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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산 문경세제를 따라 (조령산)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내 취미와 특기에 대해 질문을 해보곤 한다.
과연 나의 취미는 무엇이고 특기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 결과 취미와 특기 모두가
술 마시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만다.
외부 사람들에게는 등산이나 독서가 취미라고 말 하지만 그것은 내 자신의
자존심과 관련된 기만적 표현으로 솔직하게 취미와 특기 모두 다 술이라고
말 한다면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 시각, 즉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까 봐
솔직히 답할 용기가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술이 취미라는 사실만은 부인키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등산은 술 다음으로 나의 소중한 취미중 하나이다.
평소 내 일상의 전체적인 생활 행태와 비교해서 술 마시는데 보내는
시간이 등산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등산에 취미가 없는 바는 아니다
등산에 비해 술은 항상 내 주변과 연관되어 있고 등산 또한 어쩌면
술을 맛나게 즐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등산 뒤풀이 반주가 항상
사람을 힘들게 한다.
하여튼 술은 내게 있어 산에 갈 때나 친구를 만날 때 그 외 시간이 남아서
한잔, 무료해서 한잔, 이런 저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술과 연관시켜 버리는
것이 습관화 되어 제아무리 좋은 음식도 술이 있어야 제 맛이 나고 좋은
음식이 아니라도 좋은 사람과 만나서 그 사람의 얼굴이 술안주가 되기도
한다.
어쩜 내가 평소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간혹 시간이 날 때 등산을 하는
이유도 기본적으로 건강관리가 목적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술을
즐기기 위한 체력유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한다.
아무튼 술은 내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삶의 중심에서 커다란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토요일인 어제도 사랑하는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를 비롯하여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인생의 진리를 논하며 한잔두잔
나눈 술의 여파가 오늘까지 이어져 머리는 띵하고 몸은 천근이다.
며칠 전 한길 산악회 김춘만 회장으로부터 이제 날씨도 따뜻해
졌으니 이번 산행에 동참 해주었으면 하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 반갑기도 하고 산행지가 문경 조령산으로 평소 한번 가보고
싶은 장소이기에 내 권유에 의해 재수씨, 마누라와 함께 이번 산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산행일시 : 2011. 3. 27. 11:00 - 16:20
산 행 지 : 조 령 산
코 스 : 수옥정 관광지(엘렘 쉼터) - 안부 -신선봉 -마역봉 -군막터-
조령3관문 - 2관문 -조령관 - 주차장
날 씨 : 맑고 초봄 날씨
함께한 사람들 : 나와 아내 재수씨를 비롯한 한길 산악회 회원 45명
한길산악회원들과는 수년 만의 산행이라 약간의 설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서먹한 마음으로 출발시간에 조금 앞서 영주동
부산우유 앞에 도착을 하니 이미 몇몇 지면이 있는 분들을 비롯하여
회장님과 집행부에서 매우 반갑게 맞이해 준다.
8시가 조금 지나 관광버스는 입추의 여지없이 전 좌석을 꽉 채운 채
남해안 고속도로와 중부 내륙고속도로를 거쳐 충북 괴산 나들목을
빠져나온다.
차창 밖으로 비쳐지는 수많은 산들! 충청도는 산이 많은 지역이라는
것을 새삼 절감케 한다.
관광버스는 산과 산 사이로 꾸불꾸불하게 이어져 있는 고갯길을 따라
천천히 달린다.
찻길 저 아래 하류를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속에는 하늘과 산들이
담겨있다.
옆자리에 있던 재수씨! 약20년 전 나와 재수를 비롯한 몇몇 가족간에
단양8경을 구경하다 생긴 추억담을 꺼낸다.
