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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매, 단풍 들것네. 』
Ⅰ
시는 삶의 양식
-이기철
인간은 생각의 순금을 얻기 위해 생애를 바친다
집중하고 천착하라
얻은 것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생각하는 시간은 귀중하다
모래위를 맨발로 걸어간 사람
소금바다를 헤매다 죽은 어부
볍씨 뿌리고 논 위를 스치는 구름 그림자를 바라
보던 농부
그 모든 인간은 아름답고 현명하다
누가 네 살의 강물에 다시 발을 담글 수 있는가
그 가슴이 종달새와 함께 노래하고
그 마음이 들판의 송아지와 함께 거리의 악사가 되는
누가 다섯 살의 햇살 속으로 날아갈 수 있는가
노랑나비와 줄파랑새의 친구가 되어
동풍東風 속을 끝없이 달려가는
인간의 마지막 희망은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두운 흙에서 방향芳香으로 피어나는 풀꽃
그것이 인간의 희망이고 염원이다
나는 이 염원을 빌어 시를 쓴다
시는 내 삶의 양식이다
논물이 제 가슴을 스치는 구름을 흘려 보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꽃잎이 노랑나비를 떠나 보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행가가 세계를 여행하고도 천하를 그대로 두고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가을 잎은 썩어 봄잎이 되고, 웅덩이의 물은 올라 구름이 되니, 낡은 것이 새것이고 낮은 것이 높은 것이 아닌가.
세월은 풍경처럼 스쳐 가지만 「나」는 남으니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삶에서 「순금의 생각」을 제련하지 못한다면 태양은 얼마나 어둡고, 꽃잎은 얼마나 쓸쓸한 것이랴.
Ⅱ
가을은 ‘한편의 서정시’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올해는 윤칠월이 들어서인지 추석도 예년에 비해 한달 가까이 늦다. 들판이 누렇게 물들어 가고 있다. 마음도 시월 상달만큼이나 훤히 밝아 온다. 아침 저녁으론 싸늘하고 새벽은 홑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춥다. 그러나 아직 낮은 지난 여름꼬리가 붙어서인지 덥지만 따스한 가을 햇살이 눈물 나도록 고맙다.
한 보름전에 용인장에 들렸다가 배추모종을 사와서 집안텃밭에 심었다. 손가락 두마디정도로 작은 모종이 이젠 손바닥 만큼이나 크서 나풀거린다. 제법 채소내음을 풍긴다. 최근 가을 가뭄이 심해 아침 저녁으로 아내가 물을 준다. 아침 일찍 출근전이나 또는 밤늦게 퇴근해서 배추밭으로 가 본다. 며칠 사이에 눈에 보이게 성큼 성큼 자라는 초록 배추잎새가 대견 스럽다. 까만 흙에 여린 모종을 심었더니, 가을 햇살과 공기와 바람을 먹고 이리도 어여쁜 생명이 한들거리니 어찌할거나.
이제 거대한 추상적인 이야기엔 관심이 없고, 요런 작은 생명체들의 자잘한 아름다움이 가슴에 와 닿고 고마운 것은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타기까지 들판 길을 한 십오분정도 걸어가야 한다. 길가의 텃밭에 심은 배추가 반아름이 되게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넉넉한 농부의 마음이리.
집을 나와 걷다보면 ‘팔복교회’ 옆 공터에 코스모스가 빨강ㆍ하양ㆍ분홍색으로 피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작은 소리를 내어 〈코스모스 한들 한들 피어 있는 길ㆍㆍㆍ〉하면서 김상희씨의 노래를 혼자 흥얼거려 본다. 가을은 모든게 풍성한 것 같다. 황금빛 들판도 시골 장터도 푸근하다. 어제는 시월 초하룻날 백암장날이다. 집에서 버스를 타면 약 20분가량 걸린다. 아내와 버스를 타고 백암장에 갔다.
평소와 달리 추석을 며칠 남겨 두지 않은 큰 장날이어선지 사람들이 많다. 사과, 배, 감, 복숭아 등 가을과일이 풍성했다. 감곡의「햇사레」복숭아도 나왔다. 복숭아 살이 무르고 당도가 높아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지만 가격이 비싸 사 먹으려고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끝물이어선지 열개에 오천이란다. 큰 맘 먹고「햇사레」복숭아를 샀다. 아내는 애호박, 풋고추, 표고버섯을 샀다.
