이 나고 껍질이 벗겨진 낟알이 없는 것이 좋다. 따라서 올챙이 국수는 매끄러운 감칠맛과 구수한 맛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음식이 부드러워 노인이나 일반인들에게 별미식 및 건강식으로 인기 있는 식품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