당시 단양 도담삼봉을 관광하고 바로 옆에 있는 석문으로 가던 중 산 중턱
길 옆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비디오카메라로 일행들의 촬영을 끝내고 나
혼자 남아 주변 풍광을 촬영한답시고 뒤쳐지는 바람에 일행들과 길이 서로
엇갈리게 되었다
석문에 도착한 일행들이 내가 뒤 따라 오지 않자 한 동한 주변을 찾다가
산에서 내려와도 다시 나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자 절벽에서 실족 추락사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당시 소방 구명정이 출동을 하여 절벽 아래 강물을
수색하는 소동을 빗으며 함께 간 모든 사람들이 울고불고 하던 그때의
절박했던 순간들이 지금 와서 너무나 생생하게 이야기로 되살린다.
벌써 약20년 전 30대 후반의 불타는 청춘기시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때 추억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선연하게
내 머릿속에 피어오른다.
세월! 너무나 무심하고 무상하다........
이화령 고개를 지나 얼마 후 길 가장자리에 수옥정 관광지란 대형
표지판과 함께 조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표지판 앞에 변강쇠가 때깔 좋은 고추를 들고 있는 모습이 고추에 대한
광고효과를 해학 서럽게 풍자하여 색다르게 나타내고 있다
이곳을 지나 곧 바로 몇몇 상업시설들과 함께 대형 주차장이 보이고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관광버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조령산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읍과의 경계선상에 자리잡은 명산
높이는 1,017m이다. 전체적으로는 산림이 울창하며 대 암벽지대가 많고
기암.괴봉이 노송과 어울려 마치 그림과 같다. 능선 남쪽 백화산과의
경계에는 이화령이 있고
능선 북쪽 마역봉과의 경계가 되는 구새재에는 조령 제3관문 (조렁관)이
있으며, 관문 서편에는 조령산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제3관문이
위치한 곳은 해발 642m로서 예로부터 문경새재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를 통해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이 연결되어 교통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험난한 지세를 이용할 수 있어 군사상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주능선 상에는 정상 북쪽으로 신선봉과 치마바위봉을 비롯하여 대소
암봉과 암벽지대가 많다.
능선 서편으로는 수옥폭포와 용송골, 절골, 심기골 등 아름다운 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능선 동쪽을 흐르는 조령천 곁을 따라 만들어진 길은 조선조 제3대
태종이 국도로 지정한 간선도로 였으며, 주흘관(제1관문),
조곡관(제2관문). 교구정터 등의 사적지가 있고 완만하게 흐르는
계곡에는 와폭과 담이 산재하여 있다. 현재 이 일대는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안보온천, 월악산국립공원과 가깝다
주차장에서 산 들머리 입구 까지는 각종 상점과 팬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마치 상가 골목길을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한동안 상업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완만한 콘크리트길을 따라
10여분 지날 즈음 등산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산행대장이 표지판에 있는 등산지도를 보고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는 산골짜기 안으로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본격적 산행이 시작된다.
얼마가지 않아 포장길 옆 좌측 편에 신선봉이라는 화살표 표시가
나타난다.
신선봉 쪽으로 방향을 잡고 산행대장을 필두로 모두들 열심히 경쟁
이라도 하는 듯 걷는데 열중이다
단체 산행은 전체적 산행 능력을 고려하여 선두에서 속도의 완급
조절이 필요한데 처음부터 약간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두들 발걸음에 힘이 넘쳐난다.
길옆으로 소나무가 총총하고 간혹 박달나무와 자작나무 등 여러
가지 나무들이 정답게 상존하며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산행 초입 들머리 길로 접어들자 제법 많은 눈들이 쌓여 있다
모두들 눈에 적응이 되지 않은 탓인지 발걸음이 저절로 더디어 진다.
지난 2주전 지리산 둘레길 탐방 때에도 청왕봉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만
약간의 눈을 먼발치로 구경했을 뿐인데....
이곳은 2주가 지난 지금까지 제법 많은 눈들이 하얗게 겨울 산의 전형적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겨울이 아무리 물러나기를 거부한다 해도 대 자연의 순리는
어긋남이 없다
3월의 끝자락! 봄기운을 담은 따스한 햇살 아래 산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켠다.