쉬는 날과 백암장이 겹치는 날이면 빠짐없이 백암장에 간다. 넉넉한 시골장의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한 사십대의 예쁘장한 아주머니가 천막을 쳐 놓고 파는 「조껍데기 막걸리」맛을 그냥 지날칠 수는 없다. 장바닥을 두루 구경하고 마지막에 들리는 곳이 막걸리집이다. 집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 콩으로 만든 두부를 김치에 싸서, 한잔하는 막걸리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때론 삶의 무게로 가슴 아픈 날 작은 아름다움과 슬픔들이 모이는 시골장으로 가서 막걸리라도 한잔 해야 하지 않으리.
막걸리 탓인지 가을 햇살때문인지 오후잠이 들었다.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려 받아 보니, 같은 전원마을에 사는 한선생으로부터 「민물새우」를 잡으러 가지 않겠느냐며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하자고 대답하고 한선생집으로 갔다. 한선생 내외와 우리 내외 넷이서 트럭을 타고 갔다. 마을에서 한 십여분 가니 백암장으로 가는 중간쯤인 좌전에 산골 연못이 나타났다.
고향에서 이맘때 쯤이면 한해의 농사를 다 지어 놓고,천렵을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동네어른들과 족대를 둘러 메고 들판으로 간다. 들판의 큰 도랑에 풀들이 무성하다. 어른들이 족대를 풀이 무성한 한쪽 도랑에 대고 한발로 족대위의 풀을 푹푹 밟으면서 고기를 족대쪽으로 몰아 세운 후 재빨리 족대를 들면, 그 족대속에 손바닥 만한 희뿌연 붕어들이 춤춘다.
우리 어린놈들은 「야! 붕어다.」라고 소리를 치면서 그 붕어들을 양동이에 잡아 넣을 때의 그 손맛은 아직도 짜릿하다. 운이 좋은 날은 팔뚝만한 거무스레한 가물치가 잡히기도 했다. 황금빛 들판에서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몇 시간 물고기를 잡고 나면, 거의 한 양동이가 족히 잡힌다.
이렇게 하여 동네 어른들로부터 물고기 잡는 방법을 배웠다. 가을 고기맛은 워낙 좋다. 들판에서 키가 넘게 자란 토란대를 몇 줄기 뽑아 잡은 물고기를 넣고, 그 곳에 적당한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끓인 그 달콤 짭짤한 맛은 지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고향 친구중에 철조란 친구가 있다. 지금은 고향의 우체국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젊은 시절엔 손고기 잘 잡기로 소문이 났다. 어느해 겨울이었다. 가을 들판도 나락이 다 베어지고 겨울눈이 내리고, 마을들판 옆을 흐르는 ‘감천강’도 얼어 붙을 정도로 차가운 날씨였다.
철조가 고기 잡으러 가자며 집으로 찾아 왔다. 이 한 겨울에 무슨 고기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장소를 물색해 놓았다고 했다. 날씨가 워낙 추워 들 판은 얼음판이 되었고, 넓이가 약 칠팔백미터가 되는 ‘감천강’도 양쪽 옆으론 다 얼어 붙어 있고 다만 중앙부분에만 약간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허리께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삽과 양동이를 들고 친구를 따라 들판으로 갔다. 여름이면 거의 한 길이 될 정도로 깊은 강물이 지금은 줄어 얕게 흐르고 있었다.친구가 봐두었다는 들판의 가장 위쪽부분과 산과 강물이 만나는 곳으로 갔다. 근처는 다 얼어 붙었으나, 그 곳은 살 어름만 끼고 작은 웅덩이처럼 생긴 곳이었다.
친구와 둘이서 웅덩이 둘레를 모두 삽으로 막아, 바깥에서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양동이로 웅덩이 안의 물을 퍼 내었다. 몇 시간 이상 물을 퍼내니 허리가 아파왔다. 모래로 막은 둑 사이로 바깥물이 계속 스며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웅덩이 안의 물은 좀처럼 줄어 들지 않고, 물고기란 놈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먼지수를 잘못 집었나 하고 포기 하려고 하였는데, 지금까지의 헛수고가 아까우니 조금만 더 해보자고 친구가 말해서 그러기로 했다.
웅덩이의 물이 거의 줄어 들자 나무 뿌리와 검은 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이 줄어들자 꼼짝도 하지 않던 고기란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으로 나무뿌리 사이와 뻘을 뒤적이자 물고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엄동설한에 강가의 고기들이 모두 웅덩이속으로 몰려든 것이었다. 물이 차가워서인지 고기들이 큰 저항도 못하고 손안으로 들어왔다. 강가에 살던 숱한 고기놈들이 잡혔다. 붕어부터 시작하여 피리, 중태기, 은어, 가물치 등 잡고기들이 가득 박혀 있었다.
