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아침 포항건설노조 조합원들은 포스코 정문에서 대체인력을 실은 통근버스를 발견하고는 멈춰 세웠다. 대체인력들은 포스코 직원의 복장을 한 채, 버스 4대에 나누어 현장으로 가던 참이었다.
노조원들은 "차라리 우리를 죽이고 가라"며 버스 밑에 드러눕기까지 했는데, 포스코측이 그대로 버스를 출발시켜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버스와 노(路)면 사이의 간격으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에 격분한 노조원 3천명이 모두 포스코로 몰려오게 됐다.
노조원들의 움직임을 읽고 출동한 전투경찰들 역시 노조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려고만 했고, 이 과정에서 다리가 골절되는 등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노조원들은 경찰에 떠밀리고 포스코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 일제히 포스코 본관으로 진입하게 된다.
제도권 언론들이 노동자들의 파업에 적대적이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현재 포스코 농성장에서는 이탈자가 속출하고 금방이라도 자진 해산할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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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농성장 탈출자(?) 장석훈 조합원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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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경찰의 봉쇄로, 아직 어떤 기자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포스코 농성장.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17일 저녁 포스코 농성장을 빠져나온 장석훈(35) 조합원을 만나, 농성장 내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집사람이 음식물 올려준다 해 가지고, 그것만 쳐다보고 있었지" 13일 오후 갑작스럽게 포스코를 점거하게 된 노동자들. 조합원들은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트부터 쌓아야 했다. 포스코 본관에는 4층이 없고 3층 위가 바로 5층이다. 조합원들은 건물 양쪽으로 나 있는 계단에 의자와 같은 집기를 '한 계단을 돌고 올라올만큼 꽉 재워놨다'고 한다.
일단 한숨 돌리고 나니 가장 걸리는 건 먹는 문제였다.
"본 건물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어떻게 해서 초코파이, 컵라면, 생수, 빵 같은 걸 들고 갔어요. 그런데 3천명이 묵기는 양이 버거웠죠. 그걸로 끼니를 다 때우고. 아침엔 컵라면, 점심은 빵, 저녁엔 초코파이에 물. 뭐 이런 식으로. 시간이 가면서 그 양마저도 엄청 줄었고 계속 굶는거죠."
첫날에는 밖에서 도시락이 들어왔었다. 그러나 한 차례 도시락이 반입된 이후 일절 음식물은 들어오지 않았고, 농성자들은 남은 빵과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워야 했다.
"4일째가 되서 집에서 가족들이 음식을 해가 올려줍니다. 그냥 십분의 일만 먹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다음날 가족들 6백명이서 음식을 해갔고 왔어요. 집사람이 낮에 열한시쯤 음식물 다 올려준다 해가지고, 창문에서 그것만 쳐다보고 있었지. 그런데 포터로 몇 대가 들어 올 양인데, 처음엔 경찰이 자가용에 두 대만 들여보내는 거에요. 어이가 없지. 결국은 앞 전에 들어왔던 것가지 다시 빠꾸해 오후 다섯시인가까지 안들여보내고. 그래서 아줌마들이 다 엎어버렸다고. 또 경찰들이 아줌마들 다 해산시키고. 쓰러지고 다치고."
어렵게 들어온 음식들은, 더운 날씨에 오랜 시간 지체되어 김밥이며 도시락이며 쉬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농성자들 중엔 밥을 먹고 바로 병원으로 실려간 사람들도 많았다.
"도시락에 칼치조림이 있었다고요. 상했는데. 경찰은 방치했다가 올리고. 조합원들은 배고프니까 그런 거 먹고 나서 식중독으로 실려가지."
물 조차도 반입이 거의 되지 않았고, 단수 조치도 간간이 이어졌다.
"화장실이 두세 개 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한 층에 3-4백 많으면 5-6백도 있는데 물을 끊어버리니까. 어쩔 수 없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옥상에 가서 컵라면통에, 생수병에 넣어서 던지게 된 거에요."
현재에는 전기가 아예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지만, 경찰은 4일차에도 단전을 시도했었다.