“梅經寒苦發淸香”(매화는 혹한의 고통을 이기고 맑은 향기를 풍긴다)
길 옆 아직 겨울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수많은 나무들!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겨우내 혹한의 고통을 참고 견딘 인내의 끈을 풀고 새움을 띄우기 위한
나무들의 함성과 동토를 뚫고 햇살처럼 번져가는 생명의 소리들이 봄이 저
만치에서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골짜기를 따라 점차 경사가 심해지며 길 또한 크고 작은 돌들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울창했던 소나무도 차츰 줄어들다가 이제는 박달 신갈 단풍 참나무 등
각종 잡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앙상한 가지에 몇몇 말라붙은
나뭇잎이 하나 둘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내린다.
출발40여분! 고개 중간지점에서 산행대장을 비롯한 선두그룹에서 지친
걸음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휴식의 본래적 의미는 활동을 멈추고 다음 활동을 위해 필요한 체력을 증진
시키는 방법이지만 휴식의 시기와 방법에 따라 그 효과는 여러 가지로
나뉘어 지는 것 같다
특히 지금 이 순간 극한의 체력을 소모하고 잠시 잠깐의 휴식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고 보여 진다.
여기저기 아무렇게 걸 터 안자 한 모금의 생수로 목을 추기며 편안해
하는 한길 산악회원들의 표정에서 진정한 휴식의 즐거움이 묻어난다.
휴식이란 노력한 만큼의 댓가와 비례하여 노력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쾌락으로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노력도 하지 않고 취하는
휴식은 식욕 없는 식사와 마찬가지로 즐거움은 고사하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아닐까 싶다
허나 지금 내게 있어 휴식의 절실함이 요구되지 않는다.
휴식이 필요하면 반드시 쉬어야겠지만 휴식이 필요치 않을 때 오히려 쉬는
것이 지겨울 수도 있다
나는 배낭을 그대로 멘 채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쉬고 있는 일행 들을 뒤로
하고 아내와 함께 천천히 산골짜기 옆 비스듬한 길을 따라 천천히 앞장을
서 본다.
위로 갈수록 크고 작은 암반들이 많아지더니 산 중간 지점부터는 이내
너덜지대로 변한다.
산 아래 대지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간지점부터는
군데군데 잔설들만이 포근하게 내려쬐는 한 낱의 햇살에 마지막까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너무나 처절하다
육신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 눈 물일까? 눈물일까? 알 수가 없다
나는 천천히 주변 풍광들을 관망하기도 하고 또 카메라에 담기도 하며
유유자적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행의 즐거움을 누린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이 너무나 청명하다
간간히 불어오는 산바람에 실려 오는 나무 내음이 상큼하기 그지없다.
나는 지금 대 자연을 향해 탁 터인 시선으로 유아독존 온 천하를 굽어
살피며 내 나름대로의 운치와 낭만을 만끽한다.
나뭇가지사이로 저 멀리 보이는 수많은 산과 산! 온통 눈으로
뒤 덥힌 채 시각적으로 아직 겨울의 한 중심에 머물고 있다
동북쪽으로 주흘산 끝자락을 따라 암봉들이 북쪽으로는 월악산의
영봉이 오연하게 우뚝 솟아있고 영봉을 따라 이어진 능선들이
하이얀 눈에 파묻힌 채 선경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아련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등산로는 너덜지대 옆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땅에다 거대한 몸통을 늘어뜨린 채 길을
가로 막고 있다
아마 태풍으로 인해 쓰러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일부 남은 작은
뿌리로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소나무 본래 모습에서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푸르름을 자랑한다.
비록 하나의 보잘 것 없는 나무에 불과하지만 생존에 대한 본능 즉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고귀함은 사람이나 동・식물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때에 따라 이 나무보다도 못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허다하게 보는 경우도
보아 왔다.