친구와 둘이서 신이 나서 웅덩이를 뒤적여 모두 잡고 나니, 거짓말하지 않고 큰 양동이 하나 가득 잡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것도 한 겨울에 그렇게 신나게 물고기를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도 물고기를 생각하면, 싱긋이 웃던 고향친구의 모습과 「가물치」를 잡았을 때의 그 통쾌함을 잊을 수 없다.
그 이후도 객지생활을 하다가 추석명절이 되어 고향에 가면, 조카들을 데리고 들판이나 강변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이젠 들판도 농약을 워낙 많이 쳐서 그 많던 물고기들도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다만 강은 아직도 크게 오염되지 않아, 여름이면 은어떼들이 몰려 오고 있다.
강변의 풀이 우거진 곳에 체(가루는 거르는 기구)를 대고 발로 풀을 뒤흔들어, 빠른 속도로 체를 들어 올리면 거무스름한 민물새우 몇마리와 생알치나 미꾸라지 같은 잡어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한 두시간 체로 잡으면, 민물새우와 작은 잡고기가 한 사발정도 잡히기도 했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집으로 가져 와서 엄마가 밭에서 뽑은 청무시를 크게 썰어 넣 고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어 끓이면, 거무스름한 새우가 빨갛게 변하고 그 무시와 민물새우와 물고기가 어우러진 맛은 거의 환상적이었다.
고향에서 사용하던 체가 아니라, 한선생이 준비한 「새우잡이 망」중앙에 떡밥을 넣고 연못가 바위밑에 던져 두었다. 맞은 편에도 몇사람이 새우잡이망으로 새우를 잡고 있었다. 한 오분정도 지난후 한선생이 살짝 망을 들어 올렸다. 「와!」한번에 20마리 이상이 잡혔다. 어찌 통쾌하지 않으랴.
다시 바위밑자락에 새우잡이 망을 가만히 내려 놓았다. 삼 사분이 지나 다시 건져 올리니 이번에도 놀랍게도 열대여섯마리가 잡혔다. 아내와 한선생부인이 끝없이 수다를 늘어 놓는다. 여자는 수다를 먹고 사나 보다. 연못가에 하얀 구절초와 연분홍색 물봉숭아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한번에 십여마리 이상을 한시간 정도 잡으니, 민물새우가 한 사발이 넘었다. 자연의 산물은 먹을 만큼만 가져 가는게 도리다. 그래서「자, 한선생 이만 하면 되겠소. 갑시다.」하니, 「형님, 그럽시다.」라고 응수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민물새우는 청무시를 넣고 끓여야 제맛이 나나, 갑자기 준비가 되지 않아 백암장에서 사온 애호박과 깻잎 그리고 마늘을 넣고 아내가 요리를 했다.
요리가 다 되어 한선생 내외와 소주를 한잔 하려고 하는데, 마을의 터줏대감인 선사장과 총무로부터 한선생을 호출하는 전화가 왔다. 한선생은 인기가 좋다. 우리마을에 이사 온지가 우리보다 늦은 3년정도 살았지만, 매사에 적극적이고 마을의 회장으로서 대소사를 챙기다 보니 언제나 바쁘다. 사모님은 괜히 쓸데없이 바쁘기만 하다고 불평이지만 살면서 얼마나 좋은 일인가.
현대인은 모두가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남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한선생은 자기집 일보다 마을일에 동분서주하니 인기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한선생이 호출되어 가고난 후, 덧니와 미소가 아름다운 한선생 사모님과 우리내외는 얼큰한 새우찌개를 안주 삼아 소주를 한잔 했다. 팔복교회옆 공터에서 꺾어 온 코스모스가 가을 맛을 더해 주었다. 삶이 오늘만 같았으면 얼마나 좋으리오만.
Ⅲ
습관이 되어서인지 휴일이라도 아침 일곱시정도만 되면 일어나게 된다. 아직 달콤한 잠에 빠져 있는 아내를 깨웠다. 집앞에 있는 나락논에 메뚜기를 잡기 위해서다. 생각해 보니, 아침 이슬을 맞은 메뚜기는 잘 도망을 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큼직한 풀라스틱 병을 하나 들고 나락이 노랗게 잘 익은 집앞 들판으로 갔다.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밤 이슬에 날개가 젖은 메뚜기들이 제대로 날지를 못했다. 인적소리에도 가만히 나락잎 뒷쪽에 붙어 있었다. 메뚜기를 발견하곤, 공중의 매가 지상의 나무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낚아 채듯 손으로 재빠르게 메뚜기를 낚아 채야 한다.