"저녁 9시쯤 되가지고 전기가 끊겼어요. 밑에서 특공대가 올라온다고 하고, 실제로는 전경이었는데 전기가 끊기니 공포감이 생긴거죠. 창문을 깨고 들온다든지 하는 상상이 들고. 그 때 누가 창문을 두드렸는데..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도.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죠. 조합원들이 뛰어다니고. '어디고?' '어디고?' 한쪽으로 쏠리고. 그 암흑상태에서 창문을 건드린 쪽으로 쫘악 (진입을 막기 위해서)갔다가 넘어지고 다치고"
혈압·당뇨약 반입조차 막으면서, 탈출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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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이 많지도 않아요. 열명 내지 열다섯 명이 밑에서 쿵쿵쿵 쳐대는 거고"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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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새벽과 낮에 경찰이 농성장 침탈을 시도했다가 물러났던데서 알 수 있듯이, 협소한 계단과 잘 짜여진 바리케이트 그리고 조합원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농성장 진입은 쉽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경찰은 매일 밤, 당장 농성장을 칠 것 같은 심리적인 압박에 주력했다. 바리케이트로 쌓은 의자를 하나씩 빼내는 것도 조합원들을 크게 긴장하게 만들었다.
"전경이 많지도 않아요. 열명 내지 열다섯 명이 밑에서 쿵쿵쿵 쳐대는 거고. 심리적인 압박을 주려고. 위에서는 항상 긴장해야 한다고. 지금도 현장 상황이 뻔해요. 전기는 낮부터 안들어오고 밑에서 쿵쿵 치면. 쉬지를 못하게 한다고. 내가 8층에 있었는데, 그러면 5층이 잘못돼야 6층, 7층, 8층 올라오는 건데. 8층에서도 한시간도 제대로 잠을 못 자. 항상 긴장상태니까.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조금만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도 조마조마 한 거죠."
농성장 안은 답답했고, 물과 음식이 안 들어오는데다 계속되는 긴장상태로 인해서 환자들이 속출했다. 특히 건설노동자들은 평균연령이 40대 중후반으로 고령자들의 경우 고혈압·당뇨약 등을 경찰이 넣어주지 않는 것이 농성장을 나오는 이유가 되고 있다.
또한 장씨처럼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다 충동적으로 농성장을 나오는 이들도 있었다.
"휴대폰이 개인마다 있었는데 며칠 지나서 이것도 다 끊겼잖아요. 모든 접촉이 끊겼다는 생각이 들지. TV도 없으니 바깥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고. 나는 견딜 수가 없어서 나왔죠. 지옥 같았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가만 앉아서 죽느니 나가다가 죽겠다. 정신없이 5층에서 파이프를 타고 내려왔지요.
말하자면 장씨는 언론 보도대로 파이프를 타고 '탈출'한 것인데, '탈출'의 진상은 이렇다.
그에 따르면, 경찰들은 모든 출입구를 막아버렸고 이제 환자들이 나오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내가 나오기 직전에 누군가가 식구인가 친척인가가 돌아가셨다고 얼굴이 사색이 되서 나가야 되겠다는 거에요. 그런데 나가는 구멍이 외부에서 완전히 차단되서 나갈 수가 없는 거야. 나는 젊으니까 파이프 타고 목숨 걸다시피 내려온 건데. 모든 출입구가 다 봉쇄됐어요. 내가 나오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10층까지 움직였었는데 이게 끊겼다고. 아픈 사람이 유일하게 나올 수 있는 구멍인데"
파업대오에서 다시 만난 한 농성자는 포스코를 빠져나오다가 배관과 건물 사이로 발이 빠져서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기도 했단다.
90% 이상이 다시 투쟁하고 있다 "우린 전부 포스코에서 일해 온 사람들인데. 포스코에서 나서지 않으면 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런데 포스코에서 거의 뒷짐지고 '어떤 타협도 없다' 강제진압만 기다리는 거에요. 그러니 우리는 계속 싸워야지"
농성장을 빠져 나온 사람들을 현재 언론에서는 이탈자라고 얘기하고 있으나, 이들 대부분은 파업대오로 다시 합류하고 있었다.
"90% 이상이 다시 투쟁대오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나도 지금 이래 각서를 쓰고 나왔지만, 사실 내 몸 하나 먹고 살자고 그랬으면, 처음부터 안 들어갈 사람 같으면 합류할 지 안할 지 오십오십이지만, 거기 있다 오고 먹는거 하나 제대로 못먹고 그런 모습 보면서 하루 빨리 이겨야겠다. 나와가 그 사람들 몫까지 열심히 뛰어야겠다. 자다가도 나와야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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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이상이 다시 투쟁대오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