작은 시련에 쉽게 좌절하고 포기 하여 끝내 삶을 포기하는 나약한 인간의
군상들과 비교해서 여기 쓰러져 있는 이 나무처럼 몇 가닥의 뿌리로 척박한
돌 틈을 비집고 최후까지 생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경이로움을 새삼 절감케 한다.
길 옆 너덜지대 군데군데 몇 개의 돌을 포개 돌탑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형상의
모형들이 주변 크고 작은 바위와 같이 공생하며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상당한 수준의 창작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며 순수한 자연적
운치가 풍겨 다시 한번 돌아봐 진다.
신선봉 갈림길까지 가는 고갯길은 급경사 너덜지대로 소위 말하는
깔딱 고개다.
나와 아내는 맨 선두에서 주변 경치를 관망하기도 하고 사진으로 담아가며
느릿하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고개 정상 부근에 도달할 즈음 한상봉씨가
발군의 등산 실력을 보이며 빠르게 뒤 따라오고 있다.
고개 정상부터는 기온차가 현저하며 주변에는 온통 눈이다
왼쪽으로는 레포츠 공원 오른쪽으로 신선봉이란 표지판이 서 있고
신선봉 방향은 가파른 암릉에 눈까지 가득 쌓여 있어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동안 주변을 조망하노라니 한길회원들의 모습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힘들게 올라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니 먼저 도착했다는 희열도 크지만
한편으로 즐거운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드는 것은 놀부의 심보일까
아님 흥부의 심보일까?
옛 속담에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남의 힘듬을 은근히 즐기는 것은 아마
놀부의 심보에 가깝지 않을까.....
예상대로 신선봉으로 가는 길은 마치 병풍을 세운 것처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길 폭이 협소한데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길 중간을 가로막고 있어 로프가
있기는 하나 눈길이라 굉장히 조심스럽다
암반 바닥에는 눈들이 얼어붙어 우리 옥여사 걸음걸이가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아무도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은 탓에 모두들 엉금엉금 기다서다를 반복하며
조심과 긴장으로 인해 자연히 가는 속도가 더디어 진다
특히 암반을 오르내리는데 있어 여자들은 암만 해도 몸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남자들의 부축이 절실해 진다
워낙 길이 조심스럽다보니 주변을 조망하기도 어렵다
나는 회원들 보다 약간 앞서 띠뚱거리는 옥여사를 이끌다 시피 몇 개의 로프를
타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산불 감시초소를 지나 얼마가지 않아 제법
널따란 공터가 나타난다.
공터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식사 중이고 일부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고 있다
점심때가 약간 지난 시간이지만 오는 도중 차안에서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들을 많이 먹은 탓에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풍겨 나오는 음식냄새로 인해 식욕을 자극하여 군침이 저절로 돋아 나온다.
내가 보기엔 단체 식사 장소로는 그저 그만이기에 선두에서 함께 가던 몇몇
회원들과 함께 평평한 장소에다 배낭을 풀고는 7-8명 단위로 둥글게 모여 각자
준비한 음식들을 꺼내 놓으니 금 새 푸짐한 오찬장이 된다.
고산지대의 영향도 있겠지만 주변 눈들로 인해 바람막이 외투를 걸쳤는데도
불구하고 스물스물 한기가 몰려오며 제법 손까지 시릴 정도다.
점심과 함께 시원소주도 겻들이며 지금까지의 피로와 추위도 함께 술잔 속에
담아본다.
조령산 자체도 악산이지만 앞으로 남은 구간이 조령산을 대표하는 난코스
지점으로 모두들 과도한 음주는 자제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나 역시도 평상시 산행 때와는 달리 음주와 과식을 약간 자제하며 "매사
불요튼튼”이란 말처럼 조심스럽게 남은 산행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다져본다
추위 탓인지 모두들 생각보다는 빠르게 식사를 끝내고 곧 바로 출발을 서두른다.