그 중에는 다음 해의 종족보존을 위해 암수 두마리가 교미중인 놈은 인기척이 나도 움직이지를 않는다. 아내가 “요놈들은 사랑에 빠져 지가 죽은 줄도 모르네.”라고 말하고서는 얼굴을 붉혔다. 한 번에 두마리를 쌍으로 잡을 수 있으니, 메뚜기란 놈들은 불행하지만 얼마나 횡재인가. 저 윗논 자락에도 몇사람이 아침 일찍부터 메뚜기를 잡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비법을 터득했나 보다.
아내가 또 한마디 한다. “당신의 그 비상한 머리로 재테크를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해 놓고도 미안한지 웃는다. 나도 “여자들이란 그저 돈밖에 모른다니까.”라고 해 놓고도 영 마음이 찜찜했다. 한 시간정도를 잡았는데 큰 플라스틱병으로 하나 가득 잡았다. 가을 아침 햇살이 점차 따가워 왔다. 메뚜기잡이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도에서 아주 뜨거운 물을 받아 병에 부으니, 메뚜기란 놈들이 병속을 난리가 난듯 파닥이다가 조용해졌다. 다시 가스불을 켜고 오븐에 메뚜기를 넣고 참기름을 조금 부었다. 시간이 지나자 메뚜기들이 빨갛게 익어갔다. 고소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아내가 군대가서 마지막 휴가 온 아들놈에게 고단백이라며 메뚜기를 건네주자 징그럽다면서 도망간다.
아내가 다시 건강이 부실한 당신이 먹어야 된다면서 나에게 가져 왔다. 메뚜기는 내 몫이 되었다. 참기름에 볶은 메뚜기가 고소했다. 다가 오는 개천절에는 인근 산에 산밤 따러나 가야겠다. 밤값보다 인건비가 비싸서 다른 사람들이 산밤을 주어가도 주인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나절 따면 한말정도는 주울 수 있다고 하니, 올 겨울벽난로에 불을 지피면서 밤구워 먹는 맛도 쏠쏠할 것이다.
가을은 노루꼬리 만큼이나 짧다고 하더니만 그런가 보다. 이 좋은 날에 책 한권 읽지 못하고 후딱 지나갔다. 잔디마당에 안락의자를 놓고 책을 보려고 해도, 눈은 자꾸만 안으로 쏠리지 않고 밖으로만 치닫는다. 가을은 살아 있는 거대한 책이다. 마당에서 보는 구름 한점 없는 파란하늘이 크낙한 호수다. 울타리에서 가을 벌레 울음소리가 애잔하게 운다. 약간은 가슴을 애이게 하나 그렇게 슬프지는 않게 가늘고 길게 우는 벌레소리를 나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 소리가 날 한마리의 티없이 맑은 짐승이게 한다.
오늘 한선생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집을 팔기로 했다고 한다. 한 삼년정도 살면서 마을사람들과 정도 많이 들었는데,본인도 많이 허전할게다. 한선생이 마을회장을 맡고부터 최근 마을엔 활기가 넘쳤는데 그만 둔다니 걱정이다. 마을이 생기고 처음으로 외부 뷔페를 시켜 파티가 열리고,온 마을사람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마을 길가엔 빨간 백일홍 꽃이 피어있다.
지난 여름 그 무덥던 어느 날, 한선생이 수십그루의 백일홍 나무를 가져와 집집마다 나누어 주고 남은 놈은 길가에 심은 것이다. 백일홍꽃을 볼 때마다, 아내가 우리집에는 주지 않았다면서 한선생에게 따지겠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고 하지만, 정이 무엇인지 갈 풀벌레 울음처럼 슬픔이 가득 차네. 만남도 헤어짐도 모두가 인연이라고 하지 아니한가. 헤어짐이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남도 있으리니. 내일 모래가 추석이리.
열 이틀 가을 달밤이 휘영청 밝다. 지난 꿈결같던 세월들. 그 당시 가을 달밤을 쏘다니던 고향산골의 처녀ㆍ총각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들 하는지. 가슴에 고이는 아득한 눈물, 눈물들ㆍㆍ.
Ⅳ
『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 모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 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東 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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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겁게 사시는 분이시네요.