식사를 끝내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회원들 대부분이 다 출발하고
아내와 나는 맨 후미이다
오랜 산행 경험에 비추어 1천고지 이상 5시간이 넘는 산행을 할 때는 출발 후
1시간, 식사 후 1시간정도는 절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약간 천천히 힘을
비축하여 이완된 근육들이 몸 전체에 적응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간과하여
산행이 끝나고 나면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무튼 바닥에 얼어 있는 눈으로 인해 걷는 게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나 능선
좌우 내 발치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설경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내 심혼을
사로잡아 온다.
바로 눈앞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는 화강암으로 된 신선봉이 파아란 무극
창공을 향해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낸 채 그 위용을 자랑하고
봉우리를 따라 부챗살 같은 칼날 능선 곳곳에 각종 기암괴석들이 오밀 조밀
신비스럽게 늘어서 있고 그 뒤를 따라 줄줄이 이어져 있는 무수한 부봉과
능선들......
빛살처럼 뻗어있는 수많은 능선을 따라 기기묘묘한 기암괴석과 청정한 모습의
낙락장송들이 온 천지를 뒤 덮은 하이얀 눈과 함께 마치 흰 도화지에 대자연을
소재로 한 한 폭의 거대한 동양화가 된다.
이 동양화는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오르지 조물주만이 창조할 수 있는
신기의 역작이다.
신성봉까지 계속해서 암능 길로 군데군데 로프가 설치되어 로프지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자연 걸음이 더디어 앞서가던 사람 (주로 여자회원)들이
줄줄이 늘어 서 있다
아무튼 위험지대에는 로프가 빠짐없이 설치되어 건장한 남자들은
그다지 어려움을 격지 않지만 중년의 여자들은 로프이용이 서툴러
남자들의 도움이 절실해 보인다.
점심 식사 후 약 20분 만에 신선봉에 도착을 한다.
커다란 암반 덩어리를 등지고 신선봉(해발 967m)이란 잘 다듬어진 작은
표지석이 봉우리 정상임을 실감케 한다.
워낙 칼날 같은 능선을 오르내리다 보니 표지석이 없다면 봉우리와 능선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 제대로 구분하기가 곤란하다
몇몇 사람들이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지만 우리 한길
회원들은 모두 앞서 가고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왜 그리도 바쁜지...... 현대를 살아가면서 특히 도심의 생활이
사람들을 바쁘게 만드는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과 경쟁하며 살아야 하는 하루하루의 일상들이 반복되다보니
반복의 고착화로 습관으로 변해 결국 매사에 쫒기 듯 마음의 여유를 잃고
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여유를 부리기엔 삶이 그대를 낙오자로 만들어 버리니
빠르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그러나 자연은, 특히 산은
우리에게 많은걸 일깨워 준다. 나무와 돌 그리고 바람, 계곡에 흐르는 물,
숲속의 풍경들을 통해 잃어버렸던 우리의 꿈과 만나게 해 주고 또 동심을돌려준다.
또 산은 거칠어진 우리들의 마음결을 부드럽게 펴주기도 하고 커다란 꿈과
희망을 심어 주기도 한다.
자연과의 만남 그것은 희망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나와 아내는 신선봉을 배경으로 각기 기념촬영을 하고 다음 코스인 마역봉
(마패봉)쪽으로 향한다.
신선봉 암반 아랫길로 우회하니 다시 하얀 눈이 가득한 능선길이다.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완만한 흙길로 길옆으로 박달 싸리 소나무등 수많은
나무들이 울창하여 나무 가지 사이 틈 사이로 보이는 세상이 한층 아름다움을
더 하며 낭만과 운치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금상첨화로 길바닥 두텁게 쌓인 하얀 눈! 내 발자국 걸음걸음 마다
뽀드득 뽀드득 음률로 변해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한다.
신선봉에서 마역봉 가는 길은 꾸불꾸불한 능선을 따라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4개의 봉우리를 넘는다.
봉우리 중간 중간 커다란 암반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위험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위험구간이라 조심을 하며 오르지 가는데 집중을 하다보니 지루함 도 잊고
어느새 마역봉이다.
마역봉!
해발 927m 크고 작은 돌들이 마치 완만한 돌탑처럼 반원으로
솟아있고 그 한쪽 중간에 표지석이 반질하게 빛을 발하며 마치
묘 비석처럼 잘 다듬어 세워져 있다.
마역봉은 일명 마패봉으로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봉우리를 지나다가 험산으로
워낙 힘이 들어 마패까지 풀어 놓고 쉬어 갔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다는
어느 회원분의 설명이다
10여명의 한길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한동안 주변을 관망하며
조령산의 상징인 마패봉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절경들을 다시 한번
가슴에 담아본다.
굽이굽이 넘쳐나는 산과 산!
대 자연이 창출해 낸 한점 때 묻지 않은 순백의 대지!
온통 백색의 세상이 지금 내 눈앞에 쫙 펼쳐져 있다
설경이 만들어 낸 절경! 나는 지금 신선들의 세계에 머물고 있다.
내 열린 가슴 안으로 벅찬 감동들이 영혼 속 깊이 스며든다.
지금까지 험난한 산길을 따라 군데군데 설치된 로프에 몸을 의지하며 위험하고
힘든 고통도 이 한순간의 감동으로 말끔히 지워진다.
감동!
그것은 노력에 의한 산물로 땀 흘린 만큼 값지고 소중하다.
노력하지 않고 저절로 얻어지는 산물 즉 횡재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르고 어느새 내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지 조차도 쉽게 잊어버리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감동도 일회용 반창고에 그치고 만다.
내 삶과 인생! 지나 온 삶의 거센 파도가 비록 내 육신을 잠식하여 영혼까지도
지쳐 허우대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은 행복하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一切唯心造란 말대로 지금 내 마음엔 이곳이 바로 천당이요
극락이다
눈과 마음이 멀고 험해도
변함없이 간다.
가고 또 가고
짜증 한번 없이
나의 마음이
나를 버티고 있다
흔들림 없는 마음이
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은 쉬었다 가도
마음만은 쉬지 않는다.
몸이 마음을 잃지 않게
믿음으로 지켜 준다.
마역봉을 지나 3- 4군데 급경사 암반구간이 나타난다.
암반 구간에는 어김없이 로프 줄이 설치되어 있고 로프 줄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계속 체증이 생긴다.
암만 해도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나는 아내를 재촉하여 다음 로프 줄까지는
일행들보다 한발 앞서 내려오다 보니 사람으로 인한 장해를 받지 않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 수가 있어 내려오기가 훨씬 수월하다
산 중간 지점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점차 암반이 줄어들고 흙길로 변한다.
흙길 옆으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시계를 가린다.
허나 소나무 숲에서 풍겨 나오는 향그러운 솔향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폐부까지 파고드는 솔향에 그동안의 고단함이 날아가고 마음까지도
푸근해 지며 편안해 진다.
송림 숲길이 끝나자 인공으로 조성한 측백나무 숲과 함께 그 옆으로신록 넘치는
측백나무와는 대조적으로 앙상한 가지만이 남긴 채 아직 긴 겨울잠을 자고 있는
신갈나무 잎새만이 낙엽이 되어 수북하게 쌓아둔 채 다시 다가올 전성기를
기다리며 지금은 고요히 인내하고 있다.
시계가 탁 터이며 광활한 잔디로 조성된 공터가 나타난다.
공터 윗 쪽에 군막터 조령관을 지키던 군인들의 대기소란 안내 나무표지판이
걸려 있고 공터를 중심으로 울창한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고 음지에는
하얀 눈들이 눈이 부시게 한다.
아마 이곳부터는 문경시의 상징적 관관코스 중 하나로 주변 환경이나 도로가
매우 잘 손질되어 있고 등산객이 아닌 관광하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띈다.
한동안 그곳에서 일행들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내려오지 않는다.
산행안내문에는 출발점이나 하산점도 자연휴양림으로 표기되어 있기에 이곳엔
휴양림이 없어 혹시 하산지점을 잘못 왔나 하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천천히
내려오면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조령관까지 가면 무슨 수가 나도 날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그때부터 나와
아내는 평소 잘하는 마라톤으로 목적지를 향해 전력을 기울여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면서 앞서가는 사람들을 살펴보았으나 수많은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많은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오로지 아내 한 사람!
군중 속에 고독이란 말이 이때를 두고 한말이 아닐까 싶다.
조령3관문을 지나 조령 2관문에 도착을 하니 tv사극 전쟁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수많은 장수와 병졸들의 모습이 보이고 말을 탄 장수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마어마한 출연진과 전쟁 장비들에 호기심이 생겨 아무리 바빠도 구경만은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촬영장소로 접근을 하니 알바 하는 사람이 제지를
하면서 옆쪽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멀거니 한동안 구경을 하노라니 엑스트라 병졸들이 길바닥 곳곳에 아무렇게 누
워 졸고 있는 모습이 마치 노숙자처럼 어쩜 그토록 처량하게 보이는지.......
엑스트라의 삶을 통해 인간대 인간으로 극명한 차별을 보면서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차별 없는 누구나 대등한 세상은 정말 요원한 것일까?
재수씨한테 전화로 위치를 확인하니 벌써 이곳을 지나 1관문 쪽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한다.
관문간에 거리가 상당하기에 이들을 따라 잡아보겠다는 욕심에 다시 발걸음에
가속도를 부친다.
2관문과 1관문 중간 지점 길 왼편에 작은 폭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인공이 아닌 자연 그대로 형성된 화강암석에 비록 규모는 작지만 3층 계단으로
떨어져 부서지는 물방울들이 하얀 포말을 이루며 오후의 화사한 햇살에 얕은 무
지개가 어린다.
폭포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폭포의 물줄기로 인해 움푹 파인 소에는
파아란 물이 가득하고 그 안에 담긴 물이 어찌나 맑고 푸른지......
침묵의 바위를 깨고
힘차게 부서지는
이 마음의 물살이여
하얀 기도여
부딪히고 깨어지고
천년의 한이 담긴
푸른 물이여
푸른 마음이여
폭포를 지나 얼마가지 않아 길 옆 저만치에 생태박물관이 보인다.
주흘관이 가까워질수록 점차 공휴일 나들이객들이 늘어나며 길 전체가 혼잡하다.
주흘산도 이곳을 거쳐 가야 하는 코스라 주변의 풍광들이 낮 설지가 않고
몇 년 전 은실네와 함께 이곳 산행에 대한 추억들이 아련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저만치 박재수씨를 비롯하여 몇몇 한길회원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군막터에서 이곳까지는 약 2십리 길로 상당한 거리를 마라톤을
하다시피 바쁘게 서둘다 보니 아내가 매우 피곤해 보이는 데도 자존심 때문에
말은 하지 않고 어깨와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급급한 마음에 아내에 대한 배려보다 내 중심으로 달리다 보니 아무래도
여자로서 체력적 무리가 다를 수밖에 쯧쯧.....
축 쳐진 아내의 모습에 미안함과 안쓰러움으로 애뜻한 연민의 정을 떨칠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보상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배낭을 받아 어깨 한쪽으로 메고 아내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것을 끝으로 이번 산행기를
모두 마감한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나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긴긴 겨울 밤 눈만 내리고
돌아갈 길 없는 눈 쌓인 밤도
절망을 모르는 사림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희망도 없는 이 희망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등켜 안고 웃어 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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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은 나도 모르게 게으름이 생겨 글 쓰기가 점점 싫어지니....
그리고 글을 읽어 주는 독자도 없고
그러다 보니 점점 글 쓰기가 더 싫어지네요
그래도 우리 옥여사는 봐 주니까 한결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요즘도 한번씩 잘